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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9 사도행전 18강                                                                                                       정여호수아

사도행전 25:1-26:32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사도행전 26:7)

사람은 소망으로 삽니다. 어떤 소망으로 사느냐에 따라 그 삶에 대한 마음의 태도와 자세가 달라집니다. 또한 그 삶의 결과도 다릅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이겨내고 감당하는 비범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보면 바울 사도가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했습니다.

그가 가졌던 이 소망이 무엇이며, “이 소망을 가진 바울은 어떤 사람이 되었습니까?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25:1-26:3)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아 베스도가 총독으로 부임해 왔습니다. 베스도는 부임한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1). 이는 그곳에 있는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 좋은 관계를 맺고 통치에 협조를 부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은 베스도를 만나자마자 바울을 고소하되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주기를 청하였습니다(2,3).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이송되는 길에 매복해 있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었습니다(3). 아마도 정식 재판으로는 바울을 죽일 만한 명백한 증거나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 부임한 총독이 호의를 베풀어 줄 그때가 바울을 죽일 절호의 찬스라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베스도는 그들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되어 있고 또 자기도 멀지 않아 이곳 예루살렘을 떠날 것이므로 그들 중 유력한 자들만 자신과 함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거기서 바울을 고발하라 하였습니다(4,5). 그들 가운데서 팔일에서 십일을 지낸 후 베스도는 가이사랴로 내려갔고, 이튿날 재판자리에 앉아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였습니다(6).

바울이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능히 증거를 대지 못했습니다(7).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 하였습니다(8). 바울 사도는 새로운 총독이 왔으므로 지금의 상황과는 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내심 기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베스도도 다른 총독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하였습니다(9).

바울 사도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0,11절을 봅시다.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바가 없나이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바울 사도는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습니다.

그가 왜 가이사께 상소했을까요?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했던 때부터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19:21).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이렇게 잡혀 고난을 받는 가운데 주께서 그에게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유대인 사십 명이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바울을 죽이고자 노리고 있었습니다. 총독들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바울을 계속 감옥에 두고 돈이나 받으려 하였습니다. 바울은 가이사에게 상소함으로 로마 군병의 보호를 받으며 로마로 가고자 하였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죄수의 모습으로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죄가 없음에도 죄인의 모습으로 옥에 갇혀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또 죄수가 전하는 복음을 누가 들으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바울 사도는 이를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살든지 죽든지 그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였습니다(빌립보서 1:20).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습니다(히브리서 12:2). 예수님은 십자가 대역죄인의 치욕을 짊어지시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히브리서 13:12).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갔습니다(히브리서 13:13).

쇠사슬에 매인 죄인의 모습으로라도 어찌하든 로마로 가고자 하는 바울사도의 열정과 믿음이 정말 놀랍습니다. 저는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로마로 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상황과 형편이 되어야만 뭘 해보고자 하는 저를 보니 부끄럽습니다. 저는 학생 제자 역사를 위해서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온 몸에서 힘을 쭉 빼고 있었습니다. 다시 새롭게 캠퍼스에 올라 말씀을 전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이제 머리에서 세치도 많이 나고, 배도 나온 저를 학생들이 과연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에 학생들에게 말 한마디 붙여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신을 부인하고 몇 주 전부터 에스더 동역자와 함께 새롭게 캠퍼스에 올라 형제자매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일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면서도 저는 아무 말도 붙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에스더 사모는 곧잘 학생들에게 말을 붙였습니다. 저는 이런 동역자 옆에 가만히 서 있기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계속 같이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첫 날부터 동역자에게 귀한 자매를 붙여 주시고, 저도 학과 후배를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이 일로 제가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상황과 형편 탓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진짜 아무 일도 생기지 않지만, 어찌하던 믿음을 가지고 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일하신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시대와 상황과 형편을 탓하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배부른 소리나 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게 믿음이 없었던 것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회개한 제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어찌하든 믿음을 갖고 캠퍼스에 올라 복음 전하는 일에 도전하는 일입니다. 이제까지의 저를 볼 때 도전하는 마음을 가진다고 되겠습니까?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2절을 봅시다. 가이사께 상소한 바울의 호소를 듣고 베스도는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네가 가이사께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결정하였습니다(12). 베스도는 이제 바울을 책임지고 로마로 보내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울을 가이사에게 무슨 죄목으로 보내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유대인의 풍속과 문제에 대해 잘 아는 분봉 왕 아그립바와 그의 여동생 버니게가 자신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로 왔습니다(13). 그래서 그는 바울의 일에 대하여 자신의 고민을 말하며 아그립바 왕에게 자문을 구하였습니다(14-21).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말을 직접 들어 보고 판단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22). 그리하여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왔습니다(23). 베스도는 바울에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를 얻고자 하는 이유로 당신들, 특히 아그립바 왕 앞에 그를 내세웠다고 하였습니다(25-27).

이제 아그립바 왕 앞에 선 바울은 그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긴다고 하면서 말하기 시작합니다(26:1-3). 바울사도는 왕과 총독, 그리고 높은 사람들 앞에서 무엇을 증거하였습니까?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26:4-23)

4,5절을 봅시다. 바울 사도는 먼저 자신이 처음부터 유대인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생활한 정통 유대인이요 또 유대교의 가장 험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임을 밝혔습니다(6).

그 약속이 무엇입니까? 다같이 7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어 보시겠습니다 이 약속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바울이 말하는 이 소망이 무엇입니까? 8절을 봅시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이로 볼때 이 소망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일, 곧 부활입니다.

이 부활의 소망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지금까지 한시도 놓아 본적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영원한 성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나온 바 본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힘든 가운데서도 장막생활을 하였습니다(히브리서 11:10). 또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도 더 좋은 부활을 소망함으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로 유리하였습니다(히브리서 11:35-38). 그런데 바로 이 부활의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그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이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에게 참된 소망이 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사람은 소망 없이는 살아 갈 수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다 어떤 소망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구멍가게 아저씨는 큰 마트를 차릴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시험에 패스하여 바라던 자격증을 따고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을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원하는 직장에 취업을 한 사람들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할 소망가운데 살아갑니다. 결혼한 사람들은 무슨 소망을 살까요? 하여튼 이처럼 사람들은 다 저마다 어떤 소망을 바라고 그 소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망은 귀중한 것입니다. 사람이 다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도 참고 이겨나갑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이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슨 소망을 가지고 사는가가 더 중요함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붙들고 살아가는 소망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베드로전서 1:24). 또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습니다(야고보서 4:14). 이처럼 결국에는 없어져 버릴 것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삶보다 미련하고 허무한 삶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영화를 다 누렸던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를 두 번이나 반복하여 말하며(전도서 1:2,12:8),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전도서 12:1).

창조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없어지지 아니하는 영원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 죽을 몸도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을 소망을 주셨습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소망을 주셨습니다(베드로전서 1:3,4). 사도 베드로는 이 소망을 산 소망”, ‘living hope’ 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바울 사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대제사장이나 총독이나 왕 앞에서도 조금도 기가 죽지 않고 당당하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는 처음부터 이처럼 부활에 대한 소망과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9,10절을 봅시다. 그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찬성 투표를 하였습니다. 또 모든 회당에서 성도들을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습니다(11).

그런데 이런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2,13절을 봅시다.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에 있는 성도들을 잡으러 갈때였습니다. 정오가 되어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바울과 바울일행을 두루 비추었습니다. 다 놀라서 땅에 엎드려 졌는데 그때 히브리 말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구나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때 바울이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하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하였습니다(15). ‘가시채는 끝에 뾰족한 쇠나 뼈를 박은 채찍입니다. 농부는 소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이 가시채를 휘두릅니다. 이 채찍에 맞으면 웬만한 소들도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가시채를 맞았는데도 뒷발질 하는 것을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뒷발질로 인해 그 몸에서 피가 나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대도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해보다 더 밝은 빛으로 그를 찾아오셔서 그를 멈춰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밝은 그 부활의 빛이 그를 사로잡고 있는 모든 내면의 죄와 어두움들을 거두어 가 주셨습니다. 그의 눈을 가리우고 있던 영적 무지와 교만의 눈꺼풀을 벗겨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도 주셨습니다. 다같이 16-18절을 봅시다.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주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하나님께서는 바울 자신만 눈을 떠서 예수님의 부활의 빛을 보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길 원치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까지도 이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의 눈을 뜨게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가 되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바울을 이 일의 종과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늘에서 자신에게 보이신 것을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였습니다(20). 이런 이유로 유대인들은 그를 성전에서 잡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죽지 않고 그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앞에서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증언한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뿐이었습니다(22).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는 내용의 말씀이었습니다(23).

이 부활의 소망을 따라 바울 사도는 그들에게 또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26:24-32)

24절을 봅시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는 크게 소리내어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말씀을 알지 못하는 베스도로서는 죽의 자의 부활을 증언하는 바울이 마치 미친 사람의 소리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니라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한다고 하였습니다(25). 아그립바 왕도 지금까지 바울이 말한 내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일은 어느 한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26).

이에 바울사도는 아그립바 왕에게 무엇이라고 합니까? 27절을 봅시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 왕은 로마 총독앞에서 멋지게 바울의 죄목을 찾아주고 싶었는데, 도리어 자기가 바울의 전도를 받고 궁지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며 대답하기를 회피하였습니다. 그러자 바울 사도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9절을 봅시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바울은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다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바울 앞에 있는 사람들은 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 총독, 지체 높은 자들, 곧 당대 최고의 권세와 부와 명예를 가진 자들입니다.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고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바울은 죄수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들이 다 자신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실제 삶을 들여다보면 어떠합니까? 아그립바 왕의 할아버지는 세례요한을 목베어 죽인 헤롯 안디바였고, 증조부는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에 두 살 아래의 남자아이는 다 잡아 죽였던 악명 높은 헤롯대왕이었습니다. 이런 가정 환경속에서 그 또한 왕이 되기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았고 왕이 되고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왕권을 위협 존재로 인해 늘 근심과 염려에 시달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버니게는 아그립바 왕의 누이로서 그는 세 번이나 결혼을 실패한 후 나중에는 오빠의 아내가 되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베스도도 총독의 자리에 있지만 로마 황제와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늘 이 눈치 저 눈치를 살펴야 했습니다. 실제로는 자신의 뜻과 소신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누구 앞에서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몸은 쇠사슬에 매여 있으나 사람 앞에 늘 담대하고 자유롭습니다. 자신을 위협하고 죽이려 드는 유대인들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을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왕과 총독 앞에서도 늠름합니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그 바라보는 소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다르면 그 눈에 보이는 것도 다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불쌍한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죄와 어두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겉으로 잘나가고 성공을 했어도 그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 누구라도 그 결국이 영원한 심판과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때 우리는 바울사도처럼 누구에게라도 나처럼 되기를 바란다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이 말을 듣고 그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30,31절을 봅시다.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였습니다. 이에 아그립바 왕은 베스도에게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였습니다(32).

오늘 본문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는 현재 어떤 소망을 가지고 사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생시절 주께 받은 비전을 따라 40명의 제자를 세우고 형제자매들과 동역자들에게 인정받는 그런 목자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제가 실제로 마주치는 현실은 제가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였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은커녕 저 한사람도 감당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네살된 아들도 잘 감당이 되지 않아 소리를 벅벅 지르는 못난 아빠였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목자가 아니라 도리어 괴롭게 하고 죽이는 일을 하는 자였습니다. 이런 자신을 보니 저 자신이 한심하고 또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신을 깊이 발견하면서 저는 다시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붙들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생각과 뜻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따라 자기 영광을 구하던 데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저도 조금씩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에 눈이 떠지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이 들리면서 이 죽을 몸도 다시 살 소망이 제 마음에서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저 한사람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에게도 실제로 관심을 갖고 그 사람으로 생명을 얻게 하는 일에 믿음을 가지고 용기를 내어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 저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인을 거듭나게 하사 제게 산 소망이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제 속에 항상 이 부활의 소망이 살아 있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계속 믿음으로 도전하길 기도합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바울사도가 가진 소망이 무엇인지 보았습니다. 그 소망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 곧 부활이었습니다. 그는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죽을 것도 각오하고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가이사께 상소하여 쇠사슬에 매인 죄수의 신분으로라도 로마에 가고자 했습니다.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사랑하는 동족들에게 뭇매를 맞고 고소도 당하였습니다.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왕과 총독들에게도 결박된 것 외에는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바울 사도는 이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넘어지지 않는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각 사람이 바울사도와 같이 이 부활의 산 소망을 따라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를 만나든지 담대히 복음을 증거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사도행전 26:7)

 

2018-2019 사도행전 18강 메시지 2501-2632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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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23강 메시지(천모세) file 이제현 2023.08.13 56
386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22강 메시지(김아브라함) file 이제현 2023.08.09 44
385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21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3.07.30 51
384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20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3.07.16 52
383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19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3.07.10 54
382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18강 메시지(천모세) file 정여호수아 2023.07.02 64
381 사도행전 2023 사도행전 17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3.06.25 68
380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16강 메시지(정여호수아) 정여호수아 2023.06.18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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