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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31강 정여호수아

마태복음 21:1-22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21:5)

지금까지 예수님은 제자들 말고는 예수께서 그리스도, 곧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왕으로 드러내어 입성하십니다. 어떻게 입성하십니까?


주가 쓰시겠다 하라(1-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도리어 섬기려 오셨다고 말씀하신 후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습니다(1). 이때 예수님은 두 제자를 맞은편 마을로 보내시며 거기에 가면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그것을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고 하십니다(1,2). 예수님은 거기에 나귀가 있는 줄 어떻게 아셨으며, 또 어떻게 나귀를 풀어 끌고 오라고 명령하실 수 있을까 싶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그 답을 친히 알려 주십니다. 3절을 봅시다.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나귀 주인이 당연히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가 쓰시겠다고 하면 그들이 즉시 보낼 것이라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쓸 수 있는 권한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주인에게 있습니다. 곧 예수님이 나귀의 주인이시며, 또 나귀 주인의 주이십니다. 모든 만물의 주이시며, 우리 모든 사람들의 주이십니다.

몇 주 전에 이사야 말씀을 같이 읽는데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녔다는 것을 읽고 저는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만약 저보고 그렇게 하라고 했다면 죽어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께 쓰임 받는 다는 것이 제가 실제로 어떤 것인지 모를 때는, 저도 믿음으로 주께 쓰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조금 주께 쓰임 받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고 못하겠다는 말이 먼저 나옵니다. 이런 제게 주께서 계속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주께서는 저를 위해 자기 몸을 대속물로 아낌없이 내어 주셨음을 일깨워 주십니다. 소감을 쓰면서 냉랭하게 식어있던 제 마음이 다시 뜨거워지는 것을 새롭게 체험하고, 저도 주를 위해 뭐라도 드릴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주께서 제게 다시 주심을 느꼈습니다. 이 시간 저 같은 자를 주께서 쓰시고자 하신다는 사실이 놀랍고 감사합니다. 제가 주가 쓰실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되길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예수께서 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셨습니까?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탔도다(4-11)

4,5절을 봅시다. 이는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는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었습니다. 얼마 전 아이들과 동물원에 갔다가 나귀를 보았는데 성인이 과연 탈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작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다 큰 나귀도 아니고 나귀 새끼를 타셨으니 그 모습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예수님의 발이 땅에 질질 끌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그려집니다. 왕으로 입성하시는데 너무 위엄이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예수께서 굳이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스가랴 선지자는 겸손하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로 볼 때 겸손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뜻과 욕심을 이루고자 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예수께서 겸손하게 나귀 새끼를 타고 왕으로 입성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나귀는 멍에를 매는 짐승입니다. 멍에를 매고서 일생 그 주인을 위해 섬깁니다. 노쇠하여 죽을 때까지 아낌없이 자신을 다 내어줍니다. 이런 나귀를 타신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이 앞으로 어떤 왕이 되실 것인지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섬김 받으러 오신 왕이 아닙니다.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신 왕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인자,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들의 모든 연약한 것과 병든 것을 짊어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순종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데 쓰임 받으시는 왕입니다.

6절을 봅시다. 제자들은 가서 예수님이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 새끼를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셨습니다(7).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렇게 외쳤습니다(8).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9)” “호산나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있었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왕이 오셔서 자신들을 이런 상황에서 구원하여 주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보니 그 기대와 소망이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열렬히 환영하였습니다.

반면 예루살렘 주민들은 이는 누구냐하며 소동하였습니다(10). 이에 무리가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였습니다(11).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께서 제일 먼저 무엇을 하실지 몹시 궁금했을 것입니다. 바로 로마 총독을 만나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포하기를 기대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먼저 성전으로 들어가셔서 선포하셨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12-17)

12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평상시 사랑이 많으시고 온유하신 예수님과는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13절을 봅시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기도하는 집이어야 할 거룩한 성전을 그들이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멀리서 오는 순례객들의 편의를 위해서 비둘기를 팔기도 하고, 성전세를 내도록 환전도 하였습니다. 문제는 이런 매매와 환전이 성전 안에서 이루어 졌다는 것입니다. 이들로 인해 말씀과 찬송과 기도하는 소리로 가득해야 할 성전이 호객하는 소리, 흥정하는 소리, 동전 세는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탐욕이 기승을 부리고, 이를 통해 성전을 관리하는 제사장들의 배를 두둑하게 채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강도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더러워진 성전을 깨끗이 하시며, 성전이 기도하는 집임을 선포하셨습니다.

14절을 봅시다.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이들은 장애와 아픔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성전이 어떤 곳이 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성전은 죄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곳이며, 연약하고 병든 자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 안에서 치료를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회복을 받는 곳입니다.

그런데 성전관리를 맡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맹인과 저는 자들이 이같이 고침을 받고 치유를 받았다면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마땅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께서 하시는 일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였고,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였습니다(15). 그리고 예수께 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며 따졌습니다(16). 이에 예수님은 어린이들과 젖먹이들의 입까지도 예수님을 찬미할 것이라는 그 말씀이 온전히 이루어 졌다고 하시며, 너희가 이 말씀을 읽어 본적이 없느냐고 하십니다. 이로서 대적자들의 그 입을 막으셨습니다(16). 그들에게 말씀을 상기시키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찬양받기에 합당한 왕이심을 분명히 드러내셨습니다. 이후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셨습니다(17).

예수께서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부패한 성전을 청소하고, 성전은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이라 선포하셨습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나님을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왕이신 예수께서 하나님을 떠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구원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예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나눌 수 있습니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받으리라(18-22)

18절을 봅시다.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셨습니다. 그때 길가에서 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열매를 찾으셨습니다. 그러나 잎사귀 밖에 아무것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실망하신 예수님은 그 나무를 향하여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저주하셨고, 무화과나무가 곧 말랐습니다(19). 아무리 시장하셔도 그렇지 예수께서 왜 무화과나무를 이렇게 무섭게 저주하셨을까요?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그 모습이 당시 유대의 모습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성전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대한 참된 예배가 없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였습니다. 예수님은 뭔가 요란하게 하지만 실제로는 참된 신앙의 열매가 없는 그들을 저주하셨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잎만 무성하지 않고 주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제자들은 바싹 마른 무화과나무를 보고 놀라서 예수께 물었습니다(20).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1,22절을 봅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 버리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믿음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가장 큰 적은 의심입니다. 의심은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한번 의심이 들면 점점 마음이 약해지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당장 눈에 보이는 유익과 편의를 따라 행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의심이 내 마음에서 떠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하셨습니다. 의심을 물리치는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입니다.

저는 이번 가을수양회를 준비하면서 프로그램을 정하는 것에 매몰되어 정작 섬기고 도와야 할 학생들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뭔가 열심히 하는데 무엇을 위해 하는지는 모르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잎만 무성하고 주께서 찾으시는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깨워주심을 감사합니다. 제가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주의 뜻을 구하는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의 왕이시오, 우리를 구원하시는 왕이십니다. 우리 속을 깨끗하게 하시고,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도록 하십니다. 우리 각 사람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구원의 주 예수님을 믿고, 기도함으로 주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 21:5)

 

2020 마태복음 31강 메시지 2101-2122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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