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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7.09.12 14:10

2017년 누가복음 35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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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35 강                                                                                                  김요한

누가복음 17:20-37

 

 

인자가 나타나는 날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누가복음 17: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이 있습니다. 세상이 어제나 오늘이나 다 그저 비슷한 것 같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자, 곧 말씀하신대로 고난 받고 다시 사시고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시 오실 날이 있습니다. 그 날이 있으니, 지금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20,21)

20절부터 봅시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예수께 대하여 적대적인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이런 질문을 예수께 하였을까요? 예수님의 대답을 보면 이들이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에 임하는지 알면 전략적으로, 즉 그에 맞추어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준비하고자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하셨습니다.

21절을 봅시다. 그래서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래서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 무엇을 한들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안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속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내 자신의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 나라는 이미 그 사람 속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겉으로 손을 씻고 대접을 씻는 것도 하여야 하겠지만, 그것보다도 속에서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사람의 속에서부터 이미 재물로 친구를 사귀고, 무슨 대가를 바라며 사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원망 없이 불평 없이 사귀게 됩니다. 그리고 또 회개하면 얼마든지 누구든지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번개가 비침같이 오리라(22-24)

22절을 봅시다. 이번에는 또 제자들에게 이르셨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제자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이 세상에 살면서 얼마나 예수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겠습니까?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여도 볼 수 없다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23,24절을 봅시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예수님은 번개처럼 갑자기 홀연히 오십니다. 번개는 또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하면 하늘 아래 저쪽까지 순식간에 비춥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서 기다릴 이유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우리 모임에 와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하면 솔깃할 수 있지만, 예수께서는 그런 곳에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디 가서 기다리지 않으면 예수님 따르는 제자들이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25-30)

25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날 하루 보기를 원하지만, 예수님은 번개처럼 갑자기 오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먼저 많은 고난을 받는다 하십니다.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부터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아기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속에서 믿는 사람은 그래서 우쭐댈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예수님을 믿는다 한다면 천사가 전해준대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아기가 우리가 봐야 할 그리스도의 표적입니다. 처음서부터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세상의 찌끼같이 되었습니다.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세상에서 고난 받을 각오를 하도록 하십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현실은 지금도 그러하지만, 노아의 때도 그러했습니다. 26절을 봅시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하십니다. 27절을 봅시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갔습니다. 어느 문화권에서든 하는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백 이십 년 후에 홍수가 있을 것이라고 노아가 말해도 사람들은 ‘어제도 비 안 왔는데, 지난 해도 비가 그렇게 많이 오지 않았는데. 설마 그렇게 심한 홍수가 있겠나.’ 하였습니다. 비가 시작되었을 때도 ‘설마 계속 비가 오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러나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습니다.

또 롯의 때와 같을 것입니다. 롯의 때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28). 그런데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습니다(29). 멸망시킬 때가 왔음을 천사들이 알렸어도, 롯의 사위들은 ‘흥, 이제까지 별일 없었는데 무슨 그런 일이 있습니까?’하고 비웃었습니다(창세기 19:14).

30절을 봅시다.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우리가 말씀을 읽고 말씀대로 살면서 가장 속 상하는 일은 예수께서 빨리 오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속히 오시면 저렇게 예수님 믿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판받고,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텐데. 뭐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예수님은 고난 받으셨고,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고난 받습니다. 앞으로도 별로 변할 것 같지 않습니다.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살면서 나만 이렇게 예수님 믿고 어느 형제가 말한 것처럼 과로사하고 개죽음 당하는 것은 아닌가? 나만 왜 순종해야 하는가? 전략적으로 머리 쓰고, 다음을 준비하는 이 세대, 그렇게 하는 것이 잘 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이 시대에서, 왜 나만 그렇게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 속이 상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좇아간다 할 때 버림 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지금 예수께서 나타나도 말씀대로 따르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31-37)

31절을 봅시다. 그 날에, 주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하십니다.

그리고 32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대놓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롯의 처가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죄에 빠진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려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습니다. 그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창세기 19:24-26). 아마도 롯의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가 불에 탈 때, 자기 집 세간은 어떻게 되었나, 내가 살던 집은, 내가 네 시간이 고르고 골라 사서 입던 옷은 어떻게 되었나 몹시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멸망당할 땅을. 그러면 소금기둥이 되고 맙니다. 왜 소금 기둥이 되었을까요? 그만큼 짜게 살았던 같습니다. 재물로 친구 사귈지도 모르고. 돈 모아 패물 사고, 그릇 사고, 가방 사고, 옷을 샀던 것 같습니다. 그것들이 불에 타니 얼마나 궁금했을까요?

그렇게 롯의 아내처럼 뒤를 돌아보고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장기려 박사 아시지요? 우리 천모세 목자가 그 분을 존경하여 그의 아들 이름을 기려로 했지요. 장기려 박사는 어릴 때 소학교 지금의 초등학교 1,2학년 때 친구 따라서 담배 피우다가 사촌형에게 걸려 손바닥을 자로 맞았습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담배를 피우지 않았습니다. 뒤 돌아보지 않고 끊었습니다. 송도고보 지금의 중학교 시절에 낮에는 정구를 치고, 밤에는 6백 화투를 쳤습니다. 친구들로부터 ‘화투대학을 졸업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게임에 빠져 있었습니다. 2년을 그렇게 살다가 할머니의 영향으로 성경말씀을 읽고 예배당을 다니던 장기려 형제는 자신이 하나님의 시간을 도둑질하고 부모님이 주신 학비를 남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비유의 둘째 아들처럼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 때 ‘인간은 참으로 죄인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고 생각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동시에 ‘앞으로 무엇을 해서 나의 사명을 다 할 수 있을까’ 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속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으니 나의 전 인격을 그리스도에게 바치고 그의 뜻대로 살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교사가 되려 하다가, 생각이 바뀌어 공과대학 시험을 쳤는데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당시 가장 등록금이 싼 경성의전(지금의 서울대학교 의대)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매일 ‘들어가게만 해주신다면 의사를 한 번도 못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습니다’고 기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경성의전에 들어갈 만한 성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등으로 졸업했습니다. 왜냐하면 기려학생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술을 마시고 모두 1년 정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전에 합격하고 우리가 아는 장기려 박사님이 되셨습니다(생명과 사랑-인간 장기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죄 사함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이같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바울 사도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하였습니다(빌립보서 3:13,14).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을 때 앞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그동안 죄 짓고 사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성경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의 부르심에 따라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가 보입니다. 죄 사함의 은혜가 있으면 부르심의 은혜가 임합니다. 우리가 이 모임에서 고난을 감당하는 것은 위로부터 부르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33절을 봅시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하셨습니다. 참으로 역설입니다. 그러나 자기 목숨을 보전하려고 믿음을 저버렸을 때 그 사람은 영원한 형벌에 처해집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 그러나 자기 목숨을 잃는다 하더라도 믿음을 지키는 사람은 주님께서 그 사람을 살리십니다.

믿음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 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는 그 사람의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십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34절을 봅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수양회에서 같은 방에 있다 하여 그 방에 있는 사람이 다 같이 천국가는 일은 없습니다. 한 사람의 믿음의 중요합니다. 35절을 봅시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입니다.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한다 하더라도 지금 여기서 같이 있다 하더라도 데려감을 얻는 사람이 있고, 버려둠을 당할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이 34,35절 말씀을 군대 예배에서 아주 실감 있게 들었습니다. 제가 배속 받은 사단의 사단장은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상당수의 장교들이 식사기도를 잘했습니다. 주일예배 때는 사단교회에 넘쳐나도록 군인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단장이 다른 곳으로 가고, 다음으로 온 사단장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주일이었는데, 예배에 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딱 세 명이 왔습니다. 사단 군목, 군종, 그리고 저 세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군목이 전한 말씀이 누가복음 34,35절입니다. 요지는 사단장을 태우고 달리던 지프차에서 갑자기 운전병은 위로 데려감을 당하였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고 메시지가 끝났습니다.

예수께서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저는 자다가 제 동역자는 위로 데려감을 얻고, 저는 버려둠을 당할까 싶어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런다고 되겠습니까? 막내를 태우고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나만 올라가고, 막내는 남아 있을 것 같아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런다고 되겠습니까? 손을 잡는다고 되지 않습니다. 내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37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르시되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36절이 없어서 무슨 질문인지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인다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주검, 곧 시체를 뜯어 먹고 삽니다. 무엇인가 조짐이 있는 곳에 조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에서 예수님을 떠나 있으면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죽은 존재입니다. 거기에는 독수리가 모입니다. 곧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말세를 사는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은 지금, 말씀대로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히브리서 12:2). 예수님은 말씀대로 다시 오십니다. 우리는 그야말로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떠나면, 내 목숨 살리기 위해 말씀을 떠나버리면 주검이 되고, 그곳에 독수리가 모일 것입니다. 깨어 기도하며, 나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께서 나를 무엇을 위해 부르시는지 앞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와 같이, 바울 사도와 같이, 장기려 박사와 같이 그리고 우리 믿음의 선배들 같이 주님의 뜻이 보이면 그 사람은 진실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갑자기 다시 오십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집을 짓지만 예수님은 갑자기 다시 오셔서 믿음 없이 사는 사람들을 멸망시키십니다. 세상이 어떠하든 우리 각 사람은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뒤로 돌이키지 말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지금 여기서 믿음 가지고 재물로 친구를 사귀며, 용서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누가복음 17:30)

 

2017 누가복음 35강 메시지 1720-1737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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