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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9 사도행전 12강 정여호수아

사도행전 15:1-35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사도행전 15:11)

1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온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 이르러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였습니다. 세계선교 이방인 복음 역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그때 안디옥교회에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습니다(1-5)

1절을 봅시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까지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성경대로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으면 누구라도 구원을 받는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만 아니라 할례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가르침은 안디옥 교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2절을 봅시다.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격렬한 다툼과 논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워낙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하여도, 위로의 아들 바나바도 그들과 격렬하게 다투고 논쟁하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왜 이렇게까지 이들과 싸운 것입니까? 이 문제는 할례를 받으면 더 좋다, 좋지 않다, 도움이 된다, 도움이 안 된다 이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이방인들의 구원이 걸려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주의 몸으로 사신 교회 안에서 이 같은 다툼과 논쟁이 계속되니 주께 영광이 안 되고, 모임이 둘로 나누어질 위기에 이르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였습니까? 2절 하반 절을 봅시다.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들이 왜 이런 작정을 하였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1:8). 초대교회의 본부였습니다. 이방인의 구원 문제가 걸려있는 매우 중대한 사항이기 때문에 본부에 이 문제를 알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과 함께 이 문제를 놓고 같이 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이에 바울과 바나바를 그 중 몇 사람과 함께 보냈습니다. 교회의 전송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도 그들은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증거 하였고, 이로 인해 형제들이 다 크게 기뻐하였습니다(3).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도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보고하였습니다(4). 그런데 이를 듣고서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습니다(5). “마땅하다는 것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는 유대인으로 살면서 오랫동안 율법 지키느라 힘들게 살아왔는데, 율법도 행하지 않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았다고 하니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을까요? 그들도 이렇게 말하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을 때에, “너희 중 다 할례를 받되 너희 자손뿐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할례 받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17:10-14). 또 출애굽 이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너희와 함께 거류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 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거류하는 이방인에게 이 법이 동일하니라(출애굽기 12:48,49)” 하셨습니다. 곧 그들은 기록된 말씀을 따라 이 같이 주장 한 것입니다. 그 근거가 말씀이기 때문에 저도 정말 그렇게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때 베드로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베드로는 예수께서 너는 베드로라 내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 하셨습니다(마태복음 16:18). 교회의 반석인 베드로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6-12)

6절을 봅시다.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였습니다. 사도와 장도들 가운데서도 많은 변론과 논쟁이 있었습니다. 쉽게 결론나지 않았습니다.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였습니다(7). 다같이 7절 하반 절에서 9절을 읽어봅시다.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베드로는 먼저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 이방인들에게 행하신 일, 곧 고넬료 사건을 언급하며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부어 주셨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또 이방인들도 믿음을 보시고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다는 점에서 그들이나 우리나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다고 하였습니다.

10절을 봅시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 자신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 하느냐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율법을 우리 조상과 우리도 메지 못하던 멍에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멍에소의 목에 얹어 수레나 쟁기를 끌게 하는 막대입니다. 상대의 행동을 구속하거나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입니다. 곧 베드로는 유대인들도 율법을 지키는 것이 멍에를 메는 것처럼 버겁고, 또 실제로 다 지키지도 못함을 말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가장 먼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제자입니다(마태복음 16:16). 예수께서 그를 교회의 반석으로 세우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늘로 오르신 후, 초대교회를 이끌어오는 예루살렘 교회의 리더 입니다. 그는 유대인인 자신부터 모세의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인 우리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율법의 무거운 멍에를 이방인 제자들에게 지우려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양심불량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무엇이라 말했습니까? 다 같이 11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베드로는 자신을 포함하여 우리 유대인들이 구원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주 예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처럼 이방인들도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음을 자신은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이 같은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자기 자신부터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그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율법을 지켜 행할 수 없는 죄인으로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자신만큼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었습니다(마태복음 26:35, 마가복음 14:31). 그러나 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에게 잡혀가시고 자기도 잡혀 죽을 위기에 처하자 주의 이름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세 번째에는 저주하며 부인하였습니다(마가복음 14:71). 이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울었습니다(마가복음 14:72). 그는 실제로 자신이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없는 죄인임을 깊이 발견하고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신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죽으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자신이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살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베드로전서 2:24).

우리가 나 자신이 과거에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이었고 또 지금도 어떠한지 하나님 앞에서 신앙양심을 따라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면, 적어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처럼 할례와 율법을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고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입니다(로마서 3:20). 바울 사도는 로마서 323,24절에서 이렇게 증거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우리가 죄 사함과 구원을 얻고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된 것은 우리의 어떤 선한 행위나 공로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된 것입니다.

대개 누구든지 처음 예수님을 믿기 시작할 때는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충만합니다. 그 은혜에 감사함으로 점점 주님과 주의 역사를 위해 헌신을 많이 하며 살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드리는 헌신에 비해서 좀 덜 헌신하는 것 같은 사람을 볼 때 저 사람은 어째서 저런가!’하며 마음에서부터 비난하고 또 요구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마땅하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또 내가 주께 드리는 헌신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을 때 나도 모르게 손해의식이 들고 억울한 심정이 듭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든지 처음이나 나중이나, 양이었을 때나 목자가 되었을 때에나, 언제나 동일하게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주께 헌신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도, 주 앞에 거룩하게 되고 죄 지을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도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누가 되었든지 우리 각 사람이 베드로와 같이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다는 이 믿음을 확실히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저도 한때 제가 나름 충성되고, 또 심성이 착하기 때문에 주께서 저를 구원해 주셨다는 교만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자가 되고, 또 아버지가 되고 보니 저란 사람이 저 외에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고, 저의 자녀들도 사랑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제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존심을 꺾지 못하고 감정과 혈기대로 행하다가 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에게도 주 예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음을 생각할 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가 자기를 주장하고 싶을 그때 주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믿는 믿음으로 항상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을 들은 사도와 장로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12절 상반 절을 봅시다. 온 무리가 가만히 있었습니다. 모인 모든 사람들이 다 잠잠해졌습니다. 베드로를 통해 그들의 신앙 양심이 깨어났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믿음의 사람의 말에는 이 같이 힘이 있습니다. 이 때 바나바와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더욱 힘내어 보고하였고 다들 이를 경청하였습니다(12).

이로 볼 때 오늘 본문에 나온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이방인 구원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것 같지만 동시에 유대인의 구원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이런 주장을 펼친 것을 보면 아직도 예루살렘 교회 안에는 할례와 율법 전통을 구원의 조건으로 여기는 뿌리 깊은 유대인 우월주의 생각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문제가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 선교를 통해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면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교회의 실제 문제를 드러내셨습니다. 이때 예루살렘 교회의 리더로서 베드로가 말씀과 성령에 깨어 있으므로 주 예수의 은혜를 붙들고 믿음을 분명히 했고, 다른 사도와 장도들도 유대인 중심적인 생각을 극복하고 하나님 앞에서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볼 것은 율법을 지켜야 마땅하다 주장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교회 내부의 실제 문제가 전면에 드러나게 하시고, 이 문제가 실제 주 예수의 은혜를 붙들고 믿는 믿음의 사람을 통해 해결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믿음이 연약하고 성숙하지 못한 사람으로 인해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끊임없이 잡음이 있고 또 갈등이 생깁니다. 이런 문제가 있을 때, 문제가 더 커질 것이 두려워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하거나, 아니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의 입을 막아버리거나, 또는 이를 쉬쉬하고 어떻게든 덮는 쪽으로 행하기 쉽습니다. 저 또한 교회 안에서 문제가 일어나고 또 싸우는 일은 되도록 없어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되도록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해결되고 나아지는 쪽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우고 더 어렵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볼 때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분량을 따라 각 사람을 어떤 모양으로든 주의 역사에 쓰십니다. 이렇게도 쓰시고 저렇게도 쓰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을 쓰셨습니다. 그 문제를 통해 하나님은 복음의 진리를 더욱 확실하게 드러내시고 믿음의 공동체를 더 견고하게 건강하게 세워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계속 깨어서 주 앞에서 해야 할 일은 매순간 나 자신부터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은 그 사실을 확실히 하고 이를 견고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누구라도 베드로처럼 주의 몸된 교회를 세워나가는 반석으로 귀하게 쓰십니다. 제가 어떤 순간에도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믿는 믿음을 분명히 하여 주의 몸된 교회를 세워나가는 주의 일에 베드로와 같이 반석과 같이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음을 믿노라는 베드로의 이 고백으로 여러 논쟁으로 치닫던 모임이 잠잠해 졌습니다. 이에 야고보가 어떤 의견을 제시하였습니까?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13-35)

13,14절을 봅시다.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은 시므온, 곧 베드로가 말하였는데 선지자들의 말씀도 베드로가 한 말과 일치하도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일치합니까? 16절에서 18절을 봅시다.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야고보는 어떤 의견을 제시합니까? 다같이 19-21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야고보도 이방인에게 할례를 받게 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은 그들은 괴롭게 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도 최소한 지킬 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상의 더러운 것, 음행, 목매어 죽인 것, 피를 멀리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우상에게 드려진 더러운 제물은 곧 우상 숭배를 말합니다. 이는 더러운 탐심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또 아무하고나 관계를 맺는 음행 또한 더러운 탐심에서 오는 것입니다.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마시는 것은 생명을 함부로 여기는 일로 이 또한 탐심을 따라 행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이런 것들은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였습니다. 택함을 받은 사람은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였습니다(22). 또한 이들 편에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편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23-27절을 봅시다.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히고 마음을 혼란하게 하기로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29절을 봅시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이방인들은 할례를 받거나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고, 다만 요긴한 것들인 이 네 가지만 멀리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30), 무리가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였습니다(31). 그들은 율법의 무거운 멍에와 짐을 벗어나 다시 주 예수의 은혜로 말미암는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듯이 그들은 흔들리던 신앙을 바로 잡고 복음 진리 위에 굳게 서게 되었습니다. 더욱 더 세계 선교를 위하여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32절을 봅시다.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이므로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얼마 동안 지낸 뒤에 형제들에게서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33). 이 일로 큰 힘과 위로를 얻은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는 일에 더욱 힘을 썼습니다(35).

오늘 말씀은 구원은 오직 주 예수님의 은혜로 됨을 증거 합니다. 그런데 오래되었든 오래되지 않았든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실제로 주 예수의 은혜를 놓치기가 쉬운 것 같습니다. 할례같이 뭔가 눈에 보이는 율법적인 행위를 통해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얻고자 합니다. 그런가 하면 그런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로 늘 속이 시끄럽고 어둡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런 신앙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볼 때 베드로와 같이 주의 말씀으로 돌아가 하나님 앞에서 신앙양심을 따라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 주 예수의 은혜가 그 사람의 마음에 늘 살아 있게 됩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그 마음에 늘 살아 있는 그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주의 말씀을 지켜 행할 힘과 용기와 능력을 덧입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언제나 성경말씀으로 돌아가 누구든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는 믿음을 확정하여, 동역자들과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주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사도행전 15:11)

 

2018-2019 사도행전 12강 메시지 1501-1535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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