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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22강 김아브라함
누가복음 12:35-59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누가복음 12:42)

 

 

오늘 말씀에는 비유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를 어떤 자세로 예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소망을 새롭게 허락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대비하는 자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이를 행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어떤 자세로 기다려야 합니까?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35-40)

35절을 봅시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하십니다. 허리에 띠를 띠는 것은 펄렁이는 옷을 정리하고 뭔가 일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등불을 켜고 서 있는 것 역시 어두우면 주인이 오는지 확인할 수 없으니 밝히고 깨어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기다리고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까? 36절을 봅시다.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아직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알 수 없습니다. 지금일 수도 있고 몇 시간 뒤일 수도 있습니다. 당시 혼인 잔치는 일주일씩 하였으니 다음날일 수도 있습니다. 계속 준비 상태로 있는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습니다(37). 기껏 준비하고 있다가 오늘은 안 올 거라면 퍼질러 자버린다면 그 복은 사라져 버립니다. 깨어 있는 자가 받을 복이 무엇입니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38) 주인이 오면 종들이 수종드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종들에게 수종을 든다고 합니다. 주인은 악한 주인이 아닙니다. 종들의 수고를 알아주시고, 그 수고에 상 주시는 분입니다.

주인이 올 때를 안다면 편히 쉬고 있다가 주인이 올 그때 딱 준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를 알지는 못합니다. 집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을 것입니다(39). 예수님의 다시 오심도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 예수님이 오십니다(40). 깨어 있는 자들은 영광으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 영접하고 주께로부터 영생의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깨어 있는다고 해서 잠도 자지 말아야 할까요? 구체적으로 깨어 있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41-48)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누구를 대상으로 하시는 말씀인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41) 제자들인 자신들만 깨어 있으면 되는지, 다른 사람들도 해당되는 것인 지를 물은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다같이 42절을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시작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깨어 있어야 하는 사람이 제자냐, 다른 사람들이냐는 중요치 않습니다. 예수님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를 찾으십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맡긴 것들을 주인의 뜻대로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창세기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 한 집에 청기기가 되었고(창세기 39:4), 바로의 나라, 곧 애굽의 총리로 나라의 청지기로 일했습니다(창세기 41:41-43). 아브라함의 종도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일에 자기 뜻대로 하지 아니하고 주인 아브라함이 섬기는 하나님께 구함으로 그 일을 해내었습니다(창세기 24). 예수님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를 찾으십니다. 지혜있다는 것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것입니다. 지혜가 있어야 주인의 재산과 종들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하다는 것은 신실하다 충성되다는 것입니다. 능력과 자질이 많아도 진실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청지기가 되지 못합니다. 청기기의 책임과 권한을 주인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인에게서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일입니다(42). 제때 양식이 나와야 종들이 일할 수 있습니다. 때를 따라 나누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종들의 상태를 잘 분별하여 가장 적절한 때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고자 할 때, 종들에 대해 깊은 애정과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깨어서 종들의 상태를 살피고 분별해야 합니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는 종들의 상태와 때를 잘 분별하여 적절하게 양식을 나누어주는 사람입니다. 또한 이렇게 때를 따라 나눠주는 것도 중요할 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신실하게 나눠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는 거르지 않고 정기적으로 신실하게 양식을 나눠주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로 살 때, 주인으로부터 어떤 상급을 받게 됩니까?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 청지기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습니다(43).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길 것입니다(44). 주인이 이를 때에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청지기는 복이 있습니다. 주인은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고 헌신하는 그 청지기를 너무나 귀하게 여기시고 칭찬하십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태복음 25:21) 그리고 그를 깊이 신뢰하여 모든 소유를 다 맡기십니다. 더 많은 종들을 맡기시고 더 많은 기업을 맡기십니다.

우리 역시 청지기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맡겨 주신 자들이 있습니다. 양이나, 자녀, 동역자, 가족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때를 따라 먹여야 합니다. 실제 먹는 양식을 나눠야 합니다. 먹어야 마음이 열리고 눈이 떠집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먹여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듣는 그 사람을 구원합니다. 우리가 때를 따라 영육간의 양식을 나누며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예수님이 다시 오심 때 칭찬받는 자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런데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실하지 못한 청지기는 어떻게 합니까?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45). 곧 오신다는 예수님이 이천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역사를 공부한 한 목자님은 내 살아생전에는 예수님이 오시지 않을 것 같다면 확신에 찬 말을 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 당장 오시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더디 오리라 생각하는 종과 같은 마음입니다. 이러할 때 주인의 뜻보다 자기 편한 대로 본성대로 행하게 됩니다. 내가 편하려니 종들을 시켜야 하고, 말을 듣지 않으니 때려야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됩니다. 지금은 안 오겠지 하는 그때,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릅니다(46). 인자이신 예수님도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다시 오십니다.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한 청지기를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할 것입니다(46).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 주의 제자들이 많이 맞을 것입니다(47).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을 것입니다. 무릇 많이 받은 바리새인, 서기관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고 할 것입니다(48).

이를 위해 예수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49-59)

49절을 봅시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49) 예수님은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습니다. 불은 모든 것을 태워버립니다. 더러운 것도 다 태워 없애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불로서 우리 내면에 있는 더러운 죄악을 다 태워버리고 깨끗게 하며 구원을 얻게 하려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세례를 받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받을 세례는 무엇입니까?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50) 예수님이 받을 세례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 권세를 깨셨습니다. 불과 같은 성령으로 인간의 죄악을 불태우고 정결케 하며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도리어 분쟁케 하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51) 예수님으로 인해서 어떤 분쟁이 일어나게 됩니까?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52,53) 이 분쟁은 가장 가까운 사이인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도 일어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가정에 평화가 있었는데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면서 분쟁이 일어날 때 이상하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지나친 것은 아닌가?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옵니다. 믿더라도 가족들과의 화평한 관계성을 유지하면서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도리어 분쟁케 하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분쟁과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은 빛과 어둠과의 싸움이요, 하나님 나라와 사단의 나라와의 싸움입니다. 이런 분쟁을 통해 가정 복음화가 이루어지고 진정한 화평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해서 일어나는 분쟁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54,55절을 봅시다. 당시 사람들은 구름이 서쪽 지중해에서 일어남을 보면 소나기가 오리라 하고, 또 아라비아 사막에서 남풍이 불면 심히 더우리라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처럼 천지의 기상은 잘 분변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시대는 분변치 못했습니다(56). 그 시대는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오신 시대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많은 이적이 행해졌고, 많은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이적과 예언의 성취 앞에서 불신과 세상 정욕을 회개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외식하느라 영적인 분별력을 상실하였고, 회개치 않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말씀과 예수님을 통해 일어나는 복음 역사를 보고서도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였습니다(57).

예수님은 외식하며 회개치 않는 그들에게 예수님과 화해하지 않을 때 무서운 심판이 임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셨습니다. 58,59절을 봅시다.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 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예수님은 심판장으로 가는 길에서 화해하라고 하셨습니다. 화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화해의 복음을 영접하고 회개하며 온전히 관계성을 회복하라고 하셨습니다.

매주 인제 양산 전체 역사를 위해 3가정 모임을 합니다. 이 모임을 하면서 항상 드는 제 생각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양들이나 동역자들이 어떤 상태인지, 그들이 말하지 않지만 진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또 이를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스스로 확실한 답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제 자신이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아닌 자신을 발견할 따름입니다. 알 수 없는, 그래서 골치 아픈 사람은 그냥 두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돌아가고, 고장나면 바꿔버리면 되는 기계랑만 놀면 마음이 편할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께서 맡기신 양들에게 때를 따라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주는 자를 찾으십니다. 내 속 지혜와 진실이 없음을 인정하고 다만 주께 주시길 간구해야겠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때마다 고백하고 주 앞에 진실히 행함으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는 청지기가 되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언제 다시 오실지 알 수 없습니다. 때는 모르지만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우리 각 사람이 예수님 다시 오심을 소망함으로 허리에 띠를 띠고 그리스도의 등불을 밝히는 삶,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께서 맡기신 양들에게 때를 따라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주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우리가 깨어 때를 따라 먹임으로 예수님의 기뻐하는 자요, 사랑하는 자로 하나님 나라에서 함께 기뻐하길 기도합니다. 아멘!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누가복음 12:42)

 

 

2022년 누가복음 22강 메시지 1235-1259 김아브라함.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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