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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9 사도행전 15

김아브라함

사도행전 19:1-41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날마다 강론하니라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사도행전 19:9)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을 통해 고린도와 에베소에서 큰 말씀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지난주 고린도에 이어 오늘은 에베소의 흥왕한 말씀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 비결을 배우고, 우리가 말씀의 능력을 알아가는 가운데 말씀을 따라 비전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1.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1-7)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 바울은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왔습니다. 당시 에베소는 세계적인 무역도시였습니다. 많은 사람, 물질들로 풍요로웠지만 그만큼 타락한 곳이었습니다. 에베소는 마술과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이런 곳에도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역사가 있을까? 싶지만, 이미 그곳에 복음의 씨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아직 성령도, 성령의 세례도 몰랐고, 그저 요한의 세례만 받았습니다. 바울은 요한의 세례 곧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들에게 말한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한 것에서 시작하여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바로 예수라 증거 했습니다. 이때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 곧 본인의 결단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고치고 싶다고, 돌이키고 싶다고 돌이켜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성령의 세례가 필요합니다. 내가 행할 수 없는 것을 성령이 행하게 하십니다. 사람이 변화되어 자기 욕심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는 삶을 능히 살게 하십니다. 이 길을 바울이 가고 있습니다.

 

2.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날마다 강론하니라 (8-9)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했습니다. 성령을 받고, 방언하고, 예언한다고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 거기 계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성경을 통해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담대히 대중 앞에서 이를 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어야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을 증거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였습니다. 이제 다른 지역으로 떠날 때가 된 걸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이들과 논쟁하다가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을 반복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9절 하반절을 봅시다.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말씀을 증거하면 듣는 사람도 있고, 듣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울은 안 듣는 사람과 싸우느라 힘을 허비하지 않고, 듣는 사람 곧 제자들을 따로 세웠습니다에베소 역사의 비결 중 하나는 말씀을 듣고자 하는 제자들을 따로 세운 것입니다. 이는 바울 이전에 예수께서 쓰신 방법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지만, 예수님은 무리가 아니라 열두 명의 제자들에게 집중하셨습니다. 또 그중에서도 베드로 한 사람과 씨름 하셨습니다. 시간을 더 앞으로 가면 창세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 한 사람을 택하시고 그를 집중하여 도와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워진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은 구속의 역사를 이루셨고, 지금도 이루어 가십니다. 바울에게 있어 에베소 교회에 몇 사람이 나오는가 하는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많이 모여도 말씀이 제대로 없으면 다 떠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한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말씀을 믿고, 붙드는 제대로 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세우는 데 힘을 다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제자들을 어떻게 양성하였습니까? 9절 하반절을 다시 봅시다.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란노 서원은 당시 사설 학원이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낮잠 시간이라 두란노 서원은 비어 있었는데 이 시간에 바울은 이곳을 빌려서 날마다 제자들에게 성경을 강론했습니다. 여기서 강론은 일방적으로 메시지만 전하고 그친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고 하는 토론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1:1입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한 시간정도 1:1 하는 것도 큰일로 여깁니다. 그런데 날마다 그것도 하루  5시간씩 성경을 강론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몇 주하고 마친 것도 아니고, 두 해 동안 했습니다. 이렇게 날마다, 꾸준히, 집중해서 할 때 어떤 역사가 있었습니까? 10절을 봅시다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의 성경공부를 통해서 제자들이 말씀 위에 굳게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세워진 제자들은 자기만 은혜받고 그친 것이 아니라 두란노 서원에서 돌아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에베소를 넘어 소아시아 전 지역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1:1 성경공부는 시간상으로는 비효율적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한번에 한 사람, 또 한 사람, 한 사람 일정을 맞추고, 그들에게 맞게 말씀을 준비해서 1:1 하는 것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그래서 한 번에 모아서 한 번에 성경공부 하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 시간을 아낄 수 있겠지만 인격적으로 말씀을 받지 못하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지 못합니다. 시간을 아낀다며 소용없는 일에 시간을 쓴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하는 것은 미련해 보이지만 이것이 제자양성의 비결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한 사람과 1:1하는 수고를 감당함으로 주의 제자들 말씀 위에 세워지는 역사, 제자들이 제자들을 세우는 역사에 계속 쓰임 받길 기도합니다.

 

3. 하나님이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11-20)

하나님은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습니다. 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 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기도 했습니다.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했는데 악귀가 나가기는커녕 도리어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겼고, 그들은 상하여 벗은 몸으로 도망하였습니다. 이들은 주 예수의 이름에 대해 믿음 없이 그저 마술 주문 외우듯이 예수의 이름을 팔았습니다. 믿음 없이는 예수, 예수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렸습니다.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50억 상당의 책을 불살랐습니다. 복음의 말씀이 증거될 때 제자들 뿐 아니라 사회가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릴 때 속이는 것에 불과한 마술은 아무 쓸데가 없게 되었고, 마술책도 이제는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이와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습니다. 에베소의 변화는 오직 말씀이 증거될 때 주의 말씀이 역사해서 된 것입니다. 말씀에 힘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증거하고, 그렇게 사는 자에게 또한 말씀의 힘이 있습니다. 말씀, 말씀하는 것이 우리 모임이 유별나서가 아니라 말씀의 힘과 능력을 알기 때문입니다. 매년 새로워 양들을 영접하기 위해 뭔가 세련된 것, 감각적이고, 다양한 것을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이 이들 각 사람을 돕고 살리고, 제자로 세워지게 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일에 힘을 쏟아야겠습니다.

 

4.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21-41)

사도바울은 에베소의 말씀 역사를 통해 비전을 갖게 됩니다. 21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바울은 이제 아시아와 유럽을 넘어 세계의 중심인 로마를 바라보았습니다.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아시아의 중심지 에베소가 말씀으로 개척된 것을 통해 세계의 수도 중심 로마도 주의 말씀으로 능히 개척될 것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역사에 안주하고, 있는 사람들로 어떻게 해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말씀이 필요한 곳을 제자들을 파송했습니다.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되지만, 사람의 힘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매월 보름, 센터 옥상에서 바베큐를 구워먹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당시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풀밭이 있는 넓은 앞마당있는 집을 짓고 센터 형제, 자매들을 초청해서 고기 구워먹는 것이 인간적인 소망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고기를 구워 먹을 수는 있겠지만 이것이 비전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의 능력을 체험할 때 비전을 갖게 됩니다. 부모 문제가 있을 때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이렇게 하셨는가 하는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캠퍼스 아비 없는 자의 아비요 목자 없는 자의 목자로 부르심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동변상련이라도 인간적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돕고 섬기는 것은 한계적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인격적으로 증거하는 것은 인간적인 위로를 넘어 그들이 그들의 하나님, 예수님을 만남으로 구원얻게 합니다. 말씀이 일할 것을 믿고 말씀만을 증거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말씀의 역사에 돌이키고, 비전을 갖게 되는 역사와 함께 소동도 있었습니다.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자 돌이키는 역사도 있지만, 복음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자기 유익에 반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에베소의 특산물은 아데미 신상 모형 만들고 파는 일로 풍족하게 살던 자들이 이제는 그 수입이 끊기자 들고 일어났습니다. 연극장에 모여 소요했지만, 하나님은 서기장을 통해 해결해 가십니다. 말씀이 증거될 때 말씀이 역사하여 힘을 가집니다. 이러할 때 듣고 돌이키는 자도 있고, 비방하고, 소동 부리는 자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마저도 해결해 가십니다.

 

에베소의 말씀 역사는 말씀을 듣고 따르는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그들과 함께 날마다 강론하는 데 있었습니다. 에베소의 말씀 역사가 지금 우리 가운데도 있기 원하십니까? 우리 각 사람이 받은바 복음의 말씀을 붙들고, 한 사람, 한 사람과 일대일로 돕고 섬길 때 주께서 능히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말씀의 힘을 믿고, 다만 말씀대로 인격적으로 증거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사도행전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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