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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018.09.08 10:38

2018년 마가복음 21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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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제 21 강 김요한

마가복음 11:1-25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마가복음 11:9)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이를 제대로 아는 것이 우리 믿음 생활의 기초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에는 관심이 없고, 예수님 믿고 내가 어떻게 되는지에만 관심이 있다면 생각의 방향이 거꾸로 된 것이지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성경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기록한 사람들이 목숨을 바치기까지 예수께서 누구신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마가복음 본문에서 예수님은 누구시며 또 어떤 분이라고 증거 합니까?

 

주가 쓰시겠다 하라(1-6)

1절을 봅시다. “그들이곧 예수님과 예수님과 함께 한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왔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죽임 당하실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이런 때에 예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셨습니다.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하셨습니다(2). 듣기에 따라서는 좀 뜬금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남의 나귀를 과연 그렇게 끌고 올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추가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주님이신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주의 말씀에 순종하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여야 하실 것도 아셨습니다. 그리고 또 사람들이 주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 기대하고 있음도 아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예언자 스가랴를 통해 전해진 말씀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스가랴 9:9) 나귀 본 적이 있나요? 볼 품 없는 말보다 작은 짐승입니다. 그 중에서도 나귀 새끼를 타십니다. 이는 겸손함의 표시입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왕으로 입성하시면서 이같이 겸손하게 입성하고자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가랴 말씀을 통해 사람들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시는 왕, 겸손하신 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듣고 선뜻 풀어줄 것입니다.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어 그것을 푸니(4),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하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였습니다(6).

제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가 6절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 산다 한다면 말씀에 먼저 귀를 기울이고 말씀대로 행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됩니다. 말하자면 나의 생각을 앞세우게 되면 어떻게 주의 일이 꼬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람 낚는 어부로 살려 한다면 먼저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주의 말씀대로 행할 때, 주의 말씀대로 됨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주의 말씀대로 행하는 제자들의 소망이 무엇이었습니까?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7-10)

그렇게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았습니다(7). 예수께서 그 위에 타셨습니다(7). 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자신들은 종으로 완전히 주님을 모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8),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였습니다(9,10).

그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찬송하는 것은 다윗의 나라가 이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예수님을 통해 회복 될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보았을까요? 말씀대로 나귀 새끼를 타시고 겸손하게 오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로마 황제, 백마가 끄는 마차를 타고 달리는 왕을 보았습니다. 왕을 모시는 많은 군대가 있었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저는 대통령이 자동차 타고 지나가는 것을 두 번 보았습니다. 어찌나 빨리 쌩 하고 가는지 자동차도 자세히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귀,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양 발이 땅에 닿았습니다. 누구라도 예수님께 말을 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대화가 가능했습니다.

우리가 부모님, 선생님, 직장 상사를 만나면 같이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너무 높은 곳에 계셔서 말을 서로 나눌 수 없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왕이신 나라는 다윗의 나라입니다. 그렇게 권세 있고, 많은 사람, 죽은 자도 살리시는 그 분께서 이처럼 나귀새끼를 타고 나와 가까이 그렇게 오시니 이는 참으로 찬송하실 이셨습니다. 더구나 이 분은 겸손하게 오실 뿐만 아니라 공의로 오십니다. 어느 한 쪽으로 편향된 분이 아니셨습니다.

이같이 나귀 새끼를 타면 다 왕이 되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하는 말에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누구라도 말씀대로 나귀 새끼를 타고 오면 왕이 될 수 있을까요? 그 자리에 앉아서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는 무화과를 보시고(11-14)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왕궁으로 가신 것이 아니라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11). 성전은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곳입니다. 또 우리 몸이 성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둘러보셨습니다. 확인하셨습니다(11).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셨습니다(11).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셨습니다(12). 그래서 뭔가가 있는가 살펴 보는 중에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습니다(13).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13). 열매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직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습니다(13).

이에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14절을 읽어봅시다.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이 구절을 읽는 우리도 놀라게 되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제자들이 얼마나 당혹스럽고 놀랐을까요. 잎사귀만 있고 열매가 없는 이 무화과 나무는 영원토록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저주하셨습니다. 모든 무화과에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무화과 나무,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그 나무,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없는 그 무화과 나무가 저주 받았습니다.

이는 주가 쓰시겠다하여 쓰임 받은 나귀 새끼와 대조됩니다. 잎사귀만 무성한 그 무화과 나무는 쓰일 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볼품 없이 보이는 그 나귀 새끼는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데 쓰임 받았습니다. “주가 쓰시겠다하였을 때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이는 주님의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모든 하나님의 일에 그러합니다. 쓰시겠다 하는데 쓸 수가 없고, 이 나무처럼 저주받게 됩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어떻게 예수께서 열매 없이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을까요?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15-19)

그리고 예수님과 제자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예수께서 또 다시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15). 그리고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15,16).

그리고 가르쳐 이르셨습니다. 17절을 봅시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성전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람들이 돈벌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곧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습니다. 강도는 무엇입니까? 댓가를 치르지 않고 자기 유익을 취하는 자들입니다. 성전에서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 할 그곳에서 자기들의 유익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성전을 원래의 의미대로 깨끗하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이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였습니다(18).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평생 성경을 읽고 말씀대로 행하고자 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아 정말 우리가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구나하며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일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장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무리가 다 예수님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18). 그리고 날이 저물매 예수님과 제자들이 성 밖으로 나갔습니다(19).

이 본문을 볼 때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까?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자기들의 유익을 더 이상 취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잎사귀만 있고 열매가 없는 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이들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회개하기 보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 때 실제 열매는 없고 뭔가 잎사귀만 자꾸 무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차라리 예수님이 없었으면 좋겠다. 내 뜻대로 해야지하게 되면 예수님을 죽이게 됩니다. 실제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하고 찬송하였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질렀습니다(마가복음 15:13,14). 실제 열매에는 관심이 없고, 겉으로 보이는 잎사귀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20-22)

그들이,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았습니다(20).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하였습니다(21). 베드로와 제자들이 얼마나 놀랍고 두렵고 염려가 되었을까요? 자기들도 그처럼 열매 없이 잎사귀만 무성하면 하루 밤에 그처럼 뿌리부터 완전히 말라버릴 수 있음을 그들이 자신들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죄와 투쟁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람 낚는 어부의 삶을 살고자 이 길을 가고 있지만 어느새 자꾸만 잎사귀, 무슨 타이틀들을 찾게 되면, 그러면서 실제 열매는 없다면 이처럼 몇 시간도 걸리지 않아 뿌리째 말라 버릴 수 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같이 22절을 읽어봅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을 믿으라하셨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 히브리서 연구발표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다 함은 우리 눈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함을 듣고 배웠습니다(히브리서 11:6). 모세는 그처럼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출애굽시키는데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주님으로 오시는 이로 찬송한 제자들이 들어야 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다음, 예수께서 고난 받고 죽임 당하고 다시 사실 것을 말씀하시자 왜 내가 주님을 따라 고난 받고 죽임 당하여야 하는지이해 되지 않았습니다. 받아들여지지도 않았습니다. 예수께 항변하였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하며 많은 사람들과 함께 찬송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예수님이 잡히시고 심문 받으시자, 그는 예수님을 저주하면서까지 부인하였습니다(마가복음 14:71).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하였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성전에서는 장사하는 자들은 성전에서 돈을 벌고 권력을 행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사람은 누가 되었든지 돈과 권력을 가지려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보셨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베드로는 이해되지 않는 가운데서도 그는 예수께 여쭈었습니다.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랐나이다우리가 예수님을 좇아가면서 예수님과 예수님 말씀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고, 기도하였는데도 응답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같이 주님께 여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보이는 돈과 자리, 권력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믿으라 하십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믿으면 그 사람은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기도하고 용서하라(23-25)

23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누가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라 하겠습니까? 미친 것 같이 들립니다.

왜 예수께서 이렇게 까지 말씀하셨을까요? 산은 움직이지 않는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딱 버티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말씀을 선포하고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야말로 산처럼 꿈쩍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라 하더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행한다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과는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산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 그런 산이라 할지라도 바다에 던져지라 할 것이고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산이라도 바다에 던져질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하십니다(24).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려 하지만 실제 나의 문제가 닥치면,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실제 문제에 부딪히면 별 생각이 다 듭니다. 별 불평, 원망, 두려움, 염려가 생깁니다. 꼭 그렇게 하셔야 하는지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주 받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이런 때 주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라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라 하십니다. 기도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결코 기도할 수 없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핑계 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산이라도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떤 일에서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지 못하던 제자들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이 말씀을 따라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사도행전 1:14).

그러면 무엇을 기도하여야 합니까?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어야 함을 예수께서 말씀하십니까? 25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하나님을 믿는다 함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하여야 우리 허물이 사하여집니다. 우리 허물이 사하여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 나라에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을 믿고 성공하였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허물을 사함 받는 것입니다. 그리함으로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은 말씀에 증거 된 대로 나귀 타고 겸손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왕궁으로 가시지 않고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성 회복이 주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께서 하실 일 이었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다 내쫓으시고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라 선포하셨습니다. 돈과 권력을 좇아 사는 잎사귀만 무성한 그런 신앙생활을 저주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함을 기도하고 그 기도한 바를 그대로 받은 줄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하라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용서하는 그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그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습니다.

나 자신의 죄와 허물을 사함 받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는 없습니다. 사함 받지 못한 죄와 허물로 늘 속이 시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죄와 허물이 사함 받지 못하고, 용서함 받지 못한 채 돈과 권력을 가진 들 그 돈과 권력이 그 사람을 평안하게 할 수 있을까요? 열매 없는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와 같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죄 허물을 사함 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을 믿으라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귀타고 겸손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로 고백한다는 것은 자신의 죄와 허물이 십자가 피로 사함 받았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나귀 타고 겸손하게 주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대로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용서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허물을 사함 받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마가복음 11:9)

 

2018 마가복음 21강 메시지 1101-1125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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