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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삼서
2021.12.05 12:24

2021년 요한삼서 1강 메시지(천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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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삼서 1강 천모세

요한삼서 1:1-15

 

 

선한 것을 본받으라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느니라

(요한삼서 1:11)

사도 요한은 교회의 사랑하는 자들에게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합니다. 우리가 누구든지 선한 것은 본받고 싶고 악한 것은 본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선한 것이 무엇이고 악한 것이 무엇입니까?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1-4)

장로인 사도 요한은 그가 참으로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편지합니다(1). 그들은 진리의 말씀 안에서 참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친구 가이오에게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합니다(2). 잘되는 것은 결과가 좋다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행할 때 영혼이 평안할 뿐 아니라 범사에 하는 일들의 결과가 좋고 강건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주의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형제들이 그에게 와서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을 듣고 심히 기뻐하였습니다(3). 사도 요한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가이오는 진리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흔들림 없이 그 안에서 행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기쁜 일이 없다 합니다(4). 사도 요한은 그의 자녀들이 잠깐 있는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뿌리를 내리며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며 기쁨을 누립니다.

가이오는 진리 안에서 어떻게 행하였습니까?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5-8)

그는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라 합니다(5). 여기서 나그네는 순회전도자였습니다. 교회에서 얼마간 봉사하다가 다시 떠나는 자들입니다. 교회에서 오랫동안 함께 하지 않는 자들을 뜨내기 취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이오는 순회전도자들을 대접하였습니다. 그에게 대접을 받은 나그네와 같은 자들은 교회 앞에서 그의 사랑을 증언하였습니다(6).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권면합니다(6).

우리가 교회 공동체 내에서도 잠시 있다가 갈 형제, 자매라고 생각하면 시간과 물질을 내 놓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Give and take, 뿌린 만큼 거두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임에서 목자는 양이 있어야 인정을 받는다 생각하게 되면 나중에 남아서 나를 목자로 생각하고 따를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 생각하고, 선택적으로 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이오는 잠시 있다가 떠날 순회전도자들이라 할지라도 섬겼습니다.

그러면 가이오가 잠시 있다가 갈 순회전도자들을 사랑으로 섬겼을까요? 순회전도자들은 주의 이름을 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하며 일하였습니다(7). 가이오가 사람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주의 일을 위하여 일하는 자들로 여기고 섬겼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다 합니다. 왜 이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합니까?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합니다(8). 순회전도자들은 주의 이름을 위하였고, 가이오는 그들을 섬김으로 진리를 위하여 하께 일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가이오는 주의 이름을 위하는가, 진리를 위하는가에 대한 답이 분명하였습니다. 눈앞에 당장의 열매가 없다고 해서, 사람들의 인정이 있냐 없냐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가이오가 잠시 있다 떠날 순회전도자들을 섬긴 것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일이라 칭찬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가이오 같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권합니다.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9-15)

사도 요한은 그들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있다 합니다(9). 교회 안에서 그는 최고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는 순회전도자들을 맞아들이지 아니하였습니다(9). 사도 요한은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합니다.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았습니다(10).

누구나 으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누가 크냐 다투는 열두 제자들을 부르시고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셨습니다(마가복음 9:34,35).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합니다(11). 선을 행하는 자는 어떻게 합니까? 그는 하나님께 속합니다. 반면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합니다(11). 사람이 어디에 속하고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그 삶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런가하면 교회 공동체에 데메드리오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떠하였습니까? 그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습니다(12). 그는 가이오와 같이 자기가 으뜸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위해 나그네와 같은 사람들을 대접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알아봅니다.

사도 요한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 합니다(13,14). 편지로 권면할 뿐 아니라 대면하여 교제를 풍성히 나누고자 합니다. 그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며 여러 친구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 합니다. 문안하고 문안 받는 것은 사랑의 표현입니다(15).

우리가 이번에 성탄 선물을 몇몇 선교사님들에게 보내며 문안하였습니다. 또한 주 안에서 수고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소식을 들으며 기쁨과 기도제목을 나누며 주 안에서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고자 합니다.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말씀을 따르고자 애를 씁니다. 말씀의 빛으로 자신을 비추어 보고, 자신의 죄가 발견 되면 죄를 자백합니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심을 믿고, 이 믿음으로 성도들 간에 사귐을 가집니다(요한일서 1:6,9). 그는 하나님께 속하며 하나님을 뵈며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과 관계성을 가집니다. 더 나아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이로써 우리가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고 하나님을 뵈옵지 못한다면 세상에 속하고 세상을 보게 됩니다. 세상이 어떠한 곳입니까? 세상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 곳입니다. 끊임없이 내가 무엇을 위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이 없으면, 금방 세상과 짝하기가 자연스럽게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속하며 하나님을 뵙는 것은 세상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내가 할 일도 많은데 하나님께 나아갈 시간이 어디 있는가 하며, 자꾸만 하나씩 줄이고, 한 번씩 안 나가게 되면 자꾸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십니다. 그런데 교회에 온다고 해서 그 사람이 주의 이름을 위하고 진리를 위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내에서도 뜨내기 같은 사람을 섬기는 것을 시간 낭비라 여기고, 사람들이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일에만 시간과 물질을 쓰기가 쉬운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예수께서 매국노라 취급 받는 세리 레위에게도 나를 따르라고 부르셨습니다(마가복음 2:14). 예수님은 사람들이 보기에 별로 소망이 없는 뜨내기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제자로 부르시고 주의 일에 쓰셨습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인제 역사를 가끔씩 오며가며 보아왔습니다. 중학생이었을 때 제 눈으로 보기에 뜨내기 같이 보이던 대학생 형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목자님이 저런 사람들 섬겨서 어떻게 하려나 생각하였습니다. 그 때 의대를 다니고 있던 공부 잘해서 우러러 보던 형, 누나들, 당시 토익 900점 넘던 삼촌은 잠깐 있다가 다 떠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잘 것 없이 보던 형들은 지금은 선교사요 센터의 그루터기들로 존경을 받고 있는 믿음의 선배들이 되어 있습니다.

뜨내기 같은 사람들만 있는 인제 역사에 별로 동참하고 싶지 않았었는데, 저는 많은 실패를 하고 군대에서도 많이 맞고 마음이 가난해져 말씀을 공부하러 왔습니다. 당시 저는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었고 의대 시험에는 세 번이나 떨어지고 말씀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뜨내기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저를 잠시 있다가 갈 사람이라고 소망을 두지 않을 수도 있는데, 목자님께서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섬겨주셨습니다. 말씀 공부해도 크게 나아지는 것 같지 않은 자신을 보며 절망하고 성탄 수양회 때 교회에도 가지 않고, 부산 집에 있는 저를 목자님께서 부산에 있는 집에까지 와서 저를 교회까지 데리고 와서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리고, 한 해 동안 말씀을 공부하며 생긴 감사제목을 써 보도록 도우셨습니다. 제자 양성이라 하여 잘 될 것 같은 사람, 잘 따라오는 사람만이 아니라 헤매고 있는 사람들, 잠시 왔다가 갈 사람이라도 섬기셨습니다.

뜨내기 같은 학생 시절 많은 섬김을 받은 제가 이제 뜨내기 같은 학생들이라 하여 별로 섬기려고 하지 않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 사람은 얼마 있다가 갈 것 같아서 안 섬기고, 이 사람은 다른 목자님이 돕는 양이라 안 섬기고, 이 사람은 별로 소망이 없어서 안 섬기게 됩니다. 저는 세 가정 모임을 이루고 한 번씩 메시지를 섬기고 있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섬기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말씀을 공부하면서 아프리카의 유사무엘 선교사님의 메시지를 듣고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의 일을 위하여 한국에서 의사로서 편하고 안락한 삶을 두고, 우간다로 가서 거짓말과 탐심을 따라 사는 별로 소망 없는 양들을 섬기겼습니다. 한국에도 우간다에도, 집도 없이 섬기며, 다만 저녁 노을을 보며 하나님 나라에 상급이 있을 것을 바란다는 선교사님을 존경하였습니다. 저는 요즘 양산캠퍼스에는 왜 이렇게 양들이 없을까 새롬 목자와 이야기를 푸념같이 자주 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새롬 목자의 작은 아버지가 담낭암에 간전이가 되고, 이 소식을 듣고 할머니가 넘어져 대퇴부 골절이 되어 양산부산대학교병원으로 왔습니다. 한치 앞도 알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 겉으로 보기에 안정적인 직장과 아이들이 있고 집이 있는 저는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어디 놀러가고 싶은 것도 아니고, 어딘가로 가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도 딱히 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의 이름을 위해, 진리를 위해 생각과 마음이 없는 자신이 발견이 되고, 지금 이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대학생 시절 죄로 바닥을 기는 소망 없는 저를 신실한 주의 종들을 통해서 돌봄을 받게 하시고 죄 사함의 은혜와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게 하신 것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제가 지금 여기서 주께 받은 은혜를 새롭게 하고 주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하나님께 속하도록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뜨내기와 같은 양들이라도 먹이고 살리는 일에 쓰임받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선한 것이 무엇인지 악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나그네와 같은 형제자매 한 사람을 섬기는 것이 주께 선한 일입니다. 악한 자는 자기가 으뜸이 되고자 하며 하나님을 뵈옵지 못합니다. 저와 또 우리 각 사람이 복음역사에 쓰임을 받는다 하면서, 때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그 때에, 말씀으로 돌아가, 선을 행하는 것이, 곧 나그네와 같은 자 한 사람을 섬기는 일임을 기억하고 형제를 대접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느니라”(요한삼서 1:11)

 

2021 요한삼서 1강 메시지 0101-0115 천모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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