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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15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창세기 22:1-23:20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하나님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창세기 22:12)

학기 말이 되면 학생들은 어김없이 시험을 치릅니다. 한 학기 동안 각 자 얼마나 전공공부를 제대로 공부하여 실력을 쌓았는지 확인하고 결산하기 위함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시험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신 시험문제는 무엇입니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22:1-2)

221절을 봅시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여기서 그 일 후란 사라가 이삭을 낳고, 아비멜렉과 평화조약을 맺어 우물문제도 해결됨으로 아브라함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난 이후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모든 약속이 성취되어 축복을 받고 그의 소원이 다 성취된 후입니다. 곧 아브라함에게 있어 이제는 하나님께 별로 아쉬울 것이 없는 때입니다. 사람이 결핍의 문제가 있을 때는 하나님을 애타게 찾지만 그 결핍문제가 해결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마음의 자세가 달라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축복은 받는 것보다 감당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고자 그를 찾아오셔서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축복의 때에 주께서 부르실 때, 즉시 반응하여 대답하는 아브라함입니다. 축복을 받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하고는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 소돔 땅으로 떠난 롯과는 확실히 다른 반응입니다. 시험을 칠 만한 충분히 자격이 있는 아브라함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신 시험 문제는 무엇입니까? 2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번제가 무엇입니까? 짐승을 불로 태워드리는 제사입니다. 한마디로 이삭을 불로 태워 죽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삭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처럼 아브라함의 아들, 그의 사랑하는 독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지 25년만에 어렵게 얻은 외아들이요, 그의 인생의 열매요, 미래요, 소망입니다. 곧 그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생명보다도 소중한 그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순간 내가 잘 못들은 것은 아닐까!’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런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주실 때는 언제고 다시 뺏어가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따지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야말로 아브라함으로 시험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시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아브라함이 가장 행복해하는 그 순간에 찾아오셔서 이같이 가장 어려운 시험문제를 내시는 것일까요? 시험에는 반드시 그 시험을 치는 목적이 있습니다. 사탄이 시험하는 목적은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데 있지만 하나님이 시험하는 목적은 그 사람으로 더욱 믿음이 성장하고 온전하게 하며, 더 나아가 큰 복을 주시기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2절을 다시 보면 하나님은 이삭을 바치라고 단순하게 말하지 않고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어떤 존재인지 너무나 잘 아시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이 말씀이 얼마나 순종하기 얼마나 힘든 일인 줄을 하나님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같이 명령하십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그러면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은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22:3-10)

다같이 3절을 봅시다.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라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주신 곳으로 갔습니다. 제삼 일이 되어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서 바라보며 종들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4,5)”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나무를 가져가다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만 산으로 올라갔습니다(6). 가는 도중에 이삭이 아버지에게 질문합니다. 7절을 봅시다.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그러자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8)” 9,10절을 봅시다.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주신 곳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였습니다. 이는 결코 시늉이 아니었습니다. 이삭을 제물로 잡아 죽여서 번제로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에 순종하되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브라함이 이 명령을 듣고 21장에서처럼 이스마엘로 인해 매우 근심하며 고민을 했던 그런 모습이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하나님! 줬다가 뺏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하며, 하나님을 향해 데모를 하는 모습이 묘사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런 언급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의 심정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습니다. 그는 아주 평온한 모습으로 잠 잘 자고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과 번제에 쓸 나무를 준비하여 하나님이 지시하신 산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5절에서 그는 종들에게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 돌아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고 나면 아브라함 혼자 돌아올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는 놀라운 말을 하였습니다. 7,8절에서 이삭이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물을 때에도 조금의 마음의 동요도 없이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는 놀라운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로 볼 때, 아브라함은 모리아 땅으로 출발하기도 전에 이미 시험 문제를 다 풀었습니다. 답을 알기 때문에 그 일을 행하는데 있어 전혀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아브라함에 대해 이렇게 증거합니다. 다 같이 히브리서 1117-19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이처럼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미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더라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일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에 근거해서 스스로 생각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어려운 시험문제를 스스로 풀어냈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이같이 믿을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사라를 돌보시고 말씀하신대로 행하심으로 생리가 끊어진 사라가 임신하여 이삭을 낳는 것을 그가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을 그가 다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말씀하신대로 행하시고, 말씀하신대로 행하실 수 있는 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에 눈이 가려지지 아니하고, 이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 그 축복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깊이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이 발견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모든 인생과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천지의 주재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알고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이제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셔도 그 말씀을 믿고 신뢰함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도 독자 이삭도 아끼지 않고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로 볼 때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가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그 어떤 일보다 가장 중요합니다. 약속하신 말씀을 따라갈 때, 약속하신 말씀을 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말씀을 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때, 그 사람은 말씀에 근거해서 생각할 수 있고 말씀에 따라 능히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아브라함과 같이 능히 그 문제를 풀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따라 감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에서 눈을 돌려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생각하고 이 하나님을 깊이 만나길 기도합니다.

그러면 말씀에 그대로 순종한 아브라함을 보시고 하나님은 그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이제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11-14)

다같이 11절을 봅시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렀습니다. 얼마나 다급하게 불렀는지 “아브라함아아브라함아” 두 번이나 불렀습니다이에 이삭을 잡으려던 아브라함이 그 손을 멈추며 내가 여기있나이다하였습니다. 이에 사자가 말합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를 볼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같은 어려운 시험 문제를 출제하신 그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아브라함에게서 정말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가 아닌가 였습니다. 여기서 경외하다는 것은 두려워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단순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넘어, 만홀히 여길 수 없는 존재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왜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십니까? 창세기에서 아브라함 이전까지 사람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하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왜 따먹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나서, 하나님보다는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지 않을까 더 두려워했습니다. 노아시대 때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홍수 심판의 말씀을 듣고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데 혈안이었습니다. 홍수로 심판을 받은 이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여 바벨탑을 높이 쌓아 올렸습니다. 아브라함 때 당시에도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어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차마 입에 올리기도 힘들 정도로 부끄러운 짓을 행하였고, 롯의 사위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이처럼 창세로부터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대적하고 멸시하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기까지 말씀에 순종하는 한 사람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찾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리고 찾던 그 사람이 드디어 나타났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이런 아브라함을 보실 때 하나님의 마음이 기쁘시고 또 흡족하셨을까요?

그러면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어떤 복을 주십니까?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13-24)

13절을 봅시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한 숫양이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습니다. ‘여호와 이레란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뜻입니다(14). 하나님께서 이삭을 아끼지 아니하고 드리는 아브라함을 위하여 친히 숫양을 준비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위해 친히 모든 것을 준비하여 주십니다.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이삭을 아끼지 않고 드림으로 여호와 이레의 ᄒᆞ님을 얻을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시험에 합격한 아브라함에게 또 어떤 복을 주십니까? 다같이 15-18절을 봅시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라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심은 그에게 큰 복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큰 복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17절을 다시 봅시다.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한마디도 아브라함의 씨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성문은 전쟁터에서 가장 중요한 머리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대적의 머리인 성문을 차지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성을 완전히 점령하는 것은 이제 일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에게서 대적의 성문을 차지할, 곧 사탄의 머리를 박살낼 여자의 후손이 나게 하시겠다는 말입니다. 이로써 그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됩니다. 그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죄와 사망의 저주로부터 풀려나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큰 복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도 큰 복입니까?

하나님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 평생 대적 마귀에게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이 놓아주시려고(2:15)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 처음부터 이 같이 큰 뜻을 품고 말씀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기까지 오래 참고 또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었을 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확인하시고 천하만민이 그의 말미암아 복을 얻게 하셨습니다. .

20절을 봅시다.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와서 나홀에게서 밀가가 자녀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줍니다. 특히 23절에 보면 나홀과 밀가의 아들 브두엘이 리브가를 낳았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곧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도로 주실 뿐 아니라 그 이삭의 배필까지 미리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준행한 아브라함의 구체적인 삶은 어떠했습니까?

충분한 대가를 받고(23:1-20)

다같이 231,2절을 봅시다. 사라가 백이십칠세를 살고 가나안 땅 헤브론 기럇아르바에서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떠나 보내면서 많이 슬퍼하며 애통하였습니다. 그런데 마냥 슬퍼하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라를 묻을 매장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4)” 하였습니다. 그러자 헷 족속은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라고 하였습니다(5,6). 그러나 아브라함은 일어나 헷 족속을 행하여 몸을 굽히면서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달라고 하였습니다(7,8).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아서 듣고 있더니 내주여 그리 마시고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하였습니다(10,11).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땅의 백성이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네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하였습니다(12,13). 이에 에브론이 그 땅 값은 은 사백 세겔이라 말하였고(14,15) 아브라함은 그 자리에서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다 주었습니다(16). 이로서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이 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되었고(17,18). 아브라함은 사라를 그곳에서 장사하였습니다(19).

이처럼 헷 족속이 공짜로 주겠다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굳이 충분한 대가를 다 지불하고 그 매장지를 샀습니다. 곧 그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충분한 대가를 치르는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세상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충분한 대가를 치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같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사람 앞에서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대하여 확실하게 자기 소유권을 확보하였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 밖에 없는 독자 이삭을 아끼지 않고 드리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 경외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면서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을 때 자신에게 있던 여러 결핍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자식문제, 먹고사는 문제, 인간관계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이런 자기 결핍을 채우는 것으로 다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가장 귀한 것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어놓을 수 있는지 그것을 시험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왜 그 자신의 결핍을 채우시는지 그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 동안 그는 왜 하나님께서는 내게 자식을 주시지 않는지?’ ‘왜 롯은 좋은 땅을 택하도록 하시고, 나는 왜 여기 남겨 두시는지?’ ‘여종 하갈로부터 얻게 된 아들 이스마엘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내 우물은 언제 갖게 되는지?’ 이런 것이 그의 고민이었습니다. 이때 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들려주시고 그의 고민을 해결해주셨습니다. 이제 그 고민들이 해결되면서 그는 왜 하나님께서는 나의 이 고민들을 해결해주시는지이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고민을 해결하시는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함께 하셔서 자신의 고민을 늘 해결해주시면 그것이 복이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까지 이르게 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결핍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결핍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큰 복입니다. 그 큰 복의 내용은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브라함의 씨가 천하 만민을 죄에 빠뜨리고 죽음에 이르게 한 그 대적, 간교한 사탄을 이기게 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대로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사심으로 사람의 근본 문제인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자라도 아끼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한 아브라함 한 사람을 통해 천하 만민이 이 복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그러면 누가 이 복을 누리게 됩니까? 아브라함과 같이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듣고 받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꾸준히 듣고 받아 하나님이 주시는 큰 복을 누리고 나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창세기 22:12)

 

2019 창세기 15강 메시지 2201-2320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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