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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018.04.29 11:29

2018년 마가복음 6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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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제 6 강                                                                                                        김요한

마가복음 3:7-35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마가복음 3:14,15)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하시는 일은 때때로 우리로써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고, 너무 고상하여 따라가기가 힘들기도 합니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전합니다.

예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몰려왔음이더라(7-12)

7절부터 봅시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셨습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쪽 손 마른 사람을 회당 한 가운데 부르셔서 그의 손을 고치셨습니다. 그러자 이를 엿보고 있던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헤롯당과 함께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을까 의논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때에 제자들과 바다로 물러가셨습니다. 바리새인들과 논쟁한다든가 뜯어 고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다로 물러가셨습니다.

그러자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라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에게 해 바닷가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까지 많은 무리가 예수께서 하신 큰 일을 듣고 예수께 나아왔습니다(8). 예수께서 하신 큰 일이 무엇입니까? 안식일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의 손을 고치셨습니다. 이 일이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을까요? 한쪽 손이 말라 있어도 고침을 받지 못하고 마비된 채로 있는 그 사람을 죽이려고 엿보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예수께서 그를 건강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의 속이 시원하여졌습니다. 어딘가에 눌렸던 것들이, 마비된 것들이 풀렸습니다. 그들에게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에워싸 밀었습니다(9). 예수께서 바다에 빠질 정도였습니다. 이를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9). 예수님은 호수 배 위에서 호수 가에 앉은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기 때문입니다(10).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기 보다는 예수님을 만져 자신의 병을 낫고자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소리를 질러대었습니다(11).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셨습니다(12).

사람들은 자기 병, 자기 인생문제로 괴로울 때 예수께 나아와 예수님을 만져 자신들의 그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별별 헛소리 하는 사람들이 있어, 자기가 만지면 무슨 병이든지 낫는다고 헛소리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각기 자기 인생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인생문제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중풍병자라 하더라도 그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셨습니다. 매국노에게라도 나를 따르라말씀하셨습니다. 그물을 들고 고기 잡아 생활하는 어부들에게도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말씀을 주셨습니다. 도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의 말씀을 듣기 보다는 자기들 문제를 해결하느라, 어쨌든 예수님을 만나야 하고, 어딜 가야 되고, 예수님을 만지기까지 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럴 때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13-19)

13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예수께서 몰려오는 그 사람들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그 사람들에게 일일이 손을 대시고 고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께서 산에 오르셨습니다. 바다에서 무리들을 섬기시다가 산으로 오르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산으로 갈까요, 바다로 갈까요?’ 물으면 대부분 바다로 가자 합니다. 산을 오르려면 힘듭니다. 바다에 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산에 오르셨습니다. 예수께서 산에 오르시니 예수님 따르는 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산에 올랐습니다. 등산을 같이 하다보면 처음 몇 분간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가도 조금 가팔라지면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조용해집니다. 정상쯤 가면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산에 오르시며 예수님을 따라 온 정리된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께서 원하시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산에 오르는 것과 같이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는 찬송가도 있습니다. 주의 나라는 그야말로 높은 곳입니다. 한참 가다보면 숨이 차고 힘이 듭니다. ‘내가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야속하시게도 산에 오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고난을 감당하는 사람들, 예수님 따르기 위해 산을 넘고 강을 건너 포기치 않고 예수께 나아오는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께서 원하시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께서 왜 이렇게 산에 까지 오르셔서 예수께서 원하시는 자들을 부르셨을까요? 14,15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예수께서 원하시는 사람들을 부르셨고 이 부르심에 응한 사람들 가운데서 열둘을 세우셨습니다.

세우셨다함은 따로 세웠다는 뜻입니다. 학교 반장이 되면 따로 세움을 받습니다. 군 내무반에서 내무만장은 어깨에 견장을 달고 따로 세웁니다. 리더로 세우셨습니다.

예수께서 열둘을 세우셨습니다. 열둘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뜻합니다. 열둘은 곧 전체 이스라엘을 뜻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열둘로 인해 만국을 치료한다 하셨습니다(요한계시록 22:2). 곧 예수께서 열둘을 세우셔서 만국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열둘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들을 세우신 중요한 이유는 이들을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함께 있으면 서로 닮습니다. 부부가 수십 년 같이 살면 얼굴이 비슷해집니다. 먹는 것도 같고, 하는 말도 비슷해져서 같은 얼굴 근육을 계속 쓰게 되니 얼굴이 비슷해집니다. 예수님은 열둘을 따로 세우시고, 함께 있게 하셔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들이 되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이에는 예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보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으신 것과 같이 예수께서 자기 원하는 자들을 부르셔서 병들고 귀신들린 사람들에게 보내십니다. 언제까지나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지 않으십니다.

무엇하러 보내십니까? 전도하러 보내십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입니다. 나가서 세상에서 주눅 들지 아니하고 복음을 전하면 더러운 귀신들이 달려들어, ‘나도 예수님 이름을 안다. 나와 상관하지 말라하며 소리 지르며 달려들 것입니다. 이를 제압하려면 권능, 파워가 있어야 합니다. 이 권능은 어디서 옵니까?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말씀이 있게 하셨고,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 일에 예수님과 꼭 닮은 한 사람만 세우시면 될 것 같은데, 예수께서 세우신 열둘의 이름들이 나옵니다. 16절부터 19절까지 읽어 봅시다.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이를 읽고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 누구냐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가룟 유다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판 자를 예수께서 왜 부르셨을까 싶습니다. 본문에 따르면 예수를 판 자를 예수께서 원하셨고, 그리고 세우셨습니다.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에게는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습니다. 같은 날 같은 시에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안드레는 따로 다른 사도들의 이름과 같이 나옵니다. 안드레 입장에서는 조금 섭섭할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베드로 한 사람만 부르시고, 베드로와 비슷한 사람들 열둘을 부르시지, 예수님을 파는 자 가룟 유다나, 시끄러운 우레의 아들들은 왜 부르셨을까 싶기도 합니다. 또 여기서 이름 한 번 나오고 그 다음에는 이름도 나오지 않는 사도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어떻게 이렇게 다양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부르셨을까요? 사람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열둘인데, 이들은 각기 다 달랐습니다(창세기 49:28). 성질 급한 사람도 있고, 조용한 사람도 있고, 뿐만 아니라 동생을 파는 형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들마다 다르다는 의미로 person이라 합니다. 인격적이라는 말은 곧 사람이 다 다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다 죄인이긴 한가지 이지만 죄 짓는 모습도 다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 다르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각기 다 다른 열둘을 예수께서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원하시는 바였습니다. 각기 다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예수님과 함께 하게 하셨습니다. 말씀을 읽고 한 두 시간 걸려 무슨 뜻인지 깨닫는 사람도 있고, 2초 만에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제시간에 과자를 소리 내며 먹는 사람도 있고, 이를 못마땅하게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다 다르다는 것을 예수님과 함께 하며 부르심 받은 열둘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부르신 예수님은 어떻게 하시는지를 보고 배울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결혼하여 둘씩 살게 하셨을까요? 이 열둘이 세상에 보냄을 받아 전도하고 귀신을 내어 쫓는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사람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사람을 감당하는 것은 그 사람을 아는데서 출발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출발은 그 사람이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아는데 있습니다. 저와 저의 동역자는 보는 방향이 같고, 또 서로 사랑합니다. 그런데 같이 있다 보면 정말 저와 제 동역자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슨 일을 하려면 한참을 토론하며 뜻을 같이 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각기 따로 일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왜 가족이 있을까요? 가족이 원수라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늘 드는데, 그런데도 가족끼리 함께 부대끼면서 사랑을 배워갑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때로는 믿음의 공동체에서 동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동역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서로 다른 열둘이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서로 누가 크냐며 갈등하고 다투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 중에 예수님을 팔자가 있다 하시자 모든 제자들이 나는 아니지요하고 예수께 물었습니다(마가복음 14:19). 예수께서 각기 다른 이 열둘을 통해 이 세상 각기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데 쓰시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각기 다른 우리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예수께서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의 원으로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 되었든지 예수님의 원하심으로 부르심을 받고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는 말씀대로 주님의 뜻을 따라 갈 수 있습니다.

열둘 중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떠나자, 베드로는 예수께서 하늘로 오르신 후 제자들의 추천을 받아 제비뽑아 맛디아로 열둘을 채웠습니다(사도행전 1:26). 그러므로 온 세상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부활의 증인으로 쓰임 받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한 후에야(20-3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었습니다(20).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함이었습니다(21). 누가 되었든지 밥도 먹지 않고 일을 한다면 그 일에 미친 것입니다. 예수님의 친족들은 예수님이 걱정되어 찾아왔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또 달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였습니다(22).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23-26).

그래서 어떻게 하십니까? 27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사탄에 잡혀 있는 사람들을 사탄에게서 끌어내기 위해서는 사탄을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진실로 말씀하셨습니다. 28,29절을 봅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었습니다(30).

그러나 예수께는 함께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누가 예수님과 함께 합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31-35)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습니다(31). 무리가 예수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하며 여짜오니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32).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하시고(33),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하셨습니다(34). 무슨 뜻입니까? 35절을 봅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사악한 자기 뜻을 세우느라 예수님을 귀신의 왕이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 산에 오르는 사람도 있고, 예수께서 원하셔서 부르시면 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께는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십니다. 사랑을 나누는 한 가족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그 사람을 예수님의 형제요 자매로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자기 생각과 달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반박하는데 그의 세월을 보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명백한 답이 있는데도 자기 주장을 하느라 잠잠하여 완악해질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도 원하시는 예수님의 뜻을 우리가 다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예수께서 그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하시는 일에 대해 토를 달 수 있겠습니까?(욥기 38:2) 우리가 할 일은 기도하며 말씀을 읽고, 읽은 대로 받고 믿어 행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원하심과 뜻에 따라 캠퍼스에서 하나님을 몰라 방황하는 형제자매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여 그들로 생명 얻게 하는 주의 일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마가복음 3:14,15)

 

2018 마가복음 6강 메시지 0307-0335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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