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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19.05.12 17:35

2019년 창세기 9강 메시지(천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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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9강 메시지                                                                                                                 천모세

창세기 11:27-12:20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2)

하나님께서는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복을 주시고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한 사람은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며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십니까?

 

데라의 족보(11:27-32)

1127절을 봅시다.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로 시작합니다. 데라는 우리가 믿음의 조상으로 알고 있는 아브라함의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브라함의 족보라 하지 않고 데라의 족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라는 누구입니까? 데라는 셈의 후손입니다. 셈은 노아의 세 아들 중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의 아버지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었을 때 이를 보지 않고 옷으로 가렸습니다. 그는 노아의 허물을 들추기보다 가렸습니다. 이를 안 노아는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를 축복하였습니다(9:26). 데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다들 자기 이름을 내고 바벨탑을 쌓을 때에도 하나님을 경외하여 노아의 허물을 감춘 셈의 후손입니다. 성경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나오기까지 셈에서부터 데라의 믿음이 있었음을 밝힙니다.

데라의 족보가 어떠합니까?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습니다(27). 그의 아들 중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습니다(28). 아브람과 나홀은 각각 사래와 하란의 딸 밀가에게 장가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30). 자식을 안 가지려고 해서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습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였습니다(31). 데라, 아브람, , 사래 총 네 사람이었습니다. 데라의 아들 나홀은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나홀은 갈대아 우르에 남았지만 그의 아들 브두엘을 통해서 리브가가 났습니다. 브두엘은 리브가를 이삭에게 결혼 보낼 때 리브가에게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 문을 얻게 할지어다 축복하였습니다(24:60). 데라의 믿음이 나홀을 통해서 리브가에 이르기까지 믿음이 이어져 옴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데라가 왜 갈대아 땅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했을까요? 그가 왜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했는지는 말씀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메소보다미아의 유브라데 강에 위치하여 아주 번성했던 땅이었다 합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일가를 이루고 풍족한 삶을 살았던 데라가 고향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기까지 결단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데라는 자식이 없는 아브람과 사래 가정, 자기보다 먼저 죽은 하란의 아들 롯의 장래 문제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데라는 자신이 목적하던 가나안 땅에 도착하지 못하고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습니다(31). 그는 처음 결심했던 바를 이루지 못하고 하란에 눌러 앉았습니다. 그렇게 하란에서 눌러 살다가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죽었습니다(32). 많은 사람들이 결심을 하지만 여러 이유들로 처음의 결심과는 멀어진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심을 실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아브람입니다. 아브람이 어떻게 결심을 실행하게 되었습니까?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12:1-4)

데라와 함께 하란에 머물러 있던 아브람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121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어디를 떠나 어디로 가야할지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가 떠나야 할 곳은 그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입니다. 그러면 그가 가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보여 줄 땅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보여 줄 땅이 어디인지 구체적인 장소를 말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꿈이나 환상으로 그 장소가 어디인지 보여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어디로 가라는 것인지 막막한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보통 어디로 갈지를 정하고 떠납니다. 도착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떠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란에 당장에 떠나야 할 만큼 기근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하란에는 그가 의지할만한 친척과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4). 여호와께서 그에게 보여 줄 땅이 어디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는 떠났습니다. 히브리서에는 이를 어떻게 기록합니까?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합니다(히브리서 11:8). 히브리서에는 그가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알지 못하고 나아간 것이 믿음으로 한 것이라 밝힙니다.

그러면 아브람은 무엇을 믿었을까요?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약속하십니까? 다 같이 2,3절을 봅시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이 말씀을 들었을 때가 아브람의 나이 칠십오 세였습니다. 그는 나이가 많도록 자식이 없었습니다. 아브람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자신의 대를 이을 자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식을 주실 뿐 아니라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고 하니 얼마나 좋았을까 싶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실 때에 특별히 자식이 없는 그에게 큰 민족을 이루실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간절하게 생각하는지 아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육신이 되어버린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를 부르십니다. 이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때로는 과연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는가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에는 너무 수준이 맞지 않는 것 같은 내 자신을 볼 때에 소망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천지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을 아시고 우리의 눈높이에 맞추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빛이 비치어도 깨닫지 못하는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과 함께 하시기 위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한복음 1:14).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눈높이에 맞추시면서 까지 그를 부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하십니다(2).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시는 복은 아브람이 아들 하나 낳아서 잘 살도록 하는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아하시고 에덴 동산에서 풍성한 복을 누리도록 하셨지만 사람은 가장 간교한 뱀에게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에덴에서 쫓겨나 일평생 수고하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사람을 저주하는 가운데도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십니다(창세기 3:15). 아브람이 얻을 복은 여자의 후손을 통해 대적의 성문을 차지할 복입니다(22:17). 여자가 가장 간교한 뱀의 유혹에 넘어간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탐심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탐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저주 받는 삶이 아니라, 진실로 사람이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온전한 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이에 대해 아브람이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4). 정말 누구하나 하나님의 말씀 따라 가는 사람이 없는 시대 가운데서 과연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나 싶습니다. 간절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갑니다. 아무리 재물을 많이 축적한다 하더라도 그의 세대에서 끝이 날 것으로 생각하면 많은 재물이 그에게 위안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그에게 자식이 없다는 이것을 심각한 결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우리가 정말 언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을 듣고자 나아온 제자들에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말씀하십니다(마태복음 5:3). 마음에 결핍이 있어 심령이 가난해진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따랐습니다(마가복음 2:14). 예수님께서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도 세관에 앉아 고민하는 그를 아시고 부르십니다. 유대인의 지도자요, 바리새인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요한복음 3:2).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따라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지만 영생을 누리지 못하는 그의 결핍을 아시고,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하십니다(3:14,15).

이처럼 예수님께서 결핍이 있는 자,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결핍이 있는 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말씀에 반응합니다. 아브람이 늙어서 자식이 없는 간절한 문제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그가 당장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아니라 자식하나 얻을 목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가는 것을 받아주십니다.

제가 그 동안 응급실에서 제 눈앞에 닥치는대로 사느라 제게 무슨 결핍이 있는지 별 생각이 없이 살았습니다. 저는 응급실 근무만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시간이 없어서 말씀도 잘 못 보고 양들도 잘 돌보지 못해서 양산캠퍼스에 열매가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저의 결핍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시간이 있다고 해서 제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저는 그토록 바라던 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와 응급의학과 수련을 받고 전문의 시험을 앞두고 있습니다. 의사인 아내와 두 아이와 또 한 아이가 뱃속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결핍을 모두 채워주셨고 이제 저에게 부족함이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무엇이 없다, 못했다는 결핍 때문에 하나님께 살려달라고만 기도했는데 이제 그 부족함이 채워져서 저는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찾지도 않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저의 부족함이 모두 채워졌습니까? 저는 그토록 바라던 의사가 되었지만 응급의학과 의사를 계속해야할지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험악한 세상 가운데서 자녀들은 믿음을 지키고 살 수 있을지 두렵습니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때에 또 다시 눈에 닥치는 대로 살아가며 어려움을 만나면 살려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어려서부터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악한 자입니다. 저로 시간이 생긴 이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삶에서 말씀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저를 향한 뜻과 소망이 무엇인지 분명해지기를 기도드립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5-9)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5).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이미 그 땅에 거주하였습니다(6).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셨습니다(7).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땅이 어디인지도 모르지만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그는 정확한 도착지도 모른 채 하나님께서 그 땅을 보여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며 확신을 주십니다. 이로볼 때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 것이 은혜이고 그가 이 말씀에 순종한 것은 그의 믿음임을 배우게 됩니다. 제가 결정의 때에 본성적으로 눈에 보이는대로 판단하고 행동을 합니다. 끊임없이 선악간의 판단을 내가 해야 할 것 같은 유혹에 시달립니다. 저로 먼저 말씀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들을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죄인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실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아브람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였습니다.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8). 그리고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습니다(9).

그런데 그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여호와께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10-2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10). 이 때 아브람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습니다(10). 아브람이 살던 그 땅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약속하신 땅입니다. 그는 그 땅에서 기근을 만나자 자신이 살기 위해서 애굽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애굽으로 피한 그에게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하였습니다. 이는 애굽 사람들이 아리따운 사래를 얻기 위해 자신을 죽일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 들였습니다. 이에 바로가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습니다(11-16).그는 기근을 피하여 애굽으로 갔지만 아내를 바로에게 빼앗겼습니다. 그가 아내를 빼앗기기까지 자신이 아내를 누이라 속이는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17).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래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으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였습니다(18,19).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여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습니다(20).

아브람은 자신의 잘못으로 바로에게 아내를 빼앗겼지만,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면서까지 사래를 보호하셨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먼저 든 생각은 아브람이 자신의 잘못으로 벌을 받는다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다시 읽으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간 아브람이 잘못을 할지라도 그의 편이 되어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여전히 잘못과 허물을 범하는 자신을 볼 때에 험한 일을 당하지는 않을까 늘 두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는 사람을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보호하시는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자꾸만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큰 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시달리기보다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을 지키시는 긍휼하신 하나님이 계심을 믿을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 말씀으로 볼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을 복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높이에 맞추어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간 것과 같이 우리도 여러 인생의 문제들 가운데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를 따라가 하나님의 복을 얻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세기 12:2)

 

2019 창세기 09강 메시지 1127-1220 천모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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