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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017.12.31 14:47

2018년 신년 1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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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신년 1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에베소서 4:1-16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가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에베소서 4:15)

우리는 과거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2:1,3).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2:4,5). 은혜로 구원 받은 우리는 이제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1-15)

1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너희가 부르심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먼저 자신이 주 안에서 갇혔음을 언급합니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혔습니다(3:1). 그 자신이 부르심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는 믿음의 본을 지켰습니다. 부르심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는 바울을 통해 하나님은 에베소 성도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자신과 같이 그들도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 권합니다.

부르심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같이 2,3절을 봅시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 이로 볼 때 에베소교회 내에 서로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있는 교회였습니다. 이 둘은 원수처럼 중간에 막힌 담을 치고 커다란 장벽 속에 살았습니다(2:14). 그런데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원수된 것을 소멸하시고 서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2:16). 성령께서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힘써 지키라’, 어찌하든 하나 된 것을 모든 노력을 다하여 지키라 하십니다. 이로 볼 때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는 데에는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 되는 것은 그냥 되지 않습니다. 힘써 지켜야 합니다.

저의 경우 매일 같이 사는 저의 아내와 하나 됨을 지키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같이 살지도 않는 사람들과 하나 되는 것은 그야말로 쉽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제 각각 자라온 성장 배경이 다르고, 고통 하는 죄 문제가 다르고, 각각 기호와 취미,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민족과 문화와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하나 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써 지켜야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하나 됨이 깨지지 않도록 모든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 된 것을 지키기 위해 성도들이 힘써 행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먼저 모든 겸손과 온유로 행해야 합니다.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자신을 낮추는 태도나 자세’를 말합니다. 당시에 ‘겸손’이라는 단어는 노예들에게 쓰는 표현이었다고 합니다. 곧 종이 되어 낮아져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겸손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겸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대할 때, 또 모든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이런 종의 자세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온유’는 ‘남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자세’입니다. 당시에는 ‘말과 같이 길들여진 야생동물을 지칭할 때’ 사용된 단어였다고 합니다. 곧 온유는 타고난 성품이라기보다 훈련을 통해 갖게 된 부드러운 성품입니다. 그런 사람의 대표로 모세가 있습니다. 모세는 청년 시절 혈기가 많고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광야에서 훈련을 받은 후 그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게 되었습니다(민12:3). 이로 볼 때 겸손과 온유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과의 죄악 된 본성과 거슬러 싸우는 영적인 싸움에서 형성되는 내적인 열매입니다.

또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를 용납해야 합니다. ‘오래 참음’은 말 그대로 ‘계속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되 계속하는 것입니다. ‘용납’은 ‘넓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약점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질 때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믿음의 공동체에 평안이 깃들이고, 그 평안이 공동체를 묶어 주는 줄이 되어 하나 됨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의를 내릴 수는 있지만 이렇게 행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용납하고자 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저는 양일 때, 나란 사람이 나름 겸손하고 또 온유하고, 오래 참는 것도 잘하고, 누구라도 용납을 잘 하는 그런 훌륭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었습니다. 고난이 별로 없을 때는 좋은 마음으로 어느 정도는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자가 되어 섬기고자 할 때 십자가가 갈수록 많아지고, 한계상황으로 몰릴 때, 사람들로부터 이런 저런 일들로 상처를 받게 될 때 결국은 제 본성을 따라 감정과 혈기대로 행할 때가 많았습니다. 얼마 전에도 성탄UCC 영상을 촬영해야 해서 다들 힘써서 노력하고 있는데, BBF 어린 형제가 계속 방해를 해서 그만 그에게 ‘그만’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동역자들과 양들과 아이들의 마음에서 평화를 빼앗고 말았습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가장 힘써 지켜야 할 제가 오히려 그 하나 된 것을 깨뜨리고 있었습니다. 심히 부끄럽고, 낙심이 되었습니다. 어린아이 하나도 감당하지 못하는 제가 앞으로 대학생역사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였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제가 이런 줄 알면서도 주께서 저를 주의 종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이 놀랍고 또 깊이 감사가 되었습니다. 저의 죄로 인해 절망만하고 있을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저 같이 죄악 되고 쓸모 없는 자에 대해서도 모든 겸손과 온유로 대하시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용납하신 주님의 사랑을 항상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함으로 저의 죄로 인해 끊임없이 겪게 되는 모든 부끄러움과 낙심을 이기고, 주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계속 인내하며, 믿음으로 도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할 때 언젠가는 저도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피스 메이커로 쓰임 받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4절에서 6절을 봅시다. 우리의 몸은 하나요, 성령도 한분 이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입니다.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만유의 아버지이십니다.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십니다. 곧 우리는 한 하나님과 한 그리스도와 한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도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1:10). 곧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을 넘어 사람과도 화목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된다고 해서, 강제적으로 획일적으로 지키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같이 7절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은혜를 주시기 위해 땅 아래 낮은 곳에 구유에 뉘인 아기로 오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 위에 오르셔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셨습니다(8-10).

그 분량대로 주신 선물이 무엇입니까? 11절을 봅시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여기서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란 뜻으로 예수님께서 세우신 열 두 사도들을 말합니다. ‘선지자’는 미래의 일을 예언한 사람을 말합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불신자를 대상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사람입니다. ‘목사’는 교회를 맡아서 감독하고 다스리며 교인들을 양육하며 먹이는 사람이고, ‘교사’는 성경을 해석하며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다른 은혜의 직분을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2절을 봅시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것은 자기 광을 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리고 연약한 양들의 믿음과 내면이 자라나 하나님의 일을 섬기는 사람이 되기까지 섬기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려 하심입니다.

이로 볼 때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분량대로 다양한 선물 곧 직분을 주신 것은 각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에 더욱 하나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각 사람은 각 사람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각각의 특성, 은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과 나는 다릅니다. 아내와 나는 다릅니다. 나와 같지 않습니다. 이를 알면 상대방이 내 의견과 다르다고 해서 이를 비난하거나 판단할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의견이 다 같을 때 그 모임은 더 문제가 되는 모임이 되고 맙니다. 반대로 서로가 서로 다른 의견을 포용할 때 진정 더 창조적이고 발전적인 모임이 됩니다. 물론 다만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열심히 대화하고 받아들이는 수고로운 과정이 필요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긴 과정이 필요합니다.

저는 센터 동역자들과 의견이 다를 때나, 제 의견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제 리더십이 서지 않은 것 같아 힘들어 하였습니다. 최근에는 미국수양회 준비를 하면서 좀 힘들어 했습니다. 저의 좁은 식견과 역량으로는 센터 동역자들의 여러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수렴조차 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저의 한계가 다 드러나는 것 같아서 주눅이 들고, 이런 자신으로 인해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본문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분량에 맞게 은사를 다양하게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큰 위로를 얻었습니다. 끊임없이 저를 무겁게 짓누르던 생각, 곧 나는 모든 면에서 훌륭하고 모든 것을 다 잘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조용히 경청하는 자세로 모임에 임할 수 있었고, 서로 간에 다른 의견, 다양한 의견을 계속 주고받는 가운데서 미국수양회준비가 더 발전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을 지켜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의견, 다양한 의견을 통해 오히려 나의 부족함과 우리 모두의 부족함이 채워지고, 믿음의 공동체가 하나로 세워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 경험을 밑거름 삼아 앞으로는 날카롭게 지적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동역자들과 양들에 대해서 오히려 더 감사하고 존중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좀 수고롭고, 긴 과정이라 할지라도 이를 통해 저의 좁고 한계적인 생각을 찢어 넓히고, 또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로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성장해야 합니까?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가라(13-16)

다같이 13절을 봅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직분을 받은 사람들이 그 직분을 잘 감당할 때 모든 성도들이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됩니다. 각 사람이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예수님을 아는 지식으로 하나가 되어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끊임없이 거역하는 우리 죄인에 대해서도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용납하심으로 감당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기 몸을 십자가에 완전히 내어주셨습니다. 곧 우리 각 지체들이 이같이 죄인들을 위해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신 예수님의 높은 수준으로 까지 성장하게 됩니다. 이는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입니다(15). 어린 아이는 자기중심적이고, 또 분별력이 없어 사람들의 간단한 속임수의 말에 쉽게 넘어 갑니다. 간사한 유혹에는 더욱 약합니다. 어떤 사람이 여기 가보자면 그리로 휩쓸리고, 저기 가보자면 저리로 휩쓸립니다. 신앙의 자기 주관이나 철학이 없습니다. 그래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쉽게 요동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런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같이 15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야 된다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오직’이라고 했습니다. 곧 ‘오직’ 이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가는 것입니다. 먼저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해야 합니다. 진리는 있는데 사랑이 없으면 그 진리는 냉혹하고 무자비할 수 있고, 사랑은 있는데 진리가 없으면 그 사랑은 값싼 은혜가 되기 쉽습니다.

또 자라되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실제 나의 삶 가운데 모든 면에서 우리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어떻게 됩니까? 다같이 16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지체인 우리에게 은혜를 끊임없이 공급해 주심으로 우리 각 사람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게 되고 이로써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견고히 세워나갈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따라 올 한해를 돌아볼 때 저는 모든 면에서 사랑가운데서 참된 것을 하여 그에게까지 자라가지 못했습니다. 주의 역사를 섬긴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내 뜻과 생각을 앞세우고 제 자존심을 지키고 세우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저 자신과 제가 속한 믿음의 공동체가 실제로 어떻게 되는지를 확실히 경험을 했습니다. 오늘 15절 본문에 나오는 어린 아이와 같이 끊임없이 유혹에 시달리고 요동하고, 교회 내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하나된 것을 끊임없이 깨뜨리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제게 새해 말씀으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가라’는 말씀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제 본성으로 결코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요구를 다 채워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끊임없이 예수님의 성품을 배울 때,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을 가질 때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킬 수 있습니다. 제가 2018년에는 특히 예수님의 오래 참음으로 용납하는 사랑을 깊이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각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을 알고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가는 것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용납하심으로 죄인들을 감당하신 예수님, 무엇보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보고 믿고 따라가기를 힘써 하다보면 성령께서 우리로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아멘!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에베소서 4:15)

 

2018 신년 1강 메시지 에베소서 0401-0416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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