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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35강 정여호수아

누가복음 21:5-38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36)

 

코로나 기세가 좀 꺾였지만, 주변에서는 전쟁 소식과 대홍수와 큰 재난의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물가는 계속 치솟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태원 사태로 지난 한 주간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아이돌스타를 보기 위해 몰린 인파로 인해 30명이상이 압사되어 죽었다고 합니다. 인도에서도 축제기간동안 다리가 무너져 내려 대량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정말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혼란한 시대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갈 분명한 지혜와 방향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먼저 성전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하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무엇이라 하십니까?

돌 하나도 돌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21:5-7)

5절을 봅시다.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예수께 말했습니다. 이 성전은 헤롯대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많은 정성을 쏟아부어 지은 성전으로 입구에는 통째로 깎아 만든 대리석 기둥들이 세워졌고, 천장과 지붕은 문들은 두꺼운 황금으로 장식되어 햇살이 비추면 눈이 부시어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하고 웅장했습니다. 이런 성전의 화려한 모습에 제자들은 매료되었습니다. 사실 방금전까지 예수께서 쨍그랑! 쨍그랑!’ 큰 소리를 내며 많은 동전을 헌금함에 넣는 부자들보다 두렙돈을 넣은 과부가 더 많이 넣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눈에 드러나 보이는 것보다 그 중심에 뭐가 있는지가 더 중요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성전의 화려한 겉모습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잎은 무성하지만 정작 주께서 기뻐하시는 열매 하나 찾을 수 없는 무화과나무 같이 되어버린,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린 성전의 그 실체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무엇이라 하십니까? 6절을 봅시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다 무너진다고 하십니다. 그것도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진다고 하십니다. 성전은 당시 유대교의 상징이요 이스라엘의 자부심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그런 성전이 무너진다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 전체가 망하는 것이요, 더 나아가 세상의 종말을 의미했습니다. 이에 그들은 심각한 얼굴이 되어 예수께 나아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7)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8-20)

8절을 봅시다. 예수님은 먼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왜 이런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을 당할까요? 난리와 소요의 소문이 들리기 때문입니다(9).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고(10),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으며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11).

실제로 지금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두나라가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핵무기 사용까지 거론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난리와 소요의 소문이 계속 들려오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 우리가 실제로 코로나로 인해 얼마나 혼란스러워하고 또 두려워 떨었습니까? 인류문명 기술과 의학의 발달로 모든 것이 우리의 통제안에서 이루어 질 것 같았던 것들이, 한순간에 갑자기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온 몸으로 경험했습니다. 또 지난주 발생한 이태원 사태는 어떠합니까? 사람들의 가치체계와 또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보편적인 질서와 의식들이 하나 둘씩 무너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소문을 들을 때 두렵습니다. 정말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싶고, 이런 가운데 나는 무엇을 따라가야 할지 몰라 두렵습니다. 사람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때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거짓선지자들의 허탄한 말에 쉽게 넘어가기 쉽습니다(디모데후서 4:4).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은 이런 전쟁과 난리 소문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9). 왜 그렇습니까?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9). 새번역 성경에서는 이런 일이 반드시 먼저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종말이 곧 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곧 이 모든 것은 앞으로 우리가 반드시 겪어야 하는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에서는 이를 “the beginning of birth pains” 산통의 시작이라고 표현했습니다(마가복음 13:8).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 전에 산모가 진통을 겪듯이 이런 모든 것들은 새로운 역사를 향한 진통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진통을 겪게 됩니까?

12절을 봅시다.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박해의 강도가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앞에 까지 끌고 갑니다.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그들을 넘겨주어 그 중의 몇을 죽게 할 것입니다(16).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17).

우리는 적어도 가족만큼은 내 편에 서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기대조차도 버려야만 합니다. 누구도 내 편에 서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말만 들어도 벌써부터 마음이 힘들고, 부담이 밀려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말 사랑하신다면, 우리가 진정 택함받은 주의 자녀라면 왜 이런 박해와 고난을 겪게 하시는 것일까요? 이런 일을 겪게 하시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가 고난을 받더라고 그 고난을 왜 받아야 하는지, 그 고난을 통해 장차 얻게 될 그 영광이 무엇인지를 알면 그 고난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고난 그 자체가 힘들다기보다, 그 고난에 담긴 이유와 뜻이 해석이 안되기 때문에 힘든 경우가 더 많습니다. 감사하게도 예수님은 그 뜻과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3절을 봅시다. 그것은 이 일이 도리어 복음을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13). 박해는 박해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박해를 통해서 세상에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됩니다. 말하지면 박해복음 증거의 통로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스데반의 첫 순교가, 한 때 하나님의 교회의 가장 큰 원수 노릇을 하던 바울 사도의 회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예루살렘에만 머물다가 끝날 번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게 되는 그 시발점이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큰 박해 때문이었습니다. 그런점에서 좀 역설적이지만 박해는 하나님께서 그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필연적인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신앙 생활하는데 아무런 고난이나 박해가 없다면, 그 사람은 진실로 신앙생활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박해를 받습니다(디모데후서 3:12).

그러므로 비록 집권자들 앞에 끌려가더라도 우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할 필요가 없습니다(14). 주께서 성령을 통해서 모든 대적들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우리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5).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게 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18). 풀무불이나 사자굴에 던져질지라도 머리털 하나, 실오라기 하나도 상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다니엘 6:23). 그러므로 어떤 상황속에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내입니다(19).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 안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사도행전 14:22). 그리하면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주께서 우리의 영혼을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19).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주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우리를 넉넉히 이기게 하시고 끝까지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빌립보서 1:6). 아멘!

이제 예수님은 장차 예루살렘이 당하게 될 무서운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두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밟히리라(20-24)

20절을 봅시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여기서 군대는 로마군대를 말합니다. 제자들은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쳐들어와서 포위하면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가야합니다. 성 안에 있는 자들은 성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촌에 있는 자들도 그리로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21).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성 평화의 도성 예루살렘이 왜 이 같은 끔찍한 일을 당합니까? 22절을 봅시다. “이는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로마보다 군사력이 약해서 때문이 아닙니다. 이는 기록된 말씀에 따라 이루어지는 심판입니다. 주께서 이방 로마의 손에 넘기선 것입니다. 왜 넘기십니까? 그들이 포도원 주인 되신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기어이 그의 아들까지 존대하지 않고 죽일 것입니다. 그 아들을 통해서 그들을 용서하고 보살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끝내 거부할 것입니다. 곧 이 심판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한 그들 자신의 죄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로마서 2:4).

그 심판이 얼마나 끔찍합니까?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임할 것입니다(23).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갈 것입니다(24).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결국이 이러하다면 하나님 믿어 봐야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게도 여전히 소망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언제까지나 이방인에게 밟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만 밟힐 것이기 때문입니다(24).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방인의 수가 다 차기까지만 그들이 밟힌다는 뜻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우리 인생들을 향한 뜻은 언제나 선합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이것이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져 있던 구원의 비밀의 경륜입니다(에베소서 3:9). 그러므로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만 합니다(마가복음 13:10). 그제야 끝이 올 것입니다(마태복음 24:14).

그 때에 무슨 징조가 있습니까?

인자가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25-28)

25,26절을 봅시다. 하늘의 일월 성신, 곧 해, , 별에 징조가 있을 것입니다.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할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혼란스럽더라도 아침에는 해가 뜨기에 우리가 안심하고 일생 생활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해가 빛을 잃습니다. 달과 별도 빛을 내지 않습니다. 하늘의 권능이 흔들립니다.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 여겨지던 세상의 모든 기초와 질서가 다 무너져 내립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합니다. 그 때에 사람들은 무엇을 보게 됩니까? 다 같이 27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그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예외가 없습니다. 이 날은 예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릴 권세, 곧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시는 바로 그날입니다(누가복음 19:15). 그러므로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면, 우리 믿음의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어나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두려워 떨며 주저앉아, 머리를 땅에 박을지라도, 우리는 당당히 일어나서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누구보다 그 날을 기쁨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이는 주께서 우리를 속량하시기 때문입니다. 죄와 죽음의 세력 앞에 탄식하고 고통하던 우리를 온전히 자유케 하십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부활의 새 몸을 입혀주십니다. 그날에 우리는 새 하늘 새 땅에서 마치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마냥 즐겁게 뛰어 놀 것입니다(말라기 4:2).

이런 소망 가운데 우리는 이 말세의 때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29-38)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무화과나무에 싹이 나는 것을 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압니다(29-30).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굳이 달력을 보지 않아도 가을이 온 것을 압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예수께서 앞에서 말씀하신 징조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아야 합니다(31). 진실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 질 것입니다(32).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33).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그 마음이 둔하여집니다(34).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없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겨 그날이 가까이 왔음을 알려주는 뚜렷한 징조들이 나타나는데도 이를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덫에 걸린 것 마냥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누구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35).

마음이 둔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 같이 36절을 한목소리로 읽어봅시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 하시니라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설 수 있습니다. 깨어 있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셨습니다(37).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갑니다(38). 말씀이 있으면 백성이 이른 아침에도 일어나 찾아옵니다. 이로 볼 때 깨어 있는 삶은,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삶입니다. 주의 말씀 안에 거할 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둔해지지 않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주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 소망이 늘 살아 있어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예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요즘 나타나는 징조들을 볼 때, 그 날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장차 올 심판을 능히 피하고 주님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결국에는 무너지고, 없어져 버릴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둔해지지 말아야 겠습니다. 주께서 우리로 이 시대를 진리의 말씀으로 옳게 분별하며, 주 앞에 서는 그날까지 우리로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도록 다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1:36)

 

 

 2022년 누가복음 35강 메시지 2105-2138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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