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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2 17:15

2017년 누가복음 30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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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30강                                                                                                   김요한

누가복음 13:1-35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누가복음 13:24)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 들어가는 자가 많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좁은 문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해외여행에서 좁은 굴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좀 뚱뚱해서 들어갈까 말까 하다가 들어갔습니다. 조금 들어가서 그만 몸이 끼게 되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각국 말로 여러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되돌아 나오자 이전보다 더 심한 각국 말들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냥 마음만 먹었다고 들어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힘써야 합니다. 예수께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무엇을 어떻게 힘써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망하리라(1-9)

1절부터 봅시다.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순례 왔던 갈릴리 사람들이 성전에서 제물을 드리려 할 때, 빌라도가 명을 내려서 로마인들이 피살 된 것에 대한 보복으로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하였는데, 그 때 그 피가 희생제물에 섞였다고 예수께 알렸습니다. 예수께서 빌라도를 징벌하시든지, 갈릴리 사람들을 위로하시든지, 뭔가를 행하시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어떠합니까? 2절을 봅시다.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워낙 예루살렘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을 멸시하였습니다. 앗수르 사람들의 피가 섞였다고 멸시하였습니다. 그런 갈릴리 사람들이 성전에서 해를 받았으니 다른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3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회개하지 않으면 성전에 있든 어디에 있든, 갈릴리 사람이든 아니든 다 이같이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4절을 봅시다. 갈릴리 사람들뿐만 아니라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사람이 열여덟 사람이나 되었습니다. 이때 사람들이 망대에 있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알기 쉽습니다. 5절을 봅시다. 3절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갈릴리 사람이든, 예루살렘 사람이든,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회개하지 않으면 갑자기 이처럼 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망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은 죽고, 어떤 사람은 살아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6절부터 봅시다.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하였습니다(7). 이에 포도원지기가 주인에게 말하였습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셨습니다(8,9).

하나님께서 우리를 갑작스런 사고나 병으로 망하지 않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임을 예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선교사로 나가서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소천하기도 하고, 힘을 다해 말씀 역사를 섬기다가 암에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암에 걸리지도 않고 지금 여기서 이렇게 예배드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씀해주십니다. 열매가 맺히도록 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회개하고 열매 맺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거름을 주시고 계십니다. 말씀을 주시고 인생경험을 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회개하면 무엇이 좋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10-17)

10,11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12,13). 허리 한번 펴고 어깨 한 번 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집에서 허리 한번 쫘악 펴지 못하고 지내면 얼마나 스트레스입니까. 그런데 이렇게 열여덟 해 동안이나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지내던 여자가 허리를 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런데 말씀역사를 섬기는 회당장이 이를 보고 분을 내었습니다. 14절을 봅시다.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말했습니다.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아주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이때 주님의 대답입니다. 15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외식하는 자들아” 하셨습니다. 속과 다르게 겉을 꾸미는 자들이라 하셨습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안식일이라 해서 자기의 소나 나귀에게 물을 먹이지 아니하면 병들고, 계속 그렇게 하면 비실거리다가 죽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나 하더라도 자기의 소나 나귀는 외양간에서 풀어 물을 먹입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입니다. 같이 16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열여덟 해 동안이나 꼬부라진 여자를 보시고 예수께서 “사탄에게 매인 바 된”이라 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꼬부라져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죄나, 부모의 잘못이 아니라 사탄에게 매인 바 된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사탄으로부터 풀어주면 될 일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께서 이 여자를 “아브라함의 딸”이라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믿음의 조상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닌 사람들을 이방인, 불에 태울 땔감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 여자가 이렇게 열여덟 해 동안이나 꼬부라져 있으니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버린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니 안식일에 고침을 받으려 하지 말고, 고침을 받으려면 안식일이 아닌 다른 날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꼬부라진 그 여자를 아브라함의 딸, 택함 받은 자손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아브라함의 딸을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하십니다.

제가 이웃에 지적장애를 가진 젊은 여자가 있습니다. 그 사람을 보고 있으면 답답해집니다. 부모님들과도 서로 웃고 인사를 하지만 그 분들의 얼굴은 늘 어둡습니다. 안타깝습니다. 홍콩 종임선교사님에게 쌍둥이 딸이 있습니다. 이 딸들이 태어날 때 의사의 실수로 산소공급이 잘 되지 않아 첫째 아이가 뇌성마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부모님들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법적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홍콩 대학생들을 말씀으로 섬기고, 세계 각곳에서 오시는 선교사님들은 섬기십니다. 그 딸이 열여덟 살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부모님들은 시편 108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탄에 매인 아브라함의 딸을 푸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십니다.

이처럼 캠퍼스에 자기 인생을 펼치지 못하는 아브라함의 아들, 딸들이 있습니다. 세계 어디서나 비슷하지만, 특히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더 그런 경향이 심한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회당장도 율법 조문에 매여 있다는 점에서 이 꼬부라진 여자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하시자,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였습니다(17).

예수께서 이를 통해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말씀역사에 대한 소망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 같으니(18-21)

18절을 봅시다. “그러므로”로 시작하십니다. 열여덟 해 동안이나 꼬부라져 있던 여자를 말씀으로 고치시고 나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19절을 봅시다.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겨자씨 한 알은 볼펜 자국만큼 작습니다. 작지만 자라나면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들일 만큼 됩니다. 작지만 자라납니다. 자라나면 역할을 합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습니다(20,21). 그러나 겨자씨는 너무 작고 그 자라나는 것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누룩이 빵을 어떻게 부풀게 하는지도 보이지 않습니다. 작고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 나라가 심겨지면 사탄의 매임에서 풀어지는 구원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심는 하나님 역사에 소망으로 쓰임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른다 하면서도 속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생명 없는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22-30)

22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여 오셨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예수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여쭈었습니다(23). 우리가 캠퍼스에서 하나님 나라가 심겨지고 자라날 소망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지만 실제로 구원받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이에 주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24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천국에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 문은 좁은 문이며 들어가기를 힘쓰라 하십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리를 힘쓰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25절을 봅시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열어주지 않습니다.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라 하십니다.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할 것입니다(26). 주와 함께 먹고 마시며 주께서 가르치실 때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문을 두드려도 알지 못한다 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27절을 봅시다.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할 것입니다. 왜 알지 못합니까? 행악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할 것이라 하십니다. 행악하는 자들, 악을 행하는 자들. 악이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것입니다. 이들이 주와 함께 먹고 마시며 주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주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열여덟 해 동안이나 꼬부라진 여자가 안식일에 고침을 받자, 무슨 안식일에 와서 고침을 받느냐고 하던 사람들입니다.

28절을 봅시다.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아브라함은 아들 하나 얻으려고 하나님을 따라 갔다가 하나님께 몇 번이나 반발하고 자기 주장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 주장을 접었습니다.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사람입니다. 이삭은 자기 뜻대로 축복했다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을 알았을 때 자신이 한 축복을 변개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자기 인생에 필요하다 여긴 것을 자기 뜻과 노력으로 갖추어졌지만 하나님 안에서 이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자기 뜻을 접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모든 선지자는 세상 사람들이 이들을 비방하고 박해하고 죽인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전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그러나 주와 함께 먹고 마시고 가르침을 받지만 주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오직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28하).

그러면 누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 하나님 나라에 있게 됩니까? 29절을 봅시다. 사람들이 유대인이든 아니든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할 것입니다. 주의 뜻대로 행한 사람들입니다.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셨습니다(30). 주의 역사에 있어 선배냐 후배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겉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행악하는 자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해야 합니다. 주의 말씀으로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 주님의 뜻 외에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빼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이같이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떤 길을 가십니까?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31-35)

31절을 봅시다.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하였습니다. 세상과 분리되어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바리새인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생각하는 바리새인들도 있었습니다. 세상과 제대로 분리된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32절을 봅시다.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하셨습니다. 세상을 자기 뜻대로 살고자 별 수를 다 쓰는 자입니다. 헤롯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33). 헤롯이 뭐라 하든, 사람들이 무엇이라 하든 예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34). 그래서 어떻게 하십니까? 35절을 봅시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로 오르셔서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때에 그들이 이를 볼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맛 본 자라로서 할 일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회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 자신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주의 말씀을 듣고 주의 말씀에 따라 자신을 비추어 볼 때에라야 자신에게 있는 어두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는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내 자신을 살리실 것을 믿을 때 회개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사실이 그야말로 은혜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으로 듣고 받아 비록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당장은 힘들다 하더라도 말씀에 따라 자신을 발견하고 회개하여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기에 힘쓰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누가복음 13:24)

 

2017 누가복음 30강 메시지 1301-1335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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