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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인제·양산 여름수양회 3강 메시지                                                                           박엘리야

요한복음 8:1-12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8:11)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 저이지만 저의 속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정죄의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려 해도 하나님께서 저를 외면하시는 것 같아 기도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제게 한 줄기 빛이 비취었습니다. 생명의 빛, 예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저를 포함한 우리에게 무엇이라 하십니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1-9)

1절을 봅시다. 어떻게 시작하고 있습니까? “예수는”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은 저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가 봐야 할 분이 예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명절이 끝나고 사람들은 집으로 각각 돌아갔는데(7:53), 예수님은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집으로 가시지 않고 왜 산으로 가셨을까? 이해가 되지 않아 예수께서 가신 감람산이 어떤 곳인가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감람산은 예루살렘이 한 눈에 보이는 곳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곳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산으로 가신 이유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러 가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십니다. 예수께서 저를 위해 기도하심을 알게 되자, 저를 챙기시는 주님을 생각하니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 저를 위해 무엇을 기도하셨을까 궁금해졌습니다.

말씀으로 돌아가 찾아봅시다. 2절을 봅시다.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와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백성들을 만나시기 위해서 꼭두새벽부터 성전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자나 깨나 백성들 생각이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이렇게 생각해 준다면 세상 살 맛이 날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말씀을 듣고 읽으며 예수님이 저를 끔찍이 생각해 주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세상 살 맛이 납니다.

예수께서 백성들을 생각하셔서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가면 복된 소식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학생시절 장막에 있을 때 아침에 일어나 양식을 먹는 것이 꿀맛 같았습니다. 오늘은 어떤 말씀일까 기대가 되었습니다. 말씀은 하루를 살아갈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께로 몰리자, 이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무리가 생겼습니다. 3절을 봅시다. 그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그들은 시기질투의 대상인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색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무엇을 하였습니까?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는 장소에 왔습니다. 남자는 도망을 갔는지 연약한 여자가 잡혔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예수님과 사람들 가운데 세웠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다 이 여자에게 꽂혔습니다.

그러면 이 여자는 왜 여기에 끌러오게 되었습니까? 백성들이 다 말씀 들으러 갔는데 이 여자는 말씀을 들으러 가지 않고 간음하다 잡혀 왔습니다. 사람이 말씀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를 보게 됩니다. 다윗 왕도 이스라엘 온 군대가 출정하였을 때 혼자 궁에 남아 늦잠을 자다 간음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사무엘하 11장). 저도 말씀을 멀리하자 정욕의 노예가 되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일에 파묻혀 지내다가 집에 가면 거실에 있는 TV를 켰습니다. 이리 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19금 성인 영화가 눈에 들어오면 채널을 고정하고 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인데 싶으면서도 나라는 존재가 이런 존재다 하며 자기 합리화를 하며 보았습니다. 이 여자도 말씀을 멀리하고 명절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인제대학교도 축제가 끝날 무렵이면 술에 취한 여자들이 남자들 등에 업혀 다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말씀에서 멀어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4절을 봅시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하였습니다. 간음이란 아내와 남편이 있는 데 아내 아닌 다른 여자,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맺으신 신성한 결혼을 깨는 것이며 가정을 파괴시키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간음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습니다(레위기 20:10, 신명기 22:22-24). 죄의 댓가는 참혹합니다. 무수히 날아오는 돌에 머리가 터지고 뼈가 어스러지는 고통을 겪다 죽게 됩니다.

여자는 이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것을 듣고 하늘이 노랬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가 모든 사람에게 다 드러났고, 가족들과 아이들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있는 가운데 눈을 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수치심과 죽음이 주는 공포 가운데 덜덜 떨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대로라면 이 여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간음을 더 넓게 보셨습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 하셨습니다(마태복음 5:28). 이로 볼 때 저도 돌에 맞아 죽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됩니다. 저는 소파에 앉아 죽을 일을 행하고 있는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볼 때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율법은 저에게 말합니다. 너는 이제 죽은 목숨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뭐 그럴 수 있지 하고 이런 저런 변명을 해 보지만 법 앞에서는 빠져 나갈 구멍이 없습니다. 죄를 짓게 되면 이 여인처럼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가 있어도 안 그런 척하여 들어 나지 않게 숨기고 감추고 변명하려고 애를 씁니다. 무덤에 까지 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6절을 봅시다.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그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함이었습니다. 어떤 점에서 고발할 조건이 되는 것일까요?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하에 있어서 사법권이 로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마음대로 죽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만약에 모세의 율법대로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하였다면 살인교사의 협의가 성립되고 살인교사자로 고발을 당하게 됩니다. 로마 당국에 잡혀가 그에 상응한 벌을 받게 됩니다. 반대로 예수님이 돌로 치지 말라하면 율법을 어기게 됩니다. 말씀을 말씀대로 가르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이단이란 낙인이 찍히게 되고 백성들에게서 외면을 받게 됩니다. 말씀을 아는 서기관들이 오직 예수님을 어떻게든지 걸려들게 하려고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연약한 죄인을 두고 예수께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6절 하반 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몸을 굽히셨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땅에 뭔가를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의외의 행동을 하셨습니다. 몸을 굽히시다니 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하셨습니다. 저 같으면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며 따지거나 왜 약한 여자를 데리고 와서 행패를 부리느냐 하며 자존심을 내세우며 따질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과 싸움을 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셨습니다. 그들의 질문을 간파하시고 휘말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평정을 지키시고 본인 할 일을 찾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지혜롭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7절을 봅시다. 그들이 묻기를 마지아니하였습니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냐는 등 예수님을 에워싸고 한마디씩 심기를 건드리는 자극적인 말로 말문을 열려고 하였습니다. 제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저 죄인은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예수께서 왜 저렇게 뜸을 들이시는지 답답해하였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그런 말에 요동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시던 일을 멈추시고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뭔가를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돌을 던지려 했던 자신을 발견하고 멈칫하였습니다. 제가 죄가 없다면 돌로 칠 수 있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는 말씀은 제 속에 있던 살기를 사그러들게 하십니다. 먼저 저의 속에 죄가 없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저는 결혼 한지 12년이 되었는데도, 지하철에서 날씬하고 예쁜 여자들이 앉아 있으며 저의 눈이 그 쪽으로 자동적으로 돌아갔습니다. 날씨 예보를 하는 여자를 볼 때 마다 황홀경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 자신을 돌아볼 때 제가 돌로 칠 입장이 못 됩니다. 오히려 제가 돌에 맞을 존재임을 발견하게 합니다.

9절을 봅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꼈습니다. 어른들부터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죽어 있던 사람의 양심을 깨웠습니다.

9절 하반 절을 봅시다. 정죄와 심판의 눈으로 보던 사람들은 다 물러가고, 오직 예수님과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만 남았습니다. 오직 죄 없으신 예수님과 죄가 드러난 여자만 남았습니다. 장차 모든 사람들이 이 여인처럼 예수님 앞에 단독으로 일대일로 홀로 서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지금 당장 어떻게 어떻게 해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가도 예수님은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마지막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그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요한복음 5:29).

그러면 오직 예수님과 죄가 드러난 여인만 있는 가운데 예수님은 이 여인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10-12)

10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침묵을 깨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들이 없느냐” 물으셨습니다.

저 같으면 와서 말씀 듣지 않고 딴 짓하더니 꼴좋다 맞아 죽어 마땅하다 했을 것 같습니다. 또는 왜 말씀 역사를 방해하느냐며 호통 쳤을 것 같고, 너 때문에 내가 곤란을 겪는다고 나무라고 윽박질렀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여자를, 죄인임이 다 드러났는데도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여자여 하여금 주위를 둘러보도록 하셨습니다. 자신을 정죄하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음을 보게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시는지? 예수님은 정죄에 시달리는 그녀의 마음을 헤아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죄로 인해 마음은 꽁꽁 얼어붙었을 것입니다. 이런 죄의식에 시달리는 여자를 예수께서 “여자여” 하고 부르셨습니다. 얼어붙어 있던 여자의 마음에 예수님의 음성이 파고 들어왔습니다. 연이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앉으셔서 정죄에 시달리는 여자를 생각하시고, 여자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무엇일까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여인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구원의 말씀을 그에게 들려주셨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꼭 감았던 눈을 살짝 뜨고 귀를 막고 있던 손을 내리고 고개를 천천히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움 중에서도 주위를 천천히 둘려 볼 수 있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돌을 들고 달려 들려고 하던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11절을 봅시다. 여인은 “주여 없나이다.” 하였습니다. 여인의 놀라움은 이로 말할 수 없었습니다. 여인은 사람들의 정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사람들의 정죄에서 구원하여 내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저에게도 예수님은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저는 대학 진학을 못하고 집에 누워 있었습니다. 밥 안 먹는다고 아버지에게 뺨을 맞았습니다. 딱한 처지에 있는 저를 누나가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해서 난생 처음 대학에 붙게 해 주세요 그러면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대학에 갈 수준이 못 되었습니다. 음란물에 중독되어 밤에는 음란물을 보고 낮에는 거의 잠을 잤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제가 갈 대학이 없다며 포기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아버지께 빰을 맞고 살 생각을 하니 끔찍하여 이에서 탈출하고자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인제대학교 경제학과에 기적적으로 입학하였습니다. 첫 등교 때 목자님이 예배에 초청하셨는데 저는 하나님의 뜻으로 여겨 참석하였습니다. 말씀을 공부하는 가운데 저의 죄가 발견 되었습니다. 밤마다 음란 동영상을 보는 것이 그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저의 죄가 발견 되자 말씀공부에 나가기 힘들었습니다. 말씀을 보면 계속 정죄의식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군대에 도피도 하고 장막을 나가기도 하고 연락을 끊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왔다 갔다를 반복하였습니다.

이런 저에게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저를 사람들의 정죄에서 구원하려 오셨음을 들려주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나가는 말씀을 읽을 때, 저를 정죄하던 사람들이 저에게서 하나씩 떠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께서 일어 나셔서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확인시켜 주셨을 때 정말로 사람들의 고발과 정죄에서 제가 놓여난 것을 맛보았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정죄 받는다는 생각에 시달리던 저는 날아 갈 듯 기뻤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람의 정죄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예수님은 저를 어떻게 대하실지 예수님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자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11절을 다시 읽어봅시다. 시작.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 죄 없으신 예수님, 얼마든지 율법에 따라 돌로 칠 수 있는 예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니 아니하노니” 하셨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정죄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예수님으로부터 정죄 받고 산다면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에게 찜찜한 무엇인가를 하나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여자를 살리시되 완전히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죄와 싸울 힘을 주셨습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말씀은 여자를 죄에서, 정죄에서 구원하신 예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저는 2004년 이 말씀을 받고 음란물을 완전히 제거 하였습니다. 이 후에 음란물을 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2년 전에 직장이 부산으로 옮겨졌습니다. 아침 5시10분에 일어나 밤 10시 넘도록 일할 때가 많았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나가서도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제게 동역자인 아내가 있어 참으로 감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기 바쁘고 버스와 지하철에서 골아 떨어졌습니다. 일용할 양식과 말씀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과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나 하고 리모콘을 돌리다가 성인 영화를 보았습니다. 아내가 뭐하냐며 나왔을 때 저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껐습니다. 정신이 들고 보니 사람을 의식했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은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했는데 저는 그 말씀을 어긴 것입니다. 저는 왜 이렇게 되었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정죄의식이 다시 밀려왔습니다. 예수님 앞에 다시 설 명목이 없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아내를 사랑한다고 한다는 서약도 어겼기 때문입니다. 왜 나는 남 몰래 어둠을 틈타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을 하고, 또 들킬까봐 깜짝 놀라는 삶을 살고 있는지 한심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어둠에 거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나름 생각해 보았지만 찾지를 못하였습니다.

말씀으로 돌아가 봅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여 주십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십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면 어둠이 물러가고 환하게 됩니다. 빛은 예수님 즉 예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면 어둠이 물러갑니다.

제 자신을 돌아 볼 때 바쁘다는 핑계로 말씀을 멀리하여 어둠의 세력에 잡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지니 않는다고 합니다. 제가 저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말씀을 가까이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어둠에 다니지 않게 됩니다. 제가 밤늦게 리모콘을 잡지 않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일용할 양식을 먹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해야 겠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예수님께서 얻게 된다고 하십니까? 생명의 빛을 얻게 되리라 말씀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도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죄와 싸울 힘을 주시는 세상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에 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습니다. 아멘!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요한복음 8:11)

 

3강 2017 0714 박엘리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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