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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7 19:40

2022년 성탄 2강 메시지(정여호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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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성탄 2강 정여호수아

누가복음 2:1-20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누가복음 2:11)

Merry Christmas! 요즘 온통 우울하고 슬픈 소식만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또 예전에는 시내 곳곳에 화려하게 장식되었던 성탄 트리, 거리마다 울려 퍼지던 캐롤, 그리고 기쁨으로 주고받던 성탄카드 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 저는 주변 이웃들에게 성탄 떡을 나누는데 사람들의 표정이 다들 너무 굳어 있어서 좀 놀랐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가 정말 ‘Merry Christmas!’ 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오늘 누가가 자세히 미루어 살핀 구주 나심의 기쁨의 소식을 귀 기울여 잘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먼저 구주 나심이 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까?

첫 아들을 낳아 구유에 뉘었으니(1-7)

1,2절을 봅시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라그때는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를 호령하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가이사는 조세를 부과하기 위해 천하로 다 호적하라는 영을 내렸습니다.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입니다. 그의 명령에 따라 모든 백성들은 하던 생업을 다 제쳐두고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하였습니다(3).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올라가야만 했습니다(4). 그뿐 아니라 그와 약혼한 그의 아내, 이미 잉태하여 만삭이 된 마리아도 호적하러 함께 올라가야 했습니다(5). 온 세상을 평화로 다스리겠다고 외치던 가이사는 만삭인 임산부에게조차 자비를 베풀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사렛에 살던 마리아가 베들레헴까지 가게 되었고, 거기서 아기를 낳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순종하여 구주를 잉태한 마리아에게 왜 이 같은 시련과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무슨 뜻이 있습니까? 700년전 미가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가 5:2) 가이사 아구스도가 호적 명령을 내린 이유는 조세를 거두어 들여서 로마 제국의 재정을 충족시키는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호적명령을 선하게 바꾸사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나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겉으로 볼 때 세상 권세 잡은 자들이 내 인생을 주관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에 뜻에 의해 나 자신이 원치 않은 곳으로 점점 밀리고 밀려나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는 억울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이런 눈으로만 세상을 볼 때 점점 운명론자가 되고, 어두운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누가는 가이사의 호적명령까지 사용하셔서라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약속의 말씀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 어떤 상황속에서도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든지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 하고자 하시는 일이 있다는 것을 믿고, 참고 기다리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따라 우리의 인생과 역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하나님 안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셔서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그 때마다 다시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따라 어두워진 눈을 떠서 지금 여기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 또 하고자 하시는 일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 같이 6절을 봅시다. 요셉과 마리아가 거기, 곧 베들레헴에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낳은 그 첫 아들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습니다. ‘구유는 소나 나귀나 양들이 여물을 먹을 때 쓰는 밥통입니다. 냄새나고, 파리가 윙윙 날라 다니는 그런 누추한 곳입니다. 그들이 왜 귀한 첫 아들을 낳아 포근한 침대도 아니고, 따뜻한 아랫목도 아니고, 이같이 냄새나는 짐승 밥통에 뉘었을까요?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7). 호적령으로 인해 베들레헴에 많은 인파가 몰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해산하는 산모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방 한칸도 내주지 않았을까요? 그것도 다윗의 족속이요, 왕가의 후손인 그들이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가 힘들면 다른 사람의 힘든 것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보인다 하더라도 실제로 도와 줄 마음을 가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단은 내가 살고 봐야겠기 때문입니다. 내 가족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찌 그들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예수님은 오시자 마자 처음부터 사람으로부터 외면과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머리 하나 둘 곳이 없으셨습니다. 가장 크고 높고 부요하신 그 분이, 사람들에게 밀리고 밀려서 가장 낮고 누추한 구유에 뉘이셨습니다.

구주께서 왜 이렇게까지 낮고 누추한 모습으로 오신 것일까요? 흔히 과부의 사정은 과부만이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아픔과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아픔을 온전히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겠지요. 실제로 제가 그러합니다. 요즘 한 자매님이 시험공부가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매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 같다고 하면서 말을 할 때마다 눈물을 글썽입니다. 제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한 형제는 제가 무슨 질문을 하면 버퍼링이 걸리면서 한참 뒤에 대답을 하는데, 그것도 1인칭이 아니라 3인칭 시점으로 대답합니다. 알아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실제로 이해하고 마음에서부터 공감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 하는 말을 계속 들어주고,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조차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구유에 누이신 예수께서는 우리 인생의 질고와 아픔을 아십니다. 우리의 슬픔과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해 주십니다. 이는 구유까지 낮은 자리로 오셔서 그야말로 우리를 Understand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목자님께서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습니다. 큰 슬픔에 빠져 오랜시간 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많은 분들이 오셔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그 하는 말들이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고, 도리어 상처로 남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한 선교사님이 보내온 메일을 읽고 마음에 큰 위로와 감동을 받고, 다시 새롭게 목자생활을 시작하게 되셨다고 했습니다. 뭐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2000년전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잃어버리셔야만 하셨던, 그 분 만큼은 지금 외아들을 잃고 크게 슬퍼하는 당신의 마음을 다 아실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구유에 누이시기까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사람에게 버림받고 슬픔을 당하신 우리 주 예수께서 위로하지 못하는 슬픔이 없으십니다. 치료하지 못할 상처가 없으십니다. 회복하지 못할 아픔이 없으십니다. 변화시키지 못할 운명도 없으십니다. 용서하지 못할 죄도 없으십니다. 우리가 누운 그 자리가 어디에 있든 함께 해주십니다. 내가 가장 약할 때, 내가 죄인되었을 때에, 내가 가장 힘들 때 우리 주님께서 기꺼이 그 자리에 함께 하십니다. 춥고 배고프고 나의 연약함과 허물이 드러날 때 힘듭니다. 이런 나와 누구도 함께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나를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 기꺼이 오시고 함께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기꺼이 내가 있는 그 누추한 자리에 그 몸을 누이십니다. 우리가 어떤 누추한 자리에 있든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구유에 누인 아기로 오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우리가 어떤 슬픔과 아픔의 자리, 어떤 운명과 죄의 자리에 있더라도 우리를 위해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을 의지하여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런데 구주께서 이렇게 나셨지만 이를 아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에 주의 천사들이 이 복된 소식을 목자들에게 전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8-20)

8,9절을 봅시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그 지역에 온 세상이 잠들어 있는 그 밤에도 깨어서 자기 양떼를 지키고 있는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밤까지도 쉼과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 그것도 찬바람이 부는 밖에서 양들을 돌봐야 하는 그들의 삶은 고단했습니다.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비가오나 눈이 오나 이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주의 천사가 나타나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10절을 봅시다. 먼저 무서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무서워하면 생각이 마비됩니다. 전해주고자 하는 소식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지금 그들이 들어야 하는 소식은 중요한 소식입니다. 꼭 들어야만 하는 소식이며, 또 들은 그대로 전해야만 하는 소식입니다. 이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기 때문입니다(10).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슬프고 어두운 소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난 3년간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어두운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웠습니다. 아직도 코로나로 인한 암울한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뿐아니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소식도 있습니다. 이 전쟁의 여파로 전세계 경기가 다 시베리아동토처럼 꽁꽁 얼어붙고 있습니다. 특히나 올해 이태원 참사 소식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어둡고 슬프게 하였습니다. 물론 가끔씩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올해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한국이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기뻤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기뻐했지만 우루과이는 슬퍼했습니다. 나에게는 기쁨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슬픔이 되는 것이 진정한 기쁨의 소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전해 준 소식은 어떠합니까? 온 백성에게 미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어떻게 그런 소식이 있을 수 있습니까? 11절을 봅시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구주구원의 주이십니다.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입니까? 심판으로부터 구원입니다. 이로 볼 때 온 백성이 지금 심판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죄로 인해 심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사가랴의 찬송시에도 나왔지만 우리의 인생을 죄에 빠져 심판에 이르게 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원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과 육체와 삶을 파괴하여 무너뜨리고자 하는 원수가 있습니다. 사탄입니다. 사탄은 10개나 되는 뿔로 사람을 마구잡이고 찔러댑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일생 죄에 넘어지게 하고, 사망 권세에 붙잡혀 종노릇하며 살게 합니다. 이로 인해 온 백성이 인생의 기쁨을 다 잃어버리고 신음하며 고통속에 살아갑니다. 그런데 천사는 이같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우리를 위하여 오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다고 합니다(11).

그러면 목자들이 그들을 위해 나신 구주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습니까? 12절을 봅시다. 그 표적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입니다. 온 백성을 구원할 구주라면 로마황제가 사는 왕궁에서 황금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최소한 헤롯 왕궁에는 누워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온 백성을 구원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구주라면 목자들이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구주라면 가서 보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온 백성을 구원하시는 구주의 표적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입니다. 그래야 목자도 가서 볼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가서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구주, 곧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는 표적은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입니다.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셔서 가장 낮은 모습으로 계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죄인들을 위해 구유까지 낮아져 오신 예수,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이십니다. 오직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구원의 주,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멘!

천사의 메시지가 끝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3,14절을 봅시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신 것, 자기를 한없이 낮추어 이렇게 나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또 땅에서 이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평화가 임합니다. 이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 평화를 누립니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자 목자들이 서로 말합니다.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15) 그들이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았습니다(16). 과연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가 있었습니다. 목자들은 이 아기에 대하여 천사들이 말한 것을 전해주었습니다(17). 이를 듣는 자가 다 놀랍게 여겼습니다(18). 특히 어머니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했습니다(19).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습니다(20).

오늘 누가가 전해 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를 위해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다는 것입니다. 그 구주께서 구유에 누이신 아기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구주께서 내가 있는 누추한 자리까지 오셔서 우리와 함께 우리의 모든 질고와 아픔을 함께 짊어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죄 가운데 끊임없이 고통하고 아파하는 우리, 그래서 외롭고 슬프고 답답한 우리를 위해 구유까지 낮아져 오신 아기 예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지금도 온갖 어둡고 슬픈 소식이 들려오는 이때 우리가 더욱 구주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기쁨을 풍성히 누리고 이를 주변 이웃들과 나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누가복음 2:11)

 

2022년 성탄 2강 메시지 누가복음 0201-0220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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