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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19.06.25 07:33

2019 창세기 15강 메시지(천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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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15강 메시지                                                                                                              천모세

창세기 22:1-23:20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하나님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세기 22:12)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온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 말씀하신 시기에 사라를 통해 이삭을 낳게 하시고 아비멜렉과의 우물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자식 문제와 물질 문제를 모두 해결한 아브라함은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는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을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정말 무엇을 원하실까요?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어떻게 하십니까?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부르시되(22:1)

221절을 읽어봅시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그 일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그 일 후에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통해 이삭이 나고 아비멜렉과의 우물 문제도 해결되고 난 이후의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는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21:33).

그런데 성경은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를 기록합니다. 자식 문제, 물질 문제가 모두 해결이 된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고자 하십니다. 시험에는 temptation, trial, test 있는데 여기서 시험은 test입니다. 그 사람이 어떠한지 어떤 수준에 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테스트를 합니다. 테스트의 목적은 사람을 넘어뜨리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발전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고자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정말로 하나님을 누구로 알고 믿고 따르고 있는지 알기를 원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자식과 물질 문제 해결해 주시는 분 정도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정말로 천지의 주재이시오 전능한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하십니다.

어려서부터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항상 악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바벨탑을 쌓고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시대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셨습니다(12:1).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그 땅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따라 온 아브라함을 복이 되게 하시고 천하 만민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하고자 하십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의 믿음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경외하지 않는지 시험을 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 사람을 복이 되게 하시고 천하 만민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창설하신 에덴동산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는 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25년 동안 씨름하시고 이제 그를 시험할 만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어떻게 반응을 하였습니까? 아브라함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가운데 사라를 통해서 자식도 얻고 물질 문제도 해결되어 부족함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결핍이 모두 채워졌다고 해서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결핍의 문제가 채워지면 불러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얻을 것보다 빼앗길 것 밖에 없어 보이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이 부담스럽게 여겨지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즉각 반응을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시험을 받을 만한 정도의 사람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성장하였을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가운데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됨을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어 여자의 생리가 끊어진 아내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게 하신 창조주시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실 때 그가 어떠했을까요? 이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들을 빼앗아 가시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하였을까요? 내가 생각하는 정도의 일이 이루어진다 하면 굳이 하나님을 따라갈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며 자신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체험하였습니다. 그는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또 무슨 일을 하실지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나아갔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내가 어느 정도 예상하는 정도라면 하나님을 따를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 생각을 넘어서 일하시는 분이심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나아온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하십니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2)

다 같이 2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되 그의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십니다. 이를 통해서 그가 정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경외하지 않는지 확인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는 아브라함에게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는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하셨습니다(17:18,19). 그런데 이제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원하실까요?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3-10)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갔습니다(3). 아브라함은 오후 늦게야 겨우 간 것이 아니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고 번제에 쓸 나무를 준비하여 갔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는 주저하거나 어떻게 할지를 몰라 안절부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확신 가운데 갔습니다.

제 삼 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보았습니다(4).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였습니다(5). 그는 종들에게 내가 아니라 우리가 돌아오리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였습니다(6). 이삭이 아버지에게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물었습니다(7). 이삭은 아버지가 번제할 어린 양은 빠뜨린 것은 아닌지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무엇이라 합니까? 다 같이 8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아브라함은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해 주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러 주신 곳에 이르러 아브라함이 무엇을 하였습니까?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였습니다(9,10).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르신대로 그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11-14)

이에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불렀습니다(11). 하늘에서부터 두 번이나 아브라함의 이름을 다급하게 부르십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하십니까? 다 같이 12절을 봅시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온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사라에게서 이삭을 얻고 물질 문제도 해결이 되고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자 그를 시험하셨습니다. 그가 정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경외하지 않는지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시험하신 결과 이제야 그가 하나님을 경외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어떤 점에서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십니까? 그가 그의 아들 독자까지도 하나님께 아끼지 아니한 점에서 하나님을 경외함을 아셨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자신의 독자까지도 하나님께 아끼지 아니하였을까요?

그에게는 이미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언약을 세우시겠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17:19). 그런데 이삭과 함께 약속을 세우신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시니 그는 고민이 되었을 것입니다. 두 가지 모순되는 것 같은 말씀 가운데서 그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브리서 11:17-19).

아브라함은 두 가지 모순되는 것 같은 말씀을 듣고 하나님 이상한 분이시다며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는 생각을 하되 천지의 주재시오 전능한 하나님이심을 기초로 생각하였습니다. 나이가 많아 생리가 끊어진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게 하신 천지의 주재시오 전능한 하나님께서 모순되는 것 같은 두 가지 말씀이라도 능히 다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이삭을 번제로 드리면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이라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아무 생각없이 문자적으로 말씀을 지켜나가는 것이 믿음이라 생각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은 누구이신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에 대한 답이 분명하지 않으면 하와가 가장 간교한 뱀의 말에 넘어간 것과 같이 사탄의 미혹에 걸려 넘어질 것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게 만들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시는지 너무 한 분 아니냐고 우리를 미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우리가 이런 가운데 사탄에게 넘어가지 않고 우리가 믿음을 지키려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한 답이 분명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천지의 주재시오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어떤 사탄의 미혹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따르는 우리 각 사람에게도 천지의 주재이시요 전능한 하나님이 계셔서 어떤 미혹에도 넘어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결러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습니다(13).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였습니다(14). 그는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확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약속하십니까?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15-24)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15). 그에게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다 같이 16-18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의 독자까지도 아끼지 아니한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가 받을 큰 복이 무엇입니까? 그의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아지며 아브라함의 씨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할 것입니다. 대적의 성을 빼앗고 멸망시킬 것입니다.

대적이 누구입니까? 대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하고 멸망시키는 존재입니다. 대적은 끊임없이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도록 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얻지 못하도록 하는 존재입니다.

대적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진 사람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를 증거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1:20-23).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1:24). 대적의 미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져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닝의 심판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버지와 친척과 고향 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왔고 그의 독자 이삭을 아끼지 아니하기까지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를 통해서 이미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을 주시고 원수의 머리를 상하게 하십니다(3:15). 하나님을 경외하여 자신의 독자까지도 아끼지 아니하는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서 대적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씨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적의 성문을 빼앗고 그를 멸망시킬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우리에게 전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이를 로마서에서 증거합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4:20-25).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여 자신의 독자까지도 아끼지 아니한 아브라함을 의로 여기신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우리를 의롭게 여기십니다. 이 믿음을 가진 자는 예수님 다시 오실 때에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의 나라에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누리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러나 대적 사탄은 끊임 없이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도 될 것 같은 마음을 가지도록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하셨습니다(24:4). 사도 바울도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를 경계하도록 하였습니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 11;3).

대적 사탄은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대로 살도록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을 우리에게 심고 우리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끊임 없이 우리를 미혹하려는 사탄의 세력 가운데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에게 무엇이라 하십니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14:38).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앞에 두고 마음이 심히 고민되어 죽게 되었을 때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 기도하시되 나의 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원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셨습니다(14:36). 우리가 세상의 여러 미혹하는 대적의 세력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시어 구원을 얻고 구원 얻게 하는 일에 쓰임받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밀가가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고 아브라함에게 알렸습니다. 그의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형제는 부스와 아람의 아버지 그므엘과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내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습니다(20-24).

하나님을 경외하여 말씀을 준행한 아브라함은 실제에서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23:1-20)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고 죽었습니다(1).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였습니다(2).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 나아가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하였습니다(3,4).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라 하였습니다(5,6). 이에 아브라함은 몸을 굽히고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한다 하였습니다(9). 밭의 값을 받지 않고 드리겠다는 에브론에게 모든 자가 듣는 데서 아브라함이 몸을 굽히고 청하건대 내 말을 들으시고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하였습니다(13). 에브론은 그제서야 땅 값이 은 사백 세겔 임을 말하였 주었습니다(15).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 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습니다(16).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되었습니다(17,18).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습니다(19).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습니다(20).

아브라함은 사라를 장사하기 위해 헷 족속의 막벨라 굴을 값을 주고 자기 소유로 확정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면서 실제에서 값을 분명히 치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값을 안 치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우리의 죄값을 다 치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자의 삶은 실제에서 값을 치르는 삶을 삽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니 이 세상에서 편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상숭배요 탐심입니다. 저로 믿음으로 살면 어찌 되겠지 하는 자가 아니라 실제에서 대가를 지불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드립니다. 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 실제에서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아브라함이 정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경외하지 않는지 시험을 하십니다. 우리 각 사람이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말씀을 꾸준히 듣고 받아 하나님이 주시는 큰 복을 누리고 나누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세기 22:12)

 

2019 창세기 15강 메시지 2201-2320 천모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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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창세기 2019년 창세기 5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9.04.07 244
121 창세기 2019년 창세기 4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9.03.29 222
120 창세기 2019년 창세기 3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3.17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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