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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9 사도행전 17강 천모세

사도행전 21:1-24:27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23:11)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그것도 성령의 감동을 받은 제자들, 또 선지자 아가보가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하는데도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바울이 왜 이렇게 하였으며, 무엇보다 바울 사도의 주이신 예수께서는 이런 그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먼저 바울이 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하는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는 데는 분명한 각오가 있었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21:1-14)

사도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과 다시 얼굴을 못 볼 것이라 하며 작별하고(20:38), 배를 타고 여러 곳을 거쳐 예루살렘에 가까운 두로에 상륙하였습니다(21:1-3). 두로에 있는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였습니다(4). 여러 날을 지낸 후 바울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 나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서로 작별하였습니다(5,6).

바울 일행이 두로를 떠나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물렀습니다(7,8). 빌립에게 딸 넷이 있었는데 처녀로 예언하는 자였습니다(9). 여러 날 머물러 있다가 아가보라 하는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바울 일행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성령이 이르시되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였습니다(10,11). 바울과 함께 하던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였습니다(12).

이에 바울이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13절을 봅시다.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하고 더 이상 권하기를 그쳤습니다(14).

사도 바울이 이렇게 까지 예루살렘에 가려는 그의 뜻이 무엇일까요? 그의 고집인가요? 사도 바울은 그동안 복음 역사를 섬기는 가운데 대적하는 자들의 불신과 완악함이 어떠한지 알았습니다. 그들로 인해 맞기도 하고, 옥에도 갇혔습니다. 죽을 고비도 넘겼습니다. 때로는 황급히 도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담대히 찬송하고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복음을 전하는 일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루살렘, 유대인의 중심지인 그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그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가지기를 간절히 원하였습니다(20:21). 동족 이스라엘에 대한 목자의 심정이 타는 듯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 기간 동안 끊임없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불신과 완악함과 씨름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시기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 있는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좋은 마음으로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의 마음에도 사도 바울이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생각이 있었습니다. 저는 죽을 각오하지 않고서도 적당한 정도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를 찾습니다. 그러나 복음역사가 죽을 각오하지 하고 그냥 좋은 마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죽기를 각오하는 마음이 없어 앞으로 벌어질 일이 두렵고 고민이 됩니다. 저에게 정말 무엇을 위해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목적이 분명해져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는 제가 알고는 있는데 제 생각과 의지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저를 물에서 건져내시는 주님을 만난 체험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어떻게 그렇게 건져내실까 생각하니, 주께서 저를 늘 보시고 계셨음을 알게 됩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 제가 베드로와 같이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소리 질렀을 때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건져내셨습니다(마태복음 14:30,31). 그때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제게 믿음이 있기는 있는데, 의심 또한 매우 크게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때 제 작은 믿음대로 소리 질러 주님께 있는 그대로 아뢰면 주께서 들으십니다. 기도입니다. 제가 저의 작은 믿음으로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죽을 각오로 예루살렘에 간 바울이 무엇을 하였습니까?

 

바울이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21:15-26)

여러 날 후에 바울이 가이사랴의 몇 제자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15-17). 그 이튿날 바울이 일행과 함께 야고보와 장로들에게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였고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18-20). 사도 바울은 이방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는 수고를 많이 하였습니다. 이를 전하면서 그는 자기의 사역을 쓰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리할 때 사람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사람의 수고를 하나님이 쓰십니다.

이 때 야고보가 바울에게 예루살렘 교회에 있는 문제에 대해 상의하였습니다.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었는데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 였습니다(20). 그들은 사도 바울이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들었다며 사도 바울을 불편해 하였습니다(21). 야고보는 이 문제를 중재하기 위해 그들 중에 있는 서원한 네 사람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도록 안을 제시하고 그러면 모든 사람이 바울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바울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하였습니다(22-24). 바울이 야고보의 제안대로 행하였습니다(26).

사도 바울로서는 목숨의 위협 가운데서도 이방 가운데 복음을 전하였는데 믿는 유대인들이 자신에 대해오해 하는 것을 볼 때에 속이 많이 상하였을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며 굳이 결례를 행하게 하고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해야 하냐며 반발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이 약한 자들을 생각하며 자신을 앞세우지 아니하고 자신을 꺾었습니다(고린도전서 8:9).

믿음의 공동체 내에서도 다양한 배경과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과는 관계없이 무심코 뱉은 한 마디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서 형제자매를 실족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복음을 전하여 그 사람을 살리려면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자신을 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사도 바울의 이 믿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제게는 자신을 꺾는다는 것이 죽을 각오를 하는 것입니다.

이 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21:27-23:10)

그 이레가 거의 찼는데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그가 각처에서 자기 백성과 율법과 성전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쳤고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며 무리를 충동하여 바울을 붙들어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27-30). 그들은 기본적인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무리들을 충동시키고 무리들은 그들의 선동에 놀아났습니다. 말씀을 따라 산다 하면서 사람이 맹목적이 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말씀에 따라 지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어서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 사람들의 말에 넘어가지 아니하고 진리대로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그를 죽이려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을 듣고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온 천부장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쳤습니다(31,32).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는지 물었습니다(33). 천부장은 먼저 사실 확인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소동이 요란한 중에 바울이 천부장의 허락을 받아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히 하게 한 다음 히브리 말로 말하였습니다(34-40).

사도 바울은 성난 무리들 앞에서 맞대응 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인생소감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지 예수님께서 그에게 무엇이라 명하셨는지 자세히 증거 하였습니다(22:1-20). 사도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하는 자로 아는 유대인들에게 어찌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다고 전하였습니다(19-21).

22절을 봅시다. 여기까지 들은 유대인들이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렸습니다(22,23).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하여도 그 말을 듣지 아니할 것이라 하자 그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죽을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전하는 인생소감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이 지금 어떠한지 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완악함을 지적하는 사도 바울을 없애고자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하나님의 뜻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보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는 자는 이처럼 사람을 괴롭게 할 뿐 아니라 죽이려고까지 함을 보게 됩니다. 저도 신앙생활을 한다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이 옳음을 주장할 때에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제가 늘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아내도 괴롭게 하고, 저를 누구보다 사랑 하는 줄 제가 알고 있는 엄마도 괴롭게 하고, 저를 어찌하든 돕고자 하는 장인장모님도 괴롭게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자신이 괴로웠습니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오늘 본문을 읽고 또 읽는 가운데 제가 믿음으로 산다 하면서도 자기가 옳다고 고집을 부리는 유대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본문에 나오는 유대인 같이 불쌍한 삶을 사는 자가 아니라 사도 바울과 같이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기를 기도드립니다.

오히려 말씀 없는 천부장은 고집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일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이 로마 시민인 줄 알고는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진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그들 앞에 세웠습니다(24-30).

이에 바울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자신이 오늘까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 하였습니다(1). 또 그는 유대인들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자신이 대제사장을 욕한 것은 말씀에 의하면 잘못된 일임을 인정하였습니다(2-5). 그리고 공회에 모인 사람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그가 바리새인이며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심문을 받는다 하였습니다(6). 이로 인해 그들 간에 큰 분쟁이 생기자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인을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내로 들어갔습니다(7-10).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어찌하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증거 되는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이렇게 죽음을 각오하고 때를 따라 부활을 증거 하는 바울 사도를 주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담대하라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23:11-24:23)

11절을 봅시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셨습니다(11). 사도 바울이 주의 곁에 선 것이 아니라 주께서 바울 곁에 서셨습니다. 먼저 사도 바울에게 담대하라고 하십니다. 담대하라는 말은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을 넓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무리 가운데서 찢겨질 뻔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죽이려고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고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나 되었습니다(12,13). 아무리 죽기를 각오하더라도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두렵고 마음이 쪼그라들기 쉬운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마음이 쪼그라든 상황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그에게 주께서 그의 곁에 서시고 그의 마음을 넓혀주십니다. 복음역사 가운데 매일의 삶에서 두려움과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이 때 바울의 곁에 서서 담대하라 하시는 주님께서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우리 각 사람의 마음을 담대하게 하실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께서 사도 바울의 마음을 넓히시고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십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섬기며 율법을 가진 유대인의 중심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곳에서 예수님의 일, 곧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보이시고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도록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곳에서 예수님의 일, 곧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인 것과 같이 예수님의 일을 증언하는 사도 바울도 죽이고자 하였지만 주께서 그를 지키시고 예루살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증거 되게 하셨습니다.

주께서 사도 바울에게 로마에서도 나의 일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십니다. 로마는 이방인으로 대표되는 세계의 중심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려져 가시며 땅에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말씀하셨습니다(1:8). 예수께서는 세계 만민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뜻 가운데 사도 바울을 쓰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로마는 율법도 없고 자기 욕심대로 하는 곳입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배경과는 전혀 다른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과는 또 다른 고난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로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주의 일을 증언하는 일에 사도 바울을 쓰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바울을 쓰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아는 자입니다. 그는 빌립보서에서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립보서 3:8).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음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빌립보서 3:10,11). 그는 예수님 안에 죄사함과 부활이 있음을 알고 이에 참여하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자가 예수님의 일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를 알고 주의 일을 증언하는 사도 바울에게 주님의 비전을 주십니다.

저는 오늘 말씀으로 제가 예수님을 알고 있는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제가 그 동안 예수님의 일이라 하며 했던 것 같은데 실제로는 예수님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발견이 됩니다. 예수님을 알기보다 내가 살고자 애를 썼습니다. 기도도 제가 죽을 것 같은 때, ‘살려주세요하며 저를 구해달라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할 때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앞으로의 삶이 두렵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제가 양산캠퍼스 가운데 복음이 증거되어야 한다는 제가 감당하지도 못할 부담감에 짓눌리는 자가 아니라 먼저 예수님을 아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복음의 말씀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여야 하겠습니다(고린도전서 15:2-4). 저는 이제 응급실로 돌아가야 할 3월달이 오면 어떻게 하나 머릿속으로 자주 시뮬레이션을 돌립니다. 결론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자가 소감에서 암에 걸릴 것 같다고 하였는데 저도 암에 걸리지 않을까? 참다 참다 터지는 것은 아닌가? 내 체력은 과연 이런 로딩을 감당할 만한가? 하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깁니다. 이런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사도 바울과 같이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얻고자 하는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을 얻기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까지 여겼습니다. 제가 예수님보다 내 자존심과 고집을 주장하는 불쌍한 삶을 사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아가는 삶을 더욱 사모함으로 이에 대한 분명한 결단이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런데 당시에 예루살렘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며 동맹한 유대인이 사십여 명이 있었습니다(12,13). 그러나 주님께서 바울 사도와 함께 계셔서 그를 로마 군대의 천부장을 통해 그를 지켜 총독 벨릭스에게 가게 하셨습니다(14-32).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변호사를 동원하여 바울을 벨릭스에게 고발하였고(33-24:9), 이에 바울은 이를 통해 자신은 항상 양심에 거리낌 없기를 힘쓰며, 오히려 그들에게 자신이 기다리는 바는 그들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바와 같고, 이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이라 하였습니다(10-16). 그리고 이 소망은 죽은 자의 부활이라 하였습니다(17-21). 이에 벨릭스가 바울에게 자유를 주도록 하고, 가끔 바울을 불러 예수 그리스도 믿는 도를 들었습니다(22-24). 그런데 그는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다음 총독이 올 때까지 그저 바울에게서 혹시 돈을 받을까 하여 자주 불렀습니다(25,26). 그러는 동안 이 년이 흘렀습니다(27).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죽기를 각오하고 급히 왔고, 로마에서도 증언할 비전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 년 동안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이 년의 기간 동안 그가 무엇을 했는지는 오늘 본문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갇혀 있는 이 년의 기간동안 주께서 하신 말씀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로마에도 복음을 전할 비전을 새롭게 하였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갇힌 기간을 통해서 쉼을 누리며 재충전의 기회를 주심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에서 주의 일을 증언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그를 주님께서 지키시고 주의 일을 증언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주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로마에서도 나의 일을 증언하여야 하리라는 비전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주님을 아는 사도 바울에게 주의 일을 맡기십니다. 제가 말씀을 더 자세히 읽고 받아, 믿음으로 산다 하면서 자신이 옳다는 것을 고집하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알고 믿어 이를 증거 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드립니다. 응급실 준비도 이 믿음과 마음으로 용기를 가지고 준비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성경 말씀을 읽고 들은 대로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만나,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울과 같이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증언하는 삶을 살아 사람 살리는 주의 일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로마서 23:11)

 

 

2018-2019 사도행전 17강 메시지 2101-2427 천모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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