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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7.04.02 17:14

2017년 누가복음 14-2강 메시지 071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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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봄수양회 주제 2강 김요한

누가복음 7:11-17

 

 

청년아 일어나라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누가복음 7:14)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어떤 분이십니까? 말씀만 하시면 죽어가던 로마 백부장의 종도 살리시는 말씀 권세가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로마 백부장은 말씀만 하사하여 예수님을 놀라게 할 만큼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복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마땅히 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방인 로마 백부장이라도 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예수님도 놀랄만한 이만한 믿음을 가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도 복을 주십니까?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11-13)

11절을 봅시다. “그 후에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예수님과 로마 백부장이 만나지도 않았는데 백부장의 종이 나았습니다. 예수님과 백부장이 보낸 사람들 사이에 몇 마디 대화가 이어지더니 백부장의 종이 나았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가버나움에서 약 40km 떨어진 나인이란 성으로 가시고 있었습니다.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 하신 일을 증거 하는 증인들이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증인이 됩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성경 말씀대로 되는 것을 체험하고 예수님의 증인이 됩니다.

12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죽은 자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였습니다.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고 있었습니다. 과부의 외아들이 죽었습니다. 과부는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여자입니다. 과부에게 있던 외아들이 죽었습니다. 이제 이 과부에게 살아 있는 가족이 한 명도 있지 않았습니다. 말할 상대, 마음 놓고 대 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습니다. 때로는 사랑의 눈길을 보내고, 때로는 투정부리고 소리 지르고 할 대상이 한때는 남편과 외아들 두 명이나 있었는데, 이제는 한 명도 있지 않았습니다.

13절을 봅시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 과부는 예수님의 친인척도 아니었습니다. 이 과부가 죽은 외아들로 인해 예수께 나온 것도 아닙니다. 벗들을 예수께 보낸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예수께서 이 사람들을 치료해서 제자 삼으려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좀 말하기가 불경하기는 하지만 무슨 돈과 명예를 바라서도 아닙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불쌍한 사람을 보시고 누구든지 불쌍히 여기십니다. 위로가 필요한 자를 보시고 위로하십니다. 그래서 저 같이 뭐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주어진 대로 하라는 대로 하며 살던 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저는 연애도 실패하고 폐결핵에 걸려 군대도 못 가고 겨우 겨우 직장 다니며 대학원 생활을 하던 때 술에 취해 전봇대 밑에 주저앉아 길 가던 사람들에게 나 좀 어디 데려다 주세요하던 자였습니다. 이런 자도 불쌍히 여기셔서 일으켜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그리고 불쌍한 그 사람을 불쌍하게 한 그것으로부터 그 사람을 건져내십니다. 구원하십니다. 예수께서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고 과부에게 울지 말라하십니다. 슬퍼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냥 말로 하는 위로가 아니라 알맹이, 내용이 있는 말씀입니다. 박탈된 것을 채워주십니다. 사람의 진짜 필요, 그 가난함을 채우십니다. 과부의 슬픔의 그 근본적 원인을 없애 주십니다. 과부의 슬픔의 원인은 과부 외아들의 죽음입니다. 예수께서 과부의 외아들을 죽음에서 일어나게 하십니다. 이보다 더 큰 위로는 없습니다.

어떻게 일어나게 하십니까?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14-15)

14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장례 행렬을 멈추고 섰습니다. 율법에는 시신을 만지는 자는 부정하다, 무덤을 만져도 부정하다 하였습니다(민수기 19:11,16). 그러나 예수님은 관에 손을 대시고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과부의 외아들 죽은 청년에게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하셨습니다.

청년은 신체적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청년에 관심이 많습니다. 성경 전체에 91번 나옵니다. 요셉이 바로 앞에 설 때 삼십 세 청년이었습니다(창세기 41:46). 그가 열일곱 살 때 형님들이 그를 애굽에 팔았습니다. 그 열일곱 살 때부터 삼십 세 때 까지 십삼 년 동안 요셉은 죽을 것 같은 일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형들에게 팔려 애굽의 종이 되고, 애굽에 와서는 주인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고, 유혹을 물리치자 감옥에 갇히고, 감옥에서는 같이 갇힌 사람들을 돌보았지만 잊혀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이 청년의 때 십삼 년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당하는 고통의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내하였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아버지 집 식구들 곧 이스라엘 민족이 극심한 기근에서도 생명을 얻는데 쓰임 받았습니다(사도행전 7:14).

애굽에 와서 애굽의 종이 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 모세도 청년의 때 사십 세에 동족을 돌아볼 마음이 생겼습니다(사도행전 7:23). 청년의 때에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은 사람들을 말하려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아이 사무엘, 소년 다윗, 선지자 이사야, 예레미야.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이 주께 나아와 주의 사람 살리는 일에 쓰임 받았습니다.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편 110:3) 무엇보다 예수께서 복음을 전파하신 때가 삼십 세 청년이었습니다(누가복음 3:23).

그런데 원수들은 청년들을 없애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을 때 하나님의 분노로 인해 청년들이 칼에 죽습니다(예레미야 3:25, 6:11, 11:22). 청년들에게 치명적인 원수는 죽음입니다. 아무리 청년이라도 죽으면 끝입니다. 청년이 죽으면 미래가 죽습니다. 그래서 원수들은 청년에게 죽음을 심습니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죽으면 끝이다. 이리가나 저리가나 죽으면 끝이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청년, 관 속에 든 청년에게 말씀하십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는 죽음을 이깁니다. 15절을 봅시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셨습니다.

죽음을 이기는 자가 강한 자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살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있는 사람은 악한 자를 이긴 승리자입니다(요한일서 2:13,14).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예수님의 말씀이 과부의 슬픔을 온전히 없앴습니다. 사람들은 과부의 외아들이 죽자 그와 함께 하며 같이 울었습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합니다.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남은 세월이 중요하지 않느냐. 운명이다. 팔자다. 우짜노, 힘을 내자.’ 또 어떤 사람들은 어차피 사람은 다 죽는데 이리 사나 저리 사나 마찬가지이니 내 마음대로 살자. 구름 따라 바람 부는 대로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이 인생이다합니다. 득도한 도사 같이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청년이 일어났습니다. 죽은 자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생명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생명이 온전히 소생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16-17)

16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말씀으로 살리시자 모든 사람, 예수님과 함께 한 제자들과 무리들, 그리고 과부와 장례 행렬에 함께 하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였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 앞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하였습니다.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하였습니다.

17절을 봅시다.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져 나갔습니다. 예수께서 말씀으로 청년을 살리심으로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는 소문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누가복음을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가복음과 성경말씀으로부터 전해지는 말씀을 말미암아 예수님은 말씀으로 사람을 살려내시는 큰 선지자이심과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 말씀 권세로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셨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볼 때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첫째, 예수님은 말씀으로 죽은 자를 살리시는 권세자이십니다.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살아납니다. 누구에게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가 옵니다. 곧 이때입니다. 지금입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자는 살아납니다(요한복음 5:25).

둘째, 예수님은 청년을 살리십니다. 청년은 미래입니다. 예수님은 미래를 살리십니다. 청년이 살아 있기를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십니다.

셋째, 죽은 자를 살리시는 말씀 권세자 예수님은 불쌍한 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성적이 좋다고 불쌍히 여기고, 성적이 나쁘다고 불쌍히 여기고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불쌍한 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외아들을 잃어버린 과부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소망을 잃어버린 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특히 하나님을 떠나 소망을 잃어버린 자들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무엇보다 예수께서 다시 사셨습니다. 과부의 외아들을 말씀으로 살리신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살리시고 정작 예수님 자신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본문을 기록한 누가를 비롯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은 곧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사도행전 1:22).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살아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예수께서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하시자 청년이 일어난 것 같이 자신에게 일어난 예수님의 일을 전하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연애 실패하고, 여러 가지가 제 뜻대로 되지 않자 그냥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살고자 했습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은 억지로 해야 되니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같이 벚꽃이 휘날리는 진해 해군기지에서 활동성 폐결핵 판정을 받고 해군장교후보생에서 퇴출당하였습니다. 그 이후 벚꽃은 제게 묘한 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 동안 마이신을 맞으며 요양해야 했습니다. 할 일이 없어진 저는 집 근처 저수지에서 낚시구경을 하다가 집에 돌아와 작은 에세이 잡지를 읽었습니다. 거기에 세상에 가장 할 일 없는 사람이 남의 낚시구경하는 자라 하였습니다. 저는 살았으나 죽은 자였습니다. 이랬던 저를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깊은 하나님의 셰계로 이끌어주셨습니다. 죽음을 체험하고도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이 저에게 유일한 생명줄이었습니다. 말씀을 읽어가는 중에 바울 사도가 두려움에 떠는 가운데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하는 고린도전서 22절 말씀이 제 심령에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제 이 썩을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고린도전서 15:44,5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게 주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저만 생각하며 죽어가던 제가 살아날 소망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이 소망은 지금 저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어떤 별 일이 제 눈앞에 펼쳐져도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하시고 과부의 죽었던 외아들을 일으키신 주님의 말씀이 들립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여러분과 제게 들려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가 할 일은 부활의 권세자 예수님을 소문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수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듣고 체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지금 여기서 내 자신이 듣고 체험한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예수께 대한 소문이 지금 여기뿐만 아니라 사방에 퍼집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역사, 우리의 미래 청년이 살아나는 역사가 지금 여기서 일어납니다. 아멘!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누가복음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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