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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2 19:03

2017년 누가복음 9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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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9강 김요한

누가복음 4:16-44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누가복음 4:43)

봄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캠퍼스 전도의 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전도를 해야 합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도하러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누구에게 무엇을 전하려 오셨습니까?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16-30)

16,17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그 시험들을 말씀으로 물리치신 후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셨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셔서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셔서 읽으셨습니다.

이사야 611,2절을 읽으셨습니다. 18절과 19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이 구절을 읽으신 후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주목하여 보았습니다(20).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21) 예수께서 읽으신 이사야 611,2절이 지금 여기서 실제로 이루어졌다고 예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어떤 말씀이 이루어졌습니까? 다시 18절과 19절을 봅시다. 주의 성령이 예수께 임하셨습니다. 성령이 예수께 임하신 목적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 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께 기름을 부으시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은혜입니다. 포로 된 자, 어딘 가에 매여 있는 자가 스스로 빠져 나오지 못해 끙끙거리고 있는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은혜입니다. 눈이 멀어 앞이 보이지 않아 늘 엉뚱한 일을 하고 실패와 패망의 길로 가던 자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은혜입니다. 눌리고 눌려 지내면 속 앓이 하는 사람이 그 눌린 데서 자유롭게 되는 것은 그야말로 은혜입니다. 이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성령을 받으시고 복음을 전하심으로 이 은혜의 날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은혜의 날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사야 말씀을 읽으면서 그토록 기다려왔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에 기록된 대로 이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이같이 복음을 전하시는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이들에게 예수께서 이사야 말씀을 찾아 읽으심으로 말씀에 따라 자신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그리스도로 오셨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22절을 봅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다 그를 증언하였습니다. 예수님 하신 말씀에 모두 감탄하였습니다.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사람들은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감탄하며 놀랐습니다. 감탄하고 놀라면서 자신들을 그렇게 놀라게 한 사람을 다시 보니 그 사람은 자신들이 잘 알고 있던 요셉의 아들이었습니다. 목수 요셉의 아들, 자신들과 같은 시골 마을에서 어릴 때부터 자라나는 것을 보아 온 그 요셉의 아들이었습니다. 놀라고 감탄하였던 마음이 사라지고, 갑자기 요셉의 아들이 무슨 저런 놀라운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멸시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예수께서 이를 아셨습니다 43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런 그들에게 이르셨습니다.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제가 지금 여기서 학생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면 저의 사촌 누나들은 니가?’ 라 합니다. 80이 넘은 그 누나들은 제가 어린 시절 친척 분들이 제게 니는 뭐 먹고 컸노라 했을 때 겨우 말하기 시작했던 제가 뙨장 먹고요하던 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면서, ‘뙨장 먹고 컨 니가라 합니다. 사람들은 놀라운 말을 듣고도 그 말하는 사람의 예전 일을 기억하면서 그 놀라운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합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으로 돌아가 예수께서 하신 바를 보아야 하겠습니다. 44절을 봅시다.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쉽게 바꾸지 않으려 합니다.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또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25절에서 27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쉽게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하신 증거입니다.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습니다. 이들은 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라, 시돈 사람, 수리아 사람, 다른 동네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은혜를 받은 것은 그들이 들은 바 말씀을 믿고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지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이 은혜를 받습니다. 이것이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지라는 예수님의 증거를 듣고 그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28절을 봅시다. 회당에 있는 자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났습니다. 말씀을 듣고 놀라고 감탄하기도 하였지만 예수께서 그들이 믿음 갖도록 하시는 권면을 책망하는 것으로 알아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책망은 잘 알아듣는 것 같습니다. 29절을 봅시다. 화가 난 그들은 우르르 일어나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까지 하는가 싶지만, 이렇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무섭습니다. 고향 사람들이 더 무섭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30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예수님은 움추려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밀어뜨리려는 사람들 사이로 당당하게 지나가셨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화가 나서 행하였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을 하려 하셨습니다.

이로 볼 때 우리 자신이 움츠릴 수 있는 상황에서 지금 여기서 내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스스로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이 무엇인지가 확실하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받아서 자신이 할 일이 분명해지면 어떤 상황에서도, 무서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그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래서 어떤 일을 행하셨습니까?

 

온갖 병자들을 일일이 고치시니(31-41)

31절부터 봅시다. 예수께서 고향인 나사렛에서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셔서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듣는 사람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랐습니다. 예수님 하시는 그 말씀에 권위가 있었습니다(32).

어떤 권위가 있었습니까? 33절부터 봅시다.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말했습니다.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34) 이에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셨습니다. 35절을 봅시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께 나아갔는데 너덜너덜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은 상하지 아니하고 귀신, 더러운 귀신만 쫓겨나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입니다. 사람들이 다 놀라 서로 말하였습니다.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36).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져나갔습니다(37).

38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셔서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도 꾸짖으셨습니다. 이에 병이 떠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여자가 곧 일어나 예수님과 예수님 따르는 사람들에게 수종들었습니다(39). 은혜 받은 대로 행하였습니다.

40절을 봅시다.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께서 나아왔습니다. 해 질 무렵이면 쉴 시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셨습니다. 사람이 다 다르듯이 병도 다 다릅니다. 병든 사람 하나, 하나 다 다릅니다. 아픈 부위도 다 다르고, 아픈 마음도 다 다르고, 아프다고 표현하는 것도 다 다릅니다. 그래서 일일이 고치셨습니다. 일대일로 손을 얹으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일일이 다 다르게 손을 얹으시며 고치셨습니다.

우리가 같이 말씀을 따라 믿음 생활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소감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 소감을 다 다릅니다.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같은 것은 없습니다. 병이 나서 아픈 것은 같다 하더라도, 아픔은 다 다릅니다. 그래서 일대일이 꼭 필요합니다. 지금 여기서 그 사람의 아픔을 알고 손을 얹어 고치신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 일대일로 우리 각 사람을 이 같이 찾아오셔서 우리 각 사람에게 있는 병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목자이십니다. 우리 각 사람의 목자이십니다. 일대일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그래서 일대일 목자가 됩니다. 예수님 같이.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41절을 봅시다.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말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예수께서 꾸짖으시고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직은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실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다른 동네에서도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42-44)

42절부터 봅시다. 본문 말씀을 볼 때 예수께서는 해질 녘에 찾아온 수많은 병든 자들, 귀신들린 자들을 일일이 손을 얹어 고치시며 날이 샜습니다.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셔서 한적한 곳에 가셨습니다. 한적한 곳. 사람 없는 조용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사람 없이 조용한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기도하셨습니다(마가복음 1:35, 누가복음 5:16). 예수께서는 그래서 제자들에게도 쉬어라고 하셨습니다(마가복음 6:31). 누구에게나 이같이 개인적인 한적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한적한 곳에 계시는 예수님을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무리들이 예수께 찾고 찾아서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였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예수께서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43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하셨습니다.

먼저 예수께서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라 하셨습니다. 지금 이 동네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예수께서 병자들에게 일일이 손을 얹어 고치셨습니다. 드디어 이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인격적 관계성이 맺어지고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들을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동네에서도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셨습니다(44).

이 다른 동네는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동네입니다. 친숙한 곳이 지내기 좋은 곳입니다. 얼굴이라도 아는 사람, 이름이라도 들어본 사람에게 마음이 갑니다. 다른 동네?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2017년 봄 학기를 맞아 캠퍼스에서 새로운 형제, 자매들을 만납니다. 한 집안에 아들 둘, 딸 둘이 있어도 아들, 딸 마다 다 다릅니다. 십여 년을 같이 살면서 이제 조금씩 익숙해지는데 이제 집에는 아들, 딸 누구도 있지 않습니다.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난 형제, 자매들이 아들, 딸들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때에 또 새로운 형제, 자매들을 만나야 합니다. 왜 만나야 합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다른 동네에서도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다른 동네에서도라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복음좋은 소식입니다. 배고픈데, ‘밥 먹자라는 말만큼 좋은 소식이 어디 있겠어요? 광고가 길어지는데 여기 까지 하고 기도 합시다라는 말만큼 좋은 소식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예수께서 전하시는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 복음입니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시는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오직 하나 밖에 아들이십니다. 독생자이십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으셨습니다. 완전히 다른 나라입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하는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이 왜 그렇게 포로 되고 눈이 멀고 눌립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고 자기 죄악 된 본성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나라를 생각할 때 누구든지 눌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하셨습니다(마가복음 1:15).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기 까지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사십 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사도행전 1:2,3).

그래서 우리가 시몬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듣고 하나님의 나라를 조금 맛보게 되었습니다(베드로전서 2:3).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어진 세상 나라입니다. 세상에 코 박고 눌려지냅니다. 이런 세상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와 전혀 다른 세상에 오셨습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아기로 오셨습니다(누가복음 2:7,12). 그리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해 받은 시몬 베드로, 바울 사도로부터 시작하여 복음을 전해 받은 복음의 종들을 통해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에게,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2017년 봄 학기를 맞아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겠습니다.

누구든지 예수께서 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듣고 누구든지 포로 된 데서 자유를, 눈 먼데서 보게 되고, 눌린 데서 자유를 얻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예수께서 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듣고 자유 얻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이 은혜 안에서 받은 자유 안에서 나와 다른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만나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담대히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누가복음 4:43)

2017 누가복음 9강 메시지 0416-0444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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