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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마가복음
2019.12.29 12:26

2020년 신년 1강 메시지(정여호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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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신년 1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마가복음 10:32-45

 

 

인자가 온 것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45)

예수님을 따르려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그 따르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무슨 목적으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는지 말씀하십니다. 특히 예수님을 따르면서 크고 으뜸이 되려고 하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곧 2020년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각오를 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따르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나 자신의 믿음의 목적이 분명해져야 하겠습니다. 주께서 우리 각 사람의 마음에 말씀을 붙들고 행할 소원과 믿음 주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생긴 일들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여행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구속역사를 완성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게 됩니다. 이 일을 앞두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하셨습니까?

다시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32-34)

32절을 봅시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의 잔을 받으시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되 제자들 앞에 서서 그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단호하고 비장한 자세에 놀랐습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 전개될 것을 감지하였고 따르는 무리들은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놀라고 두려워하는 열두 제자를 다시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33,34절을 봅시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앞에서 이미 두 번이나 자신이 당할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고백했을 때 비로소 이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항변하다가 사탄이라는 책망까지 들었습니다(마가복음 8:29-31). 두 번째는 예수님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신 후였습니다. 이때는 그들은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묻기조차 두려워했습니다(마가복음 9:31,32). 이번 세 번째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고난 받을 장소가 예루살렘임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처음 두 번에 비해 아주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어떻게 고난과 죽임을 당할지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이방인들 곧 로마 당국자들에게 넘겨지실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능욕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에 대한 심각한 말씀을 하고 계실 때 제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까?

 

주의 영광 중에 앉게 하소서(35-44)

35절을 봅시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예수님께 나아와 여쭈었습니다.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들의 모습은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들이 부모님에게 자기 원하는 것을 꼭 사달라고 조르는 모습과 같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했으므로 자신들은 마땅히 주님께 이 정도는 요구할 수 있다는 자세입니다. 이런 그들을 오래 참으시고 예수께서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36)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합니다. 37절을 봅시다.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이로볼 때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께서 지금 예루살렘에 주의 영광을 받으러 오르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곧 그들은 예수께서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헤롯 왕도 몰아내고 유대인의 왕으로 등극하시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일이 일어나기 전, 다른 제자들에게 먼저 자리를 빼앗기기 전에 먼저 예수님께 조용히 나아가 인사 청탁을 하였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그들이 자기 모친까지 동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태복음 20:20).

이런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무엇이라 대답하십니까? 38절을 봅시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그들은 그들이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주의 영광중에 주의 좌우편에 앉는 것은 예수님이 마시는 잔과 그 받는 세례에 같이 동참하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잔과 세례가 무엇입니까? 이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두 제자는 할 수 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39). 자신들이 영광만 얻을 수 있다면 예수님과 함께 어떤 고난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군다나 영의정, 좌의정 자리를 보장만 해 주신다면 어떤 대가도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이라 대답하십니까?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40). 예수님은 그들이 과연 예수님의 고난의 잔과 죽음의 세례를 받을 것이라 하십니다. 이 예언대로 나중에 야고보는 사도들 중의 첫 순교자가 되고, 요한은 밧모 섬에 유배되어 가장 늦게까지 생존하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할지라도 예수님의 보좌의 좌우편에 앉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정하실 일이라고 하십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아가 이같이 은밀히 청탁한 것에 대해 다른 제자들은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대답하시자 모든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에 열 제자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41절을 봅시다.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수제자 베드로뿐 아니라 평상시에는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바돌로매까지도 화를 내었습니다. 이 사실이 말해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열 제자들도 먼저 예수님께 나아가 말만 안했을 뿐이지 예수님의 좌우편에 먼저 앉고자 하는 강렬한 야망과 소원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부자 청년에게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하고 여쭈었을 때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하셨습니다(마가복음 10:29,30). 제자들은 이 말씀에 대해 뭔가 착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 왕으로 등극 하시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이때 주께 얼마나 충성하는지 그 정도에 따라 주께서 더 큰 영광의 자리를 보상해 줄 것이라 여겼던 것 같습니다. 처음 순수하게 예수님을 따랐던 마음은 사라지고 영광의 자리에 앉고자 하는 욕심에 사로잡혀 그들의 눈과 귀를 가려버렸습니다. 이런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에 제자들을 불러다가 무엇이라 하십니까?

42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당시 이방인의 집권자들은 백성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은 권세를 부렸습니다. 권세는 본래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세 잡은 자들은 그 권세로 백성들을 공의에 기초해서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임의로 주관하였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백성들을 살리는 일인지 해가 되는 일인지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영광을 얻고, 또 자기 자리를 유지하고 자기 상황에 어떻게든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자기에게 좋으면 선이요 자기에게 나쁘면 악이었습니다. 또 그날 그날 기분과 감정을 따라 어제는 선이었던 것이 오늘 갑자기 악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제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권력자들의 명령 한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로마 군대를 보면서 권세자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엄지손가락 하나를 올리느냐 내리느냐에 따라 사람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이러한 자들에 대해 반발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세상 권세자들의 삶을 동경하였습니다. 자기들도 권력을 잡아 마음껏 권세를 부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43-44절을 봅시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 모르는 이방인의 집권자들은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고 따르는 너희는 달라야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달라야 합니까? 먼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섬기는 자란 시중드는 자요, ‘은 주인에 속한 자로서 주인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고 주인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는 자입니다. 주인을 위해 섬기는 것 자체를 감사하고 기뻐하는 자입니다. 주인을 위해 일해 놓고 언젠가 나의 모든 수고를 주인이 알아주고 자기를 높여줄 거야라는 생각 자체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큰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한다면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크고자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는 꺾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어떤 자가 정말 하나님 앞에 큰 자요 또 으뜸인 인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당분간 남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뜻으로 생각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내가 종의 자세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면, 시간이 지나면서 , 저 사람은 참 겸손한 사람이구나라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결국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된다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래, 내가 지금은 섬겨준다. 양을 많이 얻고 역사를 키우려면 섬기는 수밖에 없지. 그러나 이 일을 통해 결국 모든 사람이 나를 우러러 보게 되겠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섬기는 것, 그러한 삶 자체가 위대한 것이요, 그렇게 사는 사람이 가장 큰 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없이는, 사람에 대한 긍휼한 마음과 비범한 내면성이 없이는 결코 할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적을 무찌른 능력 많은 장군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혈기와 감정을 다스릴 수는 없다면 그는 이미 큰 자가 아닙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습니다(잠언 16:32). 자리가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자리에 있든 낮아져 섬길 수 있고, 누구라도 감당할 수 있는 내면성이 있으면 그 사람이 진정 위대한 자입니다.

그런데 이를 머리로는 안다고 해도 사람이 실제로 행하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이런 실제 어려움에 부딪힐 때 예수님은 왜 자꾸 고난 받고 죽임 당하신다고 말씀하시는지 알고 싶어집니다. 본문의 제자들고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45)

다같이 45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인자,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본체가 하나님으로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거룩하고 영화로우신 분으로서 모든 천군 천사들과 인생들로부터 찬송과 경배와 섬김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섬김 받으시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오셨습니다. 오셔서 뭇 사람을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말미암아 무기력하게 된 중풍병자도 섬기시고, 이기심으로 병든 세리들도 섬기시고, 반항심으로 병든 거라사 광인도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경쟁심이 많고 욕심으로 가득 차 있는 제자들을 품고 섬기셨습니다. 완악한 바리새인들도 끝까지 섬기셨습니다. 곧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자체가 섬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인자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이었습니다.

목적이 분명하면 그 외 다른 것으로 인해 좌절하지 않습니다.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인해 기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는 목적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 곧 섬김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 심지어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인하여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는 다른 사람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아니하든지 예수님을 섬기든지, 섬기지 않든지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것이 삶의 목적이므로 섬기면서 늘 기쁨이 충만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섬기는 것이 삶의 목적인 사람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만족합니다.

예수님은 섬기시되 어디까지 섬기셨습니까? 다같이 45절을 다시 읽어봅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섬기되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까지 섬기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며 제자의 삶을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제자들처럼 자아 성취와 자기 영광을 추구하기가 쉽습니다. 기꺼이 자기를 잃어버리기보다 자기를 지키고, 구하고, 높이고자 애를 쓰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섬기시되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제가 이 말씀 앞에서 아무런 할 말이 없는 죄인임을 발견합니다. 이 말씀은 저의 결혼요절입니다. 저의 집 거실에 걸려 있습니다. 저는 이 요절을 볼 때마다 저는 섬기는 자로 이미 살고 있는데 왜 이 말씀이 결혼요절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습니다. 실제로 저는 저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참고 섬기는 내면성도 갖추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곧 제가 저 자신을 잘 모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하고 제 아내가 한 집에서 같이 살게 되고, 또 자녀가 생겼습니다. 제 바로 곁에 있는 제 아내와 제 아이들이 제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면 이를 참지 못하고 크게 화를 내었습니다. 함부로 대했습니다. 저는 섬기는 자가 아니요 폭군이었습니다. 최근에 저는 제 아내로부터 당신은 목자도 아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종이 되기는커녕 가장 사랑해야 할 나의 이웃인 제 아내와 제 자녀에게 조차 감당이 안 되어 계속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생각할 때 너무나 한심하고 또 화가 납니다. 말하기 부끄럽고, 또 부정하고 싶지만 이것이 저의 13년 목자 생활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이런 제게 다시 말씀하여 주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예수께서 저 같은 자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대속제물로 주셨습니다. 섬기시되 자기 목숨을 주시기까지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앞에 제가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제게 있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이십니다. 저 자신에게는 소망이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을 생각할 때 소망이 생깁니다. 제가 예수님을 따르려한다면 저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은 제가 그들에게 으뜸이 되고 싶어서입니다. ‘나의 아내이고, 나의 자녀이면 내 말을 들어야지, 나의 아내는 내가 하는 일에 동역자가 되어야 하고, 나의 자녀이면 내가 하는 일에 마땅히 알아서 따라야 하지. 나는 목자인데하는 것이 제 생각이고 뜻이었음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세가 아니었음을 발견합니다. 제가 따르고자 하는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오셨습니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신 목숨을 대속제물로 내어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동안의 제 삶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아니었음을 발견합니다. 제가 회개하고 2020년에는 마가복음 1045절 말씀이 저의 결혼요절이요, 저의 인생요절이 되어 저를 지키시길 간구합니다. 어떤 순간에도 이 말씀이 항상 떠올라 저로 가장 가까이 있는 저의 아내와 저의 자녀를 살리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제 아내, 제 자녀는 저를 가장 가까이서 보고 가장 잘 압니다. 이들이 살아나면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임이 증거 되는 것입니다(마가복음 12:29-31). 그러면 저로부터 조금 떨어져 하루에 한번 씩 보는 형제자매들도 제대로 섬기고 살리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섬기러 오셨습니다. 많은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대속제물로 자기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죄에서 구원을 얻고 생명을 얻습니다. 이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입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섬김을 받는 삶이 아니라 섬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삶이 예수님을 따르는 큰 사람이 사는 삶입니다. 2020년 새해를 맞아 우리 각 사람이 성경 말씀을 더욱 사랑하고 읽고 묵상하여, 예수님을 알고 영접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 사람을 살리는 큰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

 

 

2020년 신년 1강 메시지 마가복음 1032-1045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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