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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7.04.02 17:09

2017년 누가복음 14-1강 메시지 0701-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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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봄수양회 주제 1강 메시지 김바나바

누가복음 7:1-10

 

 

이만한 믿음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7:9)

예수께서 로마 백부장의 친구들이 전하는 그의 말을 듣고 이만한 믿음이라면 엄청 인정하시고 칭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왜 이렇게 그를 극찬하셨습니까?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1-6)

1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셨습니다. 우리 읽고 들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예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 먼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라, 말씀을 들은 대로 행하라.” 하신 말씀이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시고 갈릴리의 중심도시인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께서 중풍병자, 문둥병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 한 손 마른 자를 안식일에도 고치신다는 소문이 이미 좌악 퍼져 있었습니다. 그 예수님이 오셨으니 오셨다는 소문이 또 얼마나 빠르게 펴졌을까요.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 중에 어떤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여기 나오는 백부장은 백 명의 군인을 거느리는 로마 장교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다. 2절과 3절을 봅시다. 그에게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그가 예수님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는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었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자기의 그 병들어 죽게 된 종을 구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유대인하고 로마 장교와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좋을 수가 없습니다. 로마는 당시 유대 지역을 군대로 정복하고 식민지로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이 로마 장교의 부탁을 받고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백부장의 종을 구해주시기를 청하였습니다.

그 당시 종은 물건과 같이 취급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종이 병들어 죽게 되자, 어떻게든 살리려 했습니다. 그에는 사람에 대한 관심, 관심을 넘어서서 사람을 사랑하고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4절과 5절을 봅시다.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였습니다. 유대인 중에 바리새인들은 그동안 예수님을 비난하고 공격하고 틈만 나면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 자신들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라 여기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지켜야 한다는 종교심이 아주 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실제로는 사람을 살리기보다 자신의 종교적 행위를 지키기 위해 안식일에도 예수께서 사람을 손을 고치시자, 안식일에 그런 일을 한다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대인들은 좀 다릅니다. 유대인이라 해도 다 같은 유대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 살리는 일에, 병들어 죽게 된 사람을 살리는 일에는 마음이 같았습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대인이나 로마 장교나 같은 마음임을 봅니다.

예수께서는 이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어떻게 하셨습니다. 6절 상반 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함께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 살리는 일에는 유대인이든, 로마 군인이든 개의치 아니하십니다. 그 사람이 종이든 주인이든 그것도 개의치 아니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집으로 오시는 예수께 로마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말씀만 하사라 하였습니다.

 

말씀만 하사(6-8)

6절에서 8절까지 봅시다.

예수께서 유대인들과 함께 백부장의 집으로 가시고 있는 데,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말하였습니다.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절과 8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그는 백 명의 군인을 거느리는 장교로서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군 생활에 아주 익숙하였습니다. 명령에 따라 사는 군인, 말하자면 진짜 군인이었습니다.

군인이면 당연히 이래야지! 싶은데, 저의 군 복무 시절을 회상해보면 이렇게 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명령을 듣고 어쩔 수 없이 하는 척 하는 게 아닙니다.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하라 하면 하는 사람은 정말로 드뭅니다. 이 백부장은 명령을 마음을 다해 따르는 제대로 된 군인이었습니다.

이런 그가 볼 때 예수님은 그가 감당하지 못할 상관이었습니다. 어떤 상관이 있어 말씀으로 사람을 고칩니까? 예수님의 말씀 권세를 생각할 때는 예수께서는 자신이 섬기는 어떤 상관, 사령관보다 높은 분이셨습니다. 말씀 권세가 대단하였습니다. 그가 볼 때 예수님은 말씀만 하시면 병도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이로 볼 때 사람이 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을 제대로 마음을 다해 해 본 적이 별로 없는 저로서는 처음 이 말씀을 읽었을 때 백부장이 무슨 이야기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고 계속 읽으면서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하니 어떤 일에든지 제대로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9-10)

9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백부장의 이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하는 말을 들으시고 그렇게 말하는 그를 놀랍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하셨습니다. 10절을 봅시다.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백부장의 그 말을 듣고 놀라셨을 때 이미 그 하인은 나았습니다. 예수께서 그 백부장을 만나거나, 그 병들어 죽어가는 종을 만나지 않은 채,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하는 말을 전해 들으시고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하시는 사이에 종이 나았습니다. 이만한 믿음의 결과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그토록 극찬하시고 인정하시고 믿음의 결과로 병을 낫게 하신 그 이만한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첫째, 예수께서 인정한 그의 믿음은 그의 믿음의 기초, 근거를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그는 병들어 죽게 된 하인을 사랑하여 살리고자 예수께 구하였습니다. 그는 종이라도 낫게 하고 싶었습니다. 자기 친아들도 아닌 종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 백부장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예수께 나아간 것과, 다른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예수께 나아간 것은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나 자신을 위해 예수께 나아가는 것이 나쁜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세상에서 무거운 짐으로 지쳐 있는 자들이 자신에게 나아오는 것을 기쁘게 여기십니다. 하지만 자신을 넘어 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에게 나아오는 자를 더 기쁘게 여기심을 봅시다.

제 생각에도 타인을 살리기 위한 일은 참 아름답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예수께서 왜 이 백부장을 극찬하셨는지 감이 잡히기 시작합니다.

둘째, 결정적으로 이 백부장은 예수께서 말씀만 하시면 자기 하인을 낫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가까이서 말씀하셔도 믿지 못하고, 손 마른 자를 고치셔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예수께 병 고침을 받고 싶어서 나아갔다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은 자들이 있고, ‘나를 따르라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따른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 누구도 이 백부장처럼 예수님께 먼저 다가가서 말씀만 하시면 된다고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엄선한 열두 제자 중에서 수제자인 베드로도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예수님의 말씀을 말씀대로 믿었습니다.

저는 어떠합니까? 저는 학부 시절을 창세기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베스트의 삶을 내게 허락하실테니 말씀을 따라 살거야, 말씀에 마음을 다할거야하였었습니다. 이때 당연히 저는 지극히 자신을 위해 예수께 나아갔습니다. 위의 마태복음에서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보다 병세가 심각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무서웠습니다. 제가 편하게 여기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말 섞는 것도 힘들어했습니다. 또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뭘 하는 것을 지극히 두려워했습니다. 나의 단점이 드러나고 욕먹고, 무시당할까봐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런 상태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제게 고통이었습니다.

이리 저리 헤매다가 학부 2학년 2학기에 마태목자님과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면서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게 된 예수님은 중풍병자도 고치시고,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시는 그 어떤 의사보다 뛰어난 의사셨습니다. 이 예수님께 내가 고침 받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말씀공부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제 마음에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베스트의 삶을 허락하실 것이라고 하니 몹시 기대가 되어 계속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조금씩 말씀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속에서부터 영생하도록 샘물이 솟아나온다는 것, 예수님께서는 나를 사람 살리는 깊은 세계로 초청하고 계시다는 것이 제 마음에 들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후배 형제 한 사람을 꾸준히 도우려고 애를 쓰게 되었고, 무겁게 느껴지는 십자가, 매주 하는 싱스퍼레이션이 제게는 무거웠습니다. CCM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 전에 무언가 멘트를 해야 한다는 것이 여간 무겁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감당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러는 가운데 사람에 대한 부자유함이 치유되고 있음을 계속해서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더 깊은 세계, 베스트의 세계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최근에는 다니엘서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말씀을 들었을 때 마음에 감동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정말로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 같았고, 그런 삶에 대한 소원이 제 속에서 싹트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예전에 백부장의 믿음이 뭐가 그렇게 예수께서 인정하실 만큼 다른지 알기 참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백부장에게 감사해야겠습니다. 내가 이제 뭘 해야 할지 분명하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수님께 나아온 처음에는 나 자신만을 위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아닌 많은 이들이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일이 되야 한다는 방향이 섭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많은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분명한 사실입니다. 거기가 어디인가요? 지금 제가 거주하는 고령 촌 동네는 아닙니다. 촌 동네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제가 거기서 혼자 모든 역사를 감당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인제센터 가까이 다시 오는 것입니다. 대학원까지 나와서 자존심 세우고 있는 저를 하나님께서 고령에 보내셔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아하! 꼭 전공을 살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자비량할 수 있겠구나! 경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 경험을 발판 삼아 어떤 일이든지 도전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오늘 말씀으로 제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방향이 잡히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그 종을 사랑하는 마음에 보시고, 그가 말씀만 붙드는 믿음을 보시고. “이만한 믿음이라 극찬하셨습니다. 저를 베스트의 길로 이끌고 계시는 주님께서 이 말씀을 제게 주심을 감사합니다. 제가 앞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에, 저의 능력과 저의 자존심을 세우는 것으로는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 살리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더욱 마음으로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만 붙드는 믿음 가지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누가복음 7:9)”

2017 봄수양회 주제 1강 메시지 누가복음 0701-0710 김바나바.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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