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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여름수양회 주제 6강 메시지 천모세

요한복음 21:1-25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한복음 21:15)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습니다(1). 그 후란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후, 부활하신 몸으로 제자들을 두 번 찾아오신 이후의 일입니다. 처음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첫 째날 유대인들이 두려워 모인 곳의 문들을 닫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예수님의 못 박힌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20:20). 두 번째는 예수님의 손의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으며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다 하는 도마에게 직접 못 자국 난 손과 창으로 찔린 옆구리를 만져보게 하시고 그에게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20:27). 예수님께서 두 번이나 부활하신 몸으로 보이셨음에도 또 제자들을 찾아오십니다. 왜 또 제자들을 찾아오실까요?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었습니다(2).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로 가노라 하자 같이 있던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습니다(3상).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배도 버려두고 따랐었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기에 버렸던 배에 다시 올랐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시고 창으로 찔린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쏟아지는 현장을 생생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바로 앞에서 보았고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님의 창에 찔린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증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평강을 허락하시며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과 같이 세상 가운데 보내시겠다 하셨습니다(20:21).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하늘 나라로 가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 보내십니다.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성령을 주십니다(21:22).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제자들이 세상 가운데서 할 일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셨습니다(20:23). 예수님은 하늘 나라로 가시며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 내버려두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약속하시고 사명의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더 이상 제자들 곁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없이 함께 모인 제자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그들이 모여서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을 어떻게 감당할지 의논하고 전혀 기도에 힘썻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혼란스럽고 두려웠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본 것은 맞는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것은 맞지만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셨지만 나는 어떻게 될지? 이런 풀리지 않는 고민 가운데서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유대인들의 표적이 된 그들이 사명의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 하였습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 일을 하다가 개죽음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자꾸만 염려가 쌓이고 두려워서 기도할 힘도 없었습니다. 사명대로 살지는 못 하겠고 이대로 굶어죽을 수는 없어 예수님의 수제자인 시몬 베드로는 나는 물고기 잡으로 가노라 하였습니다. 아무도 그의 말에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답이 없기는 그들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였습니다(3상).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버려두었던 배에 올라 밤새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습니다(3하).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은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겠고 먹고는 살아야 해서 밤새도록 그물은 던지지만 빈 그물을 들어올리는 그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생활인의 삶을 사는 것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사명인의 삶도 생활인의 삶도 실패하였습니다.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였습니다(4). 그들은 앞에 있는 예수님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먹고 사는 일에 기진맥진하여 앞을 볼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십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5).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밤새도록 수고해도 물고기 하나 없어 낙심하고 절망하고 있음을 아십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어떻게 대답하였습니까? 제자들은 없나이다 하였습니다(5). 자신들이 현재 물고기가 없음을 있는 대로 말하였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빈그물만 들어올리는 절망적인 상황임을 있는 그대로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사명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 해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비록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대로 살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할지라도 찾아와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기 없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다그치기보다 그들의 상황과 형편을 이해하시고 인격적으로 도와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찾아와서 말을 걸어주실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향을 주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6상).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이에 던졌더니(6하). 그들은 밤이 새도록 물고기를 잡고자 하였지만 잡지 못하였습니다. 어부 출신인 베드로는 물고기가 잡힐 만한 곳에 그물을 한 번씩은 던져 보았을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였지만 안 된다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 더 이상 제게 요구하지 말아주세요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씀하시니 이에 던졌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하였습니까?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습니다(6). 그들이 말씀에 따라 그물을 던졌을 때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실패를 만회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넘어서는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내가 열심히 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얻게 되었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예수님을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라 하였습니다(7상). 베드로는 주님이라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7하). 그는 예수님이라는 말만 들으면 가장 먼저 달려갑니다. 바다에 뛰어 내려서라도 예수님에게 최대한 빨리 가고자 하였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가지고 왔습니다(8).

저는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으로 의대를 가고자 하였지만 수능에서 턱 없이 모자란 성적을 받고 부산대 생명과학부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수능에 대한 미련이 있어 4월 말에 휴학을 하고 재수 학원에 등록을 하여 정말 하고 싶은 공부였기에 한 달간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였고 가파르게 성적이 상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후로 이상하게도 자리에는 앉아 있으나 집중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의대를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도 있고 공부할 시간도 있고 여건도 마련이 되었는데 집중이 잘 안 되고 근심과 걱정만 자꾸 생겼습니다. 무식하게 자리에는 앉아 있어도 성적은 도리어 처음보다 떨어졌습니다. 밤새도록 수고하나 물고기가 없는 제자들과 같이 노력한 만큼 결과가 없는 삶으로 인해 절망이 되었습니다. 재수 시절 함께 공부했던 고등학교 친구는 교회 간다고 주말에는 공부하러 잘 오지도 않는데 계속 성적이 올랐습니다. 저는 내가 예수님을 놓치고 있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렇게 앉아 있어도 성적이 안 오르는데 교회 갈 시간 어디 있느냐며 1시간 예배드리고 바로 공부하러 왔습니다. 그렇게 금방 시간이 흘러 수능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의대를 가기에는 한참 모자란 성적을 받았습니다. 이후 학교에 복학하고서 다시 미련이 남아 시험을 쳤지만 또 떨어졌습니다. 저는 원하지 않는 학과에서 공부를 하는 것도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고 대학교에서 학점을 얻는 것도 만만하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군대를 갔다오면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하여 의경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하였고 제대와 함께 말씀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의학전문대학원이 생긴다 하여 점점 더 경쟁이 치열한 학과의 분위기에 잘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미생물 분류학이라는 과목의 중간 시험을 치기 전 날 저는 머릿속이 하얗고 다음 날 시험에서 백지를 쓰고 올 것 같아 밤새도록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이것저것 나름대로 열심히 본 것 같은데 머릿속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허탈감이 들었습니다. 바로 앞에 있는 시험을 앞두고 저는 멘붕이 되었습니다. 저는 포기할까 하다가 이것만이라도 하자 하며 10문제를 준비해서 갔는데 시험이 그대로 나왔습니다. 이후 저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리시리라(마 6:33)는 말씀을 붙들고 김해와 부산을 오가며 말씀공부를 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고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몰라 막연히 두렵던 삶에서 조금씩 믿음으로 도전하고 승리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안 되니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의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며 2배수로 뽑는 수시모집 1차까지 합격을 하였지만 면접에서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받고 아무 말도 못하고 면접관 앞에서 어색한 침묵을 지키고 나왔습니다. 정시모십에서도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해 또 떨어졌습니다. 김요한 목자님께서는 저의 졸업식에 오셔서 이제 그렇게 도전했는데도 안 되니까 그만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자 봅시다. 천모세 목자 말고 될 만한 다른 사람이 쓰임받도록 기도합시다 하지 않으시고 천모세 목자가 김해와 부산을 오가며 말씀을 섬기고 새롭게 시험에 도전하고 양산캠퍼스 개척의 그루터기로 쓰임받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실패 가운데서도 절망하였지만 이 기도를 들을 때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새해 첫날 기도모임을 하며 양식 말씀에서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21:31)는 말씀을 붙들고 아침에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시작하였지만 저는 또 다시 실패할 것이 두려워 앉아 있어도 공부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하고 싶어 시간도 들이고 앉아 있는데 잘 되지가 않았습니다. 이 때 주일 예배에 믿음으로 바다 위를 걷던 베드로가 바람이 무서워 바다에 빠져가고 있을 때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할 때 즉시 그의 손을 잡아주시는 예수님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외쳤습니다. 성적은 작년보다 올랐지만 제가 의학전문대학원에 정시로 들어가기에는 모자란 점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수시모집을 통해서 합격하도록 도우셨습니다. 계속된 실패로 멘탈이 붕괴되어 주저 앉을 자에게 위기의 때마다 말씀을 들려주시고 말씀을 붙들 때 무너지지 않도록 도우심을 체험하였습니다. 문턱에서 번번히 실패하여 원하는 것을 해 보지도 못하고 집에 드러누워 시간을 허비하는 삶을 살던 자를 말씀으로 일으켜 세우시고 의학전문대학원에 합격하도록 하셨으니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겠다고 기도하였습니다.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었습니다(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십니다(10).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자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였습니다.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11). 예수님께서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십니다.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셨습니다(13).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사명은 잡아 온 물고기를 가져오라 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제자들을 먹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사명과 관계없이 잡아 온 물고기라도 버리지 않으시고 이를 먹이는 일에 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사명은 버려두고 고기를 잡고 있느냐 다그치지 않으시고 밤이 새도록 고생한 그들을 먼저 먹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이것이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임을 밝힙니다(14).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부르십니다(15상).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실패를 만회시키시고 주린 그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바로 떠나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말씀을 들을 수 있을 때까지 충분히 기다리시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부르십니다(15중). 예수님께서는 물고기 잡던 요한의 아들 시몬을 부르시고 그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사명의 삶을 살도록 이름을 베드로라 지어주셨습니다(마 4:19). 예수님께서 그를 항상 베드로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야 부르시면 아 나는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삶을 사는 사람이지 하며 정신이 차려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를 베드로라고 부르지 않으시고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명을 앞세워 그에게 요구하기보다 그의 존재를 아시고 부르십니다. 때로는 누가 나를 알까 싶습니다. 저는 이제는 양산캠퍼스 목자로, 응급의학과 전공의로, 기려와 요셉이의 아빠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양산캠퍼스 목자로 이번 여름수양회에 한 명도 참석하지 않으면 어쩌나 마음이 무겁습니다. 양산캠퍼스 개척의 그루터기로 쓰임을 받는다고 하지만 양 한 명 없는 자신을 볼 때에 목자로서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리어 목자님들을 통해 소개 받았던 형제 자매들은 몇 번 말씀공부를 하고는 연락조차 받지 않습니다. 양산센타 주일 예배에 김요한 목자님, 모니카 사모님이 매주 오셔서 섬겨 주시지만 참석자는 새롬목자 아버지와 어머니 새롬 목자 그리고 저 이렇게 4명을 넘어가는 일이 잘 없습니다. 이러다가 양산센타 개척은 고사하고 문을 닫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병원의 응급실에서 실수하지 않을까 사고가 생기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캠퍼스 개척을 위해 교수목자로 남고자 기도하나 고난의 길이 예상되기에 시간도 넉넉하고 돈도 좀더 편하게 벌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자꾸만 생각이 듭니다. 자녀들이 믿음으로 자라기를 바라지만 제대로 care를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볼 때 나중에 자녀들이 원망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를 천선조의 아들 천모세야!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가장 잘 아십니다. 저의 연약함을 우유부단함을 마음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쉽게 좌절하는 것을 아십니다. 사명을 감당해보려고 하지만 조금만 어려움을 만나면 못 하겠다고 하는 저를 아십니다. 남들이 저를 몰라도 예수님께서는 저를 다 아십니다. 이 예수님께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15상). 나를 가장 사랑하는지 물어보십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주님 그러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고백하였습니다(15중).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하여 자신의 배도 버려두고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하며 따랐습니다(13:37). 베드로는 주님 아직도 나를 모르십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주님을 위해 내 목숨을 버릴 수 있습니다 하며 큰 소리를 치거나 자신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께서 자신을 아십니다 고백합니다. 베드로는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 하였지만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이나 저주하며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보다 베드로를 더 잘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하실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베드로는 자기보다 자신을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 자신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아신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저주하며 부인하기까지 하고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은 버려두고 다시 배에 오르기도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고전 15:3,4). 베드로는 말씀대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신 예수님, 유대인들이 두려워 다락방에 숨어 있는 제자들을 부활하신 몸으로 두 번이나 찾아오시고 평안을 허락하시고 부활의 믿음을 심으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은 버려두고 다시 배에 오른 그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다른 무엇보다 가장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에게도 천선조의 아들 천모세야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이 시간 제가 무엇을 가장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이 분명하기를 기도드립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았지만 하나님으로 감사하지도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독일 선교사로 가셔서 뇌출혈로 쓰러지시고 저는 아버지가 좋은 일을 하러 독일에 갔는데 왜 아버지가 침상에 누워서 아무 일도 못하게 하시는지 하나님에 대해서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저희와 함께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고 제 좋을 대로 살았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좋아하고 밝아보이나 정욕적인 생각이 머리에서 잘 떠나가지 않았습니다. 대학교에 와서는 자매를 사귀고 금방 자매와 정욕적인 관계가 되었고 이를 안 해야지 했지만 정욕의 노예가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제대 이후에 말씀공부를 하며 제가 죄를 지었음을 발견하였지만 저는 이를 스스로 잘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죄의 세력은 끈질기고 강하여 저는 자매가 임신했을까 두려워 사후피임약을 처방받기 위해 병원에 가서 처방받았고 자매는 비참하다며 울었습니다. 저는 죄의 세력을 잘 컨트롤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저는 죄의 노예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좋은 마음으로 잘 살 수 있다 생각하지만 제 자신도 멸망 아래에 있고 다른 사람도 멸망하게 할 수밖에 없는 자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대로 저는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이런 답이 없는 저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와 물을 다 쏟으시기까지 제가 받아야 할 죄값을 대신 치루셨습니다. 저를 죄 없이 하여 주시고 멸망받을 삶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구원 받은 기쁨이 충만하여 김해와 부산을 오가며 말씀공부를 하였고 캠퍼스에서도 제가 받은 죄사함의 은혜와 말씀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무엇보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였습니다. 이후 양산캠퍼스 개척의 그루터기로 쓰임받도록 기도지원을 받도록 하셨고 실력도 없고 말도 잘 못하는 자를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에 합격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 곳에 보내셨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결단하고 합격소감을 프린트하여 만나는 동기들마다 나누어 주었고, 그 해 여름수양회에 3명의 형제, 자매를 초청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라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다는 말씀을 붙들고 의대에서 낙오하지 않고 유급 없이 졸업하도록 도우셨습니다. 믿음의 결혼도 하고 응급의학과에서 의사로 일하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많은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많이 놓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 고백은 없이 양산캠퍼스 목자요 응급의학과 의사의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 자리가 저를 흔들리지 않게 지켜 줄 것이라 여겼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은 없이 사무적으로 감당하고자 할 때에 더 이상 양도 없고 미국과 서울에서 소개 받았던 양들도 저에게 예수님의 사랑이 없음을 냄새 맡고 떠나갑니다. 응급의학과에서의 일은 자꾸만 버겁게 여겨지고 불평이 생기고 두려움과 염려만 늘어갑니다. 이런 저에게 예수님께서는 천선조의 아들 천모세야 네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어보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은 버려두고 먹고 사느라 두렵고 지친 저를 말씀으로 찾아와 주시며 제가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지 물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는 메시지를 감당하는 가운데 죄로 인하여 멸망할 삶에서 건져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새롭게 붙들게 되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저로 죄사함의 은혜와 생명을 누리게 하신 예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응급 중환자실에 사지는 멀쩡한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여러 종류의 약들을 과량으로 복용하고 의식을 잃은 채로 와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누워 있는 것을 곁에서 어머니가 눈물로 지킵니다. 어머니의 사랑도 죄로 인해 병들고 고통하는 영혼을 구원할 수 없음을 봅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죄로 고통하는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저를 어떤 상황에서도 구원하셨고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주님 그러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가장 사랑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어린 양을 맡기십니다. 저는 내 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예수님의 어린 양이라 하십니다. 예수님의 어린 양을 제가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제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내 것이라 생각하고 내 뜻대로 하고자 했던 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내 양이라 하십니다. 저를 오래 참고 말씀과 기도로 인내하며 섬겨주신 목자님들을 생각할 때 내 자식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섬겨주시는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섬기는 가운데 목자님께서 저를 예수님의 어린 양으로 여기고 먹이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저로 다른 사람을 볼 때에 예수님의 어린 양임을 기억하고 요구하고 내 뜻대로 하기보다 예수님께 어떻게 먹일지 먼저 기도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자기를 앞세우기보다 잘 들을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한 번 두 번 하다가 못 하겠다 하는 자가 아니라 저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되 내려오지 않으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인내하도록 도우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저는 이번 수양회를 앞두고 다들 기도모임을 이루고 초청역사에 힘쓰는데 홀로 응급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메시지에 힘을 쏟고 싶었는데 잘 써지지도 않고 별로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도는 응급의료중환자실에는 대다수가 자살 시도로 왔습니다. 약도 몇십알씩 먹고 농약도 마시고 번개탄도 피우고 의식을 잃은 채 입원을 하였습니다. 제 또래의 형제는 이 더운 날에 가스정화조에서 청소를 하다가 질식을 하여 의식을 읽은 채 내원하였습니다. 저는 이들을 보면서 답이 없어 보이고 무엇보다 나와 별로 상관 없는 사람들로 여겼습니다. 빨리 이 곳을 나가고 싶고 그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말만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별로 마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들도 예수님의 어린 양들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도 여러 실패 가운데 답도 없이 죽을 생각만 하며 지내고 있을 때 저를 예수님의 어린 양으로 여기고 영육으로 먹여주신 목자님들의 사랑이 있었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제가 이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지만 인터넷하고 누워 있을 시간에 한 번 더 가서 괜찮은지 보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누나도 자살을 하고 자신은 직업도 없고 별로 살아갈 이유가 없다 하였습니다. 마침 일용할양식 말씀에 강하고 담대하라는 여호수아 말씀을 읽어주고 그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저는 누워서 쉬고 인터넷 할 때보다 마음이 상쾌하게 기쁨이 있었습니다. 응급중환자실에 갇혀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냐하며 누워 있던 데에서 예수님의 어린 양들을 만나고 이야기할 때 더 힘이 났습니다. 중환자실에 있는 간호사 선생님들과도 이야기를 하고 내가 만난 예수님에 대해서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자 교회를 다니는 charge 간호사 선생님은 저에게 이 자매가 도움이 필요한 것 같다 하며 저와 이야기를 해 보라고 소개도 시켜주었습니다. 그에게 내가 만난 예수님을 증거하고 말씀공부 약속을 하였습니다. 이야기 하다 보니까 또 힘이 생겼습니다. 저는 저에게 주어진 일들이 너무 버겁고 환자들 만나기도 귀찮고 양들도 어차피 다들 떠나가는데 어린 양을 먹여서 뭐하나라는 생각으로 아무 일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쉬면 쉴수록 몸과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졌습니다. 예수님의 내 어린 양을 먹이라는 말씀을 들려주시고 내 어린 양을 먹이라는 말씀에 따라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해 보고자 할 때에 제 자신이 도리어 힘이 나고 생명이 누리게 되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또 두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16상). 예수님께서는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 하십니다(16하). 세 번째 이르시기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세 번이나 똑 같은 질문을 하시는가 싶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세 번이나 물으시니 근심하며 자신이 정말로 예수님을 사랑하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고백하였습니다. 제가 자신을 주장하기보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진실된 고백을 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 사랑을 고백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방향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베드로가 다른 무엇보다 예수님의 어린 양을 먹이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어린 양을 한 번 두 번 좋은 마음으로 먹이는 것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떤 목자님의 소감과 같이 과로사 하다가 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그의 팔을 벌리고 남이 그에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하십니다(18).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입니다(19). 베드로는 젊어서는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의 팔을 벌릴 것입니다. 적대적인 사람들에게 팔을 벌리기 쉽지 않습니다. 웅크리고 자신을 보호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남이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일입니다. 어린 양은 내가 원하는대로 따라와 주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 하십니다(19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고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지는 것을 피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고 장사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가 바라보아야 하고 따라가야 할 분입니다.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고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물었습니다(20,21).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십니다(22). 사람들이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쉽고 편하게 살라고 계속해서 유혹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을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어떻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십니다.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입니다(23).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그임을 밝힙니다(24).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사명은 버리고 밤새도록 수고하나 잡은 것이 없는 제자들을 찾아오십니다. 그들의 고기 없는 문제를 공감하여 주시고 그들의 실패를 만회하여 주시고 주린 배를 배불려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우리 각 사람이 예수님의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어린 양을 먹이도록 방향을 주십니다. 이 말씀이 자신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제게 너무 부담스럽게 다가옵니다. 저로 다만 예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시되 십자가에 달려서 내려오지 않으시고 끝까지 감당하신 은혜만을 붙들도록 도우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리하여 자기만 사랑하는 삶에서 예수님의 어린 양을 감당하는 삶을 살도록 도우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요한복음 21:15)

 

6강 2017 0716 천모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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