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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7.12.21 17:16

2017년 누가복음 47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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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47강                                                                                                   김요한

누가복음 24:1-53

 

 

말씀대로 살아나신 예수님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누가복음 24:6)

Merry Christmas! 기쁘다 구주 오셨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아기로 오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우리 모든 죄를 십자가 피로 완전히 없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장사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사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우리로 죄와 죽음을 이기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아멘!

우리가 어떻게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까? 증인들의 증언을 듣게 알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증인들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부활의 증인들이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부활의 증인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하게 되었습니까? 사람이 주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은 진실로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본문을 기록한 누가는 의사이며 헬라인이었습니다. 실제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는 자세히 미루어 살피는 가운데 먼저 천사가 부활의 증인들을 도왔음을 증거 합니다.

천사가 어떻게 도왔습니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1-10)

1절을 봅시다. “안식 후 첫날 새벽”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준비일, 지금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23:54). 그리고 안식일 곧 토요일에는 사람들이 다닐 수 없었습니다. 토요일이 지나 주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 곧 주일 새벽에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갔습니다. 향품은 시체에 바르기 위한 것입니다. 여자들은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무덤에 갔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었습니다(23:53). 무덤입구는 큰 돌로 막았습니다. 이를 본 여자들이 무덤입구의 돌은 어떻게 옮기지 걱정하며 갔습니다. 힘 좋은 형제 제자들은 아무도 같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았습니다(2).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였습니다(3).

그들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 것을 보았습니다(4). 천사들이었습니다. 얼마나 또 놀랐을까요!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그들에게 일렀습니다(5상).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5하) 천사들이 그들이 깨어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무엇을 전합니까? 같이 6절을 읽어봅시다.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예수님은 무덤에 시체로 계시지 않는다고 증거하였습니다. 살아나셨습니다.

이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천사들이 그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갈릴리에 계실 때에” 그들은 갈릴리에 있을 때부터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그 갈릴리에 계실 때에 예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하였습니다. 이를 왜 기억해야 할까요? 사람은 자기 마음속에 무엇을 기억하느냐에 따라 보고 생각하는 바가 다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랐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죽으시고 시체가 되어 무덤에 안치되셨습니다. 살아나셨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그들을 천사들이 도왔습니다. 갈릴리에서 그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하였습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같이 7절을 봅시다. “이르시기를 인자가” 강보에 싸요 구유에 사람으로 오신 인자,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시몬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로 고백하였을 때, 예수께서 비로소 하신 말씀입니다(마태복음 16:21, 마가복음 8:31). 그때부터 시몬으로부터 비롯한 모든 제자들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을 반대했습니다(마태복음 16:22, 마가복음 8:32). 왜냐하면 자신들도 그렇게 죽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도 말씀을 읽으면서 말씀에 따라 내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느낌이 오면 그때부터 말씀을 거부하고 싶습니다. 내가 혹시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말씀을 거부하고 근심하며 살아갑니다. 그 이후 다시 살아나신다는 말씀을 들리지도 않습니다.

이를 누가복음에서는 세 번이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고 나옵니다(눅 9:22, 17:25, 22:15). 즉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들은 바 말씀이 그들 마음에 없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부활하신 중요한 증거인 빈 무덤을 보고도 예수님 부활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말씀이 있었다면 ‘와 예수께서 말씀대로 다시 사셨다’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그들은 천사가 도왔습니다. “말씀을 기억하라.”

그때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8절을 봅시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우리를 성경을 읽는 중요한 이유는 말씀을 기억하는데 있습니다. 이때의 ‘기억’은 단순히 암송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실제로 그 말씀이 있어서, 그 말씀대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넘어서서 있는 말씀은,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성경 말씀이라 하더라도 마음에 담아 둘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내 생각하고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를 누가 도울 수 있습니까? 천사가 돕습니다. 누가복음은 1장에서부터 사가랴와 마리아를 이같이 도왔습니다(누가복음 1:13,18,19,26,30,34,35). 사가랴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벙어리 훈련을 열 달이나 받아야 했습니다(누가복음 1:22,64).

우리가 말씀을 읽고 말씀을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말씀을 기억하는데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을 기억, remind 하게 합니다(고린도전서 15:1). 우리가 이 성탄에 주의 말씀을 새롭게 기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을 기억한 그들이 무엇을 하였습니까? ‘아이구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십니까? 시체를 어디다 감추었으면 우리에게 말씀해주세요’라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아니면 천사들에게 ‘예수님, 당장 내 눈 앞에 보이게 해주세요’ 하지 않았습니다. 9절을 봅시다. 그들은 무덤에서 돌아왔습니다. 말씀이 기억나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말씀이 기억나는 사람은 자신이 지금까지 주장해왔던 것을 내려놓습니다. 어두움으로부터 벗어납니다. 무덤에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였습니까?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렸습니다. 이 열한 사도는 예수님을 좇아 갈릴리에서부터 온 사람들입니다. 같은 믿음의 공동체 사람들에게 천사들로부터 들은 바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였습니다.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있었습니다(10).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바 은혜를 소감으로 발표하고 믿음의 공동체에서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과 말씀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일일 줄 믿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11절을 봅시다.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렸습니다. 무슨 헛소리 하는가 싶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일곱 귀신이나 들렸던 사람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 약간 좀 이상해진 것이 아닌가 여겼습니다. 그들도 사람을 볼 때 자기 눈으로 보는 대로 고집을 그대로 간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갔습니다(12상).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였습니다(12중). 예수님 시체를 염한 세마포입니다. 세마포만 보이니 ‘오, 부활하셨구나’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12하).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을 직접 찾아주셨습니다.

 

성경을 풀어주실 때 뜨겁지 아니하더냐(13-35)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고 있었습니다(13).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그대로 예루살렘에 있다가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 박힐 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가면서 그들은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 했습니다(14). 우리가 수양회를 하고 나서 ‘성경 말씀에 이렇게 되어 있는데, 너는 믿나?’ 하고 서로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15). 16절을 봅시다.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바로 옆에 계신 분이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이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바로 옆에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의 마음 속에 이미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아이고, 곁에, 바로 곁에 있어도 알아보지도 못하니..’ 하시면서 그들은 떠나셨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질문하셨습니다.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예수님은 항상 지금 있는 현실에서, 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데서 시작하십니다. 바로 거기서 믿음이 없다고 야단치지 않으셨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이시는 대로 질문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참 감사합니다. 사람은 자기 생각이 있으면 그대로 행합니다. 예수께서는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이를 보도록 하십니다. 그러자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섰습니다(17).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그 당사자를 두고 그렇게 말하였습니다(18). 예수께서 “무슨 일이냐” 물으셨습니다(19상). 예수님은 무슨 이야기이든 우리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리고 대화를 이어가십니다.

그러자 그가 예수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하였습니다(19하-21상). 사람들은 예수께서 자신을 자유롭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형제는 사장님이 자기에게 연봉 200만원만 더 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사장에게 ‘그 사람에게 그 200만원 더 줘’라고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라 하였습니다(21하,22상).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놀랍니다.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22하,23) 그들이 천사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였습니다(24). 그들이 원하였던 바는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면 그 살아나신 몸을 보기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증거만 들었고 몸을 보지 못했습니다.

거기까지 들으시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5절을 봅시다. 그들을 “미련하다” 하셨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들이 미련합니까?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하셨습니다. 언젠가는 믿을지 모르겠습니다. 죽기 전에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들은 그저 놀랄 뿐이었습니다. 눈 앞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더디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미련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미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26절을 봅시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셨습니다. 이들은 고난을 싫어하였습니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산다고 할 때 고난 없이 바로 영광이 오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은 기말고사를 치다가 모르는 문제가 나오자 답을 알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공부는 하지 않고. 결과는 하나님의 뜻하신 바대로 되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고난이 있고, 그 다음에 영광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께서 고난 받고 십자가에 죽임 당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부터 예수님의 말씀이 영 마뜩치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을 떠나 죄인 된 우리로서는 너무나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을 풀어주셨습니다. 27절을 봅시다. “이에” 예수께서 고난 받고 영광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고 공부를 합니다. 공부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고난입니다. 생각을 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믿으면 하나님께서 자기 생각대로 해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는 생각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이 생각없는 제자들에게,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성경 말씀을 자세히 풀어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께서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셨습니다(28). 창세기부터 시작하셨으니 얼마나 하실 말씀이 많으셨을까요. 그들이 예수께서 풀어주시는 말씀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들이 강권하였습니다.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였습니다(29상). 이에 그들과 함께 예수께서 유하러 들어가셨습니다(29하). 일박이일 수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셨습니다(30). 그때 그들의 눈이 떠졌습니다(31상). 먹어야 눈이 밝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때 그들은 광야에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신 예수님, 마지막 날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떡을 떼어주시던 예수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그때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셨습니다(31하). 이제 그들의 속에 말씀이 기억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하였습니까? 32절을 봅시다. 그들이 서로 말하였습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그들의 마음에 감동감화가 있었습니다. 감동을 받은 그들은 곧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33상). 엠마오로 가던 길에서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행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33하). 그들이 서로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였습니다(34). 그래서 그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였습니다(35).

이 공동체가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예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고, 예수께서 어떻게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서 놀라운 일을 하셨는지를 서로 말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주님의 뜻하심을 구하는 모임이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에 예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36-53)

36절을 봅시다.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셨습니다. 부활의 은혜를 나누는 믿음의 공동체였지만 당시 그들에게는 평안이 필요하였습니다. 두려움이 있었습니다(37,38).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가 주의 길을 좇아가는데 있어 우리에게는 염려와 두려움이 있습니다. 왜나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 받으신 것처럼 나 자신도 고난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보고도 두려워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영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37). 사람은 영이다 했을 때, 뭔가 보이지 않는, 실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의 말씀이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니 실제에서는 늘 두렵고 평강이 없습니다. 놀라고 무서워하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하시면서(38),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하셨습니다(39).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뿐이었습니다(40,41상).

이에 예수께서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셨습니다(41하). 사람이 산다는 것은 먹는데 있습니다. 병원에서도 사람이 먹고 배설할 수 있으면 퇴원합니다. 먹지 못하면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제자들 앞에서 잡수셨습니다(42,43). 예수께서 몸이 부활하셨음을 확실히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4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45),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하셨습니다(46-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그들이 말씀에 기록된 대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라 하셨습니다.

이어서 약속하셨습니다. 49절을 봅시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셨습니다. 이 약속하신 것은 성령입니다. 누가는 누가복음에 이이서 이 말씀하신 대로 사도들이 성령을 받고 행한 사도행전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셨습니다(50,51). 그들이 예수께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52,53). 성전은 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하늘로 올려지시는 예수님을 보고는 성전에서 늘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부활을 실제로 믿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 죄를 다 사하신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게도 새로운 삶에 대한 눈을 가지게 하십니다. 저는 삼십년 세월 동안 먹고 살 걱정 없이 복음역사에 쓰임 받았습니다. 이제 내년이면 학교에서 은퇴하고 저는 오늘 날씨처럼 추운 세상에 나가게 됩니다. 누가 있어 제게 먹을 것을 주겠습니까? 이 시간 주께서 처음 제게 감동을 주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 회사 다니면서 뇌물 가져다주며 살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말씀역사에 들어왔습니다. 먹을 걱정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주께서는 제게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하셨습니다(출애굽기 12:14). 그리고 오늘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는 말씀을 듣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주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셔서 주의 증인들을 통해 제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부활의 증인들이 우리에게 말씀을 기억하라고 전합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말씀을 듣고 받은 우리 각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하십니다. 말씀을 듣고 받은 우리 각 사람이 어느 때, 어느 곳,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을 기억하고 붙들어 부활의 증인으로 쓰임 받을 줄 믿습니다. 아멘!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누가복음 24:6)

 

2017 누가복음 47강 메시지 2401-2453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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