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INJE UBF

메시지

조회 수 1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2019년 창세기 17강 메시지                                                                                                               천모세

창세기 25:1-26:35

 

 

약속의 땅에 거주한 이삭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창세기 26:3,4)

오늘 말씀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의 씨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고 그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씨, 하나님의 약속의 받은 이삭의 믿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어떻게 도와가시며 이삭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25:1-11)

사라가 죽고 이삭이 리브가와 믿음의 가정을 이룬 이후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는데 그의 이름은 그두라였습니다(1).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았습니다.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었습니다.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이였습니다. 이들은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습니다(2-4).

이에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습니다(5). 그리고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습니다(6). 아브라함에게 많은 자손들이 있었지만 그는 이삭을 자신의 계승자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께서 이삭과 언약을 세우시겠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17:19).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 나이가 들어 많은 자녀들이 생겼지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자기 서자들에게는 재산을 주어 생전에 이삭을 떠나도록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 받은 한 가지 말씀이 분명하였던 것처럼 우리 각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한 마디 말씀이 분명하여 흔들리지 않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였습니다(7).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습니다(8). 그는 장수하며 기운이 다하여 죽었습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이 생전에 값을 치르고 산 막벨라 굴에 그의 아내 사라와 함께 장사하였습니다(9,10).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습니다(11). 이삭과 이스마엘 두 아들들이 아브라함의 장례를 치루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복을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약속하신대로 이삭에게 복을 주시는 신실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이스마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러하고(12-18)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족보입니다(12).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였습니다(13-15).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요 그 족속대로는 열두 지도자들이었습니다(16). 이스마엘은 향년이 백삼십칠 세에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갔습니다(17).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습니다(18).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는 아브라함에게 이삭과 언약을 세우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에 대하여 약속하신대로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가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큰 나라가 되게 하십니다(17:20).

그러면 하나님의 복을 받은 이삭의 족보는 어떠합니까?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19-23)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다고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여러 아들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은 이삭으로 이어집니다. 이삭은 사십 세에 브두엘의 딸, 라반의 누이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습니다(19,20).

그런데 그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습니까?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 이삭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는 그의 아내 리브가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였습니다(21).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습니다(21). 이 말씀은 성경에 한 절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삭이 아들을 얻기까지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특징은 여호와께 간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십 년 동안 꾸준하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을까요? 이삭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고 배웠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여호와께 간구하는 믿음을 남겼습니다.

그러면 이삭이 여호와께 무엇을 위해서 간구하였을까요? 성경은 그가 임신하지 못하는 그의 아내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였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이십 년 동안 꾸준하게 기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삭에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한 아브라함에게 그의 씨를 통해서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며 천하만민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22:17,18). 그는 자식 하나 얻고자 하는 믿음을 넘어서서 그의 씨를 통해서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고 천하만민이 복을 받을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믿음의 계승 역사를 생각할 때에 너무도 해야할 일이 많은 것 같고 그러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생각할 때에 막막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삭의 여호와께 간구하는 믿음을 통해서 믿음의 계승역사라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여호와께 간구하는 일임을 배우게 됩니다. 말씀을 믿는 사람은 기도를 합니다. 믿음의 계승역사는 말씀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고 여호와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저로 여러 인간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을 듣고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여호와께 간구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런데 임신한 리브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웠습니다. 태동이 엄청 심하였던 것 같습니다. 배에 손을 대고 진정시키려해도 잘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리브가는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며 여호와께 물었습니다(22). 이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무엇이라 하십니까? 다 같이 23절을 읽어봅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리브가는 고민의 때에 기도를 하였고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독자 이삭까지도 아끼지 아니하기까지 하나님을 경외한 아브라함에게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대적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라 주신 복이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말씀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싶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작은 자가 큰 자를 섬긴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나보다 한 살이라도 나이가 어린 사람이 내 말을 듣고 나를 섬길 것을 요구합니다. 저도 나보다 늦게 들어온 인턴 선생님과 전공의 선생님들에 대해 나를 잘 섬겨줄 것을 요구합니다. 기려와 요셉이도 나 보다 어리니까 내 말을 듣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고자 할 때에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적 사탄은 끊임 없이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도록 합니다. 대적자 사탄은 세상은 그렇지 않다고 굳이 자기를 부인하지 않아도 된다 작은 자가 섬기도록 하라고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큰 자가 되고 싶어하는 제자들에게 무엇이라 하십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하십니다(마태복음 20:25-27).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임을 밝히십니다(마태복음 20:28).

하나님의 뜻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항상 악한 사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24-34)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는 것인데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항상 악한 사람은 나면서부터 형보다 더 빨리 나가려고 발꿈치를 잡았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1초라도 먼저 나가서 섬김을 받으려 하였습니다.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습니다(24-26).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생각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장성하여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였습니다(27).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습니다(28). 이삭이 에서를 사랑한 것은 말씀과는 관계가 없고 그가 고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야곱이 죽을 쑤었는데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야곱에게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하였습니다(29,30). 이에 야곱이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하였습니다. 에서는 내가 죽게 되었으니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며 야곱이 오늘 내게 맹세하라고 하자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습니다(31-34).

야곱은 나면서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았고 장성해서는 형의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말씀과는 반대되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씨로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약속을 하셨지만 아브라함의 씨인 에서와 야곱의 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는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십니까?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26:1-5)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 이후로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습니다(26:1). 이 때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하십니다(2). 하나님의 말씀으로 볼 때 이삭은 흉년을 피해서 애굽으로 내려가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고 분명한 방향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무엇을 약속하십니까? 다 같이 263,4절을 읽어봅시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 같이 5절을 읽어봅시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이삭이 복을 받는 이유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이에 이삭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6)

이에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습니다. 이삭은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가고자 하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랄에 거주하였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은 자신이 잘 해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삭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으로 말미암아 이삭을 축복하고자 하여도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없이 산다면 복을 주고자 해도 주실 수가 없습니다.

이 말씀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좇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대적의 성문을 얻고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말씀을 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아브라함의 아들이라 해서 그냥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가고자 하였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랄에 거주하였습니다. 이로볼 때 목자님으로 인해서 부모님으로 인해서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중요함을 배우게 됩니다.

지금까지 저는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목자님과 부모님을 많이 의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들이 저를 떠 먹여 줄 수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없이 살 것인지 저의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이삭이 그랄 땅에 거주하며 어떻게 살았습니까?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7-11)

그 곳 사람들이 이삭의 아내에 대하여 묻자 이삭은 그는 내 누이라 하였습니다.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로 하기를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7). 하나님께서 거류하라고 명하신 땅은 이삭에게 호의적인 곳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아내로 말미암아 해를 받지 않을까 두려워해야 할 만큼 험악한 곳이었습니다.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보았습니다.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책망하였습니다. 아비멜렉 왕은 사실에 근거해서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이삭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다고 있는대로 말하였습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책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습니다(8-11).

이삭은 하나님께서 거주하면 복을 주시겠다고 하시는 약속의 땅에서 자신이 죽을까봐 아내를 누이라 속이는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의 잘못을 드러내시고 그를 혼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을 쓰셔서 그를 보호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가고자 할 때에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살기 위해서 때로는 원치 않게 거짓말을 하는 자신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괴롭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자의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를 세상 가운데서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분이심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두렵고 허물 많은 자신으로 인해서 도무지 소망이 생기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자를 지키신다는 믿음을 가지기를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허물이 덮여진 이삭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12-25)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였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우고 아비멜렉은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하였습니다(12-16).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자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 물은 우리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습니다. 그가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습니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습니다(17-22).

이삭은 우물을 파고 목자들이 다툼이 생길 때마다 옮기며 또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넓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고 다툼이 생기면 양보하고 새롭게 우물을 팠습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우리가 다들 자기 욕심대로 빼앗아가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각 사람이 넓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승리한 이삭과 같이 실제에서 사람들과 씨름하지 아니하고 넓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묵묵히 할 일을 감당하기를 기도드립니다.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습니다(23).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이라 하십니까? 다 같이 24절을 읽어봅시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이삭이 하나님께서 그의 두려움을 아시며 그와 함께 계시며 그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시니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는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습니다.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습니다(25).

하나님께서는 두려움 가운데 있는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도와가십니다. 대적자 사탄은 세상에서 우리로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도록 두려움을 심습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았는데 앞으로 계속해서 믿음으로 살 수 있을지 생각하면 막막함과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내가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결코 답이 생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삭에게 나타나서 이삭과 함께 하시며 그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며 우리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가실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삭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보았으므로(26-34)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 왔습니다. 이삭이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물었습니다. 그들이 이삭에게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다 같이 28,29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사람들이 여호와께서 이삭과 함께 계심을 분명히 보았다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자와 함께 계시는 것을 사람들이 보고 압니다.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고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습니다(30,31).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였습니다.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하였으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였습니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34). 에서는 그의 아버지 이삭과 달리 이방 여인을 그것도 두 명이나 맞이하였습니다.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습니다(35).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해서 그의 자녀들도 모두 믿음의 결혼을 한 것은 아님을 보게 됩니다. 저로 내 하나 잘 되었다고 자만하지 아니하고 자녀들을 위해서 깨어 기도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 말씀으로 볼 때에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시고 이삭의 믿음을 도와가심을 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이삭을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이삭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흉년의 때라도 약속의 땅에 거류하였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삭이 그러한 것과 같이 나의 믿음을 가지고 험악한 세상 가운데서 능히 승리하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세기 26:3,4) 

 

2019 창세기 17강 메시지 2501-2635 천모세.hwp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2 2019 여름수양회 주제 4강 메시지 newfile JohnKim 2019.07.24 3
141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8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9.07.15 16
»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7강 메시지(천모세) file JohnKim 2019.07.13 14
139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7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7.07 20
138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6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9.07.01 25
137 창세기 2019 창세기 15강 메시지(천모세) file JohnKim 2019.06.25 18
136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5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6.23 36
135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4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9.06.20 26
134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3강 메시지(천모세) file JohnKim 2019.06.12 35
133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3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6.09 23
132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2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9.06.02 38
131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1강 메시지(천모세) file JohnKim 2019.05.28 31
130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1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5.26 28
129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0강 메시지 file JohnKim 2019.05.24 49
128 창세기 2019년 창세기 9강 메시지(천모세) file JohnKim 2019.05.12 57
127 창세기 2019년 창세기 9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5.12 29
126 창세기 2019년 창세기 8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9.05.07 59
125 창세기 2019년 창세기 7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4.28 36
124 요한복음 2019년 부활절 특강 메시지 file 정여호수아 2019.04.21 26
123 창세기 2019년 창세기 6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4.14 2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 8 Next
/ 8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