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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가을수양회 2강 메시지                                                                                                          이동진

로마서 8:12-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로마서 8:35)

로마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그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하였습니다. 누구라도 자신을 누구의 종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는 자신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확실히 밝혔습니다. 그는 자신이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임을 부끄럽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믿었습니다(로마서 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습니다(로마서 1:4).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글로 적혀진 율법조문, 의문(儀文)의 묵은 것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죽을 몸도 살리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전합니까?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12-18)

먼저 12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바울은 그러므로우리가 빚진 자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러므로는 앞에서 읽은 개회 및 1강 말씀(7:1-18:11)을 받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빚진 자”(또는 채무자 또는 a person who have an obligation)특정인에게 일정한 빚을 갚아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국어사전)을 뜻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일정한 빚을 진 자이며, 또 누구에게 이 빚을 졌습니까?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24) 하며, 절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건져내짐, 곧 구원을 맛보게(베드로전서 1:9,2:3) 하시고,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로마서 8:11)하시며, 하나님 나라 온전한 소망을 가지게 하신 점에서, 더군다나 우리가 다 예수를 죽이는데 시기한 대제사장, 육신대로 쾌락을 좇은 헤롯, 진리보다 실리를 따른 빌라도, 생각 없이 행하는 군병, 예수께서 잡히자 도망간 제자, 내 마음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핍박한 자 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이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우리가 빚진 자이며,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께 갚아야 될 빚(obligation)이 있는 자들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우리가 빚진 자임을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우리가 알다시피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로마서 6:23). 이 삯은 황소와 염소의 피로 갚을 수 없습니다(히브리서 10:4).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가 다 용서함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몸으로 살게 됩니다. 이 빚은 우리 인생을 통째로 드려도 갚지 못할 만큼 큰 빚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빚진 자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한가를 전합니다. 12절 하반 절과 13절을 봅시다.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이 말씀을 읽었을 때 일단 저는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언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로마서 3:10)며 의롭게 살려고 하는 사람 의지를 팍 꺾어 놓았으면서, 그러면서도,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하시며 저를 옥죄시다니요.’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아무런 위로도 없는 상태에서 이 말을 들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막혀 메시지를 몇 일동안 손 놓았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다시 읽어보니, 몸의 행실을 죽이되, “영으로써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그리고 뭔가가 기뻤습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나의 정신력, 스피릿, 나의 성실과 의지로써 몸의 행실을 억누르는 것일까요? 다시 읽어보니까, 여기서의 영(the Spirit)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것은, 내 속에 육체의 소욕(sinful nature)에 따라 육신대로 살고자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영으로 살고자하는 것이 서로 싸우고 있는데(갈라디아서 5:17), 제 자신이 그리스도의 영의 편을 좀 더 응원 하여,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 따라 기도하면, 저로서는 할 수 없는 일, 몸의 행실을 죽이는 일을 능히 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그 결과가 확실히 다름을 말씀에 약속되어 있습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고, 그렇지 않고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람이 언제 살아있음을 느낍니까? 제 경우를 돌아보면 하루 종일 육신대로 좋아하는 만화 영화보고 게임할 때 그 순간은 재밌지만, 살아도 내가 살아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고롭지만, 말씀 따라 형제를 사랑하려 해보고 결국은 용서의 기쁨을 알고, 말씀에서 내게 주신 한 달란트를 발견해내고 감사하고, 말씀대로 물고기 낚는 어부에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심을 볼 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은 분명한데, 왜 이렇게 우리 속에서는 육신대로 살고자 하는 것과 영으로써 살고자 하는 것이 맨날 싸우거나, 또는 항상 육신대로 살고자 하는 것에 질까요? “죽이면 살리니하신 말씀으로 볼 때, 우리 죽을 몸은 고난도 싫고, 이걸 이루실 하나님을 우리 육신은 그토록 믿기 힘든가봅니다.

그러면 내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셔야 몸의 행실을 죽이든 말든 하겠는데, 각 사람이 자신 속에 그의 영이 거하심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는 거하고 있을까 하는 그런 질문이 듭니다. 고린도전서 123절 하반절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하십니다. “예수를 주시라 고백하는 사람은 성령, 곧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전합니다. 따라서 내 자신이 스스로 생각했을 때, 예수가 나의 주님이시라면, “하나님의 영이 내 속에 있는 것이고, 이 고백이 나오기 까지 주의 영께서 도우신 것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14절과 15절을 봅시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입니다. 곧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입니다. 제가 아는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1:1,15:39) 한 분이십니다. 또한 이 말씀을 보니, 예수님도 사역 초반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하셨습니다(마가복음 3:35).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 딸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심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을, 심판받을까 무서워서 믿던 겨우 그 정도 관계성에서, 하나님의 아들, 딸의 신분이 되는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수 있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렇다는 것을 누가 증명하는지 다음 절은 말합니다. 16절과 17절을 보겠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16,17)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십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것을 증언하실 수도 있습니다. 성령은 마지막 날까지 우리를 떠나지 않고(에베소서 4:30), 우리가 육신대로 살았는지,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서 살았는지, 본대로 증언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상속자는 상속 개시 후에 부모의 재산이나 기타의 것을 물려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면 곧 하나님의 상속자, 곧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무엇을 상속받습니까? “영광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 합니다. 여전히 육신에 있으면서,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과정이 고난입니다. 한방에 싹 나았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육신에 있어 죄의 법을 섬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고민입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는 18절을 말씀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18절을 봅시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바울은 생각하였습니다. 고난? 까짓것 받으면 되지, 나는 할 수 있어! 하다가 제풀에 지치거나 고난 받기를 거부하는 쪽으로 가는, 생각 없는 바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현재의 고난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대해서 생각하였습니다. 그 생각의 결론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이 좋다는 것입니다.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이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543, 44절 상반절이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하나님께서 우리 죽을 몸을 살리시는 그 몸은 신령한 몸입니다. , 죄의 법에 질 수 밖에 없는 몸에서 죄의 법에 지지 않는 몸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바울 선배처럼, “생각을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정말 무엇을 바라는지, 그것을 상속받기 위해 지금 여기서 고난 받는 것으로 과연 사거나 자격을 얻을 수 있기는 한 것인지. 이를 피조물도 고대하고 있습니다. 19절부터 봅시다.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19-25)

19절을 봅시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피조물은 하나님에 의하여 만들어진 모든 것을 뜻하며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과 식물들, 미생물, 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대한다는 것은 몹시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몹시 기다릴까요? 20절 상반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에서 읽을 수 있듯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허무한데 굴복한다는 것은 워낙 존재 목적이 아닌 것에 낭비되는 것입니다. 워낙 그 존재의 의미가 있었을 이미 멸종되었거나 멸종 위기의 동물들도 허무한 데 굴복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난다는 것이 뭐 길래 그렇게 기다리는 걸까요? 21절을 봅시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21)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피조물도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입니다. , 피조물이 고대하는 이유는, 죄의 법에 지지 않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때, 죄에서 자유함을 얻을 때, 피조물들도 그 자유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허무한데 굴복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께서 워낙 창조하신 그 질서 대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또한, 피조물들이 다스리는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워낙 사람이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도록(창세기 1:26) 되었었기 때문입니다.

이어 22절과 23절에는 피조물도 우리도 탄식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리라실제로 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쓱 훑어만 봐도 달란트, 하나님께서 각 개인에게 부여하신 재능이나 능력을 허비하고 있는 안타까운 사람이 많습니다. 한명도 예외 없이,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인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우리 까지도 속으로 탄식한다 고 하니, 한숨을 쉬며 탄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바울은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속량의 뜻은 몸값을 받고 죄인을 풀어 자유인이 되게 함인데, 앞에서 읽은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와 같습니다. 우리 이 죽을 몸이 다시 살 것입니다.

이어 24절과 25절은, 모든 피조물도 고대하듯, 몸의 속량을 기다리는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우리가 보이는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까? 보이지 않는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까?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과 그 용서의 사랑으로 우리로 죄에서 해방됨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를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 또한 온전한 소망이 있게 하셨다는 점에서, 우리는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구원을 맛보았는데, 얻었는데, 놓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로마서 825절 말씀은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합니다. 과연 내가 잘 참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데, 26절부터 30절은 이것을 내 혼자 하는 게 아님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친히 간구하시느니라(26-30)

먼저 2627절을 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우리가 참음으로 기다림과 동시에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합니다. 우리는 참다 참다 폭발하기도 하고, 참긴 참는데 어떻게 참아야 될지, 어떻게 기도해야할 바를 모르는데,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릴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하니, 감사합니다.

28절을 봅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또한, 하나님께서 선하게 이끌어가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들으니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형들의 악을 통하여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생각했을 때, 악한 사람이나 환경을 탓하기보다 내와 하나님 간이 관계가 더 중요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니 성령님이 친히 간구하여 주시고, 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하니, 너무나 큰 특권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또 왜 이렇게 좋은 특권을 잘 써먹지 못하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 다음 절은 더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은 미리 정하신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29절과 30절을 봅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하나님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어, 택함 받은 자들을 미리 정하셨고, 이는 예수님으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셨습니다. 이 말은 곧, 우리로 그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아, 둘째, 셋째, 넷째가 되게 하시고 구원하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미리 정하셨다고 하니, 듣기에 따라서는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금 수저 흙 수저처럼 하나님께서 미리 다 정해놓으셨다면 마음이 불괘해지기도 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자인지 아닌지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따른 것이라 사람이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내 자신이 택함 받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각 사람이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를 믿는 사람은 성령께서 친히 기도하시고,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시고, 또 맏아들 예수에 이어 하나님께 둘째, 셋째로 택함 받았으니, 능히 참음으로 기다릴 수 있습니다.

참음으로 기다리는 것은 죽을 때까지 우리가 소극적(Passive)로 해야 될 것이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적극적(Active)으로 해야할 일은 예수님의 어린 양을 먹이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요한복음 21:15, 베드로전서 2:5, 마가복음 16:15)

이렇게 실제로 살아가면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일 것입니다. 승리하려면 무엇보다 어떤 것에도 지지 않아야 합니다. 강해야 할 것입니다. 그 강함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31절부터 보겠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31-39)

31절을 봅시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우리에게 언제나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살려고 하면 할 수록 더 그렇습니다(마태복음 10:22). 그래서 두렵습니다. 오히려 역풍을 맞아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까?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는가 하십니다.

32절을 봅시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와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냐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33절과 34절을 봅시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아무도 우리를 고발하거나 정죄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며,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가 예수님인데,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나를 포함하여 그 누구를 정죄를 하지 않으시는데, 제가 그 누구를 정죄할 수 있으며, 또 아무도 나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제가 너무나 판단과 정죄를 많이 하고 살아서 그런지, 오히려 그렇게 하는 제가 정죄감에 많이 시달려왔고,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시달립니다(마태복음 7:2). 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해하거나, 일방적으로 이상한 사람 취급하면, 기분이 팍 상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누가 정죄하리요”(34) 이 말씀이 감사하고 의지가 됩니다.

아무도 우릴 대적하지 못하며, 우리가 고발, 정죄에 시달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이긴다고 합니까? 먼저 35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이리요!”하며,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있게 말합니다. 여기서 그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끊으리요.” 라고 표현한 것을 봤을 때, 뭔가와 연결시키는 줄이나 통로 같은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저희가 매년 여름 수양회마다 알게모르게 저희 마음 속에 심겨지고 있는 십자가 용서의 사랑입니다.

매번 사람들의 악을 꼬집어 내서 싸우다가 저 스스로 죄에 얽매며 고통에 몸부림치던 저를 건져내신 것이 이 사랑입니다. ,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기 몸과 피를 십자가에서 흘리심으로 다시 연결된 하나님께로의 연결 통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로인해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하나님으로부터의 생명의 빛을 가렸던 것이 뻥 뚫리며 내리 쬐게 하셨습니다. 관계? 질서가 회복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517절에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연결된 사람을 새 것이라 표현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새 것이 되더라도,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을 읽고 예수님의 발걸음에 더 맞추면 맞출수록 우리의 속에서 나오는 탄식은, 어제 메시지의 제목과 같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일 것입니다.

바울 선배는 더더욱 선배인 다윗 선배의 시(시편 44:22)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고 또 인용하였습니다. 36절을 봅시다.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말씀을 곧이 곧대로 읽고, 또 계산이 빠른 분들은 복음서 뒷 부분과 목자님들의 삶을 보고 이미 눈치를 채셨겠지만, 예수님을 따라가는 우리의 삶은 고난을 굳이 사서 하는 삶입니다. 일찍부터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다윗(마가복음 12:35,36)도 그의 시에서,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시편 44:22) 하며, 고난에 대해 하나님께 토로하였습니다.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된다.” “종일 주를 위하여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는다하였습니다. “님이신 예수님 본인도 그리스도로 고백한 제자들에게 처음 하신 말씀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가복음 8:34) 였습니다.

이로 볼 때, 우리가 육신에 있는 한, 고난은 피할 수 없습니다. 둘 중 하나 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을 따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을 것인가, 육체를 따라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을 것인가.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의 끊을 수 없는 끈으로 묶여 있을 때 어떻게 됩니까? 37절을 다 같이 읽어봅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넉넉히 이긴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고난을 겨우 간신히 이겨나가는 아슬아슬한 삶이 아니라 넉넉히 이긴다고 하십니다. 이긴다는 것 무엇을 이긴다는 것입니까?

앞 절에서 읽은 말씀에 따르면,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데”(13) “넉넉히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끝임 없이 속에서 정죄하고 정죄받는 고통에서 넉넉히 자유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고, 넉넉히 원수를 용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과 의지로는 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신 할 때, 우리가 끊어지지 않고 넉넉히 이깁니다. 끊어지지 않으므로, 한번 이기고 끝이 아니라, 우리의 달려갈 길을 마칠 때까지 고난과 싸워 이겨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여러 고난과 환난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주의 사랑을 확신하였을 것입니다. 다윗의 이 믿음의 투쟁, 끝까지 참았음을 생각할 때 그 믿음이 엄청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이런 다윗, 베드로, 바울의 믿음의 투쟁을 성경으로 읽게 되어 우리가 붙들, 끊어지지 않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어 감사할 뿐입니다.

바울은 38절과 39절에서 다시 한번 선포합니다.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께 우리 모든 죄를 다 감당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영으로써 능히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 각 사람에게 확증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아멘!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로마서 8:35)

2018 가을수양회 2강 로마서 0812-0839 이동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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