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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마태복음
2019.12.22 15:27

2019년 성탄 2강 메시지(김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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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성탄 2강 김요한

마태복음 2:1-12

 

 

왕이요 목자이신 예수님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마태복음 2:6)

Merry Christmas! 기쁜 성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신 것이 왜 그렇게 기쁜 날입니까? 제게도 성탄절은 기쁜 날이었습니다. 어릴 적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눈깔사탕 하나 먹을까 말까 하던 시절에 성탄절 아침 눈을 떴더니 제 머리 맡에 작은 밀크캐러멜 한 통이 있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가 성탄절에 교회가면 맛있는 것 준다하여 친구 따라 무릎 꿇고 기도도 했습니다. 무엇을 먹었는데, 왜 내가 무릎을 꿇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대학생 때는 친구들과 함께 밤새도록 올나이트 파티도 하였습니다. 기뻤습니다. 그러나 다 그 때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경공부를 하면서 성탄의 의미를 조금 씩 알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합창도 하고, 연극하는 데 조명등을 잡고 있기도 하고, 모르는 학생들도 초청하고, 메시지도 전하였습니다. 기뻤습니다. 그러나 삶은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고, 성탄이 와도 마음이 심드렁해졌었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어릴 적 읽은 푸시킨의 시 한 구절이 저를 잠시 위로해주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은 제게 성탄의 의미를 매년 새롭게 하여 주십니다. 2019년 성탄을 맞아 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기쁨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기쁨은 오래갈 것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저는 오늘 이 기쁨을 누리고 또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심을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유대인의 왕에게 경배하러 왔노라(1-6)

1절부터 봅시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예수께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계시기 위해 마리아의 몸에서 사람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이를 당사자들인 마리아와 마리아의 약혼자 요셉은 천사의 도움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들 택함을 받은 사람들 외에 또 예수님 나신 것을 알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2) 마태복음 1장이 유대인 중심의 기록이라면, 2장은 유대인이 아닌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의 기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신 성탄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모든 사람에게 기쁨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하였습니다(2).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였습니다. “경배성경말씀에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경배는 일백 여덟 번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여호와께 경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창세기 24:26), 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보낸 후 죽을 날이 가까웠을 때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창세기 47:31). 모세가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고(출애굽기 34:8), 성경의 마지막 말씀인 요한계시록 끝장인 229절에서는 하나님께 경배하라하셨습니다. 경배는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경배, 敬拜, worship은 말 그대로 공경하여 공손히 절하는 것입니다. 그 경배의 대상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이 경배 받으실 분이십니다. 하나님 외 다른 것에 경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죄입니다(출애굽기 23:24). 하나님 외 다른 것 곧 우상에게 경배한 자들은 다 멸망하였습니다(로마서 1:24,25).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여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하였을 때, 예수께서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하시며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마태복음 4:9,10). 그래서 우상에게 경배하는 것을 성경에서는 숭배라고 합니다. 마땅히 경배해야 할 대상인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탐심입니다. 탐심이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우상을 숭배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경은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확실히 전합니다(골로새서 3:5).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았습니까? 그들은 박사, magi, 곧 현자, 賢者, 천문지리, 특히 별을 연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밤하늘의 별들을 보며 연구하는 주 목적은 진실로 경배할 대상을 찾고자 함이었습니다. 캄캄한 밤에 빛나는 별 같이 어두운 세상을 다스릴 왕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책들을 읽고 연구하였습니다. 그러는 중에 그들은 민수기 2417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민수기 24:17) 이 말씀에 따라 그들은 한 별을 찾고 찾았고, 드디어 범상치 않은 별을 발견하고, 이 별이 바로 민수기가 전하는 그 별임을 확신하고 별 따라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동방에서 예루살렘까지 약 1,200km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먼 길을 몇 달을 걸쳐 왔습니다.

그렇게 까지 먼 길을 온 것은 오직 한 가지 목적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이들은 우리라 하였습니다. 11절로 볼 때 세 사람인 것 같은데, 세 사람, 박사들, 아는 것이 많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같이 왔습니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서로 자기 주장하느라 의견이 하나로 모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같은 길을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먼 길을 같이 왔습니다. 각기 성격도 다르고, 인품도 다르고, 생각도 다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동방에서 예루살렘까지 오는 동안 별 일이 다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읽었듯이 요한을 두고 위로의 아들이라 불리던 바나바와 사랑의 사도라 일컬어지는 바울이 서로 다투다가 선교여행을 따로 갔습니다(사도행전 15:37-40). 그러나 이들은 오직 한 가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에게 경배한다는 점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박사들이 말씀에 따라 그 별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드디어 도착하여 유대인의 왕에게 경배하러 왔다 하니, 3절을 봅시다. 당연히 알아야 될 것 같았고, 축제라도 벌여야 할 것 같았던 그 사람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 사람들이 이들의 말을 듣고 소동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었습니다(4). 그러자 성경을 잘 아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말하였습니다. 5,6절을 봅시다.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성경을 잘 아는 이들은 미가서 52절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기록된 대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실 이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동방의 박사들 보다 성경을 더 자세히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경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성경의 내용 보다는 성경에서 말하는 바를 따라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왕이었던 헤롯은 이들에게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아 없애버리고자 하였고, 실제로 그렇게 하였습니다(마태복음 2:16).

그러나 동방의 박사들은 달랐습니다. 경배하러 왔습니다. 그러면 동방의 박사들이 경배하고자 하는 유대인의 왕은 어떤 분이십니까?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목자가 되리라(6)

6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네게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하나님께서는 그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 1장에서 읽은 것 같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리, 멀리 떠나 죄 가운데 있어도 여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다스릴 왕 그리스도가 나게 하시고,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목자가 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곧 그들의 왕이요 목자가 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왕이요 목자.’ 참 이상적인 조합입니다. 어떤 형제가 자신은 끌려가는 삶을 살기는 싫다.’ 하였습니다. 젊은이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 대부분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경영학부의 어떤 학생이 자신은 직장에 다니는 것은 내 적성에 맞지 않다. 내 마음대로 살고 싶다. 음식점을 차리겠다.’ 하였습니다. 그런다고 자기 생각대로 살게 될까요? 요즈음 부산에서 새로 생긴 음식점의 80%이상이 두 달 만에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로마서 616절은 이렇게 전합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사람이 누가 되었든지 누구에게든 순종하게 됩니다. 다만 그 결과가 사망에 이르든지 의에 이르든지가 다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야말로 누구에게 순종해야 할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자신이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쉽지 않습니다. 이것을 하려면 저것이 걸리고, 저것을 하려면 이것이 걸립니다. 이런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왕으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사람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려 보내셨습니다. 목자는 양과 함께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목자, 선한 목자이십니다. 사람과 함께 하시며, 사람이 양과 같이 눈이 나쁘고, 고집이 세도 함께 계십니다. 양 똥 냄새가 그 냄새가 몸에 배여도 함께 계십니다. 심지어 양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요한복음 10:11).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사람과 함께 계십니다.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하십니다(마태복음 5:7),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하십니다(마가복음 2:17).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고자 하는 사람 중 많은 사람이 성탄절에 우울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닮고 싶은데, 자신이 도저히 예수님 같지 않아서 우울하다고 합니다. 예수님 같이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우울해집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볼 때, 성탄은 예수께서 오신 날입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께서 사람을 목자로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오직 유일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은 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왔습니다. 성탄에 우리가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이 땅에 왕이요 목자로 오신 예수님을 경배할 수 있어서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목자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나셨습니다! 왕이요 목자이신 예수님을 경배하게 되어 감사하고 기쁩니다. Merry Christmas!

그런데 그만 그렇게 목자로 오신 왕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기 위해 그 멀고 험한 길을 온 박사들이 오히려 예루살렘에 와서 더 혼란스럽게 되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고 인생을 제대로 진리대로 살아보고자 교회생활을 하는데,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혼란스러워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까? 만나서 경배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나요?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7-10)

7절부터 봅시다. 성경을 잘 아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이야기를 듣고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하였습니다(8). 그러나 이는 거짓이었습니다. 헤롯이 나중에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였습니다(마태복음 2:16). 그의 말과 행동, 말과 마음이 같지 않았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늘 이럴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었습니까? 9절을 봅시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문득” ‘생각이나 느낌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참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본문의 박사들 같이 찾고 찾으면 문득 보입니다. 예레미야 2913절에서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간호학과 학생이었던 드보라 목자님의 마음에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또 만났습니다. 그런데 또 놓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또 찾았습니다. 그 과정을 수양회에서 증거 하였는데, 이를 듣고 감동을 받은 청년이 말씀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지금의 여호수아 목자님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박사들은 먼 길을 같이 하여 예루살렘에 왔고, 유대인의 왕을 찾았으나 오히려 혼란스러웠고, 또 왕에게 속아 죽을 뻔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끊임없이 찾고 찾았습니다. 그리하였을 때 문득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던 별을 다시 만났습니다. 마음이 없으면 핑계만 보이고 마음이 있으면 길이 보입니다.

10절을 봅시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왕이요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기쁨입니다. 유대인의 왕에게 이끌어 온 그 별, 어둠 속에서 여전히 빛나는 별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유대인의 왕에게로 이끌어 주는 별이 무엇일까요? 성경입니다. 더 정확히는 성경이 말하는 바입니다. 다니엘은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전하였습니다(다니엘 1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하셨습니다(마태복음 5:14).

그래서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아기께 경배하고 예물로 드리니라(11)

11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그들은 아기께 경배하였습니다. 어떻게 아기께 경배할 수 있단 말입니까? 황태자임이 확실하다면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경배한 아기는 나사렛 시골마을에서 온 요셉의 아기입니다. 마리아의 아기입니다. 이 아기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된 사람들과 함께 계시기 위해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한 다스리는 자요 목자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들은 이를 알고 영접하였습니다. 무슨 업적을 보고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참, 진리를 찾고 찾는 구도자였습니다. 이를 위해 공부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이들은 준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경배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고국에 돌아가니라(12)

12절을 봅시다.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십니다. 훈련을 하시지만 그 생명을 보호하십니다. 욥과 같이. 요나와 같이.

그들이 고국에 돌아가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그들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증거 되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고국으로, 곧 집으로 갔다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가 살던 동네로, 거라사 광인은 예수님을 따라 가겠다고 하였는데도, 예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하셨습니다(마가복음 5:19). 예수님을 경배하는 사람은 그 삶이 세상과 다릅니다. 로마서 121,2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의 빛이라 하시고, 그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부활하셔서 하늘로 오르시면서 그들을 같이 데리고 가지 않으셨습니다. 험악한 세상에 남겨두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빛이라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마태는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이 기록을 남겼습니다. 자신이 세리였음을 밝히고, 자신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증거합니다. 그에게 있어 예수님을 만난 것은 세상 그 어떤 값진 것보다 귀한 것이었습니다(마태복음 13:44-46).

예수님이 우리를 만나 주심은 가장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생선은 싱싱할 때 맛있지만, 조금 있으면 냄새나고 먹지 못합니다. 건전지는 기계에게 에너지를 주지만 금방 닳아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만나는 만남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나의 연약함이 어떠하든, 사람이 어떠하든,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 놓으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요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셨습니다(히브리서 2:15).

본문의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은 지금도 많은 사람으로 옳은 데로 이끕니다. 이를 유대인 마태가 기록하고 지금까지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가 전합니다. 말씀을 듣고 받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고백하는 사람은 왕이요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빛으로 쓰십니다. 아멘!

세상을 목자로 다스리시는 왕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기쁜 성탄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말씀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사람이 되어 기쁜 성탄을 맞이하고 또 이 기쁨을 늘 누리고 나누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태복음 2:6)

 

 

2019 성탄 2강 메시지 0201-0212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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