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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19.01.24 19:50

2018-2019년 사도행전 5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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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9 사도행전 5강                                                                                                                  김요한

사도행전 6:1-7:60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행전 6:5)

초대교회 초기에는 사도들, 예수께서 부르신 사도들이 교회의 중심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점점 커지자 사도들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내부에서 불평불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오로지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힘쓰고, 여러 섬기는 일들은 다른 사람들이 맡기로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일을 맡게 되었습니까?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 맡게 되었습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6:1-7)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였습니다(1). 이런 일이 생기자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하였습니다(2). 여기서의 접대는 섬기는 일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커지니 여러 섬길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우리도 적은 수이지만 모임에서 할 일이 제법 많습니다. 주일 점심 식사 후 설거지는 누가 하느냐, 누구는 설거지에서 왜 빠지느냐 이런 논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라 사모님은 아무 말 없이 식사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이 자체가 역사의 기초가 됨을 봅니다.

열두 사도는 이런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진단하였습니다. 모든 일에 있어 그 생기는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결방안도 달라집니다. 열두 사도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섬기는 일을 일삼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진단하였습니다. 사도들은 말씀 중심이었습니다. 보이는 증상만으로 뭔가를 해결하려 하면 근본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은 자신들이 말씀을 제처 놓고 일에만 매인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했습니다. 3절과 4절을 봅시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하였습니다. 이를 듣고 초대교회 사람들이 이제 사도들은 일을 하지 않으려 하나 보다 라고 생각했습니까? 5절을 봅시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였습니다. 이로 볼 때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떤 일이 있으면 이를 말씀 중심으로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택하였습니다.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였습니다(5).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습니다(6). 이 분들이 초대교회 집사님들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였습니다(7).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게 되었습니까? 오늘 말씀을 볼 때 믿음과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 일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무슨 일을 할 때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을 뽑습니다. ‘서빙 잘하는 사람. 선착순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오늘 본문에서는 섬기는 일을 누가 하였는지를 자세히 밝힙니다.

먼저 너희 가운데서택하였습니다. 믿음의 공동체 내에서, 서로 잘 아는 사람들,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택하였습니다. 무슨 일을 하려면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혜란 책에 있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고, ‘, 이게 이렇게 되어 있으니, 이를 이렇게 하면 이 문제가 이렇게 해결 되겠구나하는 것은 아는 것입니다. 지혜를 성령으로부터 옵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은 성령으로부터 오는 지혜로 인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압니다.

그래서 이들은 칭찬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공동체 내에서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같이 일을 하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가서 인정되는 사람이 있고, 무슨 일을 하는 것 마다 사고치고, 일을 흩으려뜨리고, 핑계대고, 다른 사람에게 덤터기 씌우고 하는 사람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저 사람에게는 일을 맡기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이 사람들은 믿음의 공동체 내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수가 일곱이었습니다. “일곱은 참 적으면서도 그 만 명이상의 초대교회 성도들을 섬기기에 충분한 수였습니다. 사람이 많아서 무슨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사사기 7:1-7). 일을 할 때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당백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으로 그 수많은 불평불만을 다 잠재우고, 믿음의 공동체가 실제로 잘 돌오가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였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민주적이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섬기는 문제로 원망이 있었을 때 교회 공동체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택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일 잘하는 사람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 14,5절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어떤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집니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돈 문제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무슨 일에나 돈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믿음의 공동체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종의 기업이 될 것입니다. 기업도 돈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섬기는 일에도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하면 믿음과 성령의 열매가 맺혀집니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이제 체계가 갖추어졌고, 안팎에 여러 일들이 있는 중에서도 초대교회가 안정이 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이 잡혀 갔습니다. 그런데 심문 받는 스데반을 사람들이 주목하여 보니 그의 얼굴이 어떠했습니까?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더라(6:8-15)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 중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 사람들 사이에 행하였습니다(8). 이른 바 자유민들, 노예가 아닌 사람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하였습니다(9). 논쟁이란 누구 말이 옳으냐 서로 다투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였습니다(10).

논쟁이 붙었는데 그 논쟁에서 지면 그참 입장이 곤란하게 됩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들과 논쟁하지 말하야 합니다. 목자가 양과의 논쟁에서 이기면 양이 마음에서 어찌하든지 목자를 이겨보려고 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겠는데 속에서 분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목자가 논쟁에서 지면 더 심각해집니다. 그래서 논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스데반과 논쟁에서 스데반을 당하지 못한 이 사람들은 사람들을 매수하여,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말하게 하였습니다(11). 또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스데반을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12), 거짓 증인들을 세워,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하게 하였습니다(13,14). 성전과 율법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오던 유대인들이 스데반이 이 성전과 율법 중심의 신앙을 흐트러뜨린다고 하였습니다.

15절을 봅시다. 이렇게 심문이 벌어지고 있는 공회에서 사람들이 다 스데반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천사의 얼굴을 본 사람이 있습니까? 아기들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얼굴. 얼이 그대로 나타난 모습이 얼굴입니다. 스데반은 일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이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뭐라고 뭐라고 해도 믿음의 중심이 있어서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그러면 스데반은 무엇을 믿었습니까?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7:1-60)

대제사장이 이르되 스데반에게 이것이 사실이냐물었습니다. 즉 스데반이 거룩한 곳 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말했다는 것이 사실인지 심문하였습니다(1).

이에 대해 스데반이 창세기로부터 말씀에 기초하여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메시지 중 가장 긴 메시지입니다.

요약하면 스데반의 메시지는 성전과 율법에 대한 것입니다. 스데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요셉과 야곱,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자신들에게 준, 곧 율법을 준 모세, 그리고 성전에 대해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2절을 봅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메소보다미아에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유대 땅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메소보다니아에서 하란으로, 하란에서 그들이 지금 사는 유대 땅으로 그를 옮기셨습니다(3,4). 다만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5-7). 스데반은 예배드리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중요함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는데, 아브라함이 이삭을,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이스라엘 열두 조상을 낳았습니다(8). 그런데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였고,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계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게 되었습니다(9-17). 믿음의 조상들이 같은 믿음의 조상 요셉을 시기하였음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증거하였습니다. 애굽 왕이 이스라엘 조상들을 괴롭게 할 때 모세가 났습니다(18-20). 모세가 났을 때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바로의 딸의 아들이 되어 사십년 간 당시 최선진국 애굽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이 능하였습니다(20-22). 그래서 사십이 되었을 때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구해보고자 하였지만 그는 오히려 그들로 인해 애굽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23-29).

그리고 또 사십년이 흘러 그의 나이 팔십 세에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셨습니다(29-32). 사십 년 동안 그는 무엇을 하였을까요? 사람이 무엇인가 옳은 일을 하려 했는데, 그 일로 인해 상처를 받으면 그만큼의 세월이 또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자신이 배운 학문과 지식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 사람을 선한 마음으로 도우려고 해서 그것이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사십 년이 흘러 그가 팔십 세가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불꽃 가운데서 그를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애굽에 보내리라 하셨습니다(33,34).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였습니다(35).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내셨습니다(35).

그리고 팔십 세에서 일백 이십 세까지 모세는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끊임없이 거스르는 이스라엘과 싸워야 했습니다(36-38). 39절을 봅시다.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라 하였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40-43).

그래서 광야에서 증거의 장막이 있었고, 여호수아와 다윗을 거쳐 솔로몬이 하나님의 처소 성전을 지었습니다(44-47).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십니다(48). 주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49,50).

그리고 스데반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51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창세기로부터 시작한 메시지를 전하며 스데반의 결론은 지금 이 사람들이 목이 곧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지를 전하면 목을 딱 꼿꼿이 하며 그건 아닌데요하였습니다.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하여, 자기 것을 찣어내지 못하여서, 자기 주장을 계속하였습니다. 요즈음 시대를 나타내는 말 중에 당신이 옳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메시지는 정반대입니다.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스데반의 메시지입니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전하였습니다(52,53). 이는 창세기 3장 이후로 그때나 당시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같을 것입니다.

그들이 스데반의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렸습니다(54).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찔려서 사도들에게 우리가 어찌할꼬하였습니다(2:37). 그런데 이번에 이 사람들은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갈았습니다(54). 죽이겠다는 뜻입니다.

이에 스데반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55절을 봅시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렀습니다. 스데반에게는 땅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늘이 있었습니다. 그가 땅에서 핍박 받고 별 소리를 다 들었을 때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를 가는 소리를 들었을 때,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주목할 바가 있었습니다.

무엇을 주목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55). 그리고 말하였습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56).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누가 되었든지 말씀을 따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 교회 안이든 밖이든 이런 저런 별 이야기들을 듣고 별 취급을 다 당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그 사람에게 보이느냐가 중요합니다.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스데반이 자신이 죽을 것 같은 현장에서 죽음의 현장에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스데반이 하는 말을 듣지 않고자 귀를 막고는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쳤습니다(57,58).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58). 이 사람이 나중에 바울이 됩니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쳤습니다(59).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하였습니다(59). 스데반에게는 주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그 예수님께 자신의 주님께 그의 영혼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이 말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스데반의 기도가 되었습니다(누가복음 23:34). 그리고 자니라.” 그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이 아기들이 자는 듯이 평안이 죽었습니다(60).

스데반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령을 좇아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보고 믿었습니다. 히브리서 12장은 2절은 우리에게 전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가 성경을 읽고 토론하고 배우고 소감을 쓰며 투쟁하는 이유는 내가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스스로 돌아보기 위함일 것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을 보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함일 것입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로써 현장에 있던 사울의 마음에 금이 갔습니다.

당신이 옳다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고 사도행전에 나오는 교회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까요? 그런데 한국의 선교사님들이 어떻게 미국, 독일, 영국의 형제자매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까요? 그들이 말하기를 한국 선교사님이 말씀대로 사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 선교사님들은 풍족하지 않지만 성경지식도 그렇게 뛰어나지 못하지만, 가정을 지키고 말씀으로 말씀역사를 섬기는 그 모습이 좋아서 자신들도 말씀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자신들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들도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만났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영접하고 믿어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으로 언제 어디서나 주의 역사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사도행전 6:5)

 

2018-2019년 사도행전 5강 메시지 0601-0760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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