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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018.05.12 09:51

2018년 마가복음 7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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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제 7 강                                                                                                     김요한

마가복음 4:1-20

 

 

말씀을 듣고 받아 결실하는 자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마가복음 4:20)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작되었습니다(마가복음 1:1). 그런데 말씀이 전하여졌지만 말씀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각각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마가복음 1:15) 하셨을 때, 회개하는 사람보다 자기 인생 문제 해결하러 예수께 나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나병환자는 예수께 나아와 나병이 나았지만 예수께서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엄하게 경고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이를 많이 전파하여 그로 인해 예수께서 많은 고난을 당하여 하셨습니다(마가복음 1:4-45). 말씀을 듣고 연구하고 말씀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하시니 알면서도 잠잠하였습니다(마가복음 3:4). 그리고는 헤롯당과 함께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죽일까 의논하였습니다(마가복음 3:6).

예수께서 말씀을 전하고 전하여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이 이러하였습니다. 그런 중에도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인생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예수께서 끊임없이 몰려 왔습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무엇이라 하십니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1-9)

1절부터 봅시다.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산에 오르셔서 예수께서 원하시는 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고 내 보내셔서 전도도 하고 귀신을 내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셨습니다(3:14,15). 그러나 예수님을 그 열둘과만 함께 있지 아니하시고 산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인생 문제로 끙끙거리는 그 사람들이 예수께로 몰려오자 바닷가에서 다시 그들을 맞아 가르치셨습니다. 어떻게나 많이 몰려왔든지 배에 오르셔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야외 예배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비유란 사람들이 잘 아는 곳으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을 알게 할 때 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마차는 알고 자동차가 무엇인지 모를 시대에 자동차를 뭐라고 설명해도 그런 것이 어딨노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이 끌지 않는 마차라 하니 알아들었습니다. 이것이 비유입니다.

하나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땅에 사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모르고, 관심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지금 당장 자신의 눈앞에 아무 문제가 없기를 바라고 삽니다. 아침에 되어 왜 눈을 떠야 하는지? 이를 알기만 해도 인생이 재미있을 텐데. 아침에 눈이 떠지면 왜 또 아침이 왔지 싶습니다. 그저 아프고 진물나고 움직이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욕 먹는 것이 싫어 이런 저런 문제들을 해결해 달라고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또는 자기 기득권을 건드린다고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근본 하나님, 하나님나라에 관심도 없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저를 포함한 우리도 그러하였습니다(에베소서 2:3).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자 하십니다. 이번 창세기 1장에서 3장까지 공부하면서 공통적으로 하는 한 마디는 창세기는 어렵다입니다. 이 어려운 창세기를 왜 우리가 공부하며, 또 어려운 창세기를 공부하면서 우리가 은혜를 받았을까요? 하나님을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가르치시면서 들으라하셨습니다(3). 하도 듣지 않으니 들으라하셨습니다. 듣고 계십니까? 군대에서는 소대장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내무반장이 차렷!’하고 외칩니다. 이는 attention, 주의를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주의를 집중시키신 예수께서 비유를 말씀하시길,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하셨습니다(3-8). 영농교육 하시는 것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 말씀 전하시지 않고 왜 씨 뿌리는 이야기를 하시지 하고 생각하고 있으니 예수께서 또 이르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하셨습니다(10). 어떻게 보면 좀 무책임하신 것 같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하고 싶은 신 말씀하시고 나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하셨습니다.

누구에게 말을 해보거나 뭔가를 해보도록 말을 해보면 얼마 못가서 좌절, 절망, 실망, 낙심하게 됩니다. 도대체 들었는지 듣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렇게 됩니다. 판사, 의사, 교수 전문가 집단에 대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자기 직업에 가장 좌절감이 높은 사람이 교수라고 합니다. 수업을 하고 시험을 치고 그 결과를 보면 자신이 무엇을 말했나 싶어 좌절이 심하다고 합니다. 질문하라 하면 중간고사 언제 칩니까라고 이미 공고된 내용을 물으면 힘이 빠집니다. 군에서는 듣지 않으면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병사들이 듣고 정신 차리고 일하게 하려고 심한 얼차려를 주고 그 후에 지시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군에 가기 싫어합니다. 위험성이 높은 직업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과 분위기는 다른 학과에 비해서 좀 셉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말씀을 듣고 있는데 관심이 다른 데 가 있어 집중 하지 못하면 아무리 예수님 말씀이라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가 들을 귀가 있는 사람입니까?

 

그 비유에 대하여 물으니(10-13)

10절을 봅시다. 그렇게 예수께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하신 후 홀로 계실 때에 그때 함께 한 사람들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미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신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과 항상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집중해서 주의 깊게 다시 읽어봅시다.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에 대하여 물으니예수님과 함께 한 사람들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열두제자들이 예수께 물은 것이 아니고, 예수님과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제자와 더불어 예수께 그 비유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마가복음은 아주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확실하게 명백하게 전합니다.

열두 제자가 예수께 물은 것예수님과 함께 사람들이 열두제자와 더불어 예수께 물은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열두제자가 예수님께 물었다고 하면 그 열두제자에 들어가야 예수께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희한한 말들을 만들어냅니다. 열두제자에 들어 있느냐 없느냐, 그 리스트에 내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가 이 문제 해결하느라 평생을 헛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하는 그 사람들이 예수께 질문이 있습니다. 관심이 없으면 관심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랑하는 엄마가 몇 번을 얘기해도 질문도 생기지 않습니다. 관심이 없으면 함께 하기가 엄청 힘듭니다. 예수께 물은 이 사람들은 자기 병 낫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관심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말씀에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 하였습니다(로마서 3:11). 그러나 묻는 사람은 있습니다. 누가 묻습니까?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 있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하였는데,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과 함께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떤 분이 성경을 읽다가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 어떤 목자님에게 물었더니, 그 목자가 말하기를 죽어서 천국가면 알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예수님은 어디 계신가요? 성경 말씀에 있습니다. 마가복음 11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하였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중요한 이유는 성경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관심이 있으면 성경을 읽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 예수님께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답을 줍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께 대해 관심도 없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도 없고, 교회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도 없고, 성도에 대해 관심도 없고, 오직 내 문제만 해결해달라고 한다면 어떤 사람이 됩니까? 11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하나님의 비밀은 너희에게는 주어졌습니다. “너희는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께 질문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께 질문한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비밀이 주어집니다. 성경으로 돌아가 예수께서 누구신지, 예수님은 무슨 일을 하셨는지, 하나님은 누구신지 여기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 나라 비밀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이에는 관심 없이 나는 어떻게 되는가’, ‘나는 이 모임에서 어떤 역할, 지위,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가그렇게 되면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처럼 외인일 뿐입니다. 나병이 고쳐졌다고 해서 예수님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인생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예수님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은 누구신지 고민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 비밀을 알게 됩니다. 그 사람이 곧 시몬 베드로고, 세리 레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로 몰려오는 그 많은 외인들”, 자기 인생 문제 해결하려고 오고, 사람들이 몰려오니 왜 이렇게 많이 몰려오는가 싶어 오고, 나는 인기가 없는데 예수님은 왜 이렇게 인기가 있는지 그 비결을 알려고 오고, 그 사람들을 흩어지게 하려고 오고, 또 사람 많이 모이면 구경하러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신다고 하십니까? 12절을 봅시다.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듣기는 들어도그들로 얼마든지 듣게 하시고 얼마든지 보게 하십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게 하여듣기는 들어도 생각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님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겠습니까?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께 물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13절을 봅시다.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씨 뿌리는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앞으로 예수께서 말씀하실 모든 하나님 나라 비밀의 비유를 어떻게 알겠느냐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져야 할 바는 들을 귀를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지혜입니다. 그는 지혜를 구하면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열왕기상 3:9) 솔로몬은 자기에게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신지, 예수님은 누구신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역사를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 이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게 되면, 듣는 마음으로 읽으면 생각이 있게 되고, 분별력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비유를 알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을 듣고 받아(14-20)

예수께서 비유를 묻는 자들에게 비유를 풀어주셨습니다. 곧 성경이 성경을 풀어줍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보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를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성경을 계속 읽어 가면 성경 말씀이 그 말씀을 풀어줍니다. 성경의 첫 구절 창세기 1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말씀을 읽으면 무슨 말씀이지 싶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마지막 권인 요한계시록까지 읽으면 그 뜻을 알게 됩니다. 문제는 요한계시록까지 읽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또 모르겠으면 또 읽으면 풀립니다. 여전히 인내가 필요합니다.

14절부터 봅시다.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입니다. 씨는 말씀입니다. 씨는 그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이 곧 생명의 근원입니다. 씨는 뿌립니다. 말씀도 뿌립니다. 말씀이 아까워서 자신만 간직하고자 하고 뿌리지 않으면 씨, 생명, 생명의 비밀을 알지 못합니다.

씨는 뿌리는 것입니다. 뿌리되 마음껏 뿌립니다. 그래서 그 씨가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고, 더러는 돌 밭에 떨어지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집니다. 우리가 말씀을 뿌릴 때 선별하기 쉽습니다. 저 사람은 곤란하다, 안되겠는데 싶어서 뿌리지도 못하고 그냥 캠퍼스 한 바퀴 구경하고 오기도 합니다. 누가 되었든지 말씀을 뿌리라 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땅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입니다(15). 길 가는 어찌나 사람들이 밟고 다녔는지 땅이 반들반들 해져서 씨를 뿌리면 하고 튕겨 나옵니다. 그러면 사탄이 딱 보고 있다고 탁 가져갑니다. 씨를 심으면 까치가 딱 보고 있다가 씨 심은 사람이 가면 그 심은 씨를 파먹습니다. 사탄이에요.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별별 여러 가지 생각과 사상들을 들어왔기 때문에 말씀을 들으면 말씀대로 될까하는 생각부터 먼저 들기 쉽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튕겨내면 즉시 사탄이 가져가 버립니다.

또한 돌밭 같은 마음도 있습니다. 이들은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습니다(16). ‘, 좋다. 정말 좋다하며 말씀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돌이 있어 뿌리를 내릴 수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집니다(17). 이 건물 앞에 있는 은행나무는 처음 심겨질 때는 가느다란 연약한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도 은행나무는 뿌리를 더 깊이 내려 삼십년 가까이 버텨 저렇게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어떤 환난이 왔을 때 나의 인생뿌리는 어디에 내리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입니다(18).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입니다(18,19). 이 사람들은 말씀을 받아드리고 말씀에 뿌리도 내립니다. 문제는 세상 염려, 재물의 유혹, 기타 욕심으로 인해 나중에 보면 결실이 없습니다. 기타 욕심이라 하셨을까요? 욕심이 하도 많아 다 열거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거 같습니다. 끊임없이 욕심을 부리느라 말씀의 기운을 막아 열매는 맺지 못합니다.

그러면 말씀을 듣고 받는 땅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그 땅이 있다고 하십니다. 20절을 봅시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좋은 땅이 있습니다. 길가 같지 아니하여 말씀을 뿌리면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속에 돌이 없어 말씀이 뿌리를 내립니다. 그리고 잡초가 다 뽑혀진 땅입니다. 이 사람은 말씀을 듣고 받습니다. 그러면 씨가 결실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포인트는 말씀을 듣고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저 자기 인생 문제 해결하러 오는 사람들, 자기 인생길을 막고 있다고 하여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람들, 하나님의 나라 말씀을 전하여도 회개하지 않는 그 사람들이 좋은 땅이 되기를 원하신다 하십니다.

좋은 땅이 되려면 길가 같은 땅은 갈아엎어야 합니다. 포크레인을 동원해서라도. 돌이 있으면 캐내어야 합니다. 큰 돌 작은 돌 다 캐내어야 합니다. 가시떨기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또 자라납니다. 그리고 또 빨리 자랍니다. 요즈음 같이 따뜻하고 비가 자주 오는 때에는 하루에 몇 센티미터씩, 쑥 자랍니다.

우리가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우리 마음 밭의 상태를 알고 갈고, 파내고, 뽑아내는 일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좋은 땅이 유지됩니다. 우리 중에 이 같은 좋은 땅, 베스트의 삶을 사모하며 자신이 어떠하든, 상황이 어떠하든, 사람들이 뭐라 하든, 말씀을 어찌하든 듣고 받고자 투쟁하는 분들이 있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말씀을 듣고 받는 자가 결실합니다. 어떤 상황, 환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받는 자가 삼십 배 육십 내 백 배의 결실을 합니다. 우리 각 사람이 말씀을 들은 대로 주님께 기도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말씀을 받지 못하는 길 가 같은 마음은 갈아엎고, 돌은 캐내고, 가시 떨기는 뽑아내어 들은 바 말씀이 결실하는 좋은 마음 밭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마가복음 4:20)

 

2018 마가복음 7강 메시지 0401-0420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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