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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7.12.12 15:23

2017 누가복음 46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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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46강                                                                                                  김요한

누가복음 23:1-23:56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누가복음 23:34상)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현장 기록입니다. 무슨 일에나 실제 현장이 중요합니다. 학교에서 이론 공부를 하면서 실제에서 이것이 과연 쓰일까 하는 생각 때문에 공부가 힘들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말일지라도 실제에서, 현실에서, 현장에서 어떻게 하느냐가 그 말의 실제이고 또 본질입니다. 먼저 예수께서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되었습니까?

 

빌라도가 그들의 뜻대로(1-25)

1절부터 봅시다.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발하였습니다. 고발의 요지는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였다 하였습니다(2). 예수님을 로마에 반역한 반역 죄인으로 고발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미 읽었듯이 예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셨습니다(누가복음 20:25). 그런데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반을 뚝 잘랐습니다. 말씀은 본문 그대로 다 읽어야 합니다.

빌라도가 재판관으로서 예수님을 심문하여 예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물으니, 예수께서 “네 말이 옳도다” 대답하셨습니다(3). 그런데 4절을 봅시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반역죄로 고발한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였습니다. 빌라도가 로마법에 따라서 볼 때 예수님이 반역한 죄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놓고자 하였습니다(20). 예수께서 갈릴리 사람이라고 갈릴리를 관할하는 헤롯왕에게도 보내 보고(5-12), 다시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아 예수께서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으니 때려서 놓겠다고 까지 하였습니다(13-16).

그런데 그는 왜 예수님을 놓아 보내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였습니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무리들이 예수님을 힘써 고발하였습니다(5). 빌라도가 계속 예수님을 놓겠다고 하니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였습니다.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였습니다(19). 빌라도가 들으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라 다시 그들에게 예수님을 놓고자 말하니(20), 그들은 소리 질러 말했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21). 빌라도가 세 번이나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였습니다(22).

23절을 봅시다.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겼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언도하였습니다(24).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였습니다(25). 워낙 빌라도의 뜻은 예수님에게 죄가 없으니 놓아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자기 뜻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뜻대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기로 간절히 기도하셨고,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6-31)

26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밤새 심문 받고 또 채찍질을 심하게 당하여 70kg에 달하는 십자가를 도저히 지실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라고 하셔서 ‘그거 뭐, 지지 뭐.’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럴 몸이 아니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보고 백성과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27).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이 너무 딱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당하실 분이 아니셨습니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보니 너무나 슬펐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8) 제가 힘들어 있을 때 누군가가 와서 울어주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29절과 30절을 봅시다.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심판의 날이 이릅니다.

같이 31절을 읽어봅시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푸른 나무, 곧 예수께도 이같이 하시는데, 마른 나무, 곧 생명 없는 존재에게는 어떤 심판이 이를지 그들이 깨닫고 심판의 엄중함에 대해 스스로 살피고 회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죄를 감당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하신 기도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32-38)

32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로마 총독에게 사형 언도를 받았다 하더라도 물 위를 걸으신 예수께서 그런 상황을 얼마든지 벗어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또 다른 두 행악자와 함께 끌려 가셨습니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었습니다(33). 예수께서 한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십자가형은 사람을 사형에 처하되 어떻게 하면 가장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을까 하여 당시에 개발된 가장 극심한 형입니다. 사람들이 이를 보고 도저히 저기에 해당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되겠다는 경각심을 주고자 하였습니다. 반역죄인 같은 극한 강도짓을 한 죄인, 살려두어서는 안되겠다 싶은 죄인을 십자가에 형에 처했습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데 그렇게 십자가형에 처해졌습니다.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모든 뼈가 어그러지는 아픔, 뼈도 어그러졌을 뿐만 아니라 마음은 촛농처럼 녹아내렸고 혀가 입천장에 붙었다고 기록합니다(시편 22:14,15).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은 몸이 아플 뿐만 아니라 믿음 까지도 다 버려지는 것 같은 고통입니다.

예수님은 극심한 아픔 가운데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34절을 읽어 봅시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께서 너무 고통이 심하여 그동안 참고 참았던 울분을 다 쏟아 내어 삼손처럼 그렇게 한 번에 거기 있던 사람 다 죽이고 자기도 죽는 길로 가지 않으셨습니다(사사기 16:30),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십자가에 못 박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가장 절망이 되는 그 때 예수께는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아버지께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다 하셨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알지 못합니까? 예수님을 처음으로 그리스도로 고백한 베드로가 예수님의 고난 받고 죽임 당하고 다시 사실 것을 예수께서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몰랐던 것처럼,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따른 베드로도 알지 못하였던 것처럼 사람들은 예수께서 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지,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왜 그렇게 가만히 계신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이 죄입니다. 우리가 누가 있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죄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죄를 완전히 사하여 없이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죄 사함의 권세가 아버지께 있음을 드러내시고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이는 곧 예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하나님 아버지를 떠난 죄인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이를 아시고 십자가에 못 박는 그들을 위해 간절히 십자가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무지에서 깨어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왜 죄 가운데 있게 될까요? 무지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무지입니다. 내 죄악 된 본성에 따라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현장에서 백성들은 구경하고, 관리들은 비웃어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35), 군인들도 희롱하며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였습니다(36,37).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서 그 권세(38),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세를 자기 구원에 쓰지 않으셨습니다.자신에게 주어진 권세와 능력을 자기 구원에 쓴 사람이 빌라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중요한 한 가지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억지로 못 박히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도 우리를 향하여 용서의 기도를 감당하신 그 놀라운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또 무엇을 하셨습니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39-43)

39절을 봅시다. 예수님 옆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예수께 말하였습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었습니다. 그가 말하였습니다.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40) 같이 41절을 읽어봅시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 사람은 첫째, 자기 발견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신이 행한 일에 보응을 받아 십자가 고통 가운데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둘째, 그는 예수님 행하신 것이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였습니다. 어떻게 그가 이런 발견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상태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그 말씀과 행함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는 그들을 향해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 행함에 옳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가장 극심한 아픔 가운데서 그는 예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를 현장에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소망이 생겼습니다. 42절을 읽어봅시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임하실 분이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나를 기억하소서”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입니다. 43절을 주의 약속으로 읽어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가 받은 최고의 복음입니다. 다른 날도 아니고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는 오늘, 그가 예수님과 함께 낙원, 곧 하나님 나라에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 이 약속을 하셨습니까?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좌절되고 절망될 그 때에라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고 자신을 부탁하는 사람에게 예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약속해주십니다. ‘너는 너 죄가 있는데, 네가 받을 고통을 감당해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좇아가는 이유가 진실로 무엇입니까? 좌절되고 억울하고 절망될 그 때, 자신을 발견하고 죄 가운데 있는 자신, 죄 값을 치러야 할 수 밖에 나를 발견한 나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약속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떤 사람 죄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예수께서는 지금도 성령으로 그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를 약속하십니다. 그 어디나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더라(44-46)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44). 예수님은 실패하신 것 같습니다. 용서의 기도를 감당하셨다 하더라도 어둠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에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졌습니다(45).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는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히브리서 10장 19절이 증거 합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히브리서 10:2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의 몸이 찢어지고 피 흘리셨습니다. 어두움이 더 이상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46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모든 사명을 다 이루신 후 숨지셨습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로 오신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영생불멸의 삶을 사신 분이 아닙니다. 숨지셨습니다. 우리 죄를 다 사하시고 우리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여신 후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구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세상의 삶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오신 날 ‘메리 크리스마스!’ 기념합니다.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그 된 일을 보고(47-56)

47절을 봅시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았습니다. 이 사람은 사형 집행관입니다. 로마 군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현장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진짜 바른 사람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누구나 다 바르게 살고자 싶지만 바르게 살지 못해 절망합니다. 스스로 의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특히 죽음 앞에서 그 사람의 내면이 다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말씀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우리를 향해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로마 백부장도 예수님이 의인이셨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은 로마 군인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누구에게도 예수님을 의인으로 고백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증거되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 믿습니다. 아멘!

뿐만 아니라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갔습니다(49).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았습니다(49). 또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50,51). 그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현장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었습니다(52,53).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습니다(54).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었습니다(55,56). 이들이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현장을 본 사람이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말씀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말씀대로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볼 때 알지 못하여 무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은 아버지께 우리를 위해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증거합니다(로마서 5:8).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 때가 가장 억울할 때입니다. 나는 열심히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뭐하는가 싶습니다. 이런 억울함은 그래도 거룩한 억울함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예수님이 없는 것이 좋겠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우리를 위해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가장 억울하고, 좌절이 될 그 때, 나도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뼈가 어그러지고 심장이 녹아나는 그 때에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용서의 기도를 하신 예수님을 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2절은 증거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신 이 예수님 바라보자 하십니다.

우리가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에 피 흘리시고 죽으신 예수님,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 죄를 사해 달라 기도하신 예수님, 우리를 이 같이 사랑하신 예수님을 때마다 바라보고, 믿음으로 실제 삶에서 죄에 매이지 않는 주의 사람으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아멘!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누가복음 23:34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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