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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7.03.26 19:48

2017년 누가복음 13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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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13

누가복음 6:20-49

 

 

듣고 행하는 자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누가복음 6:47)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제자라 합니다. 누가복음 6장 앞부분에서 예수께서 제자들 중에서 열둘을 택하셔서 사도라 칭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주권입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예수께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 제자들에게 복이 있다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기에 그들이 복이 있다 하십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20-26)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하는 일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프셔서 밤새도록 기도하시고 제자들 중에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바리새인 서기관들과 같지 않은,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사람을 살리는 지도자가 되기를 예수께서 원하셨습니다.

20절을 봅시다. 그런데 예수께서 눈을 들어 보시니 제자들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 다들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난한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하셨습니다. 왜 가난한 그들이 복이 있다 하십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그들이 가난하다 하더라도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난하고, 지금 주리고 있었습니다(21). 지금 주린 자가 복이 있다 하십니다. 그들이 배부름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21) 지금 눈물 흘리고 우는 자가 복이 있다 하십니다. 그들이 웃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들은 지금 가난하고, 지금 주리고, 지금 우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22절을 봅시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인자로 말미암아인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사람의 아들로 오셨음을 말합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로 오셨습니다. 그만큼 가난한 삶이 없습니다. 그리고 목수의 아들로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그런데 가난하게 사신 예수님을 따른다고 예수님 따르는 제자들을 사람들이 미워하고 멀리하고 욕하고 그 사람의 이름을 악하다 하여, ‘다시는 만나지 말자,’ ‘호적에서 판다,’ 하며 버릴 때에는 그 제자들에게 복이 있다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23절을 읽어봅시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악하다 하고 멀리 할 때 뛰놀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미움 받아 울고 가난하다 할지라도 하늘에서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증거가 있습니다. 조상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선지자들을 미워하고 욕하고 악하다며 버렸습니다.

그러나 화 있는 자도 말씀하십니다. 24절을 봅시다. 부족할 것이 없는 부요한 자가 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위로를 받았습니다. 또 지금 배부른 자가 화가 있을 것입니다. 25절입니다. 그들은 주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웃는 자도 화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애통하며 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26절을 봅시다.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인정하고 칭찬하면 그 사람에게 화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칭찬하면 기뻐할 일이 아닙니다. 화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인정하고 칭찬하였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말씀을 떠나 있는 사람이 말씀에 따르지 않는 신앙생활을 해도 잘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네 편이라고 거짓으로 말해주었습니다(이사야 30:9-11, 예레미야 5:31, 23:16,17).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고난 받고 죽임을 당하실 예수님을 따라 지금 여기서 주리고 가난하고 울고 핍박 받으므로 그들이 복이 있다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무슨 눈으로 보고 계십니까? 제자들이 가난하고 주리고 울고 버림 받고 있다 하더라도 그 제자들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따르는 중요한 이유가 무엇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여 오셔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사십 일을 전하셨습니다(사도행전 1:3). 지금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나라 주제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눈이 떠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세상은 세상 나라입니다. 하나님나라로부터 멀리 떨어진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사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제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원수를 사랑하고, 바라지 말고 주라(27-38)

27절을 봅시다. “그러나세상이 하나님 나라 사모하는 제자들을 미워하고 멀리하고 욕한다 하더라도,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내면의 고통을 아시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말씀을 듣는 제자들에게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하십니다. 더 나아가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십니다(28).

어떻게 하는 것이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까? 29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혹시 뺨 맞아본 분이 있습니까? 저는 맞아보았습니다. 뺨을 맞자, 내 뺨 때리는 그 놈을 꽉 잡아 밟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라 하십니다. 세상에 누가 있어 이렇게 하겠습니까? 한 마디로 미친 짓으로 보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 사모하며 예수님 따르는 제자들에게 그렇게 원수를 사랑하라 하십니다.

뺨 맞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하십니다. 옷이 뺏기면 이 추위에 살기 힘듭니다. 거절하지 말라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라 하십니까? 30절을 봅시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라하십니다. 같이 31절을 읽겠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세상에 제일 치사한 일이 줬다 뺏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바가 얼마나 많은지요. 배려 받고 싶고, 상대방이 아무리 기분 나쁘더라도 나에게는 웃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믿으면 그 정도는 해야 되지 않느냐고 요구합니다. 그렇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그렇게 대접하라고 하십니다.

누가 있어 이렇게 하겠습니까? 32절을 봅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하십니다. 죄인들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죄인들도 그들이 사랑하는 자는 사랑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광고한다고 그 제품을 구매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는 자신의 시간과 재물을 기꺼이 씁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딸을 섬기는 사람에게 책임감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God father들도 자기 딸을 사랑합니다. 가끔 자기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있기는 한데, 이 사람들은 사람도 아닙니다.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죄인들도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잘해줍니다(33). 나에게 잘해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따로 그룹을 만들어 관리하기도 합니다.

34절을 봅시다. 우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주면 무슨 칭찬이 있겠습니까?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은 어떻게 하라 하십니까? 35절을 봅시다. “오직다른 길이 없습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하십니다. 그리하면 제자들에게 상이 클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상입니다. 무슨 상입니까?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됩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십니다. 사람이 열 받는 경우는 은혜를 모르는 자에게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십니다(마태복음 5:45).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보시다가 저 사람은 악한데 하심면서 그 사람에게만 비를 내리지 않고 그러지는 않으십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 이스라엘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확실히 계시다는 것을 알리시기 위해 구별하신 경우는 있습니다(출애굽기 8:22,23; 9:3,4; 25,26).

36절을 봅시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아버지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비롭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로우심을 알 수 있습니까? 그냥 우리 자신을 보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만큼 우리를 늘 먹이시고 살리시고 생명을 주심을 볼 때 우리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시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예수님 따르는 제자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하십니다.

자비로운 자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37절부터 봅시다. 비판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정죄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용서하라 하십니다.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38절을 봅시다. 주라 하십니다.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그 사람에게 안겨 주실 것입니다.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하십니다. 예수님 따르는 제자가 자신이 셈하는 만큼 그 만큼 그대로 하나님께서 셈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하십니까?

 

듣고 행하는 자마다(39-49)

39절을 봅시다. 또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하십니다. 눈이 감긴 사람이 눈 보는 사람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어렵지 않습니다.

여기서의 맹인은 자기의 죄와 허물을 볼 수 없거나, 아예 볼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곧 자신의 죄와 허물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을 선생님이요 주로 섬기며 따르고자 합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하시며 소망의 말씀을 주십니다(40). 말씀을 듣고 행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제자들은 예수님 안에서 자신이 생명을 누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할 일은 형제들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고 그 티를 빼야 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자신의 눈 속에 들보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41). 자신의 눈 속에 들보, 큰 널빤지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42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마음 상하셔서 그렇게 기도하신 것은 당시의 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로 인함이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맹인이요, 외식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외식하는 자들, 겉을 꾸미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속하고 다르게 겉을 꾸미며 신앙 생활하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남의 작은 결점을 지적하여 크게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배가 고파 이삭 좀 비벼 먹은 것 가지고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큰 결점을 가립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먼저 자신에게 있는 결점을 들보 정도로 크게 여기고 자신의 결점을 먼저 고치고 그리고 남의 결점을 작게 여기고 티 같이 작은 그 결점을 고치게 됩니다.

곧 자기 발견을 한 사람입니다. 자기 발견이 된 사람과 자기 발견이 되지 않은 사람은 언제 그 결과가 드러납니까? 열매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43절을 봅시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습니다.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압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합니다(44).

같이 45절을 읽어봅시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말 말을 잘해야 합니다. 말 잘못하면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말 잘하면 천냥 빚도 갚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말만 잘하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 마음에 쌓인 것이 말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어떻게 하려 하기보다 우리 내면 즉 우리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46절을 봅시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 우리 나라에서는 주여! 주여! 주여!’ 삼창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어찌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47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어떤 사람과 같은지를 제자들에게 보여주겠다고 하삽니다. 어떤 사람과 같습니까? 48절을 봅시다.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이 사람은 기초를 튼튼히 하고자 시간이 걸리더라도 깊고 넓게 파서 반석 위에 집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지만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여, 주여하면서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 공사 없이 집을 흙 위에 지은 사람과 같습니다.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다고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49). 우리 눈에 지금 어떻게 보인다 하더라도 나중에 큰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심판의 때가 있습니다.

곧 예수께서는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쉽지 않지만, 말씀을 들은 대로 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말씀하십니다. 지금 당장 배고프고 가난하고 사람들로부터 왕따 당하면 누구라도 힘듭니다. 자신이 잘못했으면 이는 마땅히 받아야 할 징계입니다(베드로전서 2:20).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해 자신이 지금 주리고 가난하고 핍박당하면 그 사람이 복이 있다 하십니다. 그 인생의 기초를 하나님 나라 위에 세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그 인생의 기초가 튼튼해집니다. 우리 각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대로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주는 삶을 살아,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 심판의 때에 주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있는 복 있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누가복음 6:47)


2017 누가복음 13강 메시지 0620-0649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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