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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7.10.01 14:31

2017년 누가복음 38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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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38강                                                                                                    김요한

누가복음 18:31-43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누가복음 18:41)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 말씀을 들어도 하나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이 나옵니다.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34상).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인데, 무슨 말씀이든지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자 하는 제자들인데.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다니.

그들이 무슨 말씀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습니까?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31-34)

31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하나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열두 제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이라는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였습니다(6:14-16). 가룟 유다라면 그래도 이해가 되는데,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른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 마태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5:11,28).

그들이 모든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깨닫지 못한 말씀은 이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31절 하반 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이르신 말씀입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지금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중이었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이 있고, 로마 총독 관저가 있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먼저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할 것입니다. 인자(人子)는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칭합니다. 예수께서 오셨을 때 천사가 목자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로 보게 될 표적이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라 하였습니다(2:12). 예수님이 강보에 싸여 아기로 오셔서 하늘에 오르시기까지 이 땅에서의 삶, 인자의 삶은 한 마디로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응하는 삶입니다.

이제 인자이신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하십니까? 어떤 말씀이 응하여진다고 하십니까? 32,33절을 봅시다.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이미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입니다(9:22).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하였을 때 인자로서 고난 받고 죽임 당하고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으로 볼 때 그때나 지금 이 말씀을 들었을 때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데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냄새라도 맡아야지, 왜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을까요? 34절을 봅시다.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감추어져 있어서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있기는 있는데 감추어져 있어서 보이지 않을 뿐이었습니다.

왜 보이지 않을까요? 엄연히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자들은 이전에 고기 잡을 때도 얕은 물에서 고기 잡느라, 깊은 데로 가지 못했습니다(5:4). 깊은 데는 무서워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갈 생각을 하지 못했겠지요. 제자들은 나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같은 곳에서 옆에서 “얘들아” 하고 그들을 불러도 예수이신 줄 알지 못했습니다(요한복음 21:4,5).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보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생각하지 못하면 엄연히 있는데도 보이지 않습니다. 거미줄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보면 거미줄이 보이는데, 그런 생각이 없으면 거미줄이 보이지 않습니다. 적어도 여기에 무엇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보면 보이는 것이 많아집니다. 생각지도 못하였던 것이 보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권세 있으신 예수께서, 말씀으로 나병환자도 고치시고 중풍병자도 일으키시고, 바람과 바다도 잔잔하게 하시는 예수께서 이방인에게 고난 받고 죽임 당한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다시 살아나신다는 것은 그야말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셔도 왜 저런 말씀을 하시지, 괜히 우리에게 절망하지 말라고 저런 말씀을 하시나 싶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소망이 있음을 누가복음은 증거 합니다. 맹인이,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눈이 떠졌습니다. 그가 어떻게 하였기에 눈이 떠졌습니까? 기도하였습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35-43)

35절을 봅시다. 여리고, 예루살렘이 가까운 도시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 일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방인에게 고난 받고 죽임을 당하실 떼가 가까운 때였습니다.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앞에 보이지 않는 맹인이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다른 사람의 자비를 구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맹인이 구걸하고 있으면 그냥 조용히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사람들이 왁자지껄 무리지어 지나갔습니다. 맹인이 이를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36).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였습니다(37). 이 말을 듣고 맹인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38절을 봅시다.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라 하였는데, 이 맹인은 “다윗의 자손 예수여” 하였습니다. 나사렛은 갈릴리 시골 마을입니다. 사람들은 특히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맹인은 나사렛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임을 알았습니다. 곧 성경에서 예언하는 그리스도로 오시는 다윗의 자손으로 알아들었습니다. 나사렛 예수께서 말씀으로 나병환자도 고치시고, 중풍병자도 일으키셨음을 그가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맹인을 보게 하셨음을 들었습니다(7:21). 이분은 바로 성경 말씀에서 증거 하는 나사렛에 오신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이셨습니다(이사야 11:1, 35:5, 마태복음 2:23).

그에게 들린 한마디,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은 곧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 예수, 나의 눈을 뜨게 해주실 분이 지나가신다”로 들렸습니다. 그는 지체 없이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기만 하시면 언제든지 그의 눈을 뜨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39절을 봅시다.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였습니다. 간절한 심정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하였는데, 사람들은 ‘시끄럽다 조용히 해라’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가 어떻게 했습니까?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무리들로 인해 예수께 갈 수 없자 지붕을 뚫은 것과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그는 계속 크게 더욱 소리 질렀습니다. 사람들의 꾸짖음에도 눌리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이 자기 외침을 들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만 있었습니다.

이는 기도입니다. 그는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예수께 기도하였습니다. 예수께 하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무시와 멸시에도 관계치 않고 예수께 드리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눈을 뜨고 싶었습니다. 눈이 감겨져 있으니 답답해도 너무 답답했습니다. 그의 소원은 눈을 떠서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해주실 분이 옆에 계시니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 하였겠습니까.

40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셨습니다. 그의 외침이, 그의 기도가 예수께 들렸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그 간절함이 어떠한지 아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데려오라 하여 물으셨습니다. 41절을 봅시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의 낙심하지 않는 기도, 더욱 소리 높여 간구하는 기도를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에게 그의 소원을 물으셨습니다.

이에 그가 무엇을 원한다고 하였습니까?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하였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보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그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다 하더라도 그는 지금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게 하실 줄 믿고 주께 이를 구하였습니다.

42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기도대로 그에게 “보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보라”고 하신 이유는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임을 밝히셨습니다.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에 그가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43).

그의 믿음이 그를 구원하였습니다. 그의 믿음이 그로 보게 하였습니다. 그의 믿음이 그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말씀대로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사람의 눈을 뜨게 합니다. 있지만 감추어져 있는 말씀의 뜻을 보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기도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눈이 떠집니다. 말씀을 깨닫고, 세상이 일어나는 일들이 말씀이 응하여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깨닫지 못하였지만 예수께서는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제자들도 이 말씀을 깨닫게 되었고, 그 제자들이 자신들이 깨달은 바를 사람들에게 담대히 증거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담대히 주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요즈음 우리 가운데 리빙스턴 팀이 말씀역사에 쓰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역사에 허리 역할을 힘 있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허리는 머리와 다리를 연결합니다. 허리가 힘을 잃으면 사람이 무슨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리빙스턴 팀은 베드로전후서를 읽으며 힘을 얻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대구 현풍에서 매주 금요일 저녁에 김해로 와서 월요일 아침까지 머물며 일대일, 요회와 전체역사를 섬깁니다. 학교 공부와 연구하기에 몸과 마음이 바쁜 가운데서도 시간을 냅니다. 또 학교에서 받는 얼마 안 되는 생활비 중에서 얼마를 쪼개 요회 양들을 먹입니다. 또 한 사람은 대구 근처 고령에 직장이 있는데, 매일 스트레스 받는 직장 일을 마치면 기도하고 말씀을 읽으려 합니다. 그리고 주말마다 모닝을 몰고 김해에 와서 꾸준하게 한 사람과 일대일을 합니다. 그리고 요회와 전체역사에 쓰임 받습니다. 또 한 사람은 스트레스 받는 군 생활 중에서도 매주 진해에서 김해로 옵니다. 요회 역사와 전체역사에 쓰임 받으며 요즈음에는 개금 팀 전속운전기사로도 활동한다고 합니다. 고난을 고난으로 생각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감당합니다.

이들이 왜 이럴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인자하심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베드로전서 2:3).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나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이을 산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베드로전서 1:3,4). 그래서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로 나아가는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다(베드로전서 2:4,5).

이들이 이렇게 된 데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전하여졌기 때문입니다. 누가 전하였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했던 사도들이 전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기도하였고, 기도하는 그들에게 위로부터 성령이 임하였습니다(사도행전 1,2장). 그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뜻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음을 깨달았습니다(고린도전서 15:3,4). 그들은 이를 깨닫고 믿음으로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사도행전 2:32). 우리는 이 분들의 증거, 성경 말씀을 읽고 들음으로 은혜를 입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고, 보는 만큼 즐긴다는 말이 있지요. 누구든지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보는 것이 많아집니다. 자신을 넘어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오늘 말씀에서 누가복음은 제자들은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였지만, 맹인은 기도함으로 눈이 떠였음을 증거 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감추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고 들을 때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여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또 말씀대로 행하고는 싶은데 행하지 못하여 답답합니다. 그래서 낙심이 되기도 합니다. 이때 오늘 본문의 맹인같이 믿고 기도하면 예수께서 우리 눈을 뜨게 하실 것입니다. 답답할 때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면 감추어진 비밀이 보입니다. 아멘! 우리 각 사람이 말씀대로 기도함으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신 예수께서 다시 사셨음이 보여 이 시대 부활의 증인으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누가복음 18:41)

 

2017 누가복음 38강 메시지 1831-1843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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