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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23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창세기 37:1-38:30

 

 

꿈 꾸는 요셉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창세기 37:9)

오늘 말씀은 야곱의 족보입니다. 야곱이 살아간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어디에 살아야할지 결정하는 것도 중요한 결정인데, 야곱이 어디에 살았습니까?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습니다(37:1)

야곱이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습니다. 곧 그의 아버지 이삭이 거류하던 땅이었습니다. 이삭이 죽자 그의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이 장사를 지낸 후(35:29), 에서는 세일 산에 거주하였고(36:8), 야곱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습니다. 이에는 이유가 확실하였습니다. 야곱은 체험하였습니다. 그의 환난 날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환난을 겪고 있던 때에 약속대로 그에게 행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벧엘로 다시 올라왔습니다. 벧엘에 올라온 그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약속하셨습니다(35:12). 이제 야곱에게 있어 이 약속은 더 이상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만의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야곱 자신이 그의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약속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믿음으로 그는 자신의 거주지를 가나안 땅으로 확실히 결정하고 거기 거주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현재 저는 지금 왜 이 땅에 거주하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여기에 대한 답이 제게 없음을 보고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게도 하나님께서 학생시절 들려주신 약속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요한일서 4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죄와 운명가운데서 고통하며 죽어가던 저를 살리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시기까지 저를 사랑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한일서 4:11)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제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제가 이를 잘 모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약속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주의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 매일 이 곳으로 나오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안심이 되었습니다. 저의 연약함이 어떠하든, 저의 죄악 됨이 어떠하든 저는 계속 이곳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앞으로도 저와 계속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께서 저로 이곳 김해 인제 캠퍼스에 거주하며 제가 받은 바 주의 사랑을 증거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아멘!

그러면 약속의 땅에 거주한 야곱과 그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야곱의 아들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중 요셉과 유다가 주인공입니다. 이 두 사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야곱이 애굽 땅으로 가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의 생명 구원 역사에 쓰임을 받습니다.

먼저 요셉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요셉이 꿈을 꾸었습니다(37:2-36)

2절을 봅시다.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아마도 야곱의 아들들의 품행이 썩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양을 슬쩍 슬쩍 팔아먹기도 하였을까요. 대개 동생들은 형들의 영향력을 받고 자랍니다. 특히 좋지 못한 영향력은 쉽게 잘 받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의 불의에 같이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사실 그대로 다 말했습니다. 그런데다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으로 그를 위하여 채색 옷을 지어 입혔습니다(3). 이로 인해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형들이 요셉을 더 미워할 일이 생겼습니다. 5절을 봅시다. 하루는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합니다.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을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요셉이 형들의 왕이 되고 형들을 다스리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형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또 말합니다.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이번에는 형들뿐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도 자신에게 절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버지 야곱도 그 꿈을 듣고 그를 꾸짖었습니다. 그의 형들은 그를 시기하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습니다(11).

하나님은 17세 소년 요셉에게 지도자가 되는 꿈을 주셨습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반복해서 꾸게 하셨습니다. 보고 또 보아 그에게 심겨졌습니다. 이 꿈은 요셉이 원해서 꾼 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요셉에게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하필 요셉에게 이 같은 꿈을 주신 것일까요? 하나님도 요셉을 편애하신 것입니까? 요셉은 복잡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일찍 엄마를 여의었기 때문에 운명적인 아이로 자라나기 쉬웠습니다. 문제 많은 형들을 본받아 얼마든지 삐뚤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변화된 야곱 곧 이스라엘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고자 하는 진실 되고 순수한 마음을 간직했습니다(39:9). 하나님은 이런 요셉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꿈은 그 심령이 깨끗한 마음에 잉태됩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됩니다(디모데후서 2:21).

그러면 이 꿈을 말한 요셉을 형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12,13절을 봅시다.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이스라엘이 요셉을 불러 말합니다. “네 형들이 있는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세겜은 디나가 강간을 당한 곳이요 그의 아들들이 칼로 보복했던 곳입니다. 그는 그의 아들들이 세겜에서 양떼를 치다가 혹 나쁜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크게 염려되었던 것 같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실제로 챙겼습니다. 아버지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명에 순종해 형들이 자신을 미워한다 하더라도 그 형들을 찾아 세겜으로 갔습니다(14). 세겜에서 만나지 못하였어도, 돌아오지 않고 도단까지 찾아갔습니다(15). 그는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그런데 18-20절을 봅시다. 그의 형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말합니다.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라형들은 요셉을 보자마자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꿈 때문이었습니다. 꿈대로 되면 요셉이 자신들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꿈이 없는 그들은 꿈이 있는 요셉을 시기하였습니다. 요셉을 죽이면 그의 꿈도 깨질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래도 제일 큰 형인 르우벤이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의 생명을 해치지 말자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21,22)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히긴 했지만 그래도 맏이는 달랐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은 먼저 요셉이 입은 채색 옷을 벗겼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습니다(23,24). 그런데 그때에 이스마엘 상인들이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25). 이를 보고 유다가 자기 형제들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이에 그들은 요셉을 지나가는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은 이십을 받고 팔았습니다. 상인들은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습니다(26-28).

형들은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하였습니다(29-32). 아버지가 알아보고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 찢겼도다하고는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였습니다(33,34).

요셉이 꾼 꿈은 형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형들을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 꿈과 정반대였습니다. 형들이 자기를 지배하고 자신은 애굽에 노예로 팔렸습니다. 꿈을 꾼 요셉이 꿈이 없는 형들에게 당하였습니다. 요셉이 꿈을 말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꿈 때문에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 가게 되었습니다. 꿈은 현실과 달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꿈은 이루어졌습니다(43:26). 이로 인해 야곱과 그 족속들이 애굽 땅에 와서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45:5). 요셉도 자신이 꾼 꿈을 생각하며(42:9), 하나님께서 많은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이렇게 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50:20). 하나님께서는 이같이 젊은이들에게 환상을 보이십니다(사도행전 2:17).

하나님께서는 제게도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2005년 전국학생수양회에 참석하였는데, 인제에서는 이마태 목자와 저 딱 두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런데 광주에서는 전세 버스 한 대가 왔습니다. 우리 둘은 서로 얼굴을 보고 말하였습니다. ‘광주는 부산보다 작지 않나, 인제대학교는 부산에 있는데 우리도 버스 한 대는 와야지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비전 40팀이 탄생했습니다. 40명이 버스타고 전국학생수양회에 참석하는 꿈이었습니다. 이 꿈은 마태 목자와 저, 단 두 명이 꾼 꿈입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였고, 하나님께서 제게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의 현실을 볼 때 이 비전과 소망이 도저히 실현될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제게 보이신 비전은 하나님께서 보이신 것입니다. 저는 이번 여름수양회에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말씀이 들렸습니다. 저의 지금 형편이 어떠하다 하더라도 제 모습이 어떠하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제게 주신 꿈을 이루실 것입니다. 저로 40명이든 몇 명이든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비전을 따라 많은 사람이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쓰실 것입니다. 꿈을 생각하니 힘이 납니다. 오늘 말씀으로 제게 주신 이 비전이 살아나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아멘!

오늘 본문 38장에서는 야곱의 아들 중 유다가 나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소개하면서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서 아들을 낳았음을 기록합니다(마태복음 1:3).

어떻게 이런 유다를 하나님께서 쓰셨을까요? 그는 며느리와 관계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시인하였습니다. 어떻게 말했습니까?

그는 나보다 옳도다(38:1-40)

381절을 봅시다.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였습니다.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였습니다(2).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의 이름을 엘이라 하였습니다(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4),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셀라라 하였습니다(5).

6절을 봅시다. 장자 엘이 장성하자 유다가 그를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셨습니다(7). 이에 유다가 둘째 오난에게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하였습니다(8). 그런데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였습니다(9).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셨습니다(10). 유다는 이러다가는 세 아들을 모두 잃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에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말합니다. 11절을 봅시다.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이는 셀라도 그 형들처럼 죽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12절을 봅시다.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었습니다. 그 후에 유다가 친구와 함께 딤나에 올라갔습니다. 이를 다말이 들었습니다. 다말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14절을 봅시다.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았습니다.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었습니다.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는 그를 창녀로 여기고 그의 도장과 그 끈과 자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를 담보물로 주고 그와 관계를 하였고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습니다(15-18). 이후 유다는 담보물을 찾기 위해 친구를 보내지만 그곳에는 창녀가 없다는 말만 되돌아 왔습니다(19-23).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다말이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에 유다는 당장에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고 하였습니다(24). 그런데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유다에게 말합니다.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잉태했나이다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25)”

이를 보고 유다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다같이 26절을 한목소리로 읽어봅시다.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유다가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유다는 자신의 죄가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은 듯이 다 드러나게 됩니다. 남자로서 유다의 체면과 자존심이 말이 아니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그 사회에서 매장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다말이 행음하였다 하여 그를 불살라 자신의 죄를 덮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나보다 옳다고 하였습니다. 다말이 어떤 점에서 유다보다 옳습니까? 자신은 다말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셀라가 장성하면 그에게 준다고 약속 했지만 셀라가 장성하였어도 이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다말은 어떻게든 후손을 낳아 남편의 대를 잇게 하는 의무를 다하고자 해서 이렇게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다말의 행위가 자신보다 옳다고 시인했습니다. 다말이 이렇게 할 수밖에 몰아간 장본인이 바로 자신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더 이상의 잘못을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록 죄를 범했지만 그 죄가 드러났을때 스스로 인정하고 다시는 그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유다를 귀하게 보사 요셉과 함께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에 기초로 쓰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오시는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회개한 죄인 한 사람을 통해 이루어 집니다.

27절을 봅시다. 다말이 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였습니다. 한손이 먼저 나와 산파가 홍색실을 그 손에 매었는데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왔습니다. 산파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무엇을 들려줍니까? 저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를 결정을 해야 하는데, 이 결정의 기초가 무엇이 되어야 할지를 배웠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어찌되었든지 결정을 하여야 합니다.

먼저 야곱은 자신이 살 거주지를 결정하였습니다. 사람이 어디서 살지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풍수를 보기도 하고, 학군을 따져보기도 합니다. 야곱은 이삭이 거류하던 땅,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으로 받은 땅에 거주하였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환난 가운데 있을 때 겪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요셉은 그가 본 그대로 말하였습니다. 그는 형들의 잘못을 보았을 때, 괜히 이것을 말하였다가 집안이 시끄러워지면 골치 아픈데 싶어서 입을 다물지 않았습니다. 말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꾼 꿈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사람이 본대로 꾼 꿈대로 이야기하면 괜히 시끄러워질 수 있습니다. 요셉이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형들로부터 미움받고 애굽의 노예로 팔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유다는 무덤까지 들고 가고 싶은 자신의 더러운 죄가 드러났을 때 이를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로써 유다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제가 어느덧 목자가 되고 또 저를 지켜보는 눈이 많게 되니 예전처럼 제 속에 있는 대로 말하고, 저의 죄를 드러내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저의 죄와 허물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 이를 자신의 잘못으로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의 역사에 유다를 쓰신 것은 그가 자기 죄가 드러났을 그때 이를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돌이켰기 때문입니다. 이를 생각할 때 죄 문제로 끊임없이 넘어지고 끙끙댈 수밖에 없는 제게도 소망이 생깁니다. 그리고 앞으로 목자로서의 삶을 감당하면서 제가 계속 해서 마음에서 놓지 않고 투쟁해야 할 기도제목이 무엇인지 분명한 방향이 생깁니다. 제가 말씀을 따라 하나님 앞에서 죄인된 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돌이키는 믿음의 투쟁을 힘써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할 때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 예수께서 저의 모든 부끄러움을 다 없이 하시고 주의 역사에 유다와 같이 쓰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어디에 살지, 또 이것을 말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내가 지은 죄를 인정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는 결정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사람은 확실하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디에 살지, 이를 말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실제 문제가 있을 때, 우리가 할 일은 말씀으로 돌아가 나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이 있는 사람이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약속의 말씀이 있는 사람은 여러 문제 앞에서 헷갈리지 않습니다. 나에게 약속의 말씀이 잘 보이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하고 말씀을 보면 보입니다. 그래도 안 보이면 어떻게 합니까? 또 말씀 읽고 기도하면 보입니다. 우리에게는 구름 같이 많은 믿음의 증인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과 유다와 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있습니다(히브리서 12:1).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히브리서 12:2). 우리 자신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특히 연약한 자신으로 인해 힘들 그 때 인내함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온전하게 됩니다. 요셉처럼, 유다처럼 제대로 된 결정을 하게 됩니다.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결정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아멘!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창세기 37:9)

 

2019년 창세기 23강 메시지 3701-3830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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