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INJE UBF

메시지

조회 수 5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2022년 누가복음 11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누가복음 8:22-39

 

 

그가 누구이기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누가복음 8:25)

 

오늘 말씀에서 예수께서 바람과 물결을 잔잔하게 하시고,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해결하십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알고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8:22-25)

22절을 봅시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이에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배를 저어 갈릴리 호수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말씀을 가르치시느라 피곤하셨는지 예수께서 행선 중에 잠이 드셨습니다(23). 예수님도 주무신다니 은혜가 됩니다. 모처럼 만에 찾아온 여유로 인해 제자들도 잠시나마 쉼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할 소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고 잔잔했던 호수는 갑자기 사나운 맹수로 변해서 거칠게 으르렁댔습니다(23). 제자들은 전직 어부의 실력을 발휘해서 이 상황을 헤쳐 나가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거센 광풍 앞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배 안에 물이 차서 위태롭게 되었습니다(23).

이런 광풍이 갈릴리 호수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도 불어옵니다. 어떤 바람은 잠깐 불다가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죽을 것 같이 거센 바람이 불어 닥치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내 인생의 항해에서 언제 닥칠지 모를 광풍을 막아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따릅니다. 예수님께서 떨어질 것 같았던 시험도 붙여주기를 바라고, 얽히고 꼬인 문제들을 풀어주기를 바랍니다. 사고를 당하더라도 뭔가 특별한 보호하심 속에서 안전하길 바랍니다. 시험을 봐도 공부한 것에서만 나오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많은 경우 주의 도우심을 받은 경험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늘 이렇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오히려 지금 제자들에게 일어난 것과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일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꼬이는 것 같습니다. 더 힘들고 심지어 죽을 지경이 됩니다. 그러면 내가 이럴려고 예수님을 믿고 따랐는가? 하는 의심과 불신과 원망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지금 제자들이 그러했습니다. 거센 광풍 때문에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도 한쪽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볼 때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 때 제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24절을 봅시다. 그들은 다급한 목소리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그런데 잠이 깨신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나더러 어쩌라고하시며 같이 두려워 떠셨습니까? 아니면 광풍에게 사정을 하셨습니까? 세상의 모든 종교는 광풍과 같은 거센 자연 앞에 사정을 합니다. 재물을 바치며 달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셨습니다. 바람과 물결이 꾸짖는다고 말을 들어 먹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꾸짖자 언제그랬냐는 듯이 바람과 물결이 곧 그치고 잔잔해졌습니다(24).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바람과 물결이 즉시 순종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제자들도 꾸짖으십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이에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합니다.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25) 제자들의 질문대로 예수님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합니까?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바로 그분, 곧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이를 드러내셨습니다. 광풍을 잔잔하게 하심으로 드러내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믿고 따르고 있습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어디까지 믿고 있습니까? 사실 우리 신앙의 여정에서 계속 순풍만 불 때는 예수님이 정말 누구신지, 또 내 믿음의 현주소가 어디쯤인지도 잘 모릅니다. 나와 함께하고 계신 예수님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도 않고, 주무셔도 깨울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처럼 광풍이 불어 닥치고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예수님을 다급하게 찾고 흔들어 깨웁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우리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하시고 또 체험하게 하십니다. 바람과 물결까지도 잔잔하게 하시는 창조주로 친히 만나 주십니다. 우리 스스로는 이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 인생의 배에 승선하고 계십니다. 이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로 이 믿음을 갖기까지 친히 일하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제자들처럼 주께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 안에 주무시는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주께서 어떤 크고 강한 광풍이라도 잔잔하게 하십니다. 우리를 원래의 목적지인 영원하고 가장 안전한 포구,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이 승선하신 그 인생의 배는 결코 파선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런데 예수께서 이같이 바람과 물결만 잔잔하게 하실까요?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도 잔잔하게 하십니다. 어떻게 잔잔하게 하십니까?

네 이름이 무엇이냐(26-39)

26절을 봅시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육지에 내리자마자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 들린 자가 하나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27). 그런데 이 사람의 상태가 어떠했습니까?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또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27). 이 사람이 살고 있는 무덤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요즘 나홀로 자신을 자학하며 자신의 거처를 무덤 삼아서 지내는 젊은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고시원에서, 아니면 PC방에서, 원룸에서 아니면 자기 방을 무덤삼아서 자신의 청춘을 허비하고 자학하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왜 이런 곳에서 혼자 살려고 할까요? 다 알수는 없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사람이 이러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귀신 들렸기 때문입니다. 곧 귀신이 그 사람을 사로 잡고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고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리더니 큰 소리로 불러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28) 방금 만난 예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귀신같이 알아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반응이 좀 이상합니다.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있느냐고 합니다.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중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말과 행동이 따로 놉니다.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기 때문입니다(29). 귀신이 예수님을 귀신 같이 알아본 이상으로, 예수님도 이 사람을 붙잡고 있는 더러운 귀신을 알아 보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명하시면 바람과 물결도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이 더러운 귀신은 꿈쩍도 하지 않고 버팁니다. 이에 예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30절을 봅시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이름은 한 사람의 존재와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이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왜 이름을 물으셨을까요? 지금 이 사람은 자신이 귀신인지, 귀신이 자기인지 분별이 안 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자신을 찾으려면 먼저 자신의 이름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자신의 참된 자아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왜 옷을 자꾸 벗어던지는지? 왜 자꾸 사람들을 피해 숨고자 하는지? 왜 자꾸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진단이 제대로 되어야 치료가 시작되듯이, 이렇게 자신의 이름, 자신의 참된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 때 예수님의 치료를 받아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질문은 이 사람 안에 있는 더러운 귀신들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 실체를 밝히는 것입니다. 정체가 드러나면 귀신은 어떠한 힘도 쓰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30절 하반절을 봅시다. “이르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군대는 로마의 한 군단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당시 로마의 한 군단은 약 3000명에서 600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이런 군대라고 한 것은 군대의 군단과 같이 강한 세력으로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한 두 가지 세력에만 붙잡혀도 정말 힘듭니다.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파워가 군단급입니다. 온갖 귀신들이 이 사람 안에 가득합니다. 그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귀신이 그냥 아무에게나 들어가지 않습니다. 귀신이 들어갈 때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죄입니다. 반복해서 죄에 노출되고, 그 죄를 즐기고 타협하게 되면 점점 그 죄의 세력에 사람은 붙잡히게 됩니다. 죄가 귀신을 불러들이고, 또 그 귀신은 사람으로 하여금 더 많은 죄를 짓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되면 될수록 그 세력은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그의 생각과 인격과 행동을 완전히 사로잡아 망하게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심으로 그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존재가 귀신임을 분명히 드러내셨습니다.

정체가 탄로나자 처음에는 자신을 괴롭게 하지 말라며 큰소리 치며 버티던 귀신이 갑자기 태세 전환을 합니다. 31절을 봅시다. 자기들을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말아달라고 간구합니다. 마침 그곳에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은 자기들을 무저갱 대신 저 돼지들에게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허락을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 간구를 허락해 주십니다(32). 이에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 나와서 돼지 떼에게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평화롭게 있던 돼지 떼가 갑자기 비탈을 내리 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였습니다(33).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요? 이전까지 예수님은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실 때 그냥 말씀으로 내어 쫓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귀신의 간구를 허락하사 아까운 돼지 떼가 희생당하도록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몇 년 전에 도깨비라는 인기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착한 도깨비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착한 귀신이 실제로 있을까요? 그런 귀신은 없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사람을 죽이고 파괴하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입니다. 그 분명한 증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이 사람 안에서 나온 귀신의 세력이 돼지 떼를 죽게 해서 호수에 둥둥 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통해 정말 귀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죄에서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반드시 대가와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셨습니다. 이 사람의 존재는 그 동네에서 돼지 한마리 만도 못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돼지 떼를 희생해서라도 이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34절을 봅시다. 돼지 치던 자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마을에 알렸습니다(34). 이에 사람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러 나왔습니다. 와서 보니 귀신들렸던 사람은 귀신이 나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져서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귀신 들렸던 자가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를 본 자들이 그들에게 말해 주었습니다(36). 그러자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37). 그들의 두려움은 어떤 두려움일까요? 37절 하반절을 봅시다. 그들은 예수께 떠나가시기를 구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를 괴롭게 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이러다가 자기 동네 돼지 떼가 남아나지 않을 것을 두려워 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사람보다 돼지를 더 중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귀신 나간 그 사람이 얼마나 이곳을 떠나고 싶었을까요? 이에 예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고자 하시니(37), 귀신 나간 그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38).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어떤 방향을 주십니까? 39절을 봅시다.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예수님은 그가 따르기를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행한 큰 일을 말하도록 사명을 명하셨습니다. 사실 그렇게 자랑스러운 인생 소감은 아닙니다. 이 사람에게는 감추고 싶은 흑역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일을 잊지 않고 증거하는 것이, 곧 이 사람을 앞으로 계속 지켜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요, 곧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즘 제가 저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과 소식이 들려와서 많이 두렵습니다. 핸드폰만 울려도 또 무슨 일일까 두려워 합니다. 매일 광풍의 터널을 지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이전에 알고 느꼈던 것보다 죄와 귀신의 세력이 너무나 강한 것 같고, 이런 세력에 붙잡혀 고통하는 양들을 실제에서 도울 힘이 없는 것 같아 괴롭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게 광풍도 잠잠케 하시고, 더러운 귀신의 세력도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어떤 상황에서도 권능의 예수께서 저를 지키시고, 저로 사람 살리는 일에 쓰실 것을 믿고, 매일의 삶에서 말씀을 따라 주님을 깨우며, 또 주께서 제게 행하신 구원의 큰 일을 붙들고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인생의 모든 광풍을 잠재우시는 이 예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는 광풍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구하십니다. 무엇보다 죄의 거센 바람에 휘말려 사는 우리를 위해 돼지 떼보다 더한 자신의 목숨을 내주시며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은혜를 알고 지키고 전하는 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아멘!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누가복음 8:25)

 

2022년 누가복음 11강 메시지 0822-0839 정여호수아.hwp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43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31강 메시지 (천모세) file 정여호수아 2022.10.09 93
342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30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2.10.04 63
341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29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2.09.25 84
340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28강 메시지 (김아브라함) file 정여호수아 2022.09.18 66
339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27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2.09.13 64
338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26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2.09.04 83
337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25강 메시지(천모세) file 정여호수아 2022.08.28 69
336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24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2.08.23 66
335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23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2.08.15 74
334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22강 메시지(김아브라함) file 정여호수아 2022.08.07 69
333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21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2.08.01 79
332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20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2.07.25 63
331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19강 메시지(천모세) file 정여호수아 2022.07.10 69
330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18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2.07.03 65
329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17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2.06.27 52
328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16강 메시지 (김아브라함) file 정여호수아 2022.06.19 71
327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15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2.06.13 71
326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14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2.06.06 56
325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13강 메시지 (천모세) file 정여호수아 2022.05.29 71
324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12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2.05.22 73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 22 Next
/ 22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