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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021 마태복음 41강 김아브라함

마태복음 27:11-66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태복음 27:46)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인데 왜 십자가에 죽으시고, 하나님께 버림받아 고통당하셔야 합니까?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영접하고, 그 길을 함께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죄수를 십자가 형에 처할 수 있는 총독 빌라도 앞에 서게 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11-26)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 함께 의논하고는 사형 권한이 있는 총독 빌라도에게 넘겼습니다(11). 자기들끼리는 신성모독으로 죽이기로 해놓고 빌라도에게는 유대인의 왕 곧 반역으로 고발하였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하는 질문에 예수님은 네 말이 옳도다하셨습니다(11).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 정치적 왕이 아니라며 변명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 세상의 구세주, 메시아로 십자가에 죽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로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고발에는 아무 대답도 아니 하셨습니다(12).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총독 빌라도는 크게 놀라워하였습니다(13,14). 총독으로 많은 죄인을 심문했지만 이렇게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빌라도는 종교지도자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알았습니다(18). 예수께서 죄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당시 유대 땅 주류인 종교지도자들이 고발한 사건이라 그냥 놓아줄 수는 없었습니다.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를 통해 놓아 주려 하였습니다(15). 그러나 이마저도 종교지도자들이 미리 알고 손을 써 그리스도 예수 대신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놓이게 되었습니다(16-21). 빌라도는 자기 스스로 죄가 없다말하면서도 민란을 두려워해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줍니다(22-26).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은 명절에는 하지 말자는 종교지도자나, 놓아주고 싶지만 그렇게 못한 총독 빌라도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무엇인가 한 것 같지만 예수께서 가시는 길은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이사야 537절 말씀처럼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거짓 증거다, 공정하지 못한 재판이다, 억울하다 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십자가의 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의 길, 자신이 죽어 많은 사람을 살리는 길로 가셨습니다.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사람들은 어떻게 대했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27-44)

총독이 십자가형을 선고하고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혔습니다(27,28). 홍포는 왕이 입는 옷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예수를 왕으로 대접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왕관 대신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홀 대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는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희롱하였습니다(29). 예수께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예수의 머리를 쳤습니다(30).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예수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갔습니다(31).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야 하는데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습니다(32).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33).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여주고자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지만, 예수님은 맛을 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셨습니다(34).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께 사람들은 희롱과 동정을 합니다. 이는 그들 스스로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하는 일들입니다. 악한 마음, 좋은 마음이 아니라 십자가의 예수님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희롱의 대상도, 동정의 대상도 아닙니다. 뭐가 뭔지도 모른 채 죽을 길을 가고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자신의 원보다 하나님의 원대로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군병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35). 죽어가는 사람 밑에서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켰습니다(35,36).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고(37),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좌우편에 있었습니다(38). 유대인의 왕 예수는 강도 취급을 받으면 십자가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했습니다(39).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40)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였습니다(41).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42)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하며(43),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였습니다(44).

조롱하는 이들이 생각하는 구원은 자기가 사는 것입니다. 자기가 잘되는 것, 자기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구원이라 여겼습니다. 그런 눈으로 볼 때 남을 구한다고 자신이 죽는 예수님은 실패자였습니다. 조롱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께서 자신이 살기 위해 십자가에서 내려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근육질의 예수님이 힘으로 십자가를 부러뜨리고, 빌라도와 종교지도들의 무릎을 꿇린다면 과연 우리에게 평강이 찾아올까요? 잠시 속은 시원하겠지만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사라져버립니다. 내 죄는 내가 감당하고 내가 죽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말에 오락가락합니다. 희롱이라고 생각이 들면 자기 성질에 정신을 못 차리고 일을 냅니다. 자신이 사는 것 같지만 결국 자신과 상대 둘 다 죽이는 일입니다. 십자가에 죽는 것은 나만 손해 보고, 억울한 일 같을지라도 자신과 상대가 생명을 누리는 길입니다. 감사하게도 예수님은 너 자신을 구원하라는 사람들의 말에도 끝까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서 끝까지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셔서 크게 소리 지르셨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45-49)

사람들의 희롱에도 예수님은 십자가를 계속 달려계셨습니다. 하늘도 빛을 잃습니다.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45).

4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사람들이 자기 살고자 예수님을 버리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으셔야 하는가? 생각이 듭니다. 버림받는 것이 사람에게 제일 큰 고통이라 합니다. 여러 사람이 몰라줘도 자신을 알아주는 한 사람만 있다면 힘이 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으로부터도, 이제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받는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랐는데 왜 버림 받으셔야 합니까? 이사야 53:5,6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은 잠잠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며, 하나님으로 인해 여러 많은 고난과 고통을 견디신 예수님이지만 이제 모든 사람의 죄 짐을 대신 지시는 유월절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은 그 고통으로 절규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뭔가 나름의 한계를 정해 놓고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안 죽는 만큼, 누군가 한 사람은 알아줄 만큼. 믿음인 듯 믿음 아닌, 그러다보니 믿음으로 한다 하는데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일이 있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지막 보루 같은 하나님에게 마저 버림을 받으셨지만 나의 하나님이라 하시며 하나님을 찾고 구하시며, 끝까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심으로 우리를 모든 죄에서 구원하시는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는 예수의 고통의 절규를 엘리야를 부른다고 생각했습니다(47-49). 이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만 자기 욕심대로, 시기심에 이끌려 십자가에 못 박고, 희롱하는 자신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이들마저도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서 죽으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예수님을 보고서 희롱하는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 같았지만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본 사람들 중에 예수님을 새롭게 발견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50-66)

이때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가셨습니다(50).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51-53절을 봅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혀있던 장벽이 무너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새롭고 산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0:19,20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예수께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갈 길이 열렸습니다. 내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들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형의 선고를 지켜보고 십자가형을 집행한 백부장과 지키던 사람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말합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54) 이방인일지라도 십자가의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볼 때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됩니다. 또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였습니다(57).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따라갔지만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를 체험한 후 그는 담대해져 빌라도에게 나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장차 자기를 위해 예비해 두었던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장사지내었습니다(58-60).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라온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그 무덤까지 와서 예수님의 장사를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55-56, 61). 그리고 예수께서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하셨다고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가서 말하여 빌라도가 경비병들을 세워 무덤을 굳게 지키게 하였습니다(62-66).

저는 대학생 시절 마태복음 61절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상을 위해 사람의 칭찬은 받지 않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이 뭐라든지 내 길을 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좀 지나고 보니 나중에 있을 하나님의 상보다 지금 사람의 칭찬이 내게 더 와 닿았습니다. 사람의 칭찬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농담처럼 빨리 칭찬하라며 잘했죠합니다. 썩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는데 있어 말씀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해치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를 왜 하는지 아시고, 하나하나 이루어 가십니다. 사람은 다 알지도 못하고, 또 이루지도 못합니다. 제가 비록 다는 못한다 할지라도 지금 내가 듣고 받은 말씀에 따라 자기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하나님께 버림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인하여 구원받고 하나님께로 나아가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 죄가 없어졌다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원이 무엇인지 찾고 이를 행하는 것입니다. 입으로의 사랑을 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구속 역사에 함께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아멘!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태복음 27:46)

 

2020-2021 마태복음 41강 메시지 2711-2766 김아브라함.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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