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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4 15:58

2017 성탄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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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성탄특강                                                                                                           김요한

누가복음 2:1-20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누가복음 2:12)

메리 크리스마스! 기쁘다 구주 오셨네! 기쁜 성탄입니다. 누가복음 2장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우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음을 전합니다. 그 표적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라 하십니다.

우리를 죄와 어두움에서 구원하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어떻게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게 되셨습니까?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1-7)

1절부터 봅시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습니다.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었습니다(2). 로마 황제는 호적, 로마 제국 어디에 성별, 나이별로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알아서 제국을 통치하는 기초자료를 삼고자 하였습니다. 세금도 거두고, 군인들도 징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3).

4절을 봅시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약혼한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이미 잉태하였습니다(5). 요셉은 만삭이 가까워오는 마리아와 함께 약 136km, 김해 인제대학교에서 포항 한동대학교까지 정도의 거리를 가야 했습니다.

왜 그렇게 임산부가 그 먼 길을 자동차 없던 그 시절에 가야만 했습니까? 천하를 다스리던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명령이 있어서 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었음을 누가복음은 밝힙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갈릴리 나사렛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말하였습니다(1:26,27).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1:31-33) 그런데 이미 하나님께서는 미가 선지자를 통해 다윗의 자손 중에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베들레헴에 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미가서 5:2).

요셉과 약혼하여 아기자기한 가정을 이룰 꿈을 꾸고 있던 마리아에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셔서 성령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베들레헴까지 가서 아기를 낳아야 했습니다. 가이사의 호적명령을 쓰셔서.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이 예상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생각지도 못하던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천사가 전하는 메시지와 로마 식민지 백성으로서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에 따랐습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그들의 양심에 따라 말씀을 받아들이고 복종하였습니다(로마서 13:1-5). 이로써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로 볼 때 우리 눈에 현실이 이상하게 보인다 하더라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그 현실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현실에서도 여기에 두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면 믿음의 열매를 맺습니다.

실제로 요셉과 마리아가 부딪힌 현실이 어떠하였습니까? 6,7절을 봅시다.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천사가 전한 메시지를 듣고 받은 요셉과 마리아는 가이사의 호적명령이 가혹하게 들렸지만, 참고 머나먼 길을 왔습니다. 그런데 첫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여야 했습니다.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다윗의 후손들인 그들은 왕손인 자신들이 족보를 자랑할 때는 자랑하였지만, 정작 같은 족보에 있는 한 가정의 아기 낳는 것에 대해서는 냉정했습니다. 다들 지쳐 있었고, 자기 자리를 내줄 힘도 여유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기중심적이었고, 이기적이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나실 때부터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셨습니다(마태복음 8:20, 누가복음 9:58). 예수님은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나실 때부터 버림을 받으셨고, 머리 두실 곳 없이 사시다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를 처음부터 그대로 바라보고 감당해야 하는 요셉과 마리아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그러면 우리가 보아야 할 그리스도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8-14)

그때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8).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그 밤에 뭐하고 있었을까요? 서로 자기들 양 떼에 대해 얘기 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요즘 어때, 양들이?’ ‘뭐 다 그렇지 이기적이야.’ ‘이기적이지 않은 양이 어딨어?’ ‘사람은 어떻고?’ ‘그러게 말이야.’ ‘나도 이기적이니’ ‘세상이 다 그래. 캄캄해 앞날이..’ ‘그래도 내 양은 내가 지켜야지’ 이러고 있지 않았을까요.

9절을 봅시다.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였습니다.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겠습니까? 이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10절을 봅시다. “무서워하지 말라” 무서우면 아무 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일단 그들에게 있는 무서움을 없애주셨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온 백성, 세상에 있는 모든 백성, 이기적이든 아니든 모든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그들에게 전한다 하였습니다.

무슨 소식이 그렇게 크고 기쁜 좋은 소식입니까? 1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사람들은 지금 좀 힘들더라도 내일에 이루어질 소망을 가지고 오늘은 참고 지냅니다. 그런데 천사는 오늘 그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 합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 임산부를 여관에 머물게 할 수 없는, 그 여유가 없는 그 곳, 베들레헴에서 누구도 아닌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다고 소식을 전합니다. “구주” 죄로 인해 고통하며 떠내려가다가 심판 받을 사람을 건져내시는 구주,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주님, 곧 사람들의 모든 이기심으로부터,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죄로부터 건져내시는 주님, 곧 그리스도 주께서 오늘 나셨다고 전하였습니다.

오늘 나실 구주는 곧 그리스도 주, ‘왕’이십니다. 사람들의 이기적인 본성으로 인해 시기하고 다투고 싸우고 아파하는 그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분은 공의와 정의로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이사야 9:7). 이사야 9장 6절에서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나심으로 우리를 기묘하게, 원더풀하게,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으로 다스리신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목자들에게 그들이 보아할 표적, 기적 같은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습니다. 12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표적.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기적 같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아기로 오셨습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표적이라 하면 무엇인가 번쩍 번쩍 빛나는 일이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우리를 위해 구주로 오신 그리스도 왕의 표적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입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표적은 금방 태어난 아기입니다. 무엇보다 보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었습니다.

왜 그리스도 구주께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었습니까? 가이사의 명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힘없는 비천한 존재였습니다. 여관에 있을 곳이 없어 구유에 뉘인, 비천하고 가난한 존재입니다. 요셉에게 돈만 좀 있어도 여관 주인에게 ‘이 정도면 안되겠어요’ 하면 금방이라도 어찌하든지 방을 내어 놓았을 것입니다. 권력에 의해 핍박 받는 존재였습니다. 사람의 이기심으로 인해 소외 받는 존재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왜 이렇게 세상에 오십니까? 구주로 오십니다. 구주는 사람을 죄로부터 건져내십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이신 보호받고 비천하고 가난하고 버림 받은 그 모습이 우리가 보아야 할 표적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내가 무엇인가 가진 것이 있어야 무엇을 해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력을 가지고자 합니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해서 힘을 기르고자 합니다. 가이사 아구스도와 같은 강력한 권력을 만나 몇 번 당하다 보면 위축이 됩니다. 동시에 힘을 가지고자 애를 쓰게 됩니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이런 사람들을 다 감당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이신 아기로 오셨습니다. 이보다 더 비천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전에 어떤 자매가 말하기를 자신이 집안에서 원치 않는 아이로 태어나 할아버지가 갓 태어난 아기인 자신을 추운 날씨에 다락방에 놔두었다고 하였습니다. 엄마가 며칠을 애를 끓다가 아이를 다시 품에 안았는데 살아났습니다. 그 자매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아기로 오신 구주의 소식을 듣고는 예수님은 자신보다 더하다 싶어 눈물이 났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는 사랑이십니다. 왜 이렇게 까지 해서 이 땅에 오셨을까요? 사람을 어찌하든지 살리고자 하시는 사명입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사명인의 삶을 살고자 합니다. 사명. 멋있습니다. 한 때는 우리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헌장을 만들어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사명은 사람의 생명을 위축시킵니다. 사명을 가지는 것은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연약함을 아시고,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사람을 위해 가장 낮고 가장 비천한 몸으로 오셨습니다. 사랑이 있음으로 주님께서 이를 능히 감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목자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너희가 가서.. 아기를 보리니” 하였습니다. 가야 표적을 볼 수 있습니다. 가야 합니다.

천사가 전하는 소식과 아구스도가 전하는 소식은 완전 다릅니다. 저의 삶을 생각해볼 때 참으로 기적같은 삶입니다. 대학 1학년 때 저는 성탄에 친구들과 함께 분식집을 빌려 올나잇을 하였습니다. 그랬던 제가 수십년이 지나 오늘 성탄에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아구스도, 빌라도의 길을 꿈꾸면서 나의 이기적인 본성을 따라 살던 저에게 주의 종들을 보내셔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아기를 보라 하셨습니다.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아기를 보는 이 길은 어느 누구에게나 기적 같은 일입니다.

표적을 보리라 천사가 메지시를 전하자,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13).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찬송하였습니다(14).

천사의 메시지를 들은 목자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찾아서 보고 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하며 돌아가니라(15-20)

15절을 봅시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였습니다. 캄캄한 밤중에 자기 양떼들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의 메시지가 들리자, 그들의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어둡던 그들의 마음에 빛이 비취었습니다. 그들이 지체하지 않고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 갔습니다(16). 보고는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였습니다(17).

누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이 땅에 오시게 되었는지 자세히 미루어 살피면서 사가랴, 엘리사벳, 마리아, 목자들이 그들이 듣고 본 그대로 전한 것을 그대로 우리에게 전하여 줍니다.

그러자 듣는 자가 어떻게 했습니까? 18절을 봅시다.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였습니다(19).

같이 20절을 읽어봅시다.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그들은 천사가 전해준 그대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아기를 보고는 거기서 같이 살자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자기들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습니다. 실제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고 은혜를 받으면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성경대로 사는 것일까 싶습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딱 붙어서 강단에서 서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으로 볼 때 목자들은 그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 갔습니다. 실제 삶으로 돌아 갔습니다.

이제 후로 그들이 자기 양떼를 칠 때 어떻게 했을까요? ‘메에..’ 하고 가는 양들이 있다 하더라도,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이신 아기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아..에.. 얘기라도 좀 들어보자’ 하지 않았을까요?

믿음으로 사는 삶이 어떤 삶인가를 목자들이 잘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인제 역사를 돌아볼 때 실제 삶에서 믿음으로 사는 삶이 증거되어 온 것을 봅니다. 최근에 결혼한 목자님은 믿음으로 결혼하기로 결단할 때 몇초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왜 그랬을까요? 정신이 나갔을까요? 아니면 평소에 결혼할 자매라고 마음에 품고 있다가 ‘예’ 했을까요? 그가 말하기를 믿음의 선배들의 삶을 보고 믿음으로 결혼하기로 결단하였다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이혼하지 않는 가정을 보면서 결단하였다 하였습니다. 실제 삶에서 믿음이 증거된 결과입니다.

형제 장막에서 한동안 몇몇 형제들이 많이 같이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티닥티닥 많이 다투었습니다. 어떤 형제는 자다가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서 자는 형제를 팔로 쳤습니다. 각자 다 서로 ‘이기적이다. 자기 밖에 모른다’ ‘먹을 것도 숨겨 놓고 먹는다’ 툴툴거렸습니다. 그 형제들이 말씀을 듣고 받는 가운데, 어느날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또 어느날 갑자기 선교사로 또 나갔습니다. 남은 형제들은 목자로 남아 인제역사에 큰 기둥이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있는 그 나라 그곳에서 양들을 섬기는 목자가 되어 있습니다.

자매 장막은 거의 매일 눈물을 흘리며 살았습니다. ‘목자도 이기적이고, 양들도 이기적이다’ 하며 얼굴은 굳게 하며 살아 내었습니다. 그러면서 들은 바 말씀을 따라 예수님을 보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믿음의 본이 되고 있습니다. 세계 가운데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려면 그야말로 시간이 부족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역사는 계속 될 것입니다. 아멘! 왜냐하면 우리가 보아야 할 표적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언제라도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로 오신 우리 구주 예수님을 때마다 기억하고 붙들어, 우리 각 사람이 이 시대에 기쁨으로 실제 삶에서 생명과 빛과 사랑을 누리고, 실제 삶에서 주의 뜻이 무엇인지 찾고 전하는 목자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누가복음 2:12)

 

2017년 성탄메시지 누가복음 0201-0220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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