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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35강 정여호수아

마태복음 23:1-39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13)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 하십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 생활했던 그들이 결국 화가 있게 된다고 하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화가 아니라 복 있는 자들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1-12)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율법사가 여러 곤란한 질문을 통해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고자 했지만 도리어 예수님의 답변을 듣고 놀라고는 돌아갔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1).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의 죄가 무엇인지 상세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이렇게 하심은 이제 곧 제자들도 백성들을 가르치고 섬기는 위치에 있게 될 것이며, 그들도 깨어 있지 않으면 얼마든지 이들처럼 될 수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먼저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라 하셨습니다(2). 모세의 자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하십니다(3). 이는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하십니다(3). 그들은 무거운 짐을 묶어, 613개나 되는 세부 율법을 백성들의 어깨에 지우되 자신들은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4). 한 사람이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는 모세와 같은 목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말로만 가르치지 아니하고 삶으로써 본을 보이고, 돕는 수고가 따릅니다. 연약해질 때 씨름하고 회개하고 도전하도록 격려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말로만 가르치고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울 뿐 한 영혼을 위한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람의 칭찬과 인정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 술을 길게 하였습니다(5). 또한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 받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6,7). 이런 데서 자기의 존재의미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하십니다(8). 또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하십니다(9). 또 예수님은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하십니다(10).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늘에 계신 한 분 하나님 아버지, 한 분 그리스도 앞에 살라고 하십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금방 사람의 인정과 칭찬에 빠져듭니다. 그렇게 되기 시작하면 자신이 뭔가라도 된 것 마냥 스스로를 특별하게 여기게 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자들이 빠지기 쉬운 교만 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런 교만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1,12절을 봅시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십니다. 저는 최근에 제가 그동안 섬긴다고 하면서 해 왔던 많은 일들이 실제로는 섬김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의 생존과 유익을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형제들이 떠나가고 힘들어지는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도 저는 그것이 저의 문제임을 알지 못했고, 마음에서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자녀들을 통해 연단 받으면서 이제야 이런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지금이라도 이 문제를 알고 돌이킬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제는 자기중심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실제에서 낮아져 섬기는 삶을 배워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종이 되길 소망합니다.

제자들을 가르치신 후 예수님은 이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화를 선포하십니다. 그들에게 왜 화가 있습니까?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13-22)

13절을 봅시다. “화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앉는 모세의 자리는 보통 자리가 아닙니다. 천국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았습니다.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외식하였습니다. ‘외식은 겉을 꾸미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 경건한 척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이 연기인지 진짜인지 다섯 살 난 제 아들도 압니다. 아무리 포장하고 감추어도 결국에는 그 속에 있는 것들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들의 외식하는 이중적인 삶은 많은 사람들을 실족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해서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녔습니다(15). 그리고 생기면 자신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였습니다(15). 사람이 못된 것은 더 빨리 배우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도운 사람들은 외식하는 것만 배워서 더 악하게 됩니다. 이런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가리켜 눈먼 인도자라 하십니다(16). 그들은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지만,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했습니다(16). 또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지만,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고 했습니다(18). 그러나 상식적으로 금이 큽니까?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 큽니까(17)? 예물이 큽니까?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 큽니까(19)?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과 같고(20),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과 같습니다(21).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한 것과 같습니다(22). 그런데도 그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이같이 가르쳤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왜 화가 있습니까?

율법의 더 중한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도다(23-36)

23절을 봅시다. 또 그들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렸습니다. 박하 회향 근채는 집앞 텃밭에서 기르는 약초나 채소들입니다. 그들은 이런 자잘한 것들까지 꼬박꼬박 십일조로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습니다. 고아와 과부의 가산을 삼키고, 세리와 죄인들을 무자비하게 정죄하며, 하나님께 대한 믿음 없이 사람 앞에서 살았습니다. 그야말로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꿀꺽 삼키는 격이었습니다(24).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였습니다(25). 겉을 아무리 깨끗하게 해도 안이 더러우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먼저 안을 깨끗하게 하면 겉도 깨끗해 질 것입니다(26).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가리켜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하십니다(27). 당시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다가오면 무덤에 회칠을 했습니다. 유월절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데 무덤을 만지면 부정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회칠한 무덤을 멀리서 보면 햇빛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썩어가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그들은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지만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였습니다(28).

그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꾸미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면서 이같이 말했습니다(29).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들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30)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이 말이 그들 자신이 선지자를 죽인 조상들의 후손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 하십니다(31). 그들의 조상들도 우리는 다르다는 그 생각으로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우리는 다르다는 그 생각으로 이제 그들은 조상들의 분량을 채울 것입니다(32). 조상들이 다 채우지 못한 죄에 더 큰 악을 행할 것입니다. 독사의 새끼들, 곧 사탄의 졸개들이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33)!

그들이 더하게 될 악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34절을 봅시다. 주께서 보내실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그들이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더러는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 죽은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그들에게도 돌아갈 것입니다(35). 진실로 이 모든 화가 다 그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36).

그들에게 이같이 무섭게 화를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그 마음이 어떠합니까?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37-39)

다같이 37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고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예수님은 그들에게 화를 선포하신 후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탄식하시며 그들을 애타게 부르셨습니다. 이로 볼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대표되는 유대인들 전체의 문제였습니다. 주께서는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으는 것 같이 주의 자녀들을 모으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이 시도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주의 날개 아래로 들어오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끝내 거절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은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될 것입니다(38).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주를 결코 보지 못할 것입니다(39). 더 이상 어떠한 회개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철저한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이렇게 화를 선포하시는 예수님 말씀이 부담스럽고, 또 나와는 관계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꼭 저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어찌하든 저를 주의 날개 아래로 모으고자 하시는 주의 긍휼과 사랑의 음성으로 다가옵니다. 교만하고 완악하던 죄인에게 끊임없이 말씀을 들려주시고 말씀을 따라 자기를 돌아보게 하시고 돌이킬 수 있는 은혜를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주의 말씀을 계속 듣고 받아 율법의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화를 선포하셨습니다. 이 심판의 메시지는 그들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주의 날개 아래로 모으고자 하시는 주의 사랑의 음성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주님이 들려주시는 책망의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듣고 받아 지금 여기서 회개하고, 속을 깨끗케 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태복음 23:13)

 

 

2020 마태복음 35강 메시지 2301-2339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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