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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19.01.14 04:57

2018-2019 사도행전 4강 메시지(김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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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9 사도행전 4강                                                                                                                  김요한

사도행전 4:32-5:42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사도행전 5:20)

초대교회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규모가 커졌습니다. 그러자 안팎에서 이런 저런 문제들이 생겼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를 전합니다. 그 근본을 전합니다. 주의 사자가 사도들에게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하십니다. 이 생명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4:32-37)

32절부터 봅시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너무나 이상적인 교회공동체입니다.

어떻게 이런 모임이 되었을까요? 33절을 봅시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 예수의 부활이 증언되었습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었습니다(34).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34,35).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습니다. 부활은 죽은데서 다시 사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예수께서 다시 오실 그 때 주님과 함께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에 있게 됩니다(고린도전서 15:49,50). 이 말씀을 믿고 사는 사람은 지금 여기서 사는 것은 별 의미가 없고, 주님 다시 오실 그 날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이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어놓고 필요를 따라 나누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렇게 빨리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공동체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어떤 문제들이 있었습니까? 36절부터 봅시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잘 대하고 위로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람 만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위로의 아들이라 하였습니다. 그가 밭이 있었는데, 팔아서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나름 똑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기 것을 다 내어놓고 필요를 따라 나눠 쓰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살다가 이 공동체에 모인 것이 다 떨어지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되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를 대비해야 하겠다는 계산이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어놓는 것처럼 하면서 얼마를 감추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 베드로가 그들의 혼을 빼놓았습니다.

 

어찌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5:1-16)

그 나름 똑똑하다는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1). 나름 똑똑한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한참 토의를 한 끝에 그들의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었습니다(1,2). 그 아내도 알았습니다.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다 가져온 것처럼 두었습니다(2).

3절과 4절을 봅시다. 베드로가 이를 보고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하였습니다. 아나니이가 이 말을 듣고 엎드려혀 혼이 떠났습니다(5). 이를 보고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5). 교회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였습니다(6). 빠르게도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 삽비라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7), 베드로가 삽비라에게 물었습니다.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하니, 그가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하였습니다(8). 베드로가 말하였습니다.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9). 그러자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났습니다(10). 죽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였습니다(10).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11).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사도행전은 교회에서 생기는 문제 중 하나인 돈 문제를 확실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 값 얼마를 감춘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초대교회에 정보조직이 있었을까요? 오늘 말씀에 이런 기록은 없습니다.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기를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라 하였고(3), “주의 영을 어떻게 시험하려 하느냐하였습니다(9). 성령을 속였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성령의 충만함이 있었습니다. 성령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성령 외에는 베드로에게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자, 그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하셨습니다(마태복음 16:18). 이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온전하게 그리스도로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곧 베드로는 회개하되 온전히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그가 예수님을 제대로 좇아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또 회개하였습니다(마태복음 26:75). 회개하고 기도하였습니다(사도행전 1:13.14).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에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사도행전 2:2-4). 사도행전 5장에 오기까지 베드로는 회개하되 완전히 회개하였습니다. 곧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이켰습니다.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수님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깨끗하였습니다(요한복음 13:10, 요한일서 1:7,9). 그동안 그가 예수님을 좇으면서, ‘예수님 따르다가 내가 죽는 것 아닌가?’ 하다가, 또 예수께서 죽으신다고 하자, 자신도 죽겠다고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의 말씀을 따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전혀 마음을 다해 기도하였을 때 그에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 눈으로 보니, 깨끗해진 마음과 눈으로 보니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어떻게 하는지가 보였을 것입니다. 회개한 사람에게 성령이 일하십니다(사도행전 2:38).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12).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12,13). 돈 얼마 들고 가서 그 모임에 어떻게 붙어 있으려고 하다가는 혼이 떠나간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제대로 하는 교회를 백성이 칭송하였습니다(13). 그러니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아졌습니다. 돈 얼마 가지고 와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연애도 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무서워서 못 나오고,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있어, 남녀의 큰 무리가 되었습니다(14).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15).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었습니다(16).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마가복음 16:17,18; 요한복음 14:12).

이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은 사람들입니다. 주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자신의 생각과 비록 다르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은 이 사람들은 진실로 이것이 옳은지 그야말로 마음과 힘과 목숨을 걸고 투쟁을 하여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기도하고 약속대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였을 때 이들에게 성령께서 일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마음이 순전한 디모데에게, 말세의 고통 하는 때가 이르는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하였습니다(디모데후서 3:1-5). 자기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괘락을 사랑하는라 하나님 사랑으로부터 멀어진 사람들로부터 돌아서라 하였습니다. 교회 공동체에 나오기는 하는데, 경건의 능력,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베드로와 같은 역사는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분명하게 방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17-32)

17절부터 봅시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 부활이 없다 하는 사람들입니다(마태복음 22:23, 마가복음 12:18, 누가복음 20:27). 이들이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났습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행하는 것을 보고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들은 마음에 시기가 좌악 올라왔습니다. 시기하면 그 시기의 대상을 없애버리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18). 이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같이 19절과 20절을 읽어봅시다.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사도들이 옥에 갇혀 있다가, ‘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탈옥이라도 하자한 것이 아닙니다. 주의 사자가 옥에 갇혀 있는 그 사도들을 끌어내었습니다. 왜 끌어내었습니까? 사도들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께서 사도들을 끌어내었습니다. 사도들 가운데 혹시, ‘아이구 옥에 갇혔으니 잘 됐다. 좀 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용납하지 않으시고, 밤에 끌어내었습니다.

그리고 옥에 갇혀 그러고 있지 말고,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하였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말하되 다 말하라 하였습니다. 자신의 편의대로 뺄 것 빼고, 더할 것 더하고 그러지 말고 다 말하라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구석에서 기도하는 것도 아니고, 성전에 서서 다 말하라 하였습니다. 성전은 시기에 잡힌 대제사장에게 잡혀 옥에 갇히게 된 곳입니다. 또 그곳으로 가서 다 보이도록 서서 말하라 하였습니다. 그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21).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였는데(21), 부하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서(22),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하였습니다(23).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고 있는데(24), 사람이 와서 알리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하니(25), 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26).

사도들은 옥에 갇혀 있다가도 끌어냄을 당하여 생명의 위협이 시퍼런데도 생명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여기 까지 볼 때 이들은 부활을 믿은 것이 확실합니다.

이런 사도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고 대제사장이 묻기를(27),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하였습니다(28). 대제사장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단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습니다(29).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29) 왜 그렇습니까? 다같이 30절과 31절을 읽어봅시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생명의 말씀의 핵심내용입니다. 그들이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이스라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셔서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습니다. 이 말씀이 사람들에게 생명을 줍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이 일에 증인입니다. 성령께서 그들을 이렇게 하게 하셨습니다(32).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면 세상에서 어떻게 됩니까? 능욕을 당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고 멸시를 당합니다. 누가 자신이 멸시당하고 능욕당하는 것을 좋아할까요? 당시 베드로와 사도들이 세상에 살면서 능욕을 당하였습니다. 이런 때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여겼습니까?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을 기뻐하면서(33-42)

사도들이 전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대제사장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하였습니다(33). 시기하게 되면 그 대상을 없애버리고자 하게 됩니다. 34절을 봅시다. 이때 바리새인 가말리엘이 말하였습니다. 그는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였습니다. 어느 시대이든 이런 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가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였습니다. 가말리엘은 공회원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고자 하였습니다.

그가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하였습니다(35). 그래서 예를 들어주었습니다.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습니다(36).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습니다(37). 그래서 가말리엘의 권고는 그들이 제자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는 것입니다(38). 그 사상과 그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였습니다(38,39). 그들이 가말리엘의 권고를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분풀이를 하고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았습니다(40).

이때 사도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같이 41절을 읽어봅시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미쳤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에 완전히 미쳤습니다. 미쳐도 제대로 미쳤습니다. 사람이 능욕 받고 멸시 받는데도 이를 기뻐하는 것은 미친 일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하였을 까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고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들이 능욕 받으며 기뻐한 이유는 그 이름을 위하여입니다.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베드로와 요한이 일어나 걷게 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였습니다. 긔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이 돈으로부터, 명예로부터, 온갖 욕심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필요에 따라 나누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는데 쓰임 받았습니다.

사도들이 이렇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기도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할 일을 합니다. 말씀 듣고 회개함이 없이 기도하지 않고 성령의 충만함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시비 걸고, 시기하고 없애버리고자 합니다. 사도행전 5장 말씀의 그 현장 기록입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사도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습니다(42). 성전의 삶과 집에서의 삶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전도는 삶을 통해서 말씀이 증거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의 제가 신기합니다. 몇 년 전에는 스스로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제 모습입니다. 성질부리고, 고함지르고,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리던 사람이었습니다. 때로는 예전의 그 모습으로 돌아갈까 염려가 되고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전 죄인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치매가 무섭습니다. 저는 제 모습에 스스로 절망하면서, 제가 가장 절망스러웠을 때 저를 부르신 예수님,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병든 저를 부르시며,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하셨습니다(마가복음 2:17). 이 말씀은 죄로 인해 병들어 죽어가던 제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제게 스스로 개척하라말씀을 붙들게 하시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김해로 보내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은혜를 많이 나누어졌지만 또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십년이 안 돼 저의 아내가 갑자기 제 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저는 죄인인 저를 부르신 주님의 뜻을 알고 싶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에서 바울 사도의 고백을 듣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 사도가 증거합니다(2:1-5). 그는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고린도에서 말씀을 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가 고린도 사람들 가운데 있을 때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었습니다. 그는 전도할 때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였습니다. 이는 그들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은 사람의 말과 지혜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생각을 넘어서는 것이 생명의 말씀입니다. 신실하게 고기 잡고 살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 사람을 살리는 일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일이 너무 좋아서 그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고난 받고 죽임 당하고 다시 사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신실한 형제가 질문하였듯이, ‘왜 죄 없으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 하는지?’ 납득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가, 사도 바울이 여러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님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으면서, 우리의 믿음은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말과 지혜로 되었다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저도 사도 베드로와 같이, 사도 바울과 같이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살고 싶습니다.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알고 싶습니다. 그래서 말씀 읽는 것이 새로운 것이 보이는 어드벤처이고 재미가 있습니다. 제가 저 자신을 주장하면 이 어드벤처에 나설 수가 없습니다. 재미도 없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들은 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들고 믿어 캠퍼스 형제자매들에게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말하기를 기도합니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사도행전 5:20)

 

2018-2019년 사도행전 4강 메시지 0432-0542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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