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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22.04.17 12:21

2022년 부활절 특강 (천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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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누가복음 8강 천모세

누가복음 7:1-17

 

 

청년아 일어나라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누가복음 7:14)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다짐을 하고 열심히 살다가도 죽음 앞에서는 절망하고 맙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께서 죽음에 부딪혀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라 하십니까?

 

말씀만 하사(7:1-10)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습니다(1). 거기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2). 그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하였습니다(3).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다 하였습니다(4).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였습니다(5). 당시에 종은 소모품으로 여겼습니다. 더구나 그는 그 지역을 식민지로 다스리는 로마의 막강한 군대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종을 사랑하고 피지배층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께 그를 위해 간절하게 요청하는 것으로 볼 때에 그가 얼마나 사람들을 사랑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를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종까지도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 예수께 간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실제에서 자신의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병들어 죽어가는 종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예수께 간청했을까요? 그는 불치병이라 여겨지는 나병 환자도 깨끗하게 하시고, 중풍병자라도 일으켜 걸어가게 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자신의 죽어가는 종이라도 살리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였습니다. 그는 점령군 지휘관의 권세로 예수님을 부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을 통해서 예수께 간청하였습니다. 예수께 경의와 존중을 가지고 나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있는 권세보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였습니다(6).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주여 수고하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였습니다(6). 그는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하며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하였습니다(7). 그는 예수께서 직접 오지 않으시고 말씀만 하셔도 자신의 종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임을 그가 알았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라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고백하였습니다(8). 그는 상급자가 명하면 그것을 하고 또 하급자에게 명령을 하여 일이 돌아가게끔 하는 군인이었습니다. 자리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이 되게끔 하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말에 대하여 허투로 하지도 허투로 듣지도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실제에서 충성된 삶의 체험이 그의 믿음을 더욱 성숙하게 하였습니다. 나병환자라도 깨끗하게 하시고 중풍병자라도 일어나게 하시는 말씀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께서 명령만 하셔도 일이 실행될 것을 그가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기셨습니다(9). 지금까지 사람들이 예수께 대하여 놀랐는데 이번에는 예수께서 백부장에 대하여 놀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셨습니다(9).

예수께서는 그의 믿음을 놀랍게 여기십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믿음을 주목하여 보십니다. 중평병자의 친구들은 지붕이라도 뜯어서 중풍병자를 예수께로 데려가고자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낫게 하실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백부장은 더 나아가 예수께서 말씀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께서 명령만 하셔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말씀으로 중풍병자를 일으키시는 예수님을 보고 믿음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또 믿는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께서 이만한 믿음이라 칭찬할 정도의 믿음까지 성장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반대로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아도 믿음이 없으면 예수께서 별로 주목하여 보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여도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에만 갇혀 있다면 그는 믿음의 깊은 세계를 체험하지 못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면 백부장이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종이 죽으면 다시 다른 종으로 바꿔 쓰면 되는 소모품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종을 사랑하였습니다. 병들어 죽게 되었다고 버리지 않았습니다. 종이 아파 죽게 된 것에 대해 애통해하며 그를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고민하였습니다. 아무리 인품이 훌륭한 그라도 사람의 죽음 문제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종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가운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말씀의 권세로 불치병이라도 살리시는 예수께 나아가 간구하였습니다.

앞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한쪽 손 마른 자를 이용하여 예수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종교생활은 하지만 사람의 병들고 아프고 죽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냉혈한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만한 믿음을 가졌다며 칭찬하였습니다. 제가 습관적으로 믿음을 가지겠다 말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예수께서 함께 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저로 실제에서 종이라 할지라도, 그의 생명을 사랑하고 살리는 일에 관심을 가지며, 무엇보다 생명을 살리는 말씀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께로 나아기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는 제 생각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되도록 기도드립니다.

그런데 여전히 백부장의 믿음은 넘사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께서는 죽음의 세력 가운데서 고통하는 사람을 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청년아 일어나라(11-17)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였습니다(11).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고 있었습니다(12). 모든 장례식이 슬프겠지만 과부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의 장례식과 비할 수 있을까요? 성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 슬픔을 알고 장례에 함께 하였습니다. 행복과 기쁨이란 뜻의 나인이라 성에 슬픔이 가득하였습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셨습니다(13). 과부가 예수께 죽은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구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먼저 독자를 잃은 과부를 보셧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의지할 한 사람만 있어도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데, 과부는 자신의 전부였던 독자를 잃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사람의 슬픔을 아십니다.

예수께서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섰습니다(14).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14) 그러자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셨습니다(15).

예수께서 죽은 청년에게 일어나라 하십니다. 예수께서 말씀으로 사람을 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생명을 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릴 때에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없어, 살았으나 죽은 자와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청년은 예수께서 일어나라 하실 때에 말씀을 듣고 일어나 앉고 말도 하였습니다. 생명을 다시 회복하였습니다. 말씀이 죽어가는 백부장의 종을 살리고, 또 이미 죽은 청년을 살려내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를 영접하는 자는 어떠한 삶을 살게 됩니까? 사도 바울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전합니다(고린도전 15:22).

아담은 가장 간교한 뱀의 꾐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명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저주하는 가운데서도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는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2006년 제대를 앞두고 있던 저는 누나를 통해서 여름수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인생을 잘 살아보고 싶은데 뜻대로 안 되고 자신의 죄로 인해서 자책하는 삶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제게 예수께서 정죄하지 않으시고 죄 사함을 선포하시고 저로 생명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2006년 이후로 제 인생은 180도 다른 삶이 되었습니다. 한 번씩 넘어지기도 하지만 다시 말씀을 듣고 일어나는 역사가 계속 되었습니다. ,,일 캠퍼스 모임과 말씀공부, 주일 예배를 위해 부산과 김해를 오가고 양산과 김해를 오가는 시간들이 때로는 시간낭비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말씀을 듣고 생명을 누릴 수 있었기에 갔다 오면 항상 제게 기쁨이 있었습니다. 의학전문대학원에 다시 도전하여 실패를 하였지만 죽음의 권세에 시달리지 않고 말씀이 제게 있어 다시 도전할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말씀으로 다시 일어나 의학전문대학원에 도전하여 합격을 하고 학교에서 공부를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머리가 나쁘다고 자책하는 저를, 목자님은 말씀을 붙들도록 저와 씨름하여 주셨습니다.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다는 말씀에 기초하여 실제에서 고난을 감당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캠퍼스 개척을 위해 믿음으로 결혼을 하고 양산부산대학교 병원에 지원을 하고, 응급실에서 일을 하며 자녀를 셋이나 낳는 동안 제게 말씀이 있어 두렵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제가 더 이상 주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일어나 앉고 말하는 삶을 살아왔는데, 이제는 내가 가진 지식과 힘으로 살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저를 예수께서 멈추어 세우셨습니다. 저는 밤에 잠을 잘 수도 다음 날 병원에 갈 수도 없을 것 같다는 극심한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제게 있는 모든 것이 너무 버겁게 느껴지고 두려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며, 겨우 밤에 잠이 들고 병원을 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삶이 어떠한지, 즉시 저의 삶에 드러났습니다.

제가 말씀이 없어 살았으나 죽은 자와 같은 삶을 살고 지금까지 그런 삶을 반복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께서 죽어가는 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말씀으로 저를 일으키셨습니다. 말씀으로 생명을 얻은 제가, 잠시 말씀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 순간, 저는 순식간에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말씀으로 살아난 제가 더욱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또 다시 말씀보다 자신을 주장하는 삶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제가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때로는 기도가 귀찮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회개하고 기도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께서는 병들어 죽어가는 백부장의 종이라도, 이미 죽은 과부의 독자라도 말씀으로 살리십니다. 우리에게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예수께서 말씀으로 살리심을 믿는 자는, 어떤 일에서나 지금 여기서 부활이요 생명을 체험합니다.

우리 각 사람이 지금 여기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누가복음 7:14)

 

2022 누가복음 8강 메시지 0701-0717 천모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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