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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요한복음
2018.12.23 13:24

2019년 신년 1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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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신년 1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요한복음 17:1-26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21)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셨습니다. 죽으시기 전 마지막 식사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꼭 들려주시고 싶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포인트는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그 내용은 요한복음 13장부터 16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17장에서 기도하십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기도하셨다는 기록이 많이 나타납니다. 큰 역사 후에는 언제나 조용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마태복음 14:22). 또한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가르쳐주셨습니다(마태복음 6:9-13). 그리고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예수께서 하신 기도.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시는 기도가 있습니다(마태복음 26:39).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기도하신 내용이 자세히 나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는지에 대한 기록은 아마 본문이 유일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도란 무엇입니까? 자신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이제 하루 후면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님의 기도내용이 무엇입니까? 이 기도에 나타난 예수님의 간절한 소원은 무엇입니까?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1-5)

1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신 후 이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첫마디가 무엇입니까? “아버지여!” 예수님은 먼저 죽음을 앞두고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아버지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의 때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이때를 향하여 오셨습니다. 이제 드디어 그 때가 온 것을 아시고 아버지께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기로 결단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십자가 죽음을 어떻게 보십니까?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 아버지께서 자신을 영화롭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아들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자신이 영화롭게 되는 것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까? 이 죽음은 세상의 모든 저주와 비난, 멸시, 모욕, 희롱을 당하는 끔찍한 고통가운데서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음 권세를 깨고 부활하십니다. 가장 비참하게 죽으시고 그 죽음에서 깨어나심으로 가장 영광스럽게 되십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자신과 하나님이 영화롭게 되기를 바라십니까? 2절을 봅시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3절을 봅시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영생은 글자대로 하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적으로만 영원히 산다면 영생은 도리어 지겨울 것입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언제까지나 되풀이 되고, 계속해서 허겁지겁 출근해서 파김치 되어 퇴근하고, 무엇보다 죄와 질병과 죽음이 주는 고통 속에서 영원히 살아야 한다면 누가 영생하고 싶겠습니까? 진정한 영생은 시간적으로 영원할 뿐만 아니라 악한 세상과 육체의 한계로부터 구원을 얻는 행복한 삶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깊이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그동안 이 땅에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4절을 봅시다.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미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하라고 주신 일, 곧 십자가 죽음을 통해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가 회복되기를 소망하십니다. 이에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기도하십니다(5).

자신을 위한 기도를 마치시고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제자들을 위해 예수님을 무엇을 기도하셨습니까?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6-20)

다같이 6절을 봅시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여기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은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택하시고 세우신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가리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신 자들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이용 가치로 평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보았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귀한 사람들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고 섬기셨습니다. 오래 참으시고, 그들의 냄새나는 발을 손수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하셨습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이란 그 사람의 허물과 약점을 보지 않고 하나님 편에서 그를 보는 것입니다. 그의 인간 조건보다 그에게 두신 하나님의 크신 뜻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자매들을 볼 때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것, 하나님이 맡겨주신 귀한 사람들로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같이 소중한 제자들을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6절 상반 절을 다시 봅시다.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습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우리 의 아버지이신지, 또 얼마나 공의로우시며 진실하시며 지혜와 능력이 많으신 분이신지를 나타내셨습니다.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심으로 나타내셨습니다(8). 그러자 그들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말씀을 지켰습니다(6). 또 예수님이 주신 말씀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을 알았습니다(7). 또한 아버지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예수님이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알고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신 줄도 믿었습니다(8).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위하여 무엇을 비십니까? 9-11절을 봅시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네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을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이제 예수님은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고 아버지께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해 달라고 하십니다. 보전하셔서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하십니다. 이로볼 때 세상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것으로 온전하게 있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될 수 있으면 하나 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다투게 만듭니다. 불신하게 만들고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랑이 식게 만듭니다. 분열시키고 무너지게 합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하신 일은 예수님께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 중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보전하고 지킨 것이었습니다. 다만 멸망의 자식이 그 중에 하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12). 또한 지금 아버지께로 가시기 전 예수께서 세상에서 이 말을 하시는 것은 제자들을 근심하게 하려 함이 아니라 그들로 예수님의 기쁨을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입니다(13).

그러면 세상이 제자들을 미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4절을 봅시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한마디로 제자들이 예수님이 주신 말씀으로 인해 그 속함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속함이 달라졌기 때문에 세상은 다시 자신에게 속하게 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끊임없이 유혹하고 핍박할 것입니다. 미워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올라가셔야만 합니다. 제자들은 할 수만 있다면 예수님께서 자신들도 데려가 주시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15절을 봅시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예수님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으로 보내실 것입니다(18). 세상 만민의 영혼이 제자들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세상에서 제자들을 데려가시기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시고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해주시도록 기도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될 뿐 아니라 또 어떻게 되도록 기도하십니까?

16,17절을 봅시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제자들이 악한 세상에 빠지지 않고, 세상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거룩해져야 합니다. 거룩이 무엇입니까? “거룩은 세상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곧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 풍조를 따라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거룩하게 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아버지의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곧 제자들이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떠나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특별합니다. 그러나 말씀공부를 게을리 합니다.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자 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없으면 그릇 가게 되어 있습니다. 지식이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합니다(잠언 19:2). 또 어떤 사람은 기도만 열심히 하고자 합니다. 그것도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귀를 돌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합니다(잠언 28:9). 이 시대 많은 사람이 명목상의 신자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사람들은 영적 성장이 멈춥니까? 왜 신앙생활의 기쁨이 없고 열매가 없습니까? 거기에는 단 한 가지 이유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맛있게 잘 섭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디모데후서 3:17).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영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히브리서 4:12).

저도 말씀 없이 제 나름대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였습니다. 밤을 새우며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본문 말씀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를 전하려 하기보다는 제가 알고 있는 바를 전하고자 할 때가 많았습니다. 여름수양회 프로그램을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라고 목자님이 물으면 제 입에서 래프팅 예약이 되었다고 해서 제 별명이 래프팅 목자인 적도 있습니다. 그랬던 제가 이제는 성경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먼저 알고자 노력합니다. 한주 동안 저 자신이 말씀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형제자매들과 대화를 할 때 저도 모르게 제 입에서 세상적인 말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 배려하지 못하고 있는 제 모습이 스스로 보일 때는 속이 무척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제가 조금은 거룩해 진 것 같기도 합니다. 무엇이 저로 하여금 이런 변화를 가져오게 한 것입니까? 그동안 듣고 받은 진리의 말씀들이 제 속에 쌓이고 쌓여서 역사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면서, 진리의 말씀이 제 속에 쌓인 것은 예수님의 기도로 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고 계십니다(로마서 8:26). 예수께서 제게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기도를 듣고 읽게 되어 감사합니다. 주께서 저를 계속하여 사랑하신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제 앞에 펼쳐질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저를 아시고 저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주의 말씀을 꾸준하게 읽고 묵상하도록 주께서 저와 우리를 붙드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들도 다 하나가 되게 하소서(20-26)

다같이 20,21절을 봅시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을 위함이 아니요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게 될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기도 제목은 그들도 다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가 된다는 것은 획일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어느 정도 하나이십니까?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하나입니다. 수학에서 AB에 속하고, BA에 속하면 AB입니다. 이처럼 아버지와 아들은 두 인격이지만 완전히 하나입니다.

우리는 모두 독립적인 인격체입니다. 인격체의 특징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개성이 다르고 은사가 다릅니다. 성격이 다릅니다. 모양이 다릅니다. 세상에 같은 모양의 사람, 같은 성격의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 우리는 모두 자기중심적입니다. 어떤 예수님 믿는 두 사람이 언쟁을 하였습니다. 아무리 다투어도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말합니다. ‘, 이제 그만 둡시다.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시오! 나는 주의 길을 가겠소!’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어떻게 하나님과 하나 되셨는지를 보면 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나님과 하나가 되셨습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부터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셨습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놓인 아기로 오셨습니다. 일생을 드려 아버지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십니다. 이로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셨습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나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할 때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될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납니까? 21절 하반절을 봅시다.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세상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 주셨음을 믿게 됩니다(요한복음 3:16).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외부 사람들은 우리가 말로만 사랑을 전하는가 아니면 실제로 우리가 사랑하는 삶을 사는가를 봅니다. 1세기 당시 기독교인들은 적은 무리였습니다. 거대한 로마제국에 비하면 그들은 참으로 초라한 집단이었습니다. 로마는 영원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결국 로마는 기독교에 의해 정복당했습니다. 기독교에 무슨 힘이 있었기에 그렇게 되었을까요? 사랑의 힘입니다. 로마시대에는 유약한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는 아기를 갖다 버리도록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그 버려진 아기를 데려다 길렀습니다. 로마시대에는 성에 대한 윤리의식이 약했습니다. 로마 남자들은 첩을 두었고 정절에 대한 개념이 약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 남편들은 자기 아내만을 사랑하며 정절을 지켰습니다. 로마 사람들이 이러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고 말했습니다. ‘보라! 이들은 얼마나 뜨겁게 서로 사랑하는가! 이들은 서로를 위해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가!’ 이들이 본 사랑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공동체를 통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습니다.

전도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 여기에는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사랑이 넘치는구나. 나도 여기에 속하고 싶다!” 이것이 효과적인 전도입니다. 형제자매들은 모르는 것 같아도 다 압니다. 냉랭하고 서로에 대해 무관심한지, 뜨겁게 사랑하는지 다 느끼고 압니다.

저도 센터에 처음 왔을 때 목자님들로부터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이 같은 뜨거운 사랑을 느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믿어주고 섬기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로서 제가 사랑에 눈뜨고 나도 이런 사랑을 받고 누리고자 이곳에 남았고, 이 사랑을 증거 하는 삶을 증거하고 싶어 목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하나 되어 이같이 뜨거운 사랑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사랑을 찾아 헤매는 캠퍼스 형제자매들을 보내셔서 저처럼 이 사랑을 보고 믿게 하실 것입니다. 지난 한해를 돌아볼 때 우리 가운데 이같이 우리 각 사람이 서로 하나 되어 동역하고 사랑하는 역사가 있었음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놀라운 사랑의 역사 생명의 역사 구원이 역사를 친히 이루어 주셨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각 사람이 주님 안에서 하나 되어 더욱 뜨겁게 사랑함으로 2019년 한해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나타나게 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해 무엇을 하셨나요? 22절을 봅시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영광을 주셨습니다. 무슨 영광을 주셨나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은 하나님의 가족이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23절을 봅시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과 또 아들을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 우리 모든 믿는 자들이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모두 온전히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영원히 참여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소원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일임을 믿습니다. 또한 이것이 세상에 대한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메시지임을 믿습니다. 2019년 오는 새해에 우리가 진리의 말씀으로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또 서로 용납하고 한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한복음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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