메뉴 건너뛰기

INJE UBF

메시지

조회 수 18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2017 가을학기 개강수양회 메시지                                                                                김바나바

누가복음 15:1-32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 15:7)

저는 2013년에 인제대학교 기계자동차공학부를 졸업한 김바나바 목자입니다. 지금 대구 가까이 있는 고령에 있는 국신필터 회사에서 수입차 BMW, 아우디, 벤츠 필터 관리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내 준 기아차 모닝을 타고 있습니다.

오늘 2017년 2학기를 맞이하는 개강수양회에서 여러분들과 누가복음 15장 말씀에서 받은 은혜를 나누게 되어 감사합니다.

저는 성경 말씀을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 2학년 2학기 때 여기 계신 선배, 임상병리학과 졸업생 이마태 목자님을 만나 지금까지 같이 성경 말씀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성경 공부하다가 그만 두고 싶었습니다. 공부 한지 몇 달 쯤 지나 여러 모임에 참석하게 되면서 강렬하지는 않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만 둔다고 해서 제가 지금보다 더 잘 될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은 제게 이상하게도 평안한 마음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또 여기 나오시는 선배들은 이혼도 하지 않고, 늘 즐겁게 사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저는 이분들이 왜 이렇게 사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말씀 듣고 말씀을 따라 느낀 바를 써보면서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만나시고, 찾아서 만나시고, 뿐만 아니라 죄인들의 죄를 끝까지 감당하시는 예수님을 보게 되자,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처럼 저 같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좋았습니다. 제가 지고 있던 죄 짐이 가벼워지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생겼습니다. 아버지를 알게 된 작은 아들의 기쁨인 것 같습니다.

이 기쁨 가운데 2013년부터 학부 후배인 박창욱 형제와 말씀공부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또 천사요회에서 마태목자님을 도와 요회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또 이동진 목자, 오베드로 목자와 함께 리빙스톤 팀을 이루어 우리 모임에서 허리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섬기는 것은 기쁘기도 하지만 살짝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맏아들 같은 심정이 제게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제게 있는 이 맏아들 같은 내면도 회개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맏아들 같은 내면을 회개하려고 합니다. 회개가 진행 중입니다.

오늘 저는 이 같이 누가복음 15장 본문에서 제가 받은바 은혜를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누가복음 15장 말씀의 배경은 1절과 2절입니다. 먼저 1절을 봅시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예수께 가까이 나아왔습니다. 세리는 당시 로마의 식민지였던 유대 땅에서 유대인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일부는 로마에 바치고 나머지는 자기 주머니에 넣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같은 민족인 유대인들로부터 매국노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 세리들이 죄인들과 함께 예수께 가까이 나아와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

2절을 봅시다. 이를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렸습니다.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시 유대인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작정하고 세상과 분리된다 하더라도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서기관들은 당시 인쇄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성경을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연히 이 사람들은 성경을 잘 알았습니다. 이런 거룩한 사람들이 볼 때 예수께서 그런 매국노들과 죄인들을 가까이 하고 같이 밥을 먹는 것을 보니 영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3).

 

잃은 양 하나 비유(4-7)

4절을 읽어 봅시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제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하나를 잃으면, 어떻게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가지? 들에 다른 목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두고 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아흔 아홉 마리나 되는데, 그것들이 각기 또 다 어디로 가버리면 어떡하지? 또 잃은 것은 잃은 것이고, 남은 걸 잘 챙겨야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제가 만약 길을 잃어버렸고, 제 주인이 저를 그처럼 찾아온다면 그처럼 좋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잃은 양, 길을 잃어버린 양, 무리에서 떨어져버린 양인지, 아니면 남은 아흔아홉 마리에 속하였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잃은 양이었습니다. 길을 잃은 양이었습니다. 저는 독실하진 않지만 절에 다니는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생각 없이 살아왔습니다. 공부하기 싫어하고 놀기를 좋아하고,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제 삶에 무슨 목적이나 길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기준이 없다보니 죄를 지어도 죄책감이 없었습니다. 슈퍼나 문구점에서 도둑질을 하고, 사춘기에 접어들어 정욕에 눈을 뜨게 되면서 야동에 노출되고, 죄책감 없이 이를 즐기고, 커서는 돈 주고 정욕을 채우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살면서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기준 없이, 말씀 없이 그냥 제 욕심대로 그냥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외로웠습니다. 사람들 앞에 서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더 놀렸습니다.

이런 저를 예수님께서 찾아주셨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저의 주인으로 여기지도 않았는데도 저를 찾기 까지 찾으셨습니다. 말씀공부에 초청해주시고 계속하여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제게 저의 삶의 기준, 변하지 않는 기준이 되어 주십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5,6절을 봅시다. 잃은 양을 찾아낸 주인은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

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할 것입니다.

7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밥 먹는 예수님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그들에게 이르신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그렇습니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감동이 되었습니다. 저 같은 길 잃은 양, 기준 없이 본성대로 살던 저를 찾기까지 찾으시고 기뻐하신다니 참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이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성경 말씀을 공부하면서 제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죄인인 저를 하나님께서 당연히 혼내실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모임에서도 저만 혼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기뻐하신다니, 더구나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 보다 더 하리라 하시니 진짜 기쁩니다. 리빙스톤 팀에서 동진 목자나 오베드로 목자는 여름수양회에서 메시지도 잘 전하고 소감도 잘 쓰는데, 나는 왜 몇 년이 지나도 별 진전이 없을까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두 사람은 칭찬하시겠고, 나만 혼내실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그보다 더 기쁠 할 것이 없다 하시니 제가 회개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떠하든지 제 자신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회개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좀 더 누가복음을 읽어봅시다.

 

열 드라크마 비유(8-10)

8절을 봅시다.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었습니다. 드라크마는 당시 쓰던 은화입니다. 일용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합니다. 이 여자는 드라크마 하나를 모으면서 이런 저런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무엇을 사야지, 어디로 갈 때 여비로 쓰야지.. 그런데 그만 드라크마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꿈이 깨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드라크마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하십니다.

9절을 봅시다. 또 찾아낸즉 너무 기뻐서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10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하나님께서 죄인 한 사람, 내 한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십니다.

 

두 아들 비유(11-32)

회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회개가 무엇입니까? 11절을 봅시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12절을 봅시다.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이는 자기에 돌아올 상속분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기에게 달라는 것입니다.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요구하다니 많이 지나친 요구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어떻게 하였습니까? 아버지가 그 살림을 맏아들과 작은 아들에게 각각 나눠 주었습니다. 참 인격적인 아버지이십니다.

13절을 봅시다.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갔습니다. 아마도 아버지와 함께 산다는 것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자기 삶을 살지 못하고 아버지 뜻대로만 살아야 할 것 같았던 같습니다. 하여튼 아버지로부터 멀어지면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멀리, 되도록 멀리 갔습니다.

거기서 뭘 했습니까?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없으니 잔소리 듣지 않는 것은 좋지만, 그는 거기서 기준 없이 목표 없이 그냥 살았습니다. 돈이 있을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자기 힘으로 벌지 않은 돈을 쉽게 쓰게 되었고, 그 재산을 다 없앴습니다.

14절을 봅시다.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었습니다. 세상 일이 다 사람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돈 있다고 잘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돈은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돈도 떨어졌는데 흉년까지 크게 들었으니 그가 비로소 궁핍하게 되었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15절을 봅시다. 그래서 그는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 무엇인가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나라 백성, 아버지가 없는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살았습니다. 그 사람은 작은 아들을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습니다. 일을 시켰습니다. 돼지 냄새만 맡고도 멀리 했던 그가 돼지를 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16절을 봅시다.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쥐엄 열매는 중동지역에서 나는 야생열매인데, 돼지나 먹지, 사람이 굵어죽을 지경이 아니면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돼지 감자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다이어트 식품으로 먹기는 하지만, 예전에는 돼지나 먹는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쥐엄 열매 먹으려 해도 주인이 돼지 줘야지 하고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서러웠습니다. 그때서야 아버지와 함께 있던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17절을 봅시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지금 이 돼지 주인하고는 영 다른 분이었습니다. 깐깐하기는 하였지만 풍족한 분이었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늘 자신에게 주어졌습니다. 자녀들뿐만 아니라 품꾼에게도 풍족하게 하신 분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궁핍하게 되었을 때 스스로 생각한 것입니다. 궁핍해지자 정신이 들었습니다.

이로볼 때 회개의 시작은 스스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스스로 정신이 나서 하나님 없는 세상이 어떠한지, 하나님 아버지가 누구신지 깨닫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는 것이 회개의 출발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그가 무엇을 하였습니까? 마음을 먹었습니다. 결심을 하였습니다. 깨달았으면 결단이 뒤따라야 합니다. 회개의 다음 단계입니다. 그가 어떻게 마음 먹었습니까? 18절과 19절을 봅시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그리고 그는 그가 마음먹은 대로 행하였습니다. 20절 상반 절을 봅시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갔습니다. 회개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회개는 세상이 어떠한지, 아버지가 누구신지 깨닫고,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마음을 먹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저는 말씀에 나오는 작은 아들 같은 사람입니다. 저도 부모님 눈치 보지 않고 살고 싶었습니다. 중고등학교시절에는 시간만 나면 게임을 했고, 부모님과 떨어져 인제대학교에 와서는 수업도 빼먹으며 게임하고 술 마시며 놀았습니다. 여전히 그런 마음이 제 속에 있습니다. 요즈음도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아무 것도 하기 싫습니다. 제 앞일에 대해 생각하고 계획하기보다 드라마보고, 영화보고, 가끔 야동을 보기도 합니다. 하여튼 저는 어떤 강제적인 시스템을 벗어나 제게 조금의 자유가 생기면 딴 짓을 합니다.

저는 왜 딴 짓을 할까요? 요즘 저의 관심사는 직장으로 김해로 옮기는 것입니다. 김해 가까이에 와서 말씀역사에 더 제 시간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 실제 삶은 이를 위해서 구체적인 준비나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의 내면을 들여다보니 복잡합니다. 이왕 옮길 거, 괜찮은 곳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럴 자신감은 없고, 아무 곳이나 지원해서 가자니 내키지가 않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대한 불평이 있지만 이 회사보다 더한 곳 일까봐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시간만 축 내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나오는 둘째 아들처럼 비로소 궁핍해진 다음에야 회개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두렵습니다. 제가 더 궁핍해지기 전에 지금 회개를 해야 합니다. 답답하다고 드러 누워만 있지 말고 움직여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가까운 곳에 이런 회사들이 어디어디에 있는지 실제로 알아보고, 매일매일 지원하여야 하겠습니다. 회개는 마음만 먹는 것으로 그쳐서는 아무 열매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가기로 마음먹었으면 하나님께로 가야 합니다.

이렇게 회개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기뻐 잔치하십니다(20-24)

20절 하반 절을 봅시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거지꼴이 되어 있어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측은히 여겼습니다. 가엾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있는 그대로 안았습니다. 냄새 풀풀 나는 그대로 아들이라 그냥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에 아들이 말했습니다. 21절을 봅시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음을 고백하고 자신은 이제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 감당하지 못할 것도 각오하였습니다. 그의 자기 발견이 확실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래 그동안 네가 가져간 돈이 얼만데, 20년은 공짜로 일해.’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22절과 23절을 봅시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2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제가 회개하고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잔치하십니다. 저도 이런 잔치를 하고 싶습니다. 제 심령에 믿음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고, 목표를 주신 주님께 감사 찬양을 드립니다.

그런데 맏아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심장이 상했습니다. 이런 맏아들에게 아버지가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25-32)

25절부터 봅시다. 맏아들은 밭에 있었습니다. 동생이 집을 나가고 나서 그의 일이 더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여 종을 불러 물었습니다(26).

종이 대답하기를 27절을 봅시다.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자 맏아들이 속에서 무엇인가 우욱하고 열이 솟아올랐습니다.

그가 노하여 집에 아예 들어가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아버지가 어떻게 하였습니까? ‘야가 내 마음도 모르고, 그 동안 네가 내 옆에만 있었지. 속은 딴 생각하고, 아이구 내 못 살아.’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맏아들에게 집에 같이 들어가자고 조용히 권했습니다.

그랬더니 맏아들이 속에 있던 이야기를 쏟아내었습니다. 29,30절을 봅시다.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살림이 이제 자기 살림이 되었는데, 그것을 아버지가 자신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자기 것 다 말아먹어버린 동생 돌아왔다고 살진 송아지까지 잡은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깝고 또 자기 인생이 오히려 불쌍한 것 같이 보였습니다.

이에 아버지가 그에게 말합니다. 31,32절을 읽어봅시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아버지는 작은 아들에게도, 맏아들에게도 아버지입니다. 어떤 모습이 드러난다 하더라도 인격적으로 대해 주십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인격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하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들도 예수님과 함께 모든 세리들과 죄인들과 같이 가까이 하고 밥 먹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읽으니 좀 부끄럽습니다. 새로운 형제자매들이 우리 모임이 나오면 모든 목자님들의 관심이 그들에게 솔리고, 저는 조금 소외되는 것 같았습니다. 또 동진목자나 베드로 목자가 성장하는 것을 보면 시기심도 생기고 경쟁심이 생기고, 내가 받을 사랑과 인정을 빼앗긴다는 생각이 조금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제게 끊임없이 말씀하여 주시고 저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보고 듣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같이 특송을 힘 있게 할 수 있고, 새로 오는 형제자매들에게도 따뜻한 미소를 날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 보다 더 기뻐하신다고 하십니다. 우리 각 사람이 내 자신을 길 잃은 죄인으로 자기발견을 하였을 때 딴 짓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가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누가복음 15:7)

 

2017년 2학기 개강수양회 메시지.hwp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8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44강 메시지 file JohnKim 2017.12.01 283
57 시편 2017년 추수감사절 메시지 file 정여호수아 2017.11.19 280
56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43강 메시지 file JohnKim 2017.11.17 268
55 히브리서 2017 가을수양회 메시지 file JohnKim 2017.11.05 259
54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42강 메시지 file 정여호수아 2017.10.29 289
53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39강 메시지(천모세) file JohnKim 2017.10.08 290
52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39강 메시지 file JohnKim 2017.10.08 263
51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38강 메시지 file JohnKim 2017.10.01 279
50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37강 메시지 file 정여호수아 2017.09.24 244
49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36강 메시지 file JohnKim 2017.09.21 235
48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35강 메시지 file JohnKim 2017.09.12 292
47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34강 메시지 file JohnKim 2017.09.05 298
46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33강 메시지 (양산) file JohnKim 2017.08.31 198
45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33강 메시지 file 정여호수아 2017.08.27 216
» 2017 가을학기 개강수양회 메시지 file JohnKim 2017.08.26 186
43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32강 메시지 file JohnKim 2017.08.24 226
42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31강 메시지 file JohnKim 2017.08.19 241
41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30강 메시지 file JohnKim 2017.08.12 240
40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29강 메시지 file JohnKim 2017.08.05 242
39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28강 메시지 file JohnKim 2017.07.25 249
Board Pagination Prev 1 ... 12 13 14 15 16 17 18 19 20 ... 21 Next
/ 2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