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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20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마가복음 10:32-52

 

 

섬기러 오신 예수님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45)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따라 이 음란하고 패역한 시대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실제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 목적을 분명히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같이 32절을 봅시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보통 길을 가실 때 예수님은 제자들 사이에 섞이셔서 함께 가시며 제자들과 대화를 주고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오르는 예루살렘 여정에서는 그들과 대화도 안하시고 묵묵히 그들 앞에 서서 가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고난과 죽음의 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길을 피하지 않으시고 적극적으로 리드해 가셨습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모습에 제자들은 놀라고 따르던 자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다시 열 두 제자들을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십니다.

33,34절을 봅시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이는 예수께서 이미 앞에서 두 번이나 하셨던 말씀입니다. 첫 번째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신앙고백을 한 직후에 하셨습니다(8:31).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그 길을 가시면 안된다고 항변했습니다. 두 번째는 변화산에서 내려오셔서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신 후에 말씀하셨습니다(9:31).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했고 묻기조차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같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묻기조차 두려워하는 말씀을 또 이르셨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가르친 내용은 이전의 내용과 비슷한 것 같지만 또 자세히 살펴보면 다릅니다. 세 번째로 하신 이 말씀에서는 자신이 받을 고난과 죽음의 과정을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자신이 죽임을 당할 장소가 예루살렘임을 밝히셨습니다. 넘겨지매라는 말을 통해 제자들 중에 누군가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또한 자신이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그들이 능욕하고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채찍질하고 죽인다는 말은 당시 십자가 사형 판결을 받은 자에게 가해지는 무서운 형벌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이방인이 집행하는 십자가형으로 죽임 당할 것을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죽음의 과정을 이같이 자세히 알고 계셨고 이를 제자들에게 숨김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쯤 되면 제자들도 이제 이 말씀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고 진지하게 뜻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관심은 어디에 가 있었습니까?

다같이 35절을 봅시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나아와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그들은 3년동안 죽도록 충성했으니 자기들의 요구를 들어주셔야 한다는 듯이 당당히 요구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36)”고 물으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무엇을 구했습니까? 37절을 봅시다.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37).” 이로 볼 때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영광스러운 지상메시야 왕국을 건설하시고 자기들은 열두 보좌에 앉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날에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에 누가 앉을 것인지에 서열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를 베드로에게 빼앗길 것만 같아서 불안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신앙고백을 했고 많은 점수를 땄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다고 하자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서도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을 지어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베드로만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형제는 고민 끝에 예수님을 찾아가 좌우편 자리를 확보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38절을 봅시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지금 그들이 구하는 것을 그들이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마시는 잔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내리신 고난의 잔입니다. 예수님이 받는 세례는 무엇입니까? 십자가 죽음의 세례입니다. 그들이 구하는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마시는 고난의 잔을 마시고 예수님이 받으시는 죽음의 세례를 받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이런 무서운 고난과 죽음의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와 요한의 대답이 어떠합니까? 39절을 상반절을 봅시다.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그들은 주께서 좌우편 자리만 확보해 주신다면 죽음도 불사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39절 하반절에서 40절을 봅시다.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예수님은 그들의 요청대로 그들이 장차 예수님이 마시는 잔과 세례를 받을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이 예언대로 야고보는 헤롯의 칼에 맞아 12제자 중에서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12:2).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100세가 넘어 죽을 때까지 가장 오랫동안 고난의 잔을 마셨습니다. 그러나 좌우편 자리에 앉는 것을 보장해 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자리는 부탁하고 노력하고 또 준비되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이때 다른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다같이 41절을 봅시다.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크게 화를 냈습니다. 자기들을 따돌리고 비겁하게 청탁을 한 야고보와 요한을 생각할 때 분이 끓어올랐습니다. 특히나 베드로는 너무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흐르고, 머리가 돌 것만 같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평소 말 한마디 없던 다대오도 분히 여겼습니다. ‘내가 가만 있으니까 가마때긴 줄 아나!’하며 안색이 달라졌습니다. 이로 볼 때 다른 제자들도 야고보와 요한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고 계시는데 제자들의 이같이 치열한 자리다툼만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어떻게 도우십니까?

 

다같이 42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이방인의 집권자들과 그 고관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또 권세를 부립니다. 자기가 가진 권세로 다스림 받는 사람 위에 군림하고 자기 뜻과 욕심을 관철시킵니다. 소위 요즘 말로 갑질을 일삼습니다. 당시 로마는 로마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 식민지 백성을 힘으로 다스렸습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이 자신의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바른 말을 하자 그를 옥에 가두고 결국은 목 베어 죽였습니다. 제자들은 이런 로마와 헤롯을 미워했고,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목숨 걸고 로마에 대항했던 열혈당원 출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예수님이 왕이 되실 것이라고 생각하자, 제자들도 이 같은 세상권세자들과 똑같이 하려고 하였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조금이라도 더 권세를 부릴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 하십니까? 다같이 43,44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예수님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곧 하나님을 아는 너희는 하나님 모르는 이방인 권력자들과 격이 달라야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달라야 한다고 하십니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면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또 으뜸이 되고자 한다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섬기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 뜻을 관철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섬김받는 상대방의 뜻을 존중하고 그 뜻이 이루어 주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내 뜻에 상대방을 맞추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의 뜻에 나를 맞추는 사람입니다. 또 모든 종이 된다는 것은 실제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사람, 모든 궂은 일을 다 하는 사람,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삶이 따로 없습니다. 자기는 없고 오직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종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든지 크고 으뜸이 되고자 한다면 이같이 섬기는 자가 되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여기에 예외가 없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생각하면 우리는 큰 자가 되고 으뜸이 되는 것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아집니다. 이같이 섬기는 자가 되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될 바에 차라리 큰 자가 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가 왜 이같이 낮아져 섬기는 자가 되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합니까? 다같이 45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같이 섬기는 자로 오셔서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는지 상관없이 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에게는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삶이 곧 우리의 삶의 방향이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자이십니다.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곧 크기로 말한다면 이 세상에 예수님 보다 큰 자가 없습니다. 섬김 받기로 말한다면 이 세상에 예수님 만큼 섬김 받기에 합당한 분이 없습니다. 권세를 부린다면 예수님보다 권세 부릴 수 있는 분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일지라도 이 땅에 섬김받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섬기러 오셨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내어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대속물이란 몸값이란 뜻으로 포로나 노예된 사람을 풀어주기 위해 지불하는 대가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냥 우리를 섬기신 것이 아니라 이처럼 대속제물이 되기까지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대속제물이 되셔야만 합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산다 해도 여전히 죄와 사탄의 세력에 붙들려 다시 죄를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애굽의 종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한 이후에도 여전히 죄를 반복해서 짓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도 죄를 반복해서 범합니다. 원하던 원치 않던 이같이 일생 죄짐에 눌려 살아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실존입니다. 이런 죄인된 우리 인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섬김은 정말 무엇입니까? 곧 죄인된 우리가 진정 살 수 있는 길, 심판으로부터 구원 얻는 길은 정말 무엇입니까?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의 죄가 사함 받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해 친히 대속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가 치러야 할 그 대가를 다 지불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에게 있어 가장 깊은 필요와 섬김이 바로 죄사함임을 아시고 이 죄 문제를 실제로 해결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인자로 낮아져 오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리사 우리를 위해 대속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들리는 가장 기쁜 소식 곧 복음입니다.

정죄받아 마땅한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그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자 대속재물이 되신 이 예수님에게서 우리는 은혜와 감동을 느낍니다. 모든 죄짐의 고통에서 풀려나 다시 죄와 싸울 힘을 얻습니다. 섬김받고자 하는 대서 섬기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은혜를 덧입습니다. 저 또한 예수님께 이 같은 은혜를 덧입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 저는 학창시절 불행한 가정으로 인한 운명주의와 학교에 대한 열등감과 정욕과 게임에 빠져 죄의 포로요, 죽음의 노예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주의 은혜로 학과 친구의 초청을 받아 목자님들의 뜨거운 섬김과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가족보다 더 제게 관심을 보이시고 저의 필요를 알고 채워주시고자 애를 쓰시고 낮아져 섬겨주시는 목자님들에게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제가 성경공부에 응하고 또 여름수양회에 참석한 동기가 되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계속되는 성경공부를 통해 저도 저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자기 목숨을 내어놓기까지 자기를 희생하신 예수님을 저의 그리스도로 만났습니다. 그렇게 목자가 되었고 지난 몇 년 동안 섬기는 삶을 살고자 나름 힘쓰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저란 사람은 여전히 섬기기보다 섬김을 받으려 하는 죄인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미국 국제 수양회에서 장염 때문에 몸이 힘들어지자 저의 죄악된 본성을 따라 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양회 3일째 수양관 음식이 너무 먹기 힘들어 밖에서 사먹기로 했는데, 이 마저도 뜻대로 안 되고, 몸도 한계 상황이 되자, 동역자들을 두고 혼자 숙소로 와버렸습니다. 이런 저를 안타깝게 여기신 피터 리 선교사님은 나중에 저를 위해 직접 라면을 주문해서 사들고 제 숙소까지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 섬김의 사랑으로 다시 몸을 추스르고 일어날 수 있었고 무사히 투어까지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아침에도 저는 울고 떼쓰는 저의 아들 갈렙이가 감당이 되지 않아 큰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저 어린아이 하나도 감당하기 힘든, 감정과 혈기의 노예 그대로 인 것 같은 저 자신을 볼 때 너무 절망이 되고 힘이 빠졌습니다. 제가 무슨 자격으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저 같은 죄인을 살리기 위해 예수께서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주신 복음을 다시 붙들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이 자리에 서서 주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저를 위해 대속물이 되신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을 실제 문제 앞에서 붙들고 믿음으로 저의 죄악된 본성과 육신의 연약함을 넘어서서 낮아져 섬기는 일에 계속해서 도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같이 46,47절을 봅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다가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를 나가 실 때였습니다.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께서 방금 전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섬기는 종이 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영접했다면, 맹인 거지가 이렇게 간절히 도움을 청하고 있을 때, 당연히 도와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귀에는 그의 이 간절한 외침이 시끄러운 고함소리로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이에 그들은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였습니다(48). 그의 간절한 외침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하자 그가 자기의 겉옷을 내버리고 벌떡 일어나서 예수께로 나아 왔습니다(49,50). 나아온 그에게 예수께서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하셨습니다. 그러자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라갔습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육신의 눈은 멀쩡했지만 영적으로는 눈 먼 맹인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자들도 바디매오처럼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간절히 기도할 때 그 감겨졌던 눈이 떠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고 죽임당하는 그리스도의 길을 계속 반대하는 제자들에게 왜 자신이 죽임당하셔야 하는지를 확실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우리가 이 말씀을 따라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신 예수님의 이 섬김의 사랑에 눈뜨게 되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실제 삶 속에서 섬기려 하기보다 섬기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과 소금으로 쓰임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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