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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18강 정여호수아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누가복음 11:2)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시고, 한적한 곳에 가서 따로 기도하셨습니다. 또 사도를 세우는 것과 같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밤새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방향을 따라 일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본받아 제자들도 이제 기도하고자 하는 영적인 소원과 방향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막상 기도하려고 하니 무엇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모르겠고, 실제 기도가 되지 않아 답답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을 보고 제자 중 하나가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하고 여쭈었습니다(1). 이런 제자들을 기뻐하사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하시며 기도를 친히 가르쳐 주십니다(2).

먼저 예수님은 너희는 어떻게 기도하라 하셨습니까?

아버지여(2)

먼저 예수님은 기도하기에 앞서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이 누군지부터 가르쳐 주십니다. 2절 상반절을 다시 봅시다. “너희는 기도할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신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도록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십계명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습니다(출애굽기 20:7).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면 라는 뜻을 가진 아도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깐 이제까지 그들에게 있어 하나님은 너무 거룩하시고, 엄위하셔서 가까이 하고 싶지만 멀리 할 수 밖에 없는 당신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제자들의 관계는 더 이상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라고 하십니다.

몇 년전 수양회때 요한목자님의 등을 향하여 감히 큰 눈덩이를 던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아닙니다. 레베카 목자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라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아버지와 자녀는 친밀한 사랑의 관계성을 가집니다.

그런데 요즘은 아버지라는 단어가 그렇게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어떤 분은 아버지하면 독재자가 떠오른다고 합니다. 또 어떤 분에게 아버지는 내가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하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에게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분 일 수도 있습니다. 이를 보면 육신의 아버지는 나를 낳아주셨지만 여러 가지 약점과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예전에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라는 말이 한참 유행했습니다. 아버지가 누구냐에 따라 그 자녀가 누릴 수 있는 혜택과 특권의 급이 달라진다는 데서 등장한 단어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이와는 급이 다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그 능력과 지혜와 사랑과 진실하심에 있어 한계가 없는, 전능하고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어떤 때에라도 나의 곁에 서서 나의 편이 되어 주사 나의 피난처가 되어 주시고, 보호자가 되시고, 비빌 언덕이 되어 주시는 참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모두를 다 은수저 금수저 이상으로 새롭게 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아버지를 둔 우리는 이제 어깨를 펼수 있습니다. 또 무엇이든 구할 수 있습니다. 아멘!

예수님은 아버지께 먼저 무엇을 구하라 하십니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2)

다같이 2절 하반절을 읽어 봅시다. “아버지여부터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이름은 명예와 영광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가장 먼저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로 볼 때 지금 세상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지 못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의 이름을 존중하지도 대접하지도 않습니다.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합니다. 아버지의 이름도 거룩히 여기지 않는데, 아버지의 나라는 어떨까요? 뭐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예 생각 자체가 없습니다. 이 세상 나라에 코를 박고 삽니다. 아버지의 존재보다, 돈을 인생의 주인 삼고, 이를 가장 가치있고 쓸모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돈만 있으면 안되는 일이 없고 돈이 된다면 못할 일이 없다고 합니다. 돈이 곧 하나님입니다.

이는 비단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믿는 분들이 직장을 선택할 때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섬길 수 있는 지를 보기보다, 연봉을 얼마나 더 많이 받는지, 내 커리어를 쌓는데 얼마나 더 도움이 되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내 입맛에 맞는 교회를 쇼핑하러 다니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비대면 예배에서 대면 예배로 전환이 되어도 계속 비대면 예배를 고집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예배조차도 스마트 폰으로 누워서 드린다고들 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대접하고 존중한다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예수님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자녀의 자녀됨은 아버지를 어떻게 대우하고 존중하는 데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우리의 마음의 자세와 생각이 세상과는 실제로 달라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이 기도를 따라, 기도함으로 실제에서 아버지의 이름과 나라를 더 앞세우길 기도합니다.

제가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지금 많이 부끄럽습니다. 제가 수양회 준비로 바쁘다는 핑계로 실제 저의 아버지의 생신 조차도 챙기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열국형제가 아니었으면 목자님들이 미국 워싱턴으로 가시기 전에, 같이 식사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열국 형제가 저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육신의 아버지와 목자님들께도 제가 이렇게 하고 있는데 실제로 하나님 아버지께는 제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싶습니다. 제가 자신을 볼 때 소망이 안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가 있어 언제라도 방향전환을 할수 있어 감사합니다.  제 마음 첫 자리에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늘 살아있어, 제가 먼저 아버지의 이름과 나라를 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이번 수양회에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받게 하는 일에 집중하길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예수님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어떻게 기도하라 하십니까?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3-4)

3절을 봅시다.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이제까지는 좀 거창했습니다. 갑자기 확 좁아진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머리는 하늘에 발은 땅에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산다고 할지라도 배가 고프면 아무일도 못합니다. 실제적인 삶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일용할 양식일까요? 기왕이면 연용할 양식, 달용할 양식, 하다못해 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이런 것은 구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주시지 왜 이것을 위해 굳이 기도하라고 하실까요? 이는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말해줍니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이 먹여 주시지 않으면 단 하루도 온전히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인정하기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내가 먹고 사는 거지 하나님은 무슨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농부가 아무리 수고하고 애를 쓰고,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하늘에서 해와 비를 내려 주시지 않으면 곡식을 얻지 못합니다. 직장 생활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예전에 어떤 목자님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이불속에서 오늘 하루도 무사히를 외치며 10분 동안 기도하지 않고는 도저히 출근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연봉이 빵빵한 신의 직장에 다닐지라도, 사실은 그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매일 치열한 싸움을 합니다. 일용할 양식도, 일할 직장도, 직장생활을 감당할 힘과 능력도 하나님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아버지 하나님께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겠습니다. 그리할 때 하늘에서 들으시고 우리를 필요를 따라 먹이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기도하라고 하시면서 나의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나뿐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에서 함께 동역하는 동역자, 여기서 더 확장하여 도움이 필요한 이웃까지도 마음에 품고 그들의 실제 먹는 문제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나 한 사람, 내 가족을 넘어서 우리 믿음의 공동체, 그리고 실제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아버지께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도록 기도하는 주의 자녀가 되길 기도합니다.

4절을 봅시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사람이 육의 필요를 만족시킨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은 죄 사함을 필요로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목욕을 했지만 발은 씻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13:10).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의 자녀가 되었지만, 여전히 육신이 연약하고 또 죄악되어서 죄를 다시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화평한 관계에서 오는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없습니다. 죄는 빚과 같아서 탕감을 받지 못하면 계속해서 눌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도록 아버지께 기도하라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이렇게 죄에 계속 넘어집니까? 그것도 같은 죄에 이렇게 반복해서 넘어집니까? 우리로 시험하고 유혹하는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부지런히 찾습니다(베드로전서 5:8). 하나님과 그의 나라보다 나의 이름과 명예를 위해 살도록 부추십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뒤바꾸도록 유혹합니다. 우리가 이 같이 나를 유혹하는 사탄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겠습니다. 또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 유혹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겠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4) 아버지께 겸손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주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 모든 시험을 이길 진리의 말씀을 주사 우리로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아멘!

그런데 우리가 이 기도제목을 따라  기도할 때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까?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5-13)

5절을 봅시다. 어떤 사람이 자려고 하는 데에 멀리서 벗이 찾아왔습니다. 여행하다가 온 그 벗은 몹시 배가 고픈 상태였습니다. 그를 위해서 뭐라도 먹을 것을 챙겨주어야 하는데, 줄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6). 이에 옆집 사는 친구에게 찾아가 문을 두드리며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달라하였습니다(5). 가까스로 아이들을 재우고 누웠는데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청하면 정말 난감합니다. 이에 그 친구는 어떻게 했을까요?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7) 했을까요? 정말 할수만 있다면 그 친구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8절을 봅시다.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친구라서 준 것이 아닙니다. 그 간청함을 때문이었습니다. 밤새 시달리는 것이 괴로워서 그렇게 했습니다. 여기서 간청함이란 뻔뻔함, 염치없음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누가 와서 뻔뻔하게 들이대는 것을 참 싫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뻔뻔하게 염치없고 체면 불구하더라도 끈질기게 간청하라 하십니다. 우리는 기도도 한번 두 번 해보고 안들어 주시면 쉽게 그만두기 싶습니다. 또 구해도 내가 이를 구할만한 자격이 되는지 싶어 중단하기도 합니다. 계속 같은 죄문제로 넘어지는 자신을 볼 때 이제는 구하기도 부끄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우리가 뻔뻔하게 끈질기게 간청하라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까? 이는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10).11,12절을 봅시다. 세상에 어떤 아버지가 생선 먹고 싶다고 아들에게 뱀을 주겠습니까? 알을 먹고 싶다고 아이에게 전갈을 주겠습니까? 이같이 악한 부모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줄 아는데,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떠하십니까?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고자 하십니다. 그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이십니다(13). 성령이 왜 가장 좋은 것입니까? 우리를 정결하게 하되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정결하게 하십니다(에스겔 36:25). 또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새 마음을 주십니다(26). 무엇보다 우리 속에 거하여 우리로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십니다(27).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요한복음 16:13). 진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고린도전서 12:3). 진실로 우리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늘 아버지의 복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대로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따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살 수 있습니다. 죄사함의 은혜와 확신가운데 살수 있습니다. 마귀 사탄의 시험과 유혹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내 삶의 목적과 방향으로 삼고 살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충만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누가복음 11:2)

 

2022년 누가복음 18강 메시지 1101-1113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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