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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10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마태복음 7:1-12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12)

산에까지 따라온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또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하나님과는 문제가 없는데, 사람과는 문제가 많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성이 제대로 된 사람이 사람과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먼저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비판하지 말라(1-6)

1절을 봅시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사람이 살다보면 타인을 비판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비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물론 비판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봐도 선지자들은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는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왕이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에 대해서 책망했습니다. 예수님도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보시고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 이로 볼 때 예수님께서 비판하지 말라는 것은 불의에 대해서 지적하는 것을 금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의 비판은 타인의 허물에 대해 자신이 마치 재판관이나 된 것 마냥 정죄하거나 판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비판을 하지 말라 하십니다.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1절을 다시 봅시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재판받는 기분이 들면 누구든지 기분이 상합니다. 나를 정죄 판단하는 너는 잘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놓고 말은 안하더라도 표정에 다 드러납니다. 저만 봐도 그렇습니다. 분명히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가 나의 그 잘못을 판단 받으면 일단은 기분이 상합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괜히 더 삐뚤어지고 싶고, 더 치받고 싶어집니다.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습니다. 비판 받는 그 순간부터 사탄의 시험대에 오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큰마음 먹고 비판했다가 그대로 비판을 받으면 이미 그 소금은 맛을 잃어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비판이 더욱 무서운 것은 내가 비판한 그 비판으로 상대뿐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도 비판을 받게 됩니다. 2절을 봅시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하나님은 내가 이웃에게 어떻게 행하는지를 보시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나를 판단하시고 헤아리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마태복음 5:7).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하셨습니다(마태복음 6:14,15).

그러면 아예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할까요? 그러면 비판 받지 아니하니 속은 편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소금이요 빛으로 쓰임 받게 되는 제자들은 비판하게 됩니다. 비판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3,4절을 봅시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세상의 소금이요 빛으로 쓰임 받으려면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가 보이고 이를 빼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형제의 허물을 비판하다가 자신의 허물이 더 크게 드러나, 오히려 자신이 더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티는 작고, 들보는 큽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먼저 자신의 허물을 크게 여기고, 자신의 허물부터 제거하라 하십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의 들보로 여기고, 자신의 허물은 로 여깁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은 어느 시대 어디서나 쓰이고 있습니다.

사람이 왜 이런 착각을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들보에 의해 그 눈이 가려졌다고 말씀하십니다. 눈이 가려진 사람은 자기가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먼저 내 안에 들보가 들어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이를 알기만 해도 형제를 함부로 비판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함부로 빼고자 시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눈 속에 있는 티를 제거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눈 속에 들어간 티는 정말 작습니다. 또한 눈은 우리 신체 중에 매우 중요하고 또 민감한 부분입니다. 살짝만 건드려도 깜짝 놀라서 움직이고, 눈물이 줄줄 흐릅니다. 잘 못 건드리면 시력을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고 정교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이같이 다른 사람의 허물이 보이면 그 허물을 고쳐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현미경 같은 눈이 필요하고 티만 제거할 수 있는 전문적인 기술이 요구됩니다.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없고 준비된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준비된 사람입니까? 5절을 봅시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빼지 않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려는 사람은 외식, 속은 그대로 두고 겉만 꾸미는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형제의 티를 빼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자기 영광과 유익을 구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제대로 일하려면 먼저 자기 눈 속의 들보를 빼라고 하십니다.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사람이 자기 모습이 어떠한지 알고 싶으면 거울을 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자기를 비추어 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자기를 그대로 정직하게 봐야 합니다. 그리하면 말씀의 빛이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어두운 것이 무엇인지 드러내 줍니다. 내 눈 속에 들어있는 들보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줍니다.

저는 제가 얼마나 율법적이고, 선입견이 심하고, 내 생각대로 다른 사람을 주관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한 사람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많은 들보가 오랜 시간동안 내 눈을 가려왔고, 내 삶 전체를 갉아먹고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에게는 사랑하는 아들 갈렙이 있습니다. 저는 갈렙이가 성경에 나오는 갈렙 장군이 여호수아를 잘 도운 것처럼 갈렙이가 아빠인 저 여호수아를 잘 동역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제 눈에 갈렙이가 잘못하고 있다 싶으면 고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갈렙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을 고치려하면 할수록 갈렙이는 더 떼를 썼습니다. 이런 갈렙이와 몇 년 동안 씨름하면서 저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제가 그동안 갈렙이에게서 티를 뺀다고 하면서 실제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이 얼마나 완악한지 하루에도 몇 번씩 갈렙이에게 예전처럼 제 욕심대로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올라옵니다. 요즘은 매일 제 속이 있는 들보가 너무 크고 견고하다는 사실만 깨닫고 뽑을 힘이 없어 애통하며 한숨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하는 고민은 과연 제 들보가 실제로 뽑힐 수 있을까 입니다. 그런데 이런 제게도 소망이 있음은 제가 최소한 외식하는 쪽으로는 가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남의 티를 함부로 다루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방향전환이 생겼습니다. 나의 들보가 이렇게 큰데 어떻게 남의 티를 탓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하나님을 본다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5:8). 제가 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자 할 때 주께서 제 눈과 마음을 덮고 있는 이 들보를 빼게 하실 것입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밝히 보이게 하실 것입니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의 눈에서 티를 다 뽑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의해야 할 사람도 있습니다. 6절을 봅시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세상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제자들 뿐 아니라 개와 돼지처럼 본능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거룩한 말씀에 따른 충고와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를 도리어 악의적인 비판으로 받아들여서 발로 밟아 버립니다. 심지어 그런 충고를 전해준 사람을 찢어 상하게 하려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제자들이 이런 사람을 도우려다가 거절당하고 찢기고 상하는 일을 우려하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주의하고 분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티를 뽑는 일에는 늘 신중해야 합니다. 우선은 나를 잘 살펴야 하고 그 다음에는 또 나의 말을 들을 사람이 실제로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도 잘 살펴야 합니다. 개처럼 으르렁거리거나 돼지처럼 꿀꿀거리며 짓밟을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피해야 합니다. 눈 속에 있는 티를 뺄 수 있을 만큼 깨끗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기다린다고 될까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는데 말입니다. 저 자신을 볼 때도 제게 과연 변화가 일어날까 싶어 많이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제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7-11)

7,8절을 봅시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예수님은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주신다고 합니다. 찾으면 찾아 낼 것이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하십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고, 찾는 이는 찾아 낼 것이고,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다고 하십니까? 9절에서 11절을 봅시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악한 아버지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주고자 합니다. 그런데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은 선한 아버지 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입니다. 이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시겠습니까? 생선을 먹고 싶다고 하는데 뱀을 주시겠습니까? 우리가 구하기만 하면 주시되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것입니다. 자녀로서 우리가 하늘 아버지께 구해야 할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누가복음에서는 이를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 진리의 영입니다(에베소서 1:17).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 눈 속에 견고히 박혀있는, 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빼낼 수 없는 들보를 빼 주십니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만 뺄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분별할 수 있는 지혜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합니다.

제가 그동안 하나님께 구하지도 찾지도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제 속에 박혀 있는 크고 견고한 들보 때문에 자기 골짜기를 파면서 고통하고 절망하고 한숨만 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언제까지나 저의 죄 문제에 갇혀서 힘을 빼고 있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가난한 심령이 된 지금 주께서 제게 좋은 것을 주시도록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야겠습니다. 주께서 제 아들도 감당이 안 되어 쩔쩔매는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시길 기도합니다. 사랑의 주께서 저를 이 시대 목자로 부르셨습니다. 제가 어떤 때에라도 구할 수 있고 또 구하기만 하면 주께서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게 됩니다. 제가 지금 이 절망의 때에 주의 긍휼하심을 구하게 되어 힘이 납니다. 제게 언제나 소망이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아멘!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하라 하십니까?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12)

12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세상에서도 인간관계에 있어 이와 비슷한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많은 성인들이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비판받고 싶지 않으면 비판하지 않는 것입니다. 피해를 받고 싶지 않으면 나도 피해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정도만 실천하고 살아도 최소한 다른 사람에게 폐는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의 소금이요 빛인 제자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하십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하십니다. 능동적으로 대접하라 하십니다.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하십니다. 성경 말씀의 핵심입니다.

저는 남에게 인정받고 사랑 받고 싶습니다. 존중 받고 이해 받고 싶습니다. 섬김 받고 용서 받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인정받고 싶은 만큼 사랑 받고 싶은 만큼 내가 먼저 그 상대를 인정하고 사랑하라 하십니다. 남이 바뀌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원망할 것이 아닙니다. 그가 먼저 태도를 바꾸어야 내가 달라질 수 있다고 고집할 것도 아닙니다. 내가 먼저 상대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내 마음은 내 맘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남에게 대접하였는데도 그 남으로부터 대접이 되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일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예수님 따르는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이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비록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였는데, 그 대접이 그 사람에게서 돌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대접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고, 예수께서 이렇게 행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절 말씀입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사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아는 사람이 예수님을 따릅니다.

요즘 다른 사람과의 관계문제로 힘들어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 가까이 해야 하는 사람을 힘들어합니다. 지금 저도 이 문제로 인해 힘겨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이 말씀을 따라 생각하고 행하면 누구라도 풀어나갈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요, 뭐 거창한 것도 아닙니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나도 남을 대접하면 됩니다. 비판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않으면 됩니다. 상대에 대해서 비판하는 마음이 생기면 먼저 자기 자신은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 돌아보면 됩니다. 이로 볼 때 말씀대로 행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무슨 일에서든지 말씀을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하면 안 풀리던 매듭도 쉽게 풀립니다. 누구든지 이렇게만 행하면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귀하게 쓰임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말씀대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 행하는 사람이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예수께서 들려주시고 행하신 말씀대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함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 7:12)

 

2020 마태복음 10강 메시지 0701-0712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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