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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가을수양회 개회메시지                                                                                                               이제현

하바국 1:1-17

 

 

여호와여, 어찌하여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박국 1:2)

하박국서는 하박국의 질문,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체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 역시 하박국의 첫 번째 질문,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다시 하박국의 두 번째 질문이 주된 내용입니다. 하박국은 왜 하나님께 두 번이나 질문을 했을까요? 그의 질문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박국이 활동하던 시기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가 쇠락해가는 시점, 새롭게 신흥 강대국인 바벨론이 일어나던 기원전 600년경입니다. 당시 유다는 요시야 왕의 죽음으로 그의 영적 개혁 운동이 끝나고, 그 뒤를 이은 여호아하스 왕은 애굽으로 끌려가고, 요시야의 아들이었던 여호야김이 통치하던 시대입니다. 열왕기하에서는 그의 통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또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의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열왕기하 23:37, 24: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던 시대. 죄악과 패역, 겁탈과 강포, 변론과 분쟁이 일어나는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는 사람들이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폭력을 휘두르며, 불의한 방법으로 타인을 압제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의도적으로 범죄하며 하나님을 업신여겼습니다.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해이해지고 정의는 시행되지 못했으며, 악인이 득세하여 의인을 에워싸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하박국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유다 민족의 죄악을 하나님께 들고 나아가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여기서 하박국의 첫 번째 질문이 나옵니다. 왜 듣지 않으십니까? 하박국은 선지자였습니다. 112,13절을 보면 그는 하나님을 거룩한 이, 만세 전부터 계신 이, 심판하시는 이, 눈이 정결하신 이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아는 그가 하나님께 왜 듣지 않으십니까! 라는 항변의 말이 나오기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요?

그의 부르짖음의 내용이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민족 유다의 영적 회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징계해서라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해달라는 사랑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살게 해달라는 간절한 외침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항변은 어찌보면 하나님을 향한 마지막 호소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하시나이까

우리도 하박국과 같이 하나님께 나와 항변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고통 중에 있는데, 믿음을 갖고 살려면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 같은데, 하나님 역사를 섬기려면 이게 필요할거 같은데, 왜 하나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 정말 너무하십니다. 하고 말입니다. 그 긴 부르짖음에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으시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나보다 하는 의심의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은 애초에 계시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불신의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이 늘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살지만 오늘 말씀과 같이 해결되지 않는 문제 가운데 또 그 상황에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절망의 시기를 맞이하곤 합니다. 더구나 그 기도가 내가 생각할 때도 하나님도 좋고 나도 좋은 기도 제목이라고 여길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오랜 시간 동안 응답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상황 가운데서 감사할 수 있을까요? 감사는커녕 불만 불평을 내뱉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그런데 하박국은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오늘도 다시 나와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왜 하박국은 대답 없는 하나님께 다시 나와 호소합니까?

구원의 능력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은 영적으로 타락한 유다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분이 오직 하나님 한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분이 비록 지금은 대답 없이 잠잠히 계시지만 그것은 구원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만 지금 구원하지 않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다시 나와 부르짖는 것입니다. 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을 대하는 그 시기를 지날 때는 결코 감사의 시간이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죽지 못해 사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신앙생활을 연명해 나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간이 세밀하게 이야기 하시는 하나님께 귀 기울일 수 있는 때요, 하나님을 만나고 배워가는 시간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빨리 기도 응답해 달라고 떼 쓰는 아이에서 당장 주시지 않더라도 기다리는 장성한 자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게 하시기 위해 그 시간을 허락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그 시간이 필요하시기에, 혹은 아직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나를 준비시키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영원히 잠잠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응답해 주십니다. 하박국의 간절한 부르짖음 끝에 하나님의 응답이 있습니다. 5절에서 11절입니다. 하나님은 왜 유다의 이런 죄악을 보고만 있느냐는 하박국에 질문에 대해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말씀합니다. 그 일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갈대아 사람을 일으켜 유다를 벌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들은 하박국은 이제 응답도 받고, 해결책을 들었으니 즐거워합니까? 오히려 그의 두 번째 질문이 생겼습니다.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십니까?” 12절에서 17절입니다. 12절에서 하박국은 여호와께서 심판을 위하여 그들을 두셨다, 경계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세우셨다 합니다. 하지만 13절에서 그의 항변이 나옵니다. 주는 악을 못 보시는 분이고, 패역을 못 보시는 분인데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고,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십니까?

유다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 인정합니다. 유다가 심판을 받는 것은 합당합니다. 그런데 그 심판의 도구가 유다보다 더 죄악되고, 질이 나쁜 갈대아 사람이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갈대아 사람들은 사납고 성급합니다(6). 강포를 행하는 사람들입니다.(9). 자기들의 힘을 신으로 삼는 사람들입니다(11). 무자비한 사람들입니다(17).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고 섬기지도 않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하는 것이 온당합니까? 그게 옳습니까? 하는 물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응답을 받은 후에 하박국과 같은 항변을 할 때가 많습니다. 막막한 미래에 대해 기도하다가도 그 길만은 안됩니다. 결혼을 위해 기도하다가도 그 사람은 죽어도 안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게 기도하다가도 저 사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곤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마음에 기도하면서도 내가 생각하는 해결책의 가이드라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고려할 때, 그간의 사정을 고려할 때, 이정도 선에서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겠지, 이렇게 일하시겠지 하는 생각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범위 내에서 응답이 오면 주여 그리하겠습니다. 즉각 순종하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응답을 받으면 우리는 베드로처럼 주여 그리 하지 마옵소서. 하며 항변합니다. 하박국과 같이 그게 옳은 방법입니까? 하고 되묻습니다.

이처럼 때론 그분의 응답이 도저히 이해가 안될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나를 더 힘든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길로 가야할 것 같은데 내가 반대로 가는 것 같을 때, 우리 마음에 이러다 내 인생이 망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두 번째 질문이 오히려 첫 번째 질문보다 우리를 더 괴롭게 할 때가 많습니다.

저 역시 대학교 시절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던 기도제목이 하나 있습니다. 나의 정욕의 문제로부터 깨끗하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고, 죄에서 회복 되면 신앙생활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죄에서만 해방시켜 주시면 평생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살겠다고 서원기도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랜 시간 동안 대답이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도 좋고, 하나님도 좋은 일 아니냐며, 근데 왜 고쳐주지 않냐며 따져 물었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은 애초에 나를 포기하고 버린 것이다 생각했습니다. 신앙생활은 해나갔지만 저는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없는 냉소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꽤 시간이 지난 후, 저는 목자님을 통해 한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현 형제님, 평생 그 죄와 씨름하며 살 수도 있습니다저는 그 말에 대꾸도 못한 채 헛웃음만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말 같지도 않다고 생각했던 그 말이 하나님이 저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그 응답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건 제가 생각한 해결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습으로 남은 삶을 살 생각을 하니 끔찍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거치며 저는 도대체 하나님이 누구신가. 이 분이 뭐하시는 분이가. 나는 무엇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또 무엇을 위해 죄에서 깨끗함 받고자 하는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물음 속에 저를 돌아볼 때, 제 안에 죄에서 깨끗함 받고 인간적으로 괜찮은 사람이 되어서 나만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죄에서 고침만 받으면 하나님과 바이바이 하며 내 갈길 갈 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그저 육신의 죄만 해결 받고, 하나님 없이 사는 자가 되지 않고 진정한 구원을 누리는 자가 되길 원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때 이사야 558,9절이 저에게 들렸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나와는 생각이 많이 다르신 그분은 나를 사랑하시며 누구보다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분임을 인정하였습니다. 평생 이 죄와 씨름할지라도 그것으로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의지하는 것이 더 은혜의 삶임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말씀을 준비하며 새롭게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머리로는 그런 하나님을 인정한다 말했지만 정작 제 마음에는 그런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 온전히 영접하지 못하고,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었습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내 원대로 들어주지 않은 하나님께 나도 최선을 다하지 않겠다, 나도 적당히 하겠다. 하는 감사하지 않고 교만한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제가 하박국과 같이 하나님의 응답에 이게 옳은 길인가 반문은 했으나, 무엇으로 진정 감사하고 기뻐해야하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박국과 같이 하나님 한 분 만으로 즐거워하며 기뻐 찬송 부르는 고백까지 나아가지 못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 삶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는 사라지고, 항변과 의문만 남았음을 바라볼 때 소망이 사라집니다. 이런 제 삶에 다시 감사가 생겨날 수 있을까요? 이런 우리의 삶에 감사가 생겨날 수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저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에 이게 옳은 길이냐 반문했던 하박국이 3장에서 감사의 찬송을 외치도록 변화시키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딱딱해진 마음을 갈아엎으시고, 우리의 냉랭한 마음에 다시금 사랑과 감사의 불길을 지피시길 기도합니다. 하박국에게 일하신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도 임하심으로 풍성한 감사 제목을 찾는 수양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아멘!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하박국 1:2)

 

2020 가을수양회 개회메시지 하박국 0101-0117 이제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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