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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018.09.15 10:22

2018년 마가복음 22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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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제 22 강                                                                                                                   김요한

마가복음 11:2712:17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마가복음 12:17)

워라밸라는 말이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찾아봤더니 ‘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뜻의 콩글리쉬라 합니다. 아무리 신의 직장에 다닌다 하더라도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경을 읽고 말씀 따라 살고자 하지만 직장 일과 말씀역사 둘 간에 균형을 이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직장을 그만두고 성경만 읽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고, 또 어떤 분은 말씀만 붙잡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직장을 다녀야 하지 않느냐 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하십니다. 예수께서 어떻게 이 말씀을 하시게 되었습니까? 먼저 당시에 성경대로 살고자 한다고 하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님 하시는 일을 보고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께 도대체 무슨 권위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알지 못하노라 하니 이르지 아니하리라(11:27-33)

27절부터 봅시다. “그들이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뿌리부터 말라버린 잎만 무성했던 무화과 나무를 보고는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갔습니다(27).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따져 물었습니다.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28) 이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무슨 일을 하려면 권위가 있어야 한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권위는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니까 도대체 누가 예수께서 권위를 주어서 성전에서 가르치고,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는지 따졌습니다. 예수께 있는 권위를 알려 하고자 하기 보다는 자신들에게 권위가 있는데 예수님이 그런 일을 하지 말라는 위협이 들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를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29절을 봅시다.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그런 질문을 한 이유를 드러내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30) 그러면 하늘로부터다, 사람으로부터다 대답하여야 하는데, 그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먼저 그들은 서로 의논하였습니다(31). 시험을 치게 되면 물음에 자신이 답을 하여야 하는데, 질문에 대해 옆 사람과 의논하면 그게 뭡니까? 특히나 그들은 어떻게 대답하여야 하는지에 자신들이 어떻게 될까봐 그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서로 의논하여 이르기를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하늘로부터로다 라고 하는 것도 안 되고(31),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렇게도 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32). 그래서 서로 의논한 끝에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하였습니다(33). 이전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물으셨을 때도 그들이 잠잠하였습니다(마가복음 3:4). 마가복음은 예수께서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보시고 탄식하시고 노하셨다고 하였습니다(마가복음 3:5). 그들이 몰라서가 아니라, 이렇게 대답하면 이렇게 될 것 같고, 저렇게 대답하면 저렇게 될 것 같아서 차라리 모르겠다고 하자고 서로 의논해서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하셨습니다(33). 완악한 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완악한 자에 대해서는 예수께서 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받고자 투쟁하는 자에게는 주님께서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그들을 포기하셨습니까?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또 비유로 말씀 하십니다. 완악한 자에게 주시는 비유입니다.

 

상속자니 죽이자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12:1-12)

예수께서 이 모르겠다하는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1).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1) 그야말로 풀 옵션으로 포도원을 만들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습니다(1).

그래서 세를 받을 때가 되어 주인이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냈습니다(2). 우리가 양산에서 세를 내고 건물 3층을 쓰고 있습니다. 매달 25일에 일정 월세를 냅니다. 그런데 본문의 농부는 세받으러 온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습니다(3). 세를 내지 않으려고 종을 심히 때려서 보냈습니다.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습니다(4).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였습니다. 이는 종들은 곧 구약의 선지자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수많은 선지자들을 이처럼 때리고 능욕하고 죽였습니다. 우리가 예레미야 선지자도 옥에 갇혔고, 이사야는 통나무 속에 넣어져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포기치 않으시고 한 사람 남은 그가 사랑하는 아들을 최후로 보내며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하였습니다. 이는 농부와 주인의 관계를 아들을 보내어 새롭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농부들이 서로 말하였습니다. “이는 상속자니그들은 그가 주인의 아들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였습니까?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하였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니, 이 아들을 죽이면 포도원이 자기들 것이 될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서로 의논하여 그 하나 밖에 없는 주인의 아들을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습니다(8).

그러면 그 포도원이 농부들의 것이 되었습니까? 9절을 봅시다.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아들을 죽인다고 해서 주인이 죽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다고 해서 하나님이 죽임 당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계속 계시는, 스스로 계십니다.

그들이 그처럼 버린 돌은 모퉁이의 머릿돌이 될 것입니다(10). 이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하셨습니다(11). 그들이 예수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았습니다(12). 그렇게 알면 회개하고 주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였으면 좋았을텐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제자들처럼 예수님이 자기들 생각하고 다르니, 지금부터라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가고자 하였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잡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또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갔습니다(12).

이 비유를 볼 때 농부가 포도원을 세로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세받으러 온 종들을 죽이고 하나 밖에 없는 상속자를 죽인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욕심입니다. 그들도 알았습니다. 풀옵션을 갖춘 포도원이 자기들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세 받으러 온 종들, 상속자를 죽이면 포도원이 자기들 것이 될 것으로 알고 욕심을 부렸습니다. 그렇다고 욕심을 부린다고 해서 그 포도원이 자기들 것이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욕심 부려 봐야 헛것입니다.

이렇게 알아들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없이 하고자 하였습니다. 사람의 그 완악함은 참 변치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회개는 나의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요. 또 회개는 자신의 욕심을 버리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고자 트집을 잡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13-17)

13절을 봅시다. 그들이 예수님의 비유를 알아듣고는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예수께 보냈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께 와서 말하였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그러니 있는 그대로 제가 묻는 질문에 있는 그대로 답해주세요 하였습니다.

그가 예수께 무슨 질문을 하였습니까?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14) 가이사는 로마 황제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들이 세금을 내면 가이사가 세금을 관리했습니다. 로마가 수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식민지 백성을 괴롭히는데 썼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인들은 고민이었습니다.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 세금을 내지 않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세금을 내지 않으면 수도와 같은 공공재는 누가 관리하게 되는지? 문제는 세금을 가이사가 관리하니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자신들의 왕이 관리하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어떤 사람들은 가이사에게 세금 내지 말자 하며 반란을 일으켰다가 로마 군대에게 제압당하기도 하였습니다(마가복음 15:7).

이들이 또 예수님을 다그쳤습니다.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15). 우리가 알다시피 당시 유대인들은 세리를 매국노 취급하였습니다. 우리가 바치는 세금이 독재하는데 쓰인다면 세금을 내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들이 그런 고민으로 물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슨 트집 잡으려고 묻는다는 것을 예수께서 아셨습니다. 만약 예수께서 세금을 내라 하신다면, 그들은 그봐, 너희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예수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라 한다하여 예수님과 백성들을 이간질 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세금을 내지 말라 하신다면, 그야말로 예수님을 반역죄로 로마 당국에 고발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예수님을 이같이 빌라도에게 거짓으로 고발하였습니다(누가복음 23:2).

예수께서 그들의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하셨습니다(15). 그들이 가져왔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물으셨습니다. 그들이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하였습니다(16).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겼습니다(17). 물은 사람들도 깜짝 놀랄 말씀을 예수께서 하셨습니다. “바치라하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하셨습니다. 세금은 세금대로 내야하고, 성전세도 내야하고, 십일조도 바치라 하셨습니다.

그들은 세금도 내려하지 않고, 성전 세도, 십일조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내기는 내되 겉으로 흉내만 내었습니다. 하나님께 양을 바치면서 가장 좋은 일 년 된 수컷으로 하지 않고, 다리 저는 양을 드렸습니다(말라기 1:8). 되도록 세리들을 만나지 않고 피하였습니다. 이들의 마음에는 헌신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는 하지 않고, 수능이나 시험 날이 되어 문제지를 앞에 두고, ‘꼭 시험 제도가 필요한가하는 고민을 합니다.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제가 대학생이었을 때는 공무원이 되면 독재정권의 앞잡이가 되는 것 같고, 기업에 취직하면 외국자본을 들여와 사람들의 욕심을 이용해서 돈 벌이하는 집단의 종이 되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었습니다. 이런 제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대학 3학년 때 수업 중에 들렸습니다. 각 자가 자기 할 일은 해야 된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우리가 제도에 핑계대고 공부하기 싫다하면 어떻게 될까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세상이 어떻다 하더라도, 사람은 다치고 병이 납니다. 이 다치고 병든 사람은 고쳐야 합니다. 의사가 고쳐야 합니다. 의사가 되려면 공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공부한 사람은 정치체제가 어떠하든지 사람 살리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나 자신이 실력을 갖추면 어떤 체제에서도 평가 받고 일할 수 있을까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그렇고, 모세도 그렇고, 가나안 땅이든, 애굽 땅이든 어디에 있든지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리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하나님의 역사에 쓰실 수 있었습니다.

로마서 131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초대교회 당시 네로 같은 로마 황제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쓰셔서 악한 사람은 악한 대로 벌하고, 선한 사람은 선한 대로 보상하는 데 쓰십니다(로마서 13:3,4). 공연히 그에게 칼을 주지 아니하셨습니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 누가 교통질서를 잡고, 주폭은 누가 징계합니까?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하십니다(로마서 13:7).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헌신합니다. 자신의 마음과 몸을 다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합니다. 자기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어떻게 하실 것 같습니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때때로 무엇인가를 하여야 할 때 힘들어 화가 나기도 합니다. 어떤 하나님 믿고 전도하는 의사가 밤새도록 닥쳐오는 수많은 환자들을 혼자서 책임지고 돌보아야 할 때 힘들어서 화가 나기도 합니다. 이때 화를 벌컥 내자, 이를 본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은 이전에 예배에 초청한 형제였습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이..’ 하였습니다. 하나님 믿는다, 또 나아가 전도하는 일이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신이 없으면 할 수도 없는 일 같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힘을 다해 바쳐야 합니다. 어떤 형제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그 일은 그만 두고, 하루 종일 말씀 공부만 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공부는 하지 않고, 시험을 치는 당시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공부하는 학생으로서 해야 합니다. 어떤 체제에 있든지 하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시간을 잘라내고, 목숨 같은 돈을 헌금하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일대일 말씀공부를 위해 달려와야 합니다. 그것이 제사장이 해야 할 일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심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핑계 댈 수 없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우리 각 사람이 욕심을 회개하고 세상에서 해야 할 의무를 다 하며, 또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마가복음 12:17)

 

2018 마가복음 22강 메시지 1127-1217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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