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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14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누가복음 9:18-36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누가복음 9:20)

 

예전에 어떤 한 형제목자님이 예수님을 따라 가는 삶이 마치 개죽음 당하는 것 같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또 어떤 한 자매 목자님은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 안지고 예수님 따르면 안되느냐고 했습니다. 또 어떤 한 형제는 일대일 하면서 세상 욕심을 채워가면서 왜 예수님을 따를 수는 없습니까라고 질문했다고 합니다. 이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닐 것입니다. 또 비단 이 분들 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따라야 할까요? 여기에 대한 답을 얻을려면 지금 나에게 있어 예수님이 누구신지가 명확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지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에게 줍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18-20)

18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번에도 따로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6장에서도 열둘을 사도로 임명하실 때에 산에 올라가 따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 지금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입니다. 바로 앞에서 오병이어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무리들을 먹이는 목자로 크게 성장하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는 갈릴리 사역의 가장 귀한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이제 제자들을 어떻게 돕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를 생각할 때 예수님은 간절한 심정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신 후 함께 하는 그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8) 이에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19절을 봅시다.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비교적 쉬운 질문이었습니다. 이것이 그 시대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견해였습니다. 헤롯 왕이 아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세례 요한, 엘리야, 선지자 다들 훌륭한 분들입니다. 어두운 시대에 빛을 밝혔습니다. 많은 이적을 행했습니다. 불의한 지도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바른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통쾌하게 생각했습니다. ‘! 사이다 같은 분이야!’ 사람들은 예수님도 그렇게 보았습니다. “, 사이다 같은 분이 또 나타났네! 뭔가 큰 일을 하실거야!” 이같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훌륭한 선지자로 보았습니다. 딱 거기까지 였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제자들에게도 질문하십니다. 20절을 봅시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앞의 질문이 객관식이었다면, 이 질문은 주관식이라고 할 수 있을것입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아는데, 지금 제자들 너희는 나를 정말 누구로 알고 따르고 있는지 그것을 대놓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베드로 대답은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선지자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가 무슨 뜻입니까? ‘기름 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구약 시대에 선지자, 대제사장, 왕이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는 선지자, 대제사장, 왕의 직분을 받아 그 백성을 구원하고 다스리실 구원자를 가리키는 다른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다윗의 왕위를 계승할 영원한 왕이요, 또 아론 계열을 대신할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모세보다 탁월한 참 선지자, 곧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주신 그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도 처음부터 이를 알았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는 예수님을 경험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는 예수께서 하시는 크고 놀라운 일을 계속 보고 체험했습니다. 예수께서 많은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불치병인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중풍병자에게는 죄사함을 선포하시고 일어나 걸어가게 하셨습니다. 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 하시면서 한 손 마른 자를 고치시고, 죽어 관속에 누워 있는 청년을 일으키셨습니다. 또 바람과 물결을 꾸짖어 잔잔하게 하시더니, 더러운 군대 귀신들린 거라사 광인도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열두해 혈루증 앓는 여자를 구원하시고, 이미 죽어버린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살려내셨습니다. 무엇보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다 배불리 먹이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가 누구이기에 이 같은 일을 하실 수 있으신지 베드로는 고민하고 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다라는 사실은 베드로 인생에 있어서 위대한 발견이었습니다. 이는 그의 인생에 있어 새로운 구원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라는 발견은 우리 인생에 새로운 전환을 가져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이 진리를 발견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를 발견한 사람은 무슨 일에도 주의 뜻을 구하고, 주께 감사하고, 주께 기쁨으로 헌신하는 삶을 삽니다그렇게 사는 데서 온전한 기쁨과 행복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주께 자신을 드리는 것을 항상 주저하고, 헛 생각에 시달리고, 진리의 길에서 발을 뺄 기회만 엿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아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입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 17:3) 그러므로 예수님은 언제까지나 우리에게 이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우리 각 사람이 이 질문을 따라 지금 나에게 있어 예수님이 누구신지 돌아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심령에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구원과 생명의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그런데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고백한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무엇이라 하십니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21-27)

21절을 봅시다.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곧 예수님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은 이를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무리들은 알지 못합니다. 아직 드러낼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그리스도로서 자신이 가셔야 할 길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22) 그리스도는 반드시 고난을 받고, 버린 바 되고, 죽임을 당하시고, 살아나셔야 합니다.

왜 그리스도께서 그 길을 가셔야 합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말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4-6) 한마디로 그가 이 같은 일을 당함은 바로 우리를 위함입니다. 우리 모두의 죄악을 대신 담당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고난 받고 죽임 당함으로 끝이 아닙니다. 제 삼일에 살아 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심도 우리를 위함이지만 그가 살아나심도 우리를 죽음에서 살아나도록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따르려는 제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23절을 봅시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야 합니다.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자기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어떤 순간에도 자기를 죽이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욕심, 자기 계획을 내려 놓는 것입니다. 자기를 죽이는 선택을 하기 위해 감당해야할 짐을 계속 짊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자기가 죽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기를 죽여야 한다고 하니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그것도 날마다 그렇게 하라고 하니 죽을 맛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24절을 봅시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그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구원받는데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하나밖에 없는 자기 목숨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25)? 아무리 돈을 많이 얻고 권력을 얻을지라도, 생명을 잃으면 그 얻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과 예수님의 이 말씀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도 예수께서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 중에 오시는 그날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그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26). 심지어 예수님은 지금 여기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다고 하십니다(27).

우리가 이를 어떻게 믿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28-36)

28절을 봅시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었습니다. 팔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지금 우리도 고난받고 버림받고 죽임당한다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눌리고 심히 부담스럽습니다. 제자들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눈도 마주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28).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습니다(29).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모습은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풍채도,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습니다(이사야 53:2). 그러나 변화되신 예수님은 세상에 그 어떤 영광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또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30절을 봅시다. 문뜩 두 사람이 와서 예수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었는데 그들은 누구도 아닌 바로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30). 그런데 그들이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했습니다(31). 그들의 말도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같이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을 때 베드로와 함께 있는 두 제자는 깊이 졸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과 함께 있는 두 사람을 보았습니다(32). 두 사람이 떠날 때 베드로가 예수께 말합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33) 베드로는 여기가 좋았습니다. 십자가 고난은 없고 예수님과 위대한 주의 종들과 함께 영원한 낙원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었습니다(34).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고도, 모세와 엘리야가 말해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직접 임재하신 것입니다. 무서워 떠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구름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35) 소리가 그치매 제자들에게 오직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였습니다(36).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너희가 아는 데로 예수님이 택함을 받은 나의 아들, 곧 그리스도가 맞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헛소리하지 말고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들어야 할 그의 말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림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이 길이 진정한 구원의 길이요, 영광에 이르는 길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이 본문을 공부하면서 예수님이 지금 나에게 있어 누구신지 질문할 때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저에게 있어 그리스도가 맡긴 한데 과거에 만난 그 그리스도에 머물러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해주셔야만 한다는 생각이 아직도 강함을 봅니다. 이런 제게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며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말씀을 새롭게 들려주심에 감사합니다. 또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저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 모임을 위하여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고난을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저를 위해 자기를 목숨을 내어 놓으신 그리스도의 말을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고난받고, 버림받고, 죽임 당하는 길을 가시는 유일한 그리스도 이십니다. 누가 있어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 죄로부터 구원해 줄 수 있습니까? 오직 우리 죄인을 위하여 자기를 완전히 내어 놓으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하십니다. 우리 각 사람이 어떤 모양으로든지 이 예수께 입은 구원의 은혜가 다 있을 줄로 압니다. 받은 은혜를 따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는냐?"는 예수님의 이 질문에 분명하게 답을 해야 겠습니다. 우리 안에 베드로와 같이 믿음으로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역사가 계속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믿음의 고백을 따라 어떤 때에라도 그의 말을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짐으로 실제 삶속에서 구원을 얻고 또 주의 영광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누가복음 9:20)

 

 

2022년 누가복음 14강 메시지 0918-0936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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