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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마가복음
2018.03.21 19:15

2018년 마가복음 2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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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제 2 강                                                                                                                   김요한

마가복음 1:14-28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마가복음 1:17)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들짐승과 함께 계시면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14-15)

14절을 봅시다. 요단 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던 요한이 잡혔습니다. 당시 유대의 왕 헤롯이 자기 동생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취하였습니다. 이를 두고 요한이 헤롯에게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하자, 헤롯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마가복음 6:17,18). 음란하고 패역한 시대였습니다.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 말하는 의로운 사람이 잡히는 시대였습니다. 시대 분위기가 이러하면 사람들은 더욱 위축되고 눈치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전파하신 하나님의 복음의 내용이 어떠합니까? 15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당시 시대가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 말하면 잡혀가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때가 찼고라 하셨습니다. 이런 음란하고 패역한 시대에 무슨 때가 된 것입니까?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게 나라인가, 무슨 시대가 이런가 합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이런 때에 예수께서 때가 찼고라 하셨다고 증거 합니다. 곧 이 때는 하나님의 때입니다. 사람들은 내 생각대로 되어가면 일이 잘 풀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말씀하십니다. 우리 눈에 때가 어떻게 보이든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때를 말씀하십니다. 이 때는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때입니다. 곧 당시 그 때야 말로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입니다.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이미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음란하고 패역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만든 사탄을 물리칠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3:15). 드디어 그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에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하는데,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사람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서 멸망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로 이끌어 영생을 얻게 하고자 하셨습니다(요한복음 3:16).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고, 이제 사람들 바로 곁에 하나님 나라가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바로 옆에 있으니 보고 영접하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회개하여야 합니다. 자신이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하나님 나라가 보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하고 내 주장 그대로, 내 고집 그대로 여전히 내 때를 주장한다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여 사람들이 주의 길을 준비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회개하고 믿으면 바로 가까이 있는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됩니다. 들짐승 같은 그런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러면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람과 어떤 모양으로든 다투게 됩니다. 주로 엄마하고 많이 다투지 않을까요? 어릴 때부터 안 먹어’ ‘먹으라니까하며 다툽니다. 자신이 늦게 일어나서는 엄마는 왜 안 깨웠어하고 다투기도 합니다. 그렇게 다투다 보면 엄마는 니가 나를 믿냐?’라고 묻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아들 딸들은 엄마, 아빠가 자신을 믿는지 묻기도 합니다. 내 말을 듣고나 있는지, 내 말대로 하는지 묻습니다. 믿으라함은 따르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라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이 말씀대로 하였습니까? 예수님 말씀대로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들을 부르셨습니다. 무슨 말씀으로 부르셨습니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16-20)

16절을 봅시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어촌 체험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 어부였습니다. 직업이 어부였습니다. 늘 거의 매일 그물 던져서 물고기 잡아서 일부는 자신과 가족들이 먹고, 또 일부는 팔아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어부들을 보시고 뭔가를 발견하신 것 같습니다. 무엇을 보셨을까요? 17절을 같이 읽어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는 그들을 보고 있으니, 첫째 그들이 별로 재미없이, 의미 없이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셨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고기를 또 잡아서 자신도 먹고 살고 집안 식구도 먹여 살려야 하니 그물을 기계적으로 그렇게 던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삶을 행복하지 않은 삶입니다.

우리가 왜 대학에 들어와서 1,2주가 지나면 내가 왜 이 공부를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까요? 의대 공부를 마치고 인턴에 되어 며칠이 지나면 내가 왜 이런 공부를 하고 여기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거기에 있어야 하는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냥 일을 기계적으로 합니다.

우리가 왜 대학에 들어갔을까요?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대학에 입학하였다면 나날이 의미가 있어서 조금 힘들더라도 이를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릴 때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가 어린이 집 가라 해서 갔고, 유치원 가라 해서 갔고, 초등학교 가고, 중학교 가고, 고등학교 가고, 고등학교 졸업했으면 그래도 4년제 대학은 가야지 해서 대학교에 온 학생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대학을 졸업하면 대학원이 있어서 또 대학원에 가기 쉽습니다. 이렇게 살다보면 버나드 쇼가 그의 묘비명에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기록된 것 된 것처럼 살게 됩니다. 우리가 목자 생활을 한다 하며 캠퍼스에 올라 형제자매들을 만난다 하더라도 이를 왜 하는지, 그 의미를 모를 때,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속에 부아가 나고, 또 알아주면 하늘같이 마음이 높아지는 그런 삶을 살게 됩니다. 의미도 모르고 사는 기능인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를 보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따르는지 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하나님의 아들, 나를 따라오라 하십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그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어떤 일을 하는가요? 어부들은 바다에 그물을 내려 물고기를 잡아 올립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면 사람을 건져 올립니다.

사람이 어디에 있기에 건져 올려야 합니까?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왕이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음란하고 패역한 시대에서 사람을 건져 올립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힘이 빠지는 것은 언제 그렇게 됩니까? 이렇게 열심히 살아서 무엇인가를 한들 돈 얼마 벌고, 사람의 인정을 받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감옥에 가고, 창피 당하는 것을 보면 나라고 해서 저렇게 되지 말란 법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마트폰을 켜서 이것저것 보다 보면 이상한 그림과 그들이 뜹니다. 그렇게 보다 보면 시간이 휙 지나고 잠도 설치게 됩니다. 아침 9시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보면 대개 눈이 맑은 학생들이 드뭅니다.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처음부터 별로 없는 것 같이 보입니다. 무엇을 따라가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일까요?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라세상은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이를 너무나 안타깝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그렇게 정과 욕심대로 살다가 죽어가는 허망한 삶에서 건져내라 하십니다. 이 일에 그 어부들, 열심히 일하지만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사는 그들, 하나님 나라로부터 너무 멀어져 도저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그들을 예수께서 부르셨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러므로 사람을 낚는 어부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살리려면 사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당시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어부들 가운데 하나님을 떠나 고통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19절을 봅시다.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셨습니다. 세배대라는 이름이 성경에 기록될 정도로 당시 그 지역에서 유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다음 고기잡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마찬가지로 의미 없이 어제도 기웠는데, 오늘도 또 기워야 하는구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지 생각하는 그들의 답답함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부르셨습니다(20). 그러자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갔습니다(20). 이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서 예수님을 따라간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함께 품꾼들과 같이 열심히 일하였던 사람들입니다. 또 그렇게 일하는 것이 의미 없다는 것을 알고 답답하게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과감히 이를 버려두고 예수께서 제시한 사람 낚는 어부의 삶을 살기로 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알아주셨습니다.

누가 나를, 우리를 알아주나요? 나와 가장 가까운 엄마, 아빠가 나를 알아주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엄마도 나를 모른다고 합니다. 때로는 나의 목자님이 나를 가장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데, 그렇지 못함을 느끼게 되면 실망에 빠집니다. 저는 어제 리빙스톤팀과 저녁 10시에 공부하기로 약속해놓고는 휴대폰도 무음으로 해 놓은 채 잤습니다. 새벽 4시에 눈을 떠서야 동진 목자가 3번이나 전화한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제가 리빙스톤 형제들을 나의 삶보다 더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 저의 삶이 예수님 따르는 삶하고는 너무 멀어서 너무나 죄송하였습니다. 그래서 미안합니다하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바나바 목자가 괜찮습니다해서 마음이 괜찮아졌습니다.

하나님 아들 예수께서 하나님 곁에 계셔야 마땅하지만, 이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우리와 가까이 계시고자 함입니다. 우리를 불러서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삶을 살게 하고자 하심입니다. 혹시 낚시나 그물로 물고기를 잡아본 적이 있나요? 고기는 잡히지 않으려 합니다. 고기가 낚시 바늘에 걸리면 잡히지 않으려고 힘을 다해 도망가려 합니다. 그래서 낚시 줄이 튼튼해야 하고, 낚시꾼은 열심히 낚인 고기를 잡아당깁니다. 그물에 걸린 고기들은 어찌하든 빠져나가려 합니다. 물고기도 그런데 낚인 사람이 그냥 끌려올까요? 낚시 줄을 끌고라도 도망가려 하고, 그물에 잡히며 어디 빈틈이 없나 열심히 찾습니다. 오만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려 합니다.

그대로 놓아두면 정과 욕심에 따라 죄의 바다에서 허망하게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도 없이 죽어갈 텐데, 어떻게 하면 사람을 낚아 살려낼 수 있을까요? 사람으로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을 낚을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돈이나 타이틀로 사람을 잠시 낚을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 나라에 가기까지는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나님 아들 예수께서 그 사람과 씨름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영접하고 믿고 따르기까지 하십니다. 이를 기록한 책이 마가복음입니다. 시몬 베드로를 부르신 예수께서 베드로와 그가 하나님나라를 알고 소망하기 까지 그와 끝까지 씨름해주셨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였어도 예수님은 그와 씨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베드로가 사도행전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누가 사람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십니까? 예수님이 하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가니 예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권위 있는 새 교훈을 선포하셨습니다(21-28)

21절을 봅시다. “그들곧 예수님과 예수님의 부르심에 따른 제자들, 시몬과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이 같이 가버나움에 들어갔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거기에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인쇄술이 없어서 서기관들이 성경을 일일이 손으로 베껴 썼습니다. 그래서 서기관들이 성경을 잘 알았습니다. 안식일에 서기관들이 성경을 읽고 교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예수님의 그 교훈을 사람들이 듣고 놀랐습니다. 한 두 사람이 놀란 것이 아니라 뭇 사람이 놀랐습니다.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서기관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들으면서 잠이 오고 몸이 비틀리며 힘들었는데, 예수께서 전하는 메시지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알아듣기 힘든 강의를 들으면 누구라도 잠이 옵니다. 뻔한 얘기 다 아는 이야기를 들으면 잠이 옵니다. 수업을 들어보면 알고 하는 강의구나, 알지도 못하고 모르는 이야기를 하는 구나 알게 됩니다. 그것도 모르면 잠만 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곧 하나님이시니, 알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가르치심에 권위가 있습니다. 왜 애기들이 엄마의 말을 들을까요. 엄마가 자기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알고자 하는 사람과 말씀공부를 하면 그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나를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과 말씀 공부한다면 서기관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서기관은 성경 말씀을 많이 알고는 있지만 사람은 알지 못하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답답할까요.

예수께서는 지나가시다가 어부를 보고 그들의 속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들을 때 얼마나 권위가 있었을까요. 우리가 성경 본문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성경 본문말씀은 예수님과 예수님 말씀 그 자체입니다.

권위 있는 예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23절을 봅시다.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말하였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24) 예수께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심을 귀신같이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께서 이들을 꾸짖어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왔습니다(25,26). 더러운 귀신은 소리 내는, 특히 큰 소리 지르는 특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화가 나면 고함을 지릅니다. 귀신이 들어올 기회입니다.

27절을 봅시다. 이를 본 사람들이 다 놀라 서로 물었습니다.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하였습니다. 서기관들은 말씀을 많이 알고 있지만 더러운 귀신 앞에 꼼짝하지 못하였습니다. 아예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슬금슬금 사람들의 스피릿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자 귀신들은 소리를 질렀고, 예수께서 말씀으로 소리 지르는 더러운 귀신을 제압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라가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누가복음 10:17-19).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갈 때 정과 욕심을 따라 별 더러운 짓을 하는 사람에게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졌습니다(28). 소문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하셨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길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며 죄 많은 세상에서 사람을 건져내서 살리는 사람 낚는 어부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마가복음 1:17)

 

2018 마가복음 2강 메시지 0114-0128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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