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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17강  정여호수아

누가복음 10:25-42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37)

 

   오늘 말씀도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하셨던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들을 위해 대신 고난받고 죽임당하러 가는 그 길에 내 이웃이 누구이니이까?”하고 묻는 율법교사에게 하셨던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예수께서 들려두시는 본문 말씀을 통해 지금 내 이웃이 누군지 알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영생 얻는 길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먼저 예수께서 율법을 지식적으로만 아는 율법교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25-29)

25절을 봅시다.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님을 시험하여 말합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이 율법교사는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일어나 질문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따르는 사람도 많은데 정말 자신처럼 말씀을 가르칠만한 자격과 수준이 되는지 한번 떠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속을 아십니다. 그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질문을 하는지를 아십니다. 누군가가 나를 시험하는 줄을 알면 상대하고 싶지 않고, 상대 해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26절을 봅시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되물으셨습니다. 율법교사로서 이 질문에 대해 말씀을 따라 본인이 찾은 답이 있는지 그것을 물으셨습니다. 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27절을 봅시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이렇게 대답한 것을 보면 그도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도 그의 대답을 들으시고 네 대답이 옳도다고 칭찬하셨습니다(28). 그런데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이셨습니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28) 율법을 아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행하라 하십니다. 그리하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 하십니다. 그의 문제가 무엇인지 예수께서 꼭 집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자존심이 상했던 것일까요? 그가 자기를 옳게 보이려 예수께 다시 질문합니다(29).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이오니까?” 의역하자면 저는 이웃 사랑을 누구보다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이웃이 있기라도 하단 말입니까?’ 이런 말일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가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그가 가진 이웃의 개념부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자 하셨습니다. 이에 한 가지 비유를 들려주시며 또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30-37)

30절을 봅시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에 이르는 길은 가파른데다, 양쪽은 바위산이고 또 중간에 40여 개의 언덕이 있어서 강도들이 바위산이나 언덕에 숨어 있다가 여행객을 습격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또 마구 때려서 거의 죽게 해 놓고는 가 버렸습니다(30). 그대로 두면 이 사람은 영영 죽게 될 것이었습니다. 31절을 봅시다. 그런데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여행하다가 그를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섬기고 사람들에게 봉사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직분이 아니더라도 죽게 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피하여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뒤에 한 레위인이 거기에 이르렀는데, 그 또한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32). 이들이 왜 이렇게 피하여 지나갔을까요? 당시 제사를 맡은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은 2주 동안이나 제사를 지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집에 급하고 중요한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니까, 모른 척하고 갈 길을 재촉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자기도 강도를 만나게 될까봐 급히 그 자리를 피하고자 했는지도 모릅니다. 혹시라도 함께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체면 때문에 도와줬을지도 모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이 부자이거나 권세 있는 사람이라면 나중에 덕을 보기 위해서라도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고 또 도와주어 봐야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으므로 피해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혹시 율법에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은 시신을 만지면 부정하게 된다 했으므로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 피한 걸까요? 그러나 확인조차 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들은 여러 이유를 대면서 당장 도와주지 않으면 죽게 된 사람을 놔두고 그 자리를 피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33절을 봅시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강도 만난 사람을 보았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깊은 반목관계를 생각하면, 이 사람은 누구보다 빨리 모른 체하고 지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 주었습니다(33,34). 당시에 포도주는 소독제로, 기름은 진통제로 쓰였으므로 응급 처치는 되었습니다. 이렇게 응급 처치를 한 다음 그를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는 밤새도록 그의 곁에서 정성껏 돌보아 주었습니다(34). 사실 이 정도까지만 해 주어도 어딘가 싶습니다. 더군다나 그도 따로 볼 일이 있어 지금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했습니까? 35절을 봅시. 그 이튿날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주며 이 사람을 돌보아 달라 부탁하였습니다. 두 데나리온이면 당시 노동자의 이틀치 품삯으로, 지금으로 약 20만원에 해당되는 적지 않은 돈입니다. 그런데 그는 강도 만난 사람을 위해 자기 돈을 내어 놓았고, 만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겠다고 약속까지 했습니다(35).

사마리아 사람은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체면상 또는 인정상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 응급 처치만 해 준 것이 아니라, 죽게 된 그가 완전히 치료되고 살아나기까지 돌봐 주었습니다. 자기 짐승을 내어주고, 자기가 돌봐 주고, 여관 주인에게 부탁하고, 또 자기가 돌아와서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생판 모르는 사람을 위해 자기 수중에 가진 돈을 썼을 뿐만 아니라 다시 돌아와서 더 주고자 했습니다. 그도 여행 중이라 피곤해서 주막에서 쉬고 싶었겠지만, 쉬어야 할 시간을 강도 만나 죽게 된 사람을 위해 썼습니다. 그야말로 그는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 해 강도 만난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여기까지 말씀하시고 예수님은 내 이웃이 누구이오니이까?” 하고 묻던 율법교사에게 물으셨습니다. 36절을 봅시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이에 율법교사가 대답했습니다.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37) 그는 사마리아 사람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무시하던 사마리아 사람을 자기 이웃이라고 말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도 강도 만난 사람에게 자비 베푼 사람이 진정한 이웃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37)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내 옆집에 사는 사람이 내 이웃입니까? 나와 같은 학과에 다니거나, 동문이 내 이웃입니까? 같은 동족이 내 이웃입니까?’ 우리도 이 율법교사처럼 를 중심으로 해서 내 이웃이 누구인가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십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중심으로, 누가 이런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하는지를 물으십니다. 이로볼 때 이웃은 어떤 정해진 사람이 아닙니다. 옆집에 산다고 해서, 같은 학교, 같은 과라고 해서, 같은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이웃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필요할 때 도와주지 않으면 이웃이 될 수 없고, 아무리 같은 장막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함께 생활을 해도 서로 자비를 베풀지 않으면 이웃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나의 이웃입니다. 이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다. 누구든 내가 그를 돕고 섬길 때 내가 그의 이웃이 되고 그가 나의 이웃이 됩니다.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하고 물었던 율법교사는 아마 그의 가족이나 친척이나 그의 동족은 사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같은 민족인 사마리아 사람들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혈통적으로는 혼혈되었고 종교적으로는 혼합되었다고 정죄했고 대화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는 비교적 상대하기 편한 자기와 관계가 있는 사람,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만 이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 이웃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기만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니 영생, 즉 구원과 행복을 맛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를 예수께서 그가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군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자기를 시험하려 하는 목적으로 나온 그도 불쌍히 여기사 친절과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의 참된 이웃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탄이라는 강도를 만나 피흘려 가며 죽게 된 우리 인생들을 보고 그냥 가만히 계시지 않고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낮고 낮은 땅으로 육신의 몸을 입고 찾아오셨습니다. 오셔서 상처를 싸매주고, 치료하고,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를 온전히 살리기 위해 자기를 완전히 내어주고자 하십니다. 이 일을 하고자 마음에 굳게 결심하시고 예루살렘에 오르고 계십니다. 아무도 감당해 주지 않는, 누구도 감당해 줄 수 없는 우리 인생들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자기 몸을 다 내어주고자 하십니다. 실제로 십자가에 자기를 다 내어주신 이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가 실제로 나음을 얻고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의 자비하심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예수께서 강도 만난 우리의 참 이웃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지금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우리가 죄와 사탄의 강도를 만나 피흘려 죽어가는 캠퍼스 형제자매의 고통과 아픔을 볼 수 있어야 겠습니다.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이 없어 고통하는 그들의 진정한 이웃이 되어 주어야 겠습니다. 피하여 지나가지 말고 자비를 베풀어야 겠습니다. 이를 통해 참 이웃을 얻고, 지금 여기서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시는 영생의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런데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자 할 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38-42)

38절을 봅시다.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마르다는 사랑하는 존경하는 예수님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밥도 짓고, 국도 끓이고, 전도 부치고, 시금치도 무치고, 잡채도 볶고, 생선도 굽고, 불고기도 양념하고, 후식도 준비하였습니다. 혼자서 준비하려니 분주하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동생 마리아가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계속 예수님의 말씀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39). ‘아니, 누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싶지 않아서 이러고 있나!’ 마르다는 얌체 같은 마리아가 얄미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얌체같은 마리아를 보고서도 아무말도 안하시는 예수님이 더 원망스러웠습니다. 이에 예수께 말합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40) 이런 마르다에게 예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41,42절을 봅시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마르다는 물론 예수님을 잘 섬기려고 했습니다.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여 섬기고자 했습니다. 섬기고자 하는 마리아의 소원은 아주 귀하고 좋은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이 일을 하다가 기쁨을 잃어 버렸습니다. 기쁨 대신 염려와 근심으로 가득했습니다. 도와주지 않는 마리아에 대한 미움으로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음식 가짓 수를 너무 많이 하려고 하다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풍성히 섬기면 물론 좋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몇 가지만 하든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다 하십니다. 콩나물국 하나만 있어도 된다고 하십니다. 그런 것 하느라 더 좋은 편, 곧 주의 말씀 듣는 것을 빼앗기면 안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많은 일을 함으로써 필요 이상으로 많이 섬기려 하기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데 집중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곧 여름수양회가 다가옵니다. 여름수양회를 앞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아 분주해지기 쉽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데 집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가장 먼저 나의 이웃으로 영접하고 그 하시는 말씀을 새겨 듣는 일에 더욱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말씀을 볼 때 진실로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되어야 합니까? 지금 여기서 내 도움이 필요한 그 사람이 내 이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 주께 입은 자비를 따라 지금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우리의 오그라진 손을 펴서 자비 베풀기를 기도합니다. 그 사랑이 열매를 맺도록 계속해서 주의 말씀을 듣고 받는 일에 집중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37)

2022년 누가복음 17강 메시지 1025-1042 정여호수아.hw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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