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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7.08.19 15:28

2017년 누가복음 31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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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31강                                                                                                  김요한

누가복음 14:1-35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누가복음 14:26,27)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우리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4장에서 말씀합니다.

 

안식일에라도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냐(1-6)

1절부터 봅시다. “안식일에” 일어난 일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일곱째 날에 모든 일을 그치고 안식하시며 복되게 하셨습니다. 거룩하게 하셨습니다(창세기 2:2,3). 유대인들인 말씀에 따라 안식일에는 일하지 않고 쉬었습니다. 그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셨습니다. 초청받으셨습니다. 그 초청한 목적이 예수님 하시는 일을 엿보고자 함이었습니다.

무엇을 엿보았습니까? 2절을 봅시다. 주의 앞에 수종병, 몸이 붓는 병이 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이 엿보는 지를 아셨습니다. 그래서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3). 안식일에라도 병든 사람을 고치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열여덟 해 동안이나 꼬부라져 있던 여자도 예수께서 안식일에 펴주셨습니다(누가복음 13:10-13).

그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할 말이 없었던지, 다른 생각이 있었던지 잠잠했습니다(4상). 예수께서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안식일에 수종 병 든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셨습니다(4하).

그리고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5절을 봅시다.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당연히 끌어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였습니다(6).

그런데 누가복음은 왜 이렇게 안식일에 예수께서 일하시는 것을 계속하여 증거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세상과 분리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말씀대로 살기 위해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율법교사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바리새인들과 같지 않기를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물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면서 자기부인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자기 부인을 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기 뜻을 꺾는 것일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라도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을 보아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생각하고 주장하는 율법에 따라 예수님을 엿보고 반대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른다 하면서 자기 나름의 생각과 뜻과 율법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자기 뜻에 따라 의로운 생각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말씀에 따라 한다면서 자기 의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거룩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물으십니다. 합당한지 아니한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외식하지 아니하고, 겉과 속을 같이 하려면 이 질문에 대답하여야 합니다. 안식일에라도 내 아들이나 내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끌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 하면서 나의 생각, 내 뜻, 내가 의롭다 하는 것을 주장할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의 이 질문에 대답하여 안식일에라도 우물에 빠진 내 아들이나 내 소를 건져내는 것 같이 사람 살리는 일에 예수님처럼 쓰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자기 부인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말씀에서 은혜 받고 예수님의 나의 그리스도로 고백한 다음, 알게 모르게 이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처럼 얼마든지 자기 나름의 의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서 자기 부인을 하기 보다는 자기 뜻을 어찌하든 내 세우고, 자기 의를 굳이 세워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스스로 거룩하다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자기 부인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 안식일에 다른 사람을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한지, 안식일에 내 아들이나 내 소를 끌어내는지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자기주장이나 자기 의를 꺾고 예수님과 같이 안식일에라도 사람 살리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십니다.

 

끝자리에 앉으라(7-11)

7절을 봅시다. 그 때 그 자리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예수께서 보셨습니다. 사람은 죄악 된 본성에 따라 어디서든 높은 자리에 앉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이를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하십니다(8상).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0절을 봅시다.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하십니다.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끝자리에 앉아서 언제 나를 불러주나 하고 있다면 그것만큼 처량한 모습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11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자기를 높이는 자는 어차피 낮아집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어차피 높아집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한다함은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높아지고 싶은 그 마음을 낮춘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서는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십니다.

 

갚을 것 없는 자를 청하라(12-14)

12절부터 봅시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을 청하면 또 내가 나중에 그 사람들의 청함을 받았을 때 또 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요즈음 사회생활을 하려면 인맥이 좋아야 한다고 합니다. 서로 얘기가 통하는 사람들, 언젠가 나에게 도움을 줄 친구와 친척, 또 언젠가는 나에게 도움이 될 부한 이웃을 청하여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내 삶에 유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신 또한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하십니다(13). 그들은 갚을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14상). 이 사람들이 네게 복이 되리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십니다(14하).

갚을 것이 없는 사람들을 청하면 내가 그 사람들에게 베풀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이를 아시고 갚으실 것입니다. 물 한 잔을 주신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예수께서 알아보신다 하십니다(마가복음 9:41).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면서 자기 부인을 한다는 것은 내게 유익이 되는 사람을 내 곁에 두고자 하는 그 마음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내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내가 도와야 하는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들, 맹인들을 초청하라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내 중심으로 유익을 좇아가는 자신을 부인하여야만 합니다. 그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면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 주님께서 갚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자기 부인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갚으실 것을 믿는 사람이 자기 부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십니다.

 

청함에 응하라(15-24)

15절을 봅시다.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였습니다. 참 맞는 말이긴 한데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였을까요? 그래서 예수께서 분명히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일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기 위해서는 자기 부인을 해야만 합니다.

예수께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습니다(16). 잔치를 언제 할 터인데 오시라고 초청하면, 초청받은 사람이 가겠다고 그 청함에 응합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을 잔치에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잔치할 시각이 되어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였더니 다 일치하게 사양하였습니다(17,18상). 한 사람은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18하),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였습니다(20). 이 사람들이 잔치에 가겠다고 초청에 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다 일치하게 사양한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자기 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보다는 자기 일이 더 우선인 사람은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 부인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잔치가 무산되었습니까? 21절부터 봅시다.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말하였습니다.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였습니다. 주인은 잔치를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들, 맹인들, 저는 자들을 다 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종이 주인에게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하자(22), 이때 주인이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같이 23절을 읽어봅시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주인은 잔치를 그만 둘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 다시 오실 그날 하실 잔치를 거둘 생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든 사람들을 초청하여 천국잔치를 베풀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그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초청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주님의 잔치를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24). 그러므로 잔치에 초청받고 초청에 응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입니다. 주님의 잔치에 응하기 위해서는 장가갔더라도 벌떡 일어나서 가야 하고, 밭을 샀더라도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 바로 가야 합니다. 소를 열 마리를 샀다 하더라도 주님 부르시는 그 때 바로 일어나서 가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성령의 역사는 바람의 역사라고 합니다. 바람은 언제 어디서 불지 알 수가 없습니다. 팔월 초에 무덥던 날씨가 언제 이렇게 시원한 바람이 부는 지 신기합니다. 제가 처음 경험한 성령의 작은 바람은 좀 황당하였습니다. 모임을 섬기다가 점심 먹을 때를 놓쳐서 겨우 짬이 나서 숟가락을 들려 하는데, 느닷없이 사회 봐야 한다 해서 ‘이제 점심 먹으려는데요’ 했더니 ‘숟가락 놓고 오세요’ 해서 황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언제라도 부르시면 숟가락을 놓고 일어서야 하는 자기 부인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주님 부르실 때에 응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여야만 합니다.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주님을 만난 은혜가 충만하였을 그 때는 언제라도 부르시면 내 모든 것을 내어놓고 가겠다고 했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작 부르심이 있을 때는 여러 다른 일들이 주님 부르심 보다 앞 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잔치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가지 않아도 주인은 잔치를 그만두지 않으십니다. 다른 사람으로 자리를 채우고 잔치를 합니다.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깨어 있어 주님 부르실 그 때 바로 일어나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25-35)

25절을 봅시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과 함께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돌이키셔서 무리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같이 26절과 27절을 읽어봅시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과 함께 가고 있으니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함께 하는 무리에게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마음에 작정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니 확실하게 세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말씀하십니다. 마음에 각오가 확실하셨습니다.

세상 살아가는데 가족만큼 중하고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의 손길을 구하고 또 내미는 사람들이 가족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려면 가족들도 미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손들고 도움을 준 가족들이라 하더라도 부르심을 따라 주일에는 가족 모임에 갈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자기 부인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 사는 것이 내 목숨을 위한 것일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 따르는 것이 내 목숨을 내어 놓을만큼 그렇게 귀한 일인지요? 제자 된 입장에서 돌이켜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죽어가고 있던 저를 부르시고 살려내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전봇대 밑에서 얼어 죽었을 지도 모를 저를 부르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죽음 앞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하지 않으면 이 은혜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누가 되었든지 예수님을 따르려면 가족들과 형제, 자매들이 끊임없이 믿음의 길을 시험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내 목숨까지 내어 놓을만한 일인지 계속 질문하게 됩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 나를 살리실 분은 예수님 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신령한 몸이 되어 주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있게 됩니다.

27절을 봅시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자도 능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십자가는 자기가 지는 십자가입니다. 안식일에 수종병 든 사람을 고치려면 자신이 나서야 합니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여러 말들을 이겨내야 합니다. 누가 대신 질 수 없습니다. 나의 목자라도 대신 질 수 없습니다. 자기 십자가입니다. 나의 십자가는 내가 져야 합니다. 성경에는 억지로 십자가를 진 루기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을 밝힙니다.

예수님은 이같이 마음에 준비가 확실히 되어야 함을 말씀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28절부터 봅시다.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예산을 세우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할 것입니다(29,30).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습니까?(31)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하는 것이 마땅합니다(32).

33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수께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내 목숨까지 내어 놓고 예수님 따르는 일이 과연 계산이 서는 일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그렇게 계산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면 짠 소금이 됩니다.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은 제대로 된 소금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맛을 잃어버리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다 들었으니 계산을 해보고 따르든지 말든지 내가 결정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각기 내게 있어 내 목숨이 중요하고, 내 소유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마지막 날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 주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있게 될 것인지, 아니면 끝도 없는 무저갱에 빠지게 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확실하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까지 합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이미 들었습니다. 들은 바 말씀대로 생각하여야 하겠습니다. 지금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를. 우리 중 어떤 분은 멀리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 날을 봐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보며 주님 다시 오실 그 날을 대비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제자의 길을 담대히 갑니다. 사람 살리는 일에 쓰임 받게 됩니다.

우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사람을 살리는 제대로 된 맛을 내는 소금 같은 제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누가복음 14:26,27)

 

2017 누가복음 31강 메시지 1401-1435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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